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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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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益(749~829)
字는 君虞이며, 姑臧(지금의 甘肅省 武威縣) 사람이다. 大曆 4년(769) 진사가 되었다. 燕趙 지역을 유랑하다가 幽州節度使 劉濟辟의 從事가 되어 변방에서 10년간을 지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邊塞詩를 남겼으며, 당대에 크게 유행하여 內庭에서도 가창되었다. 憲宗은 그의 명성을 듣고 秘書少監으로 삼았으며, 이후 集賢殿學士와 禮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이익의 시는 민간가요의 의미와 정서를 깊이 내포하고 있으며, 변새의 정경과 수자리 사는 征夫의 심정을 잘 담아냈다고 평해진다. 풍격이 王昌齡과 매우 근접하며 五言‧七言 絶句에 매우 뛰어났다. 《新唐書》 〈文藝傳〉에 전이 실려 있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喜見外弟又言別〉, 〈江南曲〉, 〈夜上受降城聞笛〉 등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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