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 某前年被詔
에 入其地
하니 迓勞之使
至
하고 每進益恭
하니라
及郊에 司徒公이 紅帓首, 鞾袴하고 握刀在左하고 右雜佩弓韔服, 矢揷房하고 俯立迎道左어늘
某禮辭曰 公은 天子之宰니 禮不可如是라호라 及府에 又以其服卽事어늘
某又曰 公
은 三公
이니 不可以將服承命
이라호되 卒不得辭
하고 上堂
에도 하고 하니라
愈曰 國家失太平
이 於今六十年
이라 夫
이니 其將復平
하리라
平必自幽州始
니 ㄹ새니라 今天子大聖
하시고 司徒公勤於禮
하니
帥先河南北之將
하야 來覲奉職
을 如開元時乎
ㄴ저하니 李公曰 然
이라하다
寄託한 뜻이 고상하고 글을 엮은 體制가 奇異하며, 通暢한 文勢와 筆法에 맞는 글씨가 마치 자연에서 나온 것 같다.
元和 원년(806)에 지금 宰相인 李公께서 吏部員外郞으로 계실 때에, 나는 이공과 함께 조정으로 가면서 도중에 幽州 司徒公(劉濟)의 어짊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李公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前年에 皇命을 받고 幽州에 告禮使로 갔을 때에, 幽州 境內로 들어서자 迎接使가 연달아 나왔고, 내가 가까이 들어갈수록 나오는 사자들이 더욱 공경하였다.
郊外에 미치자 司徒公이 붉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軍靴에 가죽바지를 입고, 왼쪽에 握刀를 차고, 오른쪽에 弓袋(弓韔服)와 箭袋(矢揷房) 등을 잡다하게 차고서 허리를 굽히고 길가에 서서 나를 영접하기에,
내가 禮를 들어 ‘공은 천자의 宰臣이시니 이러한 예로 나를 영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사양하였다.
官府에 도착해서도 또 그 복장으로 〈詔書를 받드는〉 儀式을 거행하려 하기에,
내가 또 ‘공은 三公이시니 將帥의 복장으로 詔命을 받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사양하였으나,〉 끝내 나의 사양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堂에 오를 때에도 西階로 오르고, 앉을 때에도 반드시 東向해 앉았다.”
내가 말하기를 “국가가 태평을 잃은 지 지금 60년이 되었습니다. 10日(十干)을 12子(12支)에 배치하면 그 數가 60에서 끝나니, 장차 국가에 태평이 회복될 것입니다.
태평이 회복된다면 반드시 幽州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니, 그 이유는 처음 반란이 발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자께서 크게 聖明하시고 司徒公께서 이처럼 禮에 힘을 다하시니,
河南과 河北의 諸將들을 먼저 이끌고 와서 천자께 朝見하고 맡은 職分을 봉행하기를 開元 때처럼 할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이공께서 “그럴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공께서 이미 조석으로 천자를 좌우에서 모시고서 반드시 자주 천자께 말씀을 올릴 것이니, 내가 元年에 했던 預言이 거의 들어맞을 것이다.
端公께서 歲時마다 東都로 와서 그 어버이께 祝壽하니, 동도의 士大夫 중에 그 집으로 찾아가서 拜謁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는 端公이 司徒公의 輔佐가 되어 충성을 다해 사도공의 功名이 천만세에 전해지게 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 말을 出使하였다가 돌아가는 단공께 禮物로 올리기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