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在命意라 故逈出諸家하고 而闔闢頓挫가 不失尺寸이라
人固有儒名而墨行者하니라 問其名則是나 校其行則非면 可以與之遊乎아
如有墨名而儒行者면 問其名則非나 校其行則是니 可以與之遊乎아
浮屠師文暢喜文章
하야 其周遊天下
에 凡有行
에 必請於搢紳
하야 以求咏歌其所志
하니라
貞元十九年春
에 將行東南
할새 爲之請
하니라 解其裝
하야 得所得敍詩累百餘篇
하니
非至篤好면 其何能致多如是邪리오 惜其無以聖人之道告之者하고 而徒擧浮屠之說贈焉이라
夫文暢은 浮屠也니 如欲聞浮屠之說인댄 當自就其師而問之리라 何故謁吾徒而來請也리오
彼見吾君臣父子之懿
와 之盛
하고 其心有慕焉
이로되 拘其法而未能入
이라
故樂聞其說而請之니 如吾徒者는 宜當告之以二帝三王之道와 日月星辰之行과 天地之所以著와
鬼神之所以幽와 人物之所以蕃과 江河之所以流而語之요 不當又爲浮屠之說而瀆告之也니라
民之初生
에 固若禽獸, 夷狄然
이러니 然後
에 知宮居而粒食
하고 親親而尊尊
하며 生者養而死者藏
하니라
是故道莫大乎仁義하고 敎莫正乎禮樂刑政이라 施之於天下에 萬物得其宜하고 措之於其躬에 體安而氣平하니라
堯以是傳之舜하고 舜以是傳之禹하고 禹以是傳之湯하고 湯以是傳之文, 武하고 文, 武以是傳之周公, 孔子하니라
書之於冊하야 中國之人世守之하니라 今浮屠者는 孰爲而孰傳之邪아
夫鳥俛而啄하고 仰而四顧하며 夫獸深居而簡出은 懼物之爲己害也로되 猶且不脫焉하야 弱之肉을 彊之食하나니라
今吾與文暢安居而暇食
하고 하야 與禽獸異者
를 寧可不知其所自邪
아
夫不知者는 非其人之罪也요 知而不爲者는 惑也며 悅乎故하야 不能卽乎新者는 弱也며
知而不以告人者는 不仁也며 告而不以實者는 不信也라 余旣重柳請하고 又嘉浮屠能喜文辭하야 於是乎言하노라
唐荊川曰 開闢圓轉이 眞如走盤之珠하니 此天地間有數文字라 通篇一直說下나 而前後照應在其中이라
고상함이 命意(主題)에 있으므로 諸家에 비해 크게 뛰어나고, 문장의 변화와 성조의 抑揚이 법도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사람 중에는 본래 名色은 儒者이나 행위는 墨者인 자가 있다. 그 명색을 물어보면 儒者이지만 그 행위를 따져보면 아니니 그와 교유해도 되겠는가?
가령 명색은 墨者이나 행위는 儒者인 자가 있는데 그 명색을 물어보면 儒者가 아니지만 그 행위를 살펴보면 儒者이니 그와 교유해도 되겠는가?
揚子雲(揚雄)이 말하기를 “門墻에 있으면 물리치고 夷狄에 있으면 끌어들인다.”고 하였으니, 나는 이 말을 취해 법으로 삼고자 한다.
浮屠師 文暢은 문장을 좋아하여, 그는 천하를 두루 돌아다닐 적에 길을 떠날 때마다 반드시 搢紳이나 先生에게 청하여 자기의 뜻한 바를 詩歌로 읊어주기를 요구하였다.
貞元 19년(803) 봄에 동남쪽으로 길을 떠나려 할 때에 柳君 宗元이 그를 위해 〈나에게 글을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그의 행장을 풀었는데 그가 얻은 序와 詩 수백여 편을 발견[得]하였으니,
문장을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어찌 이렇게 많은 序와 詩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중에 성인의 道로써 일러준 자는 없고 단지 浮屠의 說을 들어 말해주었을 뿐이다.
文暢은 승려이니 만약 佛敎의 學說을 듣고 싶었다면 당연히 그 스승에게 가서 물었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와서 청하였겠는가?
文暢은 우리 儒家의 君臣‧父子 사이에 행하는 美德과 文物‧事爲의 성대함을 보고서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佛法에 구애되어 儒家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儒家의 설을 듣기 좋아하여 청한 것이니, 우리 儒者들은 그에게 二帝 三王의 道와 日月星辰이 운행하는 까닭, 天地가 顯著한 까닭,
鬼神이 幽隱한 까닭, 人物이 繁殖하는 까닭, 江河가 흐르는 까닭을 일러줌이 마땅하고, 또다시 불교의 설을 말하여 번거롭게 일러주는 것은 옳지 않다.
人類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본래 짐승이나 오랑캐와 같았는데, 聖人이 君王이 된[立] 뒤에 宮室에 살고 곡식을 먹으며, 친족을 친애하고 어른을 존경하며, 산 이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매장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道에는 仁‧義보다 큰 것이 없고, 敎化에는 禮‧樂‧刑‧政보다 바른 것이 없다.
이것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각각 마땅한 처소를 얻고, 이것을 자신에 시행하면 신체가 편안하고 心氣가 화평하다.
堯는 이것을 舜에게 전하고, 舜은 이것을 禹에게 전하고, 禹는 이것을 湯에게 전하고, 湯은 이것을 文王과 武王에게 전하고, 文王과 武王은 이것을 周公과 孔子에게 전하였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중국 사람들이 대대로 이를 遵守해 오고 있는데, 지금 浮屠란 것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한 것인가?
새가 몸을 굽혀 모이를 쪼면서도 머리를 들어 사방을 돌아보며, 짐승이 깊은 곳에 숨어 살면서 밖으로 드물게 나오는 것은 다른 짐승이 저를 해칠까 두려워해서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잡아먹힘을〉 면하지 못하여 弱한 놈의 고기를 彊한 놈이 먹는다.
그런데 지금 나와 文暢은 짐승과 달리 편안히 살고 한가로이 먹으면서 자유로이 생활하니, 이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어찌 몰라서야 되겠는가?
알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고,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미혹해서이며, 옛것을 좋아하여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나약해서이고,
알면서도 남에게 일러주지 않는 것은 인자하지 못해서이며, 일러주되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것은 信實하지 못해서이다. 나는 이미 柳宗元의 청을 중히 여기고, 또 浮屠가 文辭를 좋아하는 것을 가상히 여겨 이에 이렇게 말하노라.
唐荊川이 말하였다. “펼치고 거둠과 원활하고 순탄한 것이 참으로 쟁반에 구슬이 구르는 것 같으니, 이는 천지 사이에 몇 안 되는 문장이다. 全篇을 直線으로 설명해 내려갔으나 앞뒤가 서로 照應함이 그 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