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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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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元年 爲吏部員外郞 러니 하니라
曰 某前年被詔 入其地하니 迓勞之使하고 每進益恭하니라
及郊 司徒公 紅帓首, 鞾袴하고 握刀在左하고 右雜佩弓韔服, 矢揷房하고 俯立迎道左어늘
某禮辭曰 公 天子之宰 禮不可如是라호라 及府 又以其服卽事어늘
某又曰 公 三公이니 不可以將服承命이라호되 卒不得辭하고 上堂에도 하고 하니라
愈曰 國家失太平 於今六十年이라이니 其將復平하리라
平必自幽州始 ㄹ새니라 今天子大聖하시고 司徒公勤於禮하니
帥先河南北之將하야 來覲奉職 如開元時乎ㄴ저하니 李公曰 然이라하다
今李公旣朝夕左右하야焉爲上言이니 리라
東都之大夫士 莫不拜於門하니라
甚忠하야 意欲司徒公功名流千萬歲ㄹ새니라 하노라


05. 幽州 李端公을 전송한
寄託한 뜻이 고상하고 글을 엮은 體制奇異하며, 通暢文勢筆法에 맞는 글씨가 마치 자연에서 나온 것 같다.
元和 원년(806)에 지금 宰相李公께서 吏部員外郞으로 계실 때에, 나는 이공과 함께 조정으로 가면서 도중에 幽州 司徒公(劉濟)의 어짊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李公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前年皇命을 받고 幽州告禮使로 갔을 때에, 幽州 境內로 들어서자 迎接使가 연달아 나왔고, 내가 가까이 들어갈수록 나오는 사자들이 더욱 공경하였다.
郊外에 미치자 司徒公이 붉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軍靴에 가죽바지를 입고, 왼쪽에 握刀를 차고, 오른쪽에 弓袋(弓韔服)와 箭袋(矢揷房) 등을 잡다하게 차고서 허리를 굽히고 길가에 서서 나를 영접하기에,
내가 를 들어 ‘공은 천자의 宰臣이시니 이러한 예로 나를 영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사양하였다.
官府에 도착해서도 또 그 복장으로 〈詔書를 받드는〉 儀式을 거행하려 하기에,
내가 또 ‘공은 三公이시니 將帥의 복장으로 詔命을 받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사양하였으나,〉 끝내 나의 사양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에 오를 때에도 西階로 오르고, 앉을 때에도 반드시 東向해 앉았다.”
내가 말하기를 “국가가 태평을 잃은 지 지금 60년이 되었습니다. 10(十干)을 12(12)에 배치하면 그 가 60에서 끝나니, 장차 국가에 태평이 회복될 것입니다.
태평이 회복된다면 반드시 幽州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니, 그 이유는 처음 반란이 발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자께서 크게 聖明하시고 司徒公께서 이처럼 에 힘을 다하시니,
河南河北諸將들을 먼저 이끌고 와서 천자께 朝見하고 맡은 職分을 봉행하기를 開元 때처럼 할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이공께서 “그럴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공께서 이미 조석으로 천자를 좌우에서 모시고서 반드시 자주 천자께 말씀을 올릴 것이니, 내가 元年에 했던 預言이 거의 들어맞을 것이다.
端公께서 歲時마다 東都로 와서 그 어버이께 祝壽하니, 동도의 士大夫 중에 그 집으로 찾아가서 拜謁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는 端公司徒公輔佐가 되어 충성을 다해 사도공의 功名이 천만세에 전해지게 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 말을 出使하였다가 돌아가는 단공께 禮物로 올리기를 청한다.


역주
역주1 送幽州李端公序 : 幽州 李端公은 李益이다. 이익의 字는 君虞이다. 代宗 大曆 4년(769)에 進士에 합격하여 鄭縣의 尉에 除授되었으나, 官職을 버리고 燕‧趙 사이를 떠돌다가 幽州節度使 劉濟의 幕府로 들어갔다. 뒤에 다시 이곳을 떠나 서북지방의 여러 藩鎭을 돌아다니며 幕僚生活을 하였다. 唐人들은 侍御史를 ‘端公’으로 칭하였다. 貞元 연간에 이익이 湖南觀察使府의 御使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를 ‘端公’이라 한 것이다.
