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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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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唐大家韓文公文抄 卷6 序
歸安 鹿門 茅坤 批評
孫男 闇叔 著 重訂
楊憑爲御史中丞하야 奏辟儀之爲觀察支使하니라 文有興致
愈在京師時 嘗聞當今爲多賢이라 與之遊者二人이니 隴西 淸河이라
群與博之爲人 吾知之로니 道不行於하고 與之處者非其類 雖有享之以라도 不一日留也
컨대 凡在宣州之幕下者 雖不盡與之遊 皆可信而得其爲人矣
愈未嘗至宣州로되 而樂頌其主人之賢者 以其取人信之也ㄹ새니라
之在朝 愈日侍言於門下러니 有問湖南之賓客者어늘
愈曰 知其客可以信其主者 宣州也 知其主可以信其客者 湖南也라호라
去年冬 然後 得謁湖南之賓客於幕下하고 於是知前之信之也不失矣로라
及儀之之來也 聞其言而見其行컨대 則向之所謂群與博者 吾何先後焉이리오
儀之智足以하고 材足以하며 忠足以하고 惠足以어늘
而又 先聖賢之하야 其質하니 宜乎而流聲實於天朝也로다
夫樂道人之善하야 以勤其歸者 乃吾之心也 謂我爲邑長於斯而媚夫人云者 不知言者也 工乎詩者 歌以繫之어다


01. 楊支使餞送
楊憑御史中丞이 되어, 조정에 上奏해 〈認可를 받아〉 楊儀之를 초빙하여 觀察支使로 삼았다. 문장이 興致(재미)가 있다.
내가 京師에 있을 때에 오늘날 藩鎭賓客(幕僚) 중에 오직 宣州賢者가 많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宣州의 막료 중에〉 나와 交遊하는 자가 둘이 있으니, 隴西 사람 李博淸河 사람 崔群이다.
나는 崔群李博의 사람됨을 잘 아는데, 그들은 자기의 주장이 主人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함께 막료로 있는 자들이 자기와 같은 무리가 아니면 비록 季氏와 같은 를 누리게 해주어도 하루도 머물지 않을 사람들이다.
최군과 이박의 사람됨을 미루어 하면, 宣州幕僚로 있는 자들을 내가 모두 交遊하지는 못하였으나, 모두 믿을 수 있고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내가 宣州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그 주인의 어짊을 稱頌하기 좋아하는 것은 그 주인이 현자들을 막료로 취하여 信任하기 때문이다.
지금 中丞(楊憑)께서 朝廷에 계실 적에 나는 날마다 門下에서 모시고서 말씀을 나누었다. 그러므로 중승께서 〈觀察使로〉 오시어 이곳을 鎭守하시자, 어떤 사람이 湖南賓客에 대해 묻기에,
나는 “빈객을 보고서 주인을 믿을 수 있는 곳은 宣州이고, 주인을 보고서 빈객을 믿을 수 있는 곳은 湖南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지난 겨울에 내가 皇命을 받들어 陽山縣令이 된 뒤에 湖南의 빈객들을 觀察使 幕府에서 만나보고서, 전에 믿었던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楊儀之가 이곳(陽山)에 옴에 미쳐 그의 말을 들어보고 그의 행실을 살펴보건대, 내가 앞에서 말한 崔群李博과 같았으니 내 어찌 누가 낫고 누가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양의지의 지혜는 계책을 내기에 충분하고, 재능은 功業을 세우기에 충분하며, 충성은 上司를 위해 盡力하기에 충분하고, 은혜는 백성을 存恤(慰撫)하기에 충분한데,
게다가 또 ≪≫‧≪≫ 등 六藝(六經)의 학문과 先代 聖賢德音(가르침)으로 〈지식과 행동의〉 범위를 넓혀[] 그 文采를 이루고 타고난 을 보완하였으니, 湖南府에서 從事(僚屬으로 있음)하면서 명성이 전파되어 조정에 가득 찬 것이 당연하다.
남의 훌륭한 점을 칭찬해 돌아가는 이를 勸勉[]하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나의 마음(이 를 지은 본의)이다. 내가 이곳의 邑長이 되어 支使에게 아첨한다고 하는 자는 나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에 능한 이들은 詩歌를 지어 이 序文 뒤에 붙이기 바란다.


역주
역주1 送楊支使序 : 楊支使는 楊儀之이다. 貞元 18년(802)에 楊憑이 御史中丞으로 湖南觀察使가 되어 楊儀之를 불러 觀察支使로 삼았다. 支使는 節度使와 觀察使의 屬官이다. 이때 한유는 陽山縣令이었는데, 陽山은 連州의 屬縣이고, 連州는 湖南觀察府 관할이다. 양의지가 양산에 왔다가 돌아갈 때 한유는 이 序를 써서 그를 전송하였다. 이 序는 한유가 양산현령으로 있던 貞元 20년(804)에 쓴 것이다.
