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問諫議大夫陽城於愈호되 可以爲有道之士乎哉아 學廣而聞多로되 不求聞於人也하고 行古人之道하야 居於晉之鄙하니
晉之鄙人
이 薰其德而善良者幾千人
이라 聞而薦之
하니 天子以爲諫議大夫
하니라
人皆以爲華호되 陽子不色喜하니라 居於位五年矣로되 視其德如在野하니 彼豈以富貴移易其心哉아
愈應之曰 是易所謂
者也
니 惡得爲有道之士乎哉
리오
夫不以所居之時不一하고 而所蹈之德不同也아 若蠱之上九가 居無用之地하야 而致匪躬之節하고
以蹇之六二在王臣之位
하야 而高不事之心
이면 則
之患生
하고 之刺興
이니 志不可則
이요 而尤不終無也
리라
今陽子在位不爲不久矣요 聞天下之得失不爲不熟矣요 天子待之不爲不加矣로되
而未嘗一言及於政
하야 視政之得失
을 若越人視秦人之肥瘠
하야 不加喜戚於其心
이라
問其官則曰諫議也
요 問其祿則曰下大夫之
也
로되 問其政則曰我不知也
라하니 有道之士 固如是乎哉
아
今陽子以爲得其言乎哉아 得其言而不言과 與不得其言而不去는 無一可者也라 陽子將爲祿仕乎아
古之人有云 仕不爲貧而有時乎爲貧이라하니 謂祿仕者也라 宜乎辭尊而居卑하고 辭富而居貧이니 若抱關擊柝者可也니라
若陽子之秩祿
이 不爲卑且貧
이 明矣
어늘 而如此
하니 其可乎哉
아
或曰否
라 非若此也
니라 夫陽子
는 하고 惡爲人臣
其君之過而以爲名者
라
故雖諫且議나 使人不得而知焉이라 書曰 爾有嘉謀嘉猷어든 則入告爾后於內하고
曰 斯謀斯猷
는 惟我后之德
이라하라하니 夫陽子之用心
도 亦若此者
니라
愈應之曰 若陽子之用心如此
면 矣
라 入則諫其君
하고 出不使人知者
는 大臣宰相者之事
니 非陽子之所宜行也
라
夫陽子本以
러니 主上嘉其
하야 擢在此位
하고 官以諫爲名
하니
誠宜有以奉其職
하야 使四方後代
로 知朝廷有直言
之臣
하고 天子有不
, 從諫如流之美
하야
庶
가 聞而慕之
하야 束帶結髮
하고 願進於闕下
하야 而
하야 致吾君於堯舜
하야 라
若書所謂
는 則大臣宰相之事
니 非陽子之所宜行也
라 且陽子之心將使君人者惡聞其過乎
아 是
니라
或曰 陽子之不求聞而人聞之하고 不求用而君用之하니 不得已而起하야 守其道而不變이어늘 何子過之深也아
愈曰 自古聖人賢士皆非有求於聞用也라 閔其時之不平하고 人之不乂하야
得其道
면 不敢
하고 而必以兼濟天下也
하야 하야 死而後已
하니라
彼二聖一賢者도 豈不知自安逸之爲樂哉아 誠畏天命而悲人窮也라
夫天授人以賢聖才能이 豈使自有餘而已리오 誠欲以補其不足者也라
耳目之於身也에 耳司聞而目司見하니 聽其是非하고 視其險易然後에 身得安焉이라
聖賢者는 時人之耳目也요 時人者는 聖賢之身也라 且陽子之不賢인댄 則將役於賢하야 以奉其上矣요
若果賢인댄 則固畏天命而閔人窮也니 惡得以自暇逸乎哉아
若吾子之論은 直則直矣어니와 無乃傷於德而費於辭乎아
愈曰 君子居其位면 則思死其官하고 未得位면 則思修其辭以明其道니라 我將以明道也요 非以爲直而加人也라
且國武子不能得善人而好盡言於亂國
이라 是以見殺
이라 傳曰
이라하니 謂其聞而能改之也
라
子告我曰 陽子可以爲有道之士也라하니 今雖不能及已나 陽子將不得爲善人乎哉아
칼로 자르듯이 나누어 네 번 묻고 네 번 대답하였으나 처음과 끝의 關鍵(키워드)이 한 끈에 꿴 것 같다.
或者가 나에게 諫議大夫 陽城에 대해 물었다.
