圬之爲技는 賤且勞者也라 有業之하니 其色若自得者요 聽其言하니 約而盡이라
問之하니 王其姓이요 承福其名으로 世爲京兆長安農夫러니
에 發人爲兵
하야 持弓矢十三年
에 이라 棄之來歸
나
喪其土田
하야 手鏝衣食
이 餘三十年
이라 舍于市之主人
하야 而
하고
視時屋食之貴賤
하야 而上下其圬之傭以償之
하고 有餘
면 則以與道路之
餓者焉
하니라
又曰 粟은 稼而生者也요 若布與帛은 必蠶績而後成者也요 其他所以養生之具도 皆待人力而後完也니 吾皆賴之니라
然人不可徧爲
하니 也
라 故君者
는 也
요 而百官者
는 承君之化者也
라
任有小大나 惟其所能이 若器皿焉이라 食焉而怠其事면 必有天殃이라 故吾不敢一日捨鏝以嬉하노라
夫鏝易能
하야 可力焉
이요 又誠有功
하야 니 雖勞無愧
하야 吾心安焉
이라
夫力은 易強而有功也요 心은 難強而有智也라 用力者使於人하고
嘻라 吾操鏝以入貴富之家有年矣라 有一至者焉에 又往過之면 則爲墟矣요 有再至三至者焉에 而往過之면 則爲墟矣라
問之其隣하니 或曰 噫라 刑戮也라하고 或曰 身旣死而其子孫不能有也라하고 或曰 死而歸之官也라하니라
吾以是觀之컨대 非所謂食焉怠其事하야 而得天殃者邪아 非強心以智而不足하야 不擇其才之稱否而冒之者邪아
非多行可愧하야 知其不可오도 而強爲之者邪아 將貴富難守어늘 薄功而厚饗之者邪아
抑豐悴有時하야 一去一來하야 而不可常者邪아 吾之心憫焉이라
是故擇其力之可能者行焉이로라 樂富貴而悲貧賤이 我豈異於人哉리오
又曰 功大者는 其所以自奉也博하야 妻與子皆養於我者也라 吾能薄而功小하니 不有之可也니라
又吾所謂勞力者어늘 若立吾家而力不足이면 則心又勞也니 一身而二任焉이면 雖聖者不可能也라하니라
愈始聞而惑之
나 又從而思之
하니 盖賢者也
요 盖所謂
者也
라
然吾有譏焉은 謂其自爲也過多하고 其爲人也過少하니 其學楊朱之道者邪아
楊之道
는 라 而夫人以有家爲勞心
이라하야 不肯一動其心
하야 以畜其妻子
하니 其肯勞其心以爲人乎哉
아
雖然
이나 其賢於世之
가 以
하야 貪邪而亡道以喪其身者
론 其亦遠矣
라
議論을 가지고 敍事文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유의 문장 중에 佳作은 아니다.
미장이라는 기술은 천하고도 괴로운 일이다.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은 자가 있는데, 그 기색이 매우 만족해하는 것 같았고, 그 말을 들어보니 간략하면서도 극진하였다.
그에게 물어보니, 〈그는〉 “姓은 王이고 이름은 承福으로 대대로 京兆府 長安縣의 농부였는데,
天寶 연간의 반란 때에 군대로 徵發되어 활과 화살을 가지고서 13년 동안 〈전쟁터를 누빈 공로로〉 官勳을 받았으나, 官勳을 버리고 鄕里로 돌아왔다.
그러나 논밭을 다 잃어 미장이질로 衣食을 해결한 지가 30여 년이 되었다. 저잣거리의 주인집에 살면서 합당한 방값과 밥값을 지불하는데,
방값과 밥값의 시세가 높은지 낮은지를 살펴, 미장의 품삯을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였고, 방값과 밥값을 치르고 남는 돈이 있으면 길가의 廢疾者나 饑餓者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또 말하였다.
