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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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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之問(?~712)
자는 延清으로, 少連이라고 칭하였다. 汾州(지금의 山西省 汾陽市) 사람이다. 일설에는 虢州 弘農(지금의 河南省 靈寶縣) 사람이라고도 한다. 高宗 上元 2년(675)에 진사가 되어 則天武后 永隆 2년(681)에 楊炯 등과 함께 崇文館學士에 제수되어 응제문을 지었으며, 寵臣 張易之와 武三思 등을 추종하다가 瀧州參軍으로 좌천당하는 등 수차례의 부침을 겪기도 하였다. 中宗 때 修文館學士로 발탁되어 연회와 수창에 이바지하는 館閣文人으로 다시 활약하다, 玄宗이 즉위하자 佞臣을 추종하였다는 죄로 廣東省 欽縣으로 유배되어 賜死되었다. 沈佺期‧杜審言 등과 함께 초당 후반 律詩의 수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원래 문집 10권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존하지 않으며, 명나라 때 편찬된 《宋之問集》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題大庾嶺北驛〉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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