序는 文體名으로 여러 종류가 있다. 作者가 자기 作品의 主旨와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그 과정을 서술하는 自序도 있고, 남의 작품을 소개하고 평론하는 序文도 있고, 벗과 헤어질 때에 권면하는 말을 주는 贈序도 있는데, 여기의 序는 贈序이다.
이 序는 문장의 형식이 독특하다. 楊憑의 幕僚 楊儀之를 전송하면서 楊憑은 말하지 않고, 宣州觀察使 崔衍의 幕府에 賢者가 많음을 말하여, 楊憑의 어짊과 그 幕府에 賢者가 많음을 간접적으로 말하였다.
역주2 藩翰之賓客 : 藩翰은 본래는 국가를 保衛하는 重臣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藩鎭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詩經≫ 〈大雅 板〉에 “价人維藩 大師維垣 大邦維屛 大宗維翰(軍事를 맡은 卿士가 나라의 울타리이고, 太師(三公의 하나)가 나라의 垣墻이고, 큰 諸侯가 국가의 屛障이고, 宗親이 국가의 방패이다.)”이란 말이 보인다. 賓客은 將帥의 幕府의 參謀와 書記 등 幕僚를 이른다.
역주3 宣州 : 宣歙觀察使 崔衍을 이른다. 최연은 字가 著이다. 天寶 말년에 明經으로 발탁되어 蘇州와 虢州의 刺史를 거쳐, 貞元 12년(799)에 宣歙觀察使로 昇遷하였다.
역주4 李博 : 貞元 8년(792)에 韓愈 및 崔群과 함께 進士試에 급제한 자이다.
역주5 崔群 : 본서 권4의 〈與崔群書〉 참조.
역주6 主人 : 幕府의 主帥로 觀察使를 이른다.
역주7 季氏之富 : 季氏는 春秋 때 魯나라의 政權을 장악했던 季孫氏이다. 魯 襄公 때 孟孫氏‧仲孫氏와 함께 公室을 3分하여 1분을 차지하였다가, 昭公 때에 다시 公室을 4분하여 그 2분을 차지하였다. ≪論語≫ 〈先進〉에 “季氏가 周公보다 부유하였다.[季氏富於周公]”란 말이 보인다.
역주8 以群博論之 : 최군과 이박의 사람됨에 비추어 論함이다.
역주9 中丞 : 楊憑을 이른다. 양빙은 字가 虛受이고 또 다른 字는 嗣仁이다. 大曆 9년(774)에 進士試에 壯元으로 뽑혀 佐使府를 거처, 貞元 연간에 누차 승진하여 太常少卿이 되었다. 18년에 御使中丞으로 外職에 나가 湖南觀察使가 되었다. 양빙은 柳宗元의 장인으로 詩文에 뛰어나서, 당시에 그 아우 凝‧凌과 함께 ‘三楊’으로 불리었다.
역주10 其來而鎭玆土也 : 鎭은 鎭守이고, 玆土는 湖南을 이르니, 곧 中丞이 湖南觀察使로 온 것을 이른다.
역주11 奉詔爲邑於陽山 : 貞元 19년(803) 겨울에 한유가 監察御使로 關中의 饑饉을 말하였다가 죄를 얻어, 湖南 連州 陽山縣의 令으로 좌천된 것을 이른다. 爲邑은 邑長이 된 것이니, 곧 縣令이 된 것을 이른다.
역주12 造謀 : 계책을 냄이다.
역주13 立事 : 功業을 세움이다.
역주14 勤上 : 上司의 일에 盡力함이다.
역주15 存下 : 下民을 存撫(慰撫)함이다.
역주16 侈之以詩書六藝之學 : 六藝는 원래 禮‧樂‧射‧御‧書‧數 등 6種의 科目을 이른 말인데, 漢代 이후로는 ≪詩≫, ≪書≫, ≪禮≫, ≪樂≫, ≪易≫, ≪春秋≫ 등 六部의 經典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侈之의 ‘侈’에는 擴大의 뜻이 있고, 확대는 범위를 넓힘이니, 곧 지식과 행동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역주17 德音 : 仁義와 道德에 부합하는 말로 곧 성인의 가르침을 뜻한다.
역주18 以成其文 以(附)[輔]其質 : 文은 言行이 세련됨이고, 質은 꾸밈이 없이 순박함이니, 知識과 德行을 提高하여 高尙하고 優雅한 인품을 이루고, 소박하고 순수한 質性을 보완하였다는 뜻이다. ≪論語≫ 〈雍也〉에 “質이 文보다 지나치면 野人(교양이 없고 예의를 모르는 시골 사람)이고, 문이 질보다 지나치면 史(교양은 풍부하지만 순수성이 부족한 사람)이니, 문과 질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이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19 (附)[輔] : 저본에는 ‘附’로 되어 있으나, ≪五百家注昌黎文集≫에 의거하여 ‘輔’로 바로잡았다.
역주20 從事於是府 : 從事는 官名이다. 漢代 이후로 각 州郡의 僚屬을 ‘從事’로 칭하였다. 是府는 湖南觀察府를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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