此韓公正正之旗요 堂堂之陣也라 其主意專在宰相이라 蓋大才小用하니 不能無憾이라
而以怨懟無聊之辭托之人하고 自咎自責之辭托之己하니 最得體라
晨入太學
하야 招諸生立館下
하고 誨之曰 業精于勤
하고 荒于嬉
하며 行成于思
하고 毁于隨
하나니라
方今聖賢相逢
하야 하고 拔去兇邪
하고 하며 占小善者
하고 名一藝者無不庸
이라
諸生業患不能精이요 無患有司之不明이며 行患不能成이요 無患有司之不公하라
言未旣에 有笑于列者曰 先生欺予哉ㄴ저 弟子事先生이 于玆有年矣라
先生口不絶吟于
之文
하고 手不停披于
하며 必提其要
하고 必
하며
하야 하고 하야 恒
以窮年
하니 先生之業
이 可謂勤矣
라
觝排異端
하고 攘斥佛老
하며 하야 하며 하야 獨
하며
少始知學하고 勇於敢爲하며 長通於方하야 左右具宜하니 先生之於爲人에 可謂成矣라
然而公不見信於人
하고 私不見助於友
라 하야 動輒得咎
라
暫爲御史
라가 遂竄南夷
하고 三年博士
하니 라 하야 取敗幾時
오
冬暖而兒號寒
하고 年豐而妻啼饑
라 하야 竟死何裨
오 不知慮此
하고 而反敎人爲
아
先生曰 吁라 子來前하라 夫大木爲杗하고 細木爲桷하며
欂, 櫨, 侏, 儒와 椳, 闑, 扂, 楔에 各得其宜하야 施以成室者는 匠氏之工也라
하고 雜進巧拙
하야 爲姸
하고 卓犖爲傑
하야 較短量長
하야 惟器是適者
는 宰相之方也
라
昔者
에 孟軻好辯
하야 孔道以明
이로되 轍環天下
타가 卒老于行
하고 荀卿守正
하야 大論是弘
이로되 하니라
是二儒者는 吐辭爲經하고 擧足爲法하야 絶類離倫하야 優入聖域이로되 其遇於世何如也오
今先生
은 學雖勤而
하고 言雖多而不要其中
하며 文雖奇而不濟於用
하고 行雖修而不顯於衆
이라
猶且月費俸錢하고 歲縻廩粟이라 子不知耕하고 婦不知織이라 乘馬從徒하고 安坐而食이라
하고 이라 然而聖主不加誅
하고 宰臣不見斥
하니 玆非其幸歟
아
動而得謗이나 名亦隨之하니 投閑置散이 乃分之宜라
若夫商財賄之有亡하고 計班資之崇庳하며 忘己量之所稱하고 指前人之瑕疵하면
是所謂詰匠氏之不以杙爲楹
이요 而訾醫師
하고 欲進其
也
라
이것은 韓公의 整齊된 깃발이고 성대한 陣地이다. 그 主意가 오로지 宰相에게 있다. 큰 人才를 작게 쓰니, 원한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원망하는 좋지 않은 말들은 남에게 붙이고 자신을 탓하고 책망하는 말은 자기에게 붙였으니 解文의 體制를 가장 잘 얻었다.
國子先生이 새벽에 太學으로 들어가서 諸生들을 불러 學館의 階下에 세워놓고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학업은 勤勉한 데에서 精深해지고 즐겁게 노는 데에서 거칠어지며, 행실은 생각하는 데에서 이루어지고 마음대로 하는 데에서 무너진다.
지금 聖君과 賢臣이 서로 만나 治國의 도구(法制와 政令)가 모두 실시되었으며, 흉악하고 간사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優良한 사람을 등용해 尊崇하였으며, 작은 장점[小善]을 가진 자도 모두 錄用하고 한 가지 技藝로 이름난 자도 등용하지 않음이 없다.
人才를 발굴하고 선택하여, 硏磨하여 더욱 高尙하고 순결해지도록 배양하였으니, 요행으로 선발된 자가 있을지언정 어찌 賢能[多]하면서 등용되지[揚] 못한 자가 있겠는가?
