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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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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行敍事하니 當是韓之變調 然予獨不甚喜此文호라
求士於從事之賢者하니 有薦石先生者어늘
公曰 先生何如 曰 先生居之間하야 冬一裘, 夏一葛이요 朝夕飯一盂, 蔬一盤이라
人與之錢則辭하고 請與出遊 未嘗以事辭로되 勸之仕하면 不應이라 坐一室 左右圖書
與之語道理어나 辯古今事當否어나 論人高下 事後當成敗 若河決下流而東注하며
若駟馬駕輕車就熟路而니라
大夫曰 先生하고 無求於人하니 其肯爲某來耶
從事曰 大夫文武忠孝하야 求士爲國이요 不私於家 方今하야 師環其疆하니 農不耕收하야 財粟殫亡하니라
吾所處地 歸輸之塗 이라 先生仁且勇하니 若以義請而強委重焉이면 其何說之辭리오
於是하고 具馬幣하야 卜日以授使者하야 求先生之廬而請焉하니라
先生不告於妻子하고 不謀於朋友하고 冠帶出見客하야 拜受書禮於門內하니라
宵則沐浴하고 하며 載書冊하고 問道所由하고는 告行於常所來往하니
晨則畢至하야 하니라 하야 且起
有執爵而言者曰 大夫眞能以義取人하고 先生眞能하야 決去就하니 爲先生別하노라
又酌而祝曰 이리오 惟義之歸 遂以爲先生壽하노라
又酌而祝曰 使大夫恒無變其初하야 無務富其家而饑其師하며 無甘受佞人而外敬正士하며
無味於諂言하고 惟先生是聽하야 以能有成功하야 保天子之이어다
又祝曰 使先生無圖利於大夫하야 而私便其身圖하노라 先生起拜祝辭曰 敢不敬蚤夜하야 以求從
於是東都之人士咸知大夫與先生果能以有成也하니라 遂各爲歌詩하야 愈爲之序云이라


13. 石處士를 전송한
議論을 가지고 敍事文을 지었으니, 이는 韓愈變調(원래의 格式을 변경함)로 생각[當是]된다. 그러나 나는 유독 이 문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河陽軍節度御史大夫 烏公(烏重胤)이 節度使가 된 지 석 달째 되는 달에 어진 幕僚[從事]에게 人才[]를 구하니, 石先生을 추천하는 자가 있었다.
烏公이 물었다.
先生은 어떤 분인가?”
從事가 대답했다.
先生嵩山邙山, 瀍水穀水 사이에 살면서, 겨울에는 한 벌의 갖옷, 여름에는 한 벌의 갈옷으로 지내며, 먹는 것은 아침저녁에 밥 한 그릇과 채소 한 접시뿐입니다.
남이 돈을 주면 사양하고 함께 나가 놀자고 초청하면 다른 일을 이유로 거절한 적이 없었으되, 出仕하라고 권하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앉아 있는 한 방 안에는 좌우에 圖書가 가득합니다.
그와 도리를 이야기하거나 古今 사건의 옳고 그름을 辨別하거나 인물의 高下事後成敗를 논하면 마치 黃河의 둑이 터져 물이 쏟아져 내려 동쪽으로 흐르듯이 〈막힘이 없고,〉
마치 駟馬가 가벼운 수레를 끌고 익숙한 길을 달리는데 王良造父가 수레를 모는 일을 서로 돕는 것 같아 〈걸리는 것이 없고,〉 마치 촛불로 사물을 비추듯이 〈분명하고〉 숫자를 계산하듯이 〈정확하고〉 거북점을 〈치듯이 사태를 豫見한 것이 的中〉하였습니다.”
大夫가 말하였다.
先生은 〈나름대로〉 까닭이 있어 이렇게 늙어가고 남에게 구함이 없으니, 어찌 나를 위해 오려 하겠는가?”
從事가 말하였다.
大夫文武忠孝를 겸비하였습니다. 〈大夫께서〉 人才[]를 구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이지 사사로이 一家(개인)를 위해서가 아니십니다. 지금 寇賊(叛軍)이 恒州에 모여 있어 官軍이 그 경계를 포위하고 있으니, 農民들은 耕作하지도 收穫하지도 못하여 재물과 곡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河陽)은 軍需品을 수송하는 길목이니, 군사를 다스리는 법과 정벌에 관한 계책을 내는 사람이 응당 있어야 합니다. 선생은 인자하면서도 용감하니, 만약 義理로써 招請하여 억지로 重任을 맡기신다면 무슨 말로 사절하겠습니까?”
이에 초빙하는 편지를 쓰고, 말과 폐백 등 禮物을 갖추어 날을 잡아 使者에게 주어 선생의 집으로 찾아가서 초청하게 하였다.
先生妻子에게도 하지 않고 벗들과도 상의하지 않고서 갓을 쓰고 띠를 매고 나와 (使者)을 만나보고서 문 안에서 절하고서 편지와 禮物을 받았다.
밤이 되자 목욕하고 行裝를 꾸리고 書冊을 싣고서 경유하는 길을 묻고는 평소 來往하던 벗들에게 떠남을 알리니,
새벽이 되자 벗들이 모두 와서 上東門 밖에 帳幕을 치고서 〈餞別宴을 열었다.〉 술잔이 세 차례 돌아 일어나려 할 때에
어떤 이가 술잔을 들고 말하였다.