이익이 유주의 막료로서 出使하는 길에 洛陽으로 와서 어버이를 뵙고 유주로 돌아갈 때에 한유가 이 序를 써서 그에게 준 것이다. 이 序는 元和 4년(809)에 쓴 것이다.
역주2 命意高……轉掣從天降 : 命意는 含意이고, 結體는 문장을 얽은 體制이고, 轉은 婉轉으로 文勢가 通暢함이고, 掣는 顫掣로 붓을 떨면서 글씨를 쓰는 筆法이고, 從天降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니, 곧 含意가 고상하고, 문장을 엮은 체제가 특이하며, 文勢가 通暢하고, 글씨가 筆法에 맞아, 마치 자연에서 나온 것 같다는 뜻이다.
역주3 今相國李公 : 李藩을 가리킨다. 이번은 字가 叔翰이다. 元和 4년(809) 2월에 門下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에 除授되었다.
역주4 愈嘗與偕朝 : 元和 元年에 한유가 조정의 부름을 받고 江陵에서 京師로 올 때에 李蕃과 同行한 것을 이른다.
역주5 道語幽州司徒公之賢 : 李藩이 路上에서 유주절도사 劉濟의 어짊을 말한 것이다. 幽州 司徒公은 劉濟를 이른다. 貞元 4년(788)에 그 父親 劉怦이 죽자, 유주의 군사들이 유제를 유주절도사로 세워주기를 奏請하였다. 조정은 정원 5년에 그를 左僕射로 升遷(官階를 올림)시켜 유주절도사에 補任하고, 다시 檢校司徒로 승천시켰다. 그러므로 ‘司徒公’이라 한 것이다.
역주6 告禮幽州 : 告禮는 帝王의 喪을 알림이니, 곧 幽州에 告哀使로 간 것이다. 貞元 21년(805) 正月에 德宗이 崩御하자, 太原‧幽州‧鎭州 등 10여 路에 告哀使를 보냈는데, 李藩이 告哀副使가 되어 幽州로 갔기 때문에 ‘告禮幽州’라 한 것이다.
역주7 (里)[累] : 저본에는 ‘里’로 되어 있으나, ≪韓文考異≫에 “어떤 板本에는 里至의 ‘里’가 ‘累’로 되어 있다.”고 한 것에 의거하여 ‘累’로 바로잡았다.
역주8 卽客階 : 客階는 西階이다. 主人은 東階로 오르고 賓客은 西階로 오르는 것이 禮인데, 劉濟가 서계로 오른 것은 천자의 使者에 대해 감히 主人으로 自處하지 않은 것이다.
역주9 坐必東向 : 古代에는 東方을 上位로 여겼다. 그러므로 劉濟는 천자의 사자인 李藩을 東方에 앉히고 자기는 西方에서 동방을 향해 앉은 것이다.
역주10 十日十二子相配 數窮六十 : 十日(十干)을 十二支(十二子)에 배치하면 甲子로 시작하여 癸亥에서 끝나니, 그 數가 60이다. 天運은 60년을 주기로 순환하니, 安祿山이 幽州에서 반란을 일으킨 天寶 14년(755) 乙未로부터 元和 9년(814) 甲午까지가 1甲이 끝나는 60년이기 때문에 천하에 太平이 회복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1 亂之所出也 : 幽州가 반란이 먼저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먼저 태평이 올 것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2 庶幾 : 希望함이다.
역주13 數數(삭삭) : 자주이다.
역주14 元年之言殆合矣 : 元年之言은 위에서 말한 “夫十日十二子相配 數窮六十 其將復平 平必自幽州始”를 이른다. 殆合은 거의 들어맞음이다.
역주15 端公歲時來壽其親東都 : 이때 李益의 父親 李虯가 洛陽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다. 壽其親은 어버이에게 祝壽의 禮를 올림이다.
역주16 其爲人佐 : 李益이 劉濟의 幕僚가 된 것을 이른다.
역주17 請以愈言爲使歸之獻 : 나의 이 序를 出使하였다가 돌아가는 端公께 바치는 禮物로 삼기를 청하니, 허락하기 바란다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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