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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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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偓(842?~923?)
字는 致堯인데 致光이라는 설도 있으며, 호는 玉山樵人이다. 京兆 萬年(지금의 陝西省 西安市) 사람이다. 昭宗 龍紀 元年(889)에 進士가 되었고, 兵部侍郞, 翰林學士를 역임하였다. 宦官의 전횡을 반대하였기에 소종은 그를 매우 신뢰하였다. 朱溫이 권력을 농단함에 그의 편에 서지 않아 그의 심기를 거슬려서 濮州司馬로 폄직되었다. 天佑 2년(905)에 복직되었으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남쪽으로 王審知에게 의탁하여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저서에 《韓內翰集》, 《香奩集》이 있다. 그는 李商隱의 同壻인 韓瞻의 아들이었는데, 어려서부터 詩에 능하여 이상은의 인정을 받았다. 이상은이 그에게 준 시 가운데 “어린 봉황의 소리 늙은 봉황의 소리보다 맑구나.[雛鳳淸於老鳳聲]”라는 구절이 있다. 《韓內翰集》에는 시대의 혼란함을 슬퍼한 작품이 많다. 《香奩集》의 경우, 그가 소년 시절에 지은 것으로 艶麗한 정서가 주조를 이루며, 宮體詩에 가깝다. 《新唐書》에 傳이 있다.《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已涼〉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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