大夫는 참으로 大義로써 사람을 취하였고, 先生은 참으로 로써 自任하여 去就를 결정하였으니, 〈이 한 잔의 술로〉 先生을 송별합니다.”
또 잔에 술을 따라 축원하였다.
“무릇 去就出處가 어찌 일정하겠습니까? 오직 로 돌아갈 뿐이니, 드디어 〈이 한 잔의 술로〉 先生長壽를 축원합니다.”
또 잔에 술을 따라 축원하였다.
“〈바라건대 선생은〉 大夫로 하여금 항상 그 初心을 변치 말아 자기 집만을 부유하게 하기를 힘써 군사들을 굶주리게 하지 말게 할 것이며, 아첨하는 자들의 말을 달게 여겨 받아들이고 正士를 겉으로만 공경하는 척하지 말게 할 것이며,
참소하는 말에 맛을 들이지 말고 오직 선생의 말만을 듣게 해서, 成功하여 天子께서 내리신 寵命을 보존하게 하소서.”
또 축원하였다.
“〈바라건대 대부는〉 先生으로 하여금 大夫에게 이익을 도모하여 사사로이 自身만을 편리하게 하기를 圖謀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선생이 일어나서 축사에 감사하는 절을 하고서 말하였다.
“감히 밤낮으로 공경하여 祝規 따르기를 구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東都人士들은 모두 大夫先生이 과연 서로 도와 성공할 것을 알았다. 드디어 각각 歌詩 6씩을 짓고, 나로 하여금[] 序文을 짓게 하였다.


역주
역주1 送石處士序 : 石處士는 바로 石洪으로 자는 濬川이다. 處士는 隱士를 이른다. 元和 5년(810)에 河陽軍節度使 烏重胤이 石洪을 招聘해 幕僚로 삼았다. 이때 韓愈는 東都에서 직임을 맡고 있었는데, 사람들과 함께 北門으로 나가 河陽으로 떠나는 石洪을 전별하면서 이 序를 지었다. 石洪은 이에 앞서 10년 동안 집에서 지내면서 出仕하지 않았기 때문에 處士라 한 것이다.
역주2 議論 : 烏公과 從事가 문답한 말과, 벗들의 祝辭와 石洪의 答辭 등을 이른다.
역주3 河陽軍節度御史大夫烏公爲節度三月 : 烏重胤이 節度使의 직임을 맡은 석 달은 元和 5년 6~7월 사이이다. 河陽은 唐나라 河南府 屬縣의 縣名인데, 지금의 河南省 孟縣이다. 安史의 亂 때 군사적인 요충지였으므로 뒤에 節度府를 설치해 항상 重兵을 주둔시켰다. 御史大夫는 당나라 때 中央政府의 監察機構였던 御史臺의 長官이다. 당시에는 節度使가 대체로 어사대부를 겸임하였다.
역주4 嵩邙瀍穀 : 嵩은 五嶽의 하나인 嵩山으로 河南省 登封縣에 있고, 邙은 洛陽의 北山이다. 瀍‧穀은 두 江의 이름으로 모두 洛陽에 있다.
역주5 王良造父(보)爲之先後 : 王良은 春秋 때 晉나라 사람이고, 造父는 周 穆王 때 사람인데, 두 사람은 모두 말을 잘 몰았다. 先後는 두 사람이 서로 도움이다.
역주6 燭照數計而龜卜 : 燭照는 촛불로 비춘다는 말로 사물을 분명하게 봄을 비유한 것이고, 數計는 숫자를 계산한다는 말로 정확함을 비유한 것이고, 龜卜은 점을 친다는 말로 사태를 豫見함이 정확함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7 有以自老 : 有以는 까닭이 있다는 말이고, 自老는 이렇게 늙어간다는 뜻이다.
역주8 寇聚於恒 : 成德軍節度使 王承宗이 恒州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이른다.
역주9 治法征謀 宜有所出 : 군사를 다스리는 법과 叛軍을 征討하는 계략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주10 譔書詞 : 譔은 글을 지음이고, 書詞는 招聘하는 書信이다.
역주11 戒行(事)[李] : 저본에는 ‘事’로 되어 있으나, ≪五百家注昌黎文集≫에 ‘李’로 되어 있고, ≪韓文考異≫에도 “事가 혹 李로 되어 있다.”고 한 것에 의거하여 ‘李’로 바로잡았다. 行李는 行裝이고, 戒는 꾸림이다.
역주12 張上東門外 : 張은 포장을 침이고, 上東門은 洛陽城의 北門이니, 곧 북문 밖에 포장을 치고서 餞別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역주13 酒三行 : 술잔이 세 차례 돌아감이다.
역주14 以道自任 : 道義를 실현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긴다는 말이다.
역주15 凡去就出處何常 : 去는 벼슬을 버림이고 就는 벼슬에 나아감이며, 出은 出仕함이고 處는 隱居함이다. 何常은 어찌 고정불변의 원칙이 있느냐는 말이니, 곧 去就와 出處에 어찌 불변의 원칙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16 寵命 : 천자가 내린 榮譽로운 使命을 이른다.
역주17 祝規 : 規戒의 뜻을 담은 祝辭를 이른다.
역주18 相與 : 서로 도움이다.
역주19 六韻 : 12句의 詩이다.
역주20 (退)[遣] : 저본에는 ‘退’로 되어 있으나, ≪韓文考異≫에 “退가 혹 ‘遣’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遣’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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