“곡식은 심어야 싹이 나오고, 베와 비단은 반드시 누에를 치고 길쌈을 한 뒤에 이루어진다.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각종 用具도 모두 사람의 힘을 기다린 뒤에 완성되니, 나 또한 이런 것들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만들 수 없으니, 응당 각각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재능을 다하여 서로의 생활을 도와야 한다. 그러므로 임금은 우리들의 생존에 필요한 稼穡, 蠶績 등의 일을 다스리는 분이고, 百官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백성을 교화하는 자이다.
職任에는 크고 작음이 있으나 오직 그 능력에 따라 맡는 것이 마치 각종
器皿에 각각의 용도가 따로 있는 것과 같다.
〈
代價를 받아〉 먹기만 하고 그 일을 게을리하면 반드시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하루도 흙손을 놓고 즐겁게 놀지 못하였다.
흙손(≪和漢三才圖會≫)
흙손질은 하기가 쉬워서 힘을 쓰기만 하면 되고, 또 진실로 功이 있어서 대가(품삯)를 받을 수 있으니, 몸은 비록 수고롭지만 부끄럽지 않아서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사람의〉 힘은 억지로 해서 공을 이루기가 쉽지만, 마음은 억지로 해서 지혜로워지기가 어렵다.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받고,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부리는 것이 사람의 당연함이니, 나는 다만 하기 쉽고 부끄럽지 않은 일을 골라 취하였을 뿐이다.
아! 내가 흙손을 가지고서
富貴한 집을 드나든 지 여러 해인데, 한 번 갔던 집을 다시 가보면 이미 폐허가 되어 있고, 두세 번 갔던 집을 다시 가보면 폐허가 되어 있었다.
흙손(국립민속박물관)
그 이웃에 물어보니, 혹은 ‘아, 刑戮을 당하였다.’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본인이 죽은 뒤에 그 자손이 保有하지 못하였다.’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본인이 죽은 뒤에 재산이 官府에 귀속되었다.’고 하기도 하였다.
내 이로써 보건대, 〈이것이 바로〉 이른바 ‘〈代價를 받아〉 먹기만 하고 그 일을 게을리하여 하늘의 재앙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력해 마음을 썼으나 지혜가 부족하여 자기의 재능에 적합한지의 여부도 따지지 않고 함부로 차지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부끄러운 일을 많이 하고서 옳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억지로 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富貴는 지키기 어려운 것인데, 공로는 적으면서 누린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盛衰[豐悴]는 때가 있어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여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를 딱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골라서 한 것이다. 富貴를 좋아하고 貧賤을 슬퍼하는 것이 낸들 어찌 남과 다르겠는가?”
또 말하였다.
“공로가 큰 사람은 자기를 봉양하는 〈물건이〉 豐厚하여, 아내와 자식이 모두 나에게 양육을 받는다. 나는 능력이 부족하고 공로가 작으니 아내와 자식을 두지 않아도 괜찮다.
또 나는 이른바 ‘힘을 쓰는 자’인데, 만약 내 가정을 세우려다가 힘이 부족하면 마음도 써야 하니, 한 몸으로 〈마음도 쓰고 힘도 쓰는〉 두 가지 일을 부담한다면 비록 성인이라 하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처음에 그의 말을 듣고는 의혹하였으나, 또 이어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賢者인 듯하고, 이른바 ‘獨善其身’하는 자인 듯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자기를 위하는 생각은 지나치게 많고, 남을 위하는 생각은 지나치게 적기 때문이니, 어찌 楊朱의 道를 배운 자가 아니겠는가?
楊朱의 道는 자기의 머리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하려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室家를 두는 것을 마음을 괴롭히는 일로 여겨, 妻子를 기르는 일에 마음을 조금도 쓰려 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이 어찌 남을 위해 그 마음을 괴롭히려 하겠는가?
비록 그러나 그는 얻기 전에는 부귀를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얻은 뒤에는 잃을까 근심하는 자들이, 자기 인생의 욕망을 채우다가 탐욕스럽고 사특하여 道를 망각하고 자기 몸을 망치는 것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또 그의 말에 나를 깨우칠 만한 것이 있기에, 내 그를 위해 傳을 지어 나 스스로를 비추어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