“道가 있는 선비라 할 수 있는가? 학식이 넓고 견문이 많되 남들에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고 古人의 도를 행하면서 옛 晉나라의 邊鄙(지금의 河東 安邑)에 거주하니,
晉나라 변비의 사람들이 그의 德에 감화[薰]되어 善良해진 자가 거의 천여 명에 가까웠다.
大臣이 그의 명성을 듣고 천거하니 天子가 그를 諫議大夫로 삼았다.
사람들은 모두 이를 榮譽로 여겼으나 陽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職位에 있은 지 5년이 되었으나 그의 德(행위)을 보면 草野에 있을 때와 같았으니, 그분이 어찌 부귀로 인해 그 마음을 바꾸겠는가?”
내가 대답하였다.
“이는 ≪易≫에 이른바 ‘그 德을 恒久히 貞一하게 지키는 것은 夫子(남자)는 凶하다.’는 것이니, 어찌 도가 있는 선비라 할 수 있겠는가?
≪易≫ 蠱卦의 上九爻辭에 ‘王侯를 섬기지 않고 그 일을 고상하게 한다.’라고 하였고, 蹇卦의 六二爻辭에 ‘王의 신하가 충성을 다하는 것은 자기 개인을 위한 일[故]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處한 바의 시대가 같지 않고 행한 바의 도덕이 같지 않아서가 아니겠는가?
마치 蠱卦의 上九처럼 쓰임을 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도리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절개를 바치고,
蹇卦의 六二처럼 신하의 위치에 있으면서 도리어 임금을 섬기지 않는 마음을 고상하게 여긴다면 함부로 관직에 나아가는 禍患이 생기고, 職務를 放棄한다는 비난이 일어날 것이니, 그 뜻이 본받을 만하지 못하고, 그 허물이 끝내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 陽子는 職位에 있은 지가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천하의 득실을 들은 것이 자세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천자의 대우가 특별하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정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어, 정치의 得失 보기를 마치 越나라 사람이 秦나라 사람의 살찌고 마른 것을 보듯이 무관심[忽焉]하여 그 마음에 즐겁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이 없다.
그에게 관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諫議大夫이다.’라고 하고, 그에게 俸祿이 얼마냐고 물으면 ‘下大夫의 秩(職級)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國政에 대해 물으면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니, 도가 있는 선비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또 내가 듣건대,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책을 다할 수 없으면 떠나야 하고, 進言의 책임이 있는 자는 諫言을 올릴 수 없으면 떠나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 陽子는 자기가 간언을 올릴 수 있다고 여겨 간언을 올렸는가? 간언을 올릴 수 있는데도 간언을 올리지 않는 것과 간언을 올릴 수 없는데도 떠나지 않는 것은 하나같이 모두 옳지 않다.
陽子는 혹시[將] 祿俸을 위해 벼슬한 것인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벼슬하는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지만 때로는 가난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녹봉을 위해 벼슬하는 자를 말한 것이다. 〈녹봉을 위해 벼슬하는 자는〉 응당 높은 職位는 사양하고 낮은 직위에 있어야 하며, 많은 祿은 사양하고 적은 녹을 취해야 하니, 이를테면 문지기나 야경꾼의 일을 맡는 것이 옳다.
孔子께서도 일찍이
委吏(창고지기) 노릇을 하시고,
乘田(
牧畜을 관리하는 관리) 노릇을 하였으되, 감히 그 직무를
放棄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
會計를 합당하게 할 뿐이다.’라고 하시고, 반드시 ‘소와 양을 잘 기를 뿐이다.’라고 하셨다.
仇英(明), 〈爲乘田吏圖〉(≪孔子聖績圖≫)
陽子의 秩祿(品階와 祿俸)으로 말하면 낮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이와 같이 하니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저 陽子는 윗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의 허물을 들춰내는 것을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삼는 자를 미워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諫爭하고 의논하더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다. ≪書經≫ 〈周書 君陳〉에 ‘너에게 아름다운 계책과 좋은 방법이 있거든 들어와 안에서 너의 임금에게 告하고,
너는 밖으로 나가서 임금의 뜻을 순종하여 「이 계책과 이 방법은 우리 임금님의 德이다.」라고 하라.’고 하였으니, 저 陽子가 마음을 쓴 것도 이와 같다.”
내가 대답하였다.
