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結(723~772)
河南人으로, 字는 次山, 北朝後魏 왕족의 후예라고 한다. 천보 13년(754) 진사에 급제하였다. 安祿山의 난을 피하여 江西省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乾元 2년(759) 肅宗의 부름을 받아 右金吾兵曹參軍이 되어 반란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 廣德 元年(763) 道州刺史를 거쳐 768년 容管經略使를 지냈다.
성품이 고결하고 우국의 충정이 넘쳐, 그의 시는 전란으로 인한 백성의 고통과 사회상에 눈길을 돌린 침통한 작품이 많았으나, 표현의 기교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簡古한 그의 작풍과 문장은 韓愈, 柳宗元의 古文運動에 영향을 끼쳤다. 또 그의 대표작 〈舂陵行〉은 杜甫를 크게 감동시켜 그에 답하는 시를 짓게 했을 정도였으며, 民聲을 천자에게 들려주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系樂府〉는 白居易의 〈新樂府〉의 선구가 되었다.
시문집인 《元次山集》과 자신이 편찬한 《篋中集》이 전한다.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작품으로 〈賊退示官吏 幷序〉 〈石魚湖上醉歌 幷序〉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