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渾(?~858?)
자는 用晦(또는 仲晦)이며, 潤州 丹陽(지금의 江蘇省 丹陽縣) 사람이다. 文宗 大和 6年(832)에 进士에 급제하여, 安徽省 當塗‧太平의 縣令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大中 연간에 监察御史가 되었지만, 병으로 귀향하였다가 다시 润州司马와 虞部员外郎, 睦州‧郢州의 刺史 등을 지냈다. 만년에 潤州의 丁卯橋 곁의 집으로 돌아가 閑居하면서 诗集 《丁卯集》을 엮었다. 율시에 뛰어났으며, 시에 ‘水’자를 많이 써서 “허혼 시 천 수는 물에 젖어 있다.[许浑千首湿]”는 평을 받았다. 懷古詩도 많이 지었는데, 〈咸阳城东楼〉, 〈金陵懷古〉, 〈故洛城〉 등이 유명하다. 《唐才子传》에 小傳이 수록되어 있고, 《정묘집》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秋日赴闕題潼關驛樓〉, 〈早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