“만약 陽子의 마음씀이 이와 같다면 이른바 ‘迷惑’을 보태는 것이다. 들어가서 그 임금에게 諫하고 나와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大臣과 宰相의 일이니, 陽子가 마땅히 행할 바가 아니다.
저 陽子는 본래 평민으로 초야(蓬蒿)에 은거하였는데, 主上께서 그의 행실을 가상히 여겨, 발탁해 이 자리 앉히고서 ‘諫議’로써 官職의 이름을 삼으셨으니,
진실로 그 직분을 봉행하여 사방과 後代로 하여금 조정에 直言하는 剛直한 신하가 있고, 천자께서는 賞을 함부로 내리지 않고 간언을 물 흐르듯이 따르시는 美德이 있으심을 알게 하여,
巖穴에 은거한 선비들로 하여금 이를 듣고 흠모하여 띠를 매고 머리를 묶고서 朝廷(闕下)으로 나와 자기의 견해를 말로 진술하여 우리 임금님을 堯舜 같은 聖君이 되게 하여 임금님의 거룩하신 名號가 끝없이 빛나기를 원하게 함이 마땅하다.
≪書經≫에서 말한 것은 大臣과 宰相의 일이니, 陽子가 마땅히 행할 바가 아니다. 또 陽子의 마음은 장차 임금으로 하여금 자기의 과실을 듣기 싫어하게 하려는 것인가? 이는 〈임금으로 하여금 과오를 듣기 싫어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였다.
“陽子는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으되 사람들이 알아주고, 등용되기를 구하지 않았으되 임금이 등용하니, 하는 수 없이 出仕[起]하여 자기의 도를 지켜 변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대는 그리도 심하게 나무라는가?”
내가 대답하였다.
“예로부터 聖人과 賢士가 모두 名聲이 알려지고 등용되기를 구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가 태평하지 못하고 인민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가엽게 여겨,
道를 행할 수 있으면 감히 홀로 자기 몸만을 善하게 지키지 않고 반드시 천하 사람을 모두 구제하려고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 죽은 뒤에야 그만두었다.
그러므로 禹임금은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였고, 孔子는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었고, 墨子는 아궁이가 검어질 여가가 없었다.
저 두 聖人과 한 賢士도 어찌 자신이 안일한 것이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몰랐겠는가? 〈그런데도 이리 한 것은〉 진실로 天命을 敬畏하고 백성들의 곤궁을 가여워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사람에게 賢聖의 才能을 준 것이 어찌 자기만 쓰기에 넉넉하게 한 것이겠는가? 진실로 부족한 자들을 돕게 하고자 해서일 것이다.
귀와 눈이 몸에 있어, 귀는 듣는 일을 맡고 눈은 보는 일을 맡으니, 귀가 옳고 그름을 듣고 눈이 험하고 평탄함을 본 뒤에야 몸이 편안할 수 있다.
聖人과 賢士는 同時代 사람들의 귀와 눈이고, 同時代 사람들은 聖人과 賢士의 몸이다.
또 陽子가 어질지 못하다면 당연히[將] 賢者에게 부림을 받아 윗사람을 받들어 섬겨야 할 것이고,
과연 어질다면 진실로 天命을 敬畏하고 백성들의 곤궁을 가엾게 여겨야 하니, 어찌 스스로 한가롭고 편안하게 지내서야 되겠는가?”
혹자가 말하였다.
“내 듣건대, ‘君子는 남에게 強加(強迫)하려 하지 않고, 남의 말 못할 비밀을 들추어내는 것을 정직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한다.’라고 하였다.
그대의 論議로 말하면 곧기는 곧지만 德을 손상하고 말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곧이곧대로 다 말하여[盡言]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좋아한 것이 國武子가 齊나라에서 죽임을 당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그대 또한 들었는가?”
내가 대답하였다.
“君子가 官職에 있으면 그 직무를 위해 죽기를 생각하고, 관직을 얻지 못했으면 문장을 지어 자기의 道(주장)를 밝히기를 생각한다. 나는 이 문장으로 도를 밝히려는 것이지, 곧음을 드러내어 남에게 強迫[加]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國武子는 善人을 만나지 못했으면서 어지러운 나라에서 바른말 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傳에 ‘오직 善人이라야 直言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였으니, 直言을 듣고서 허물을 고칠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그대는 나에게 ‘陽子는 道가 있는 선비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지금은 비록 〈道가 있는 선비에〉 미칠 수 없으나, 陽子가 어찌[將] 〈끝내〉 善人이 될 수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