韋應物(737~792)
中唐 前期의 유명한 시인으로, 京兆(지금의 陝西省 西安市)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는 唐 玄宗의 侍衛로서 매우 총애 받았으나, 安史의 난 이후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洛陽縣丞과 滁州刺史 등을 역임하였으며 마지막 관직으로 蘇州刺史를 지냈으므로 세칭 ‘韋蘇州’라 일컬어졌다. 그는 비교적 장기간 동안 지방관을 지냈기에 안사의 난 이후 백성들이 겪은 고통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당시 조정의 정치적인 부패에 대해서도 절감하였다. 때문에 그의 많은 시들이 백성들의 고난과 부패한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시 가운데는 山水田園과 隱居 생활에 대해 읊은 작품들이 많다. 이러한 시편들은 그가 陶淵明을 본받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또한 한편으로 위응물만의 독특한 풍격을 느낄 수 있게 한다. 中唐시기의 걸출한 시인 白居易는 위응물의 시가 지닌 ‘高雅閑淡’한 풍격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中唐시기의 걸출한 현실주의 시인인 白居易는 위응물의 시작품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저서로는 《韋蘇州集》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郡齋雨中與諸文士燕集〉 〈初發揚子寄元大校書〉 〈寄全椒山中道士〉 〈長安遇馮著〉 〈夕次盱眙縣〉 〈東郊〉 〈送楊氏女〉 〈淮上喜會梁川故人〉 〈賦得暮雨送李冑〉 〈寄李儋元錫〉 〈秋夜寄邱員外〉 〈滁州西澗〉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