그러니 諸生들은 학업이 精深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有司의 안목이 밝지 못할까를 걱정하지 말며, 德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有司가 공정하지 못할까를 걱정하지 말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학생이 대열 속에서 웃으면서 말하였다.
“先生님은 우리를 속이시는군요. 저희 弟子들이 先生님을 섬긴 지가 지금까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입은 六經[六藝]의 글을 읊조리는 소리가 끊긴 적이 없고, 손은 百家의 책을 펼치는 일을 멈춘 적이 없으셨으며, 일을 기록한 글은 반드시 그 일의 요점을 提示하고, 논리를 세운 글은 반드시 그 심오한 이치를 탐구하였습니다.
많이 배우기를 탐하고 터득하기를 힘써서, 〈지식에 관계된 것이라면〉 巨細를 막론하고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고, 등불을 밝히고서 날이 샐 때까지 계속해 항상 부지런히 노력하며 한 해를 마쳤으니, 선생님의 學業이 부지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異端을 물리치고 老‧佛을 배척하였으며, 儒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精微하고 심오한 이치를 더욱 확대발전시켰으며, 오래전에 단절[墜]된 유학의 전통을 찾아 홀로 널리 수색하여 먼 옛날의 성인을 계승하였으며,
百川(百家의 學說)을 막아 東(儒學)으로 흐르게 하고, 이미 거꾸로 흐르는 사나운 물결(老佛의 邪說)을 만회하였으니, 선생님은 儒學에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古典의 농후한 맛에 빠져 문장의 精華를 吟味하고서 지으신 문장의 書稿가 집안에 가득합니다.
위로는 姚(〈虞書〉)‧姒(〈夏書〉)의 〈辭意가〉 深遠하여 끝이 없음과, 〈周誥〉‧〈殷盤〉의 글이 너무 어려워서 읽기가 힘듦과, ≪春秋≫의 謹嚴함과, ≪春秋左氏傳≫의 浮誇함과, ≪周易≫의 기이하면서도 법도가 있음과, ≪詩經≫의 바르면서도 화려함을 본보기로 삼고,
아래로는 ≪莊子≫‧〈離騷〉와 太史公이 기록한 ≪史記≫와 揚子雲‧司馬相如의 곡은 다르나 교묘한 솜씨는 같은 문장에 이르기까지 본보기로 삼았으니, 先生님은 문장에 있어 그 내용은 풍부하고 그 형식은 자유분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젊어서부터 배워야 함을 알았고 處事에 용감하였으며, 자라서는 도리[方]에 통달하여 모든 곳에 두루 합당하였으니, 先生님은 사람됨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公的으로는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私的으로는 벗들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워서 걸핏하면 罪를 얻으셨습니다.
잠시 御史가 되었다가 마침내 남쪽 蠻夷 지역으로 좌천되었고, 3년 동안 博士로 있었으니 散官이어서 政治의 재능을 드러내지 못하셨습니다.
운명이 〈선생님의〉 원수와 모의하여 실패를 부른 것이 얼마였습니까?
겨울 날씨가 따뜻한데도 〈선생님의〉 아이들은 춥다고 울부짖고, 농사가 풍년인데도 〈선생님의〉 아내는 배고프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머리가 벗겨지고 이가 빠져서 끝내 죽게 된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것도 생각할 줄 모르시면서 도리어 남을 가르치십니까?”
先生이 말하였다.
“아! 그대는 앞으로 나오라. 큰 나무는 들보로 쓰고 작은 나무는 서까래로 쓰며,
欂(斗栱)‧櫨(기둥 위의 方木)‧侏儒(들보 위의 짧은 기둥)와 椳(문지도리)‧闑(문지방)‧扂(빗장)‧楔(문설주)에 각각 적합한 木材를 얻어서, 그 목재를 사용해[施] 집을 완성하는 것은 기술이 뛰어난 匠人이고,
玉札‧丹砂와 赤箭‧靑芝와 牛溲‧馬勃과 망가진 북의 가죽을 모두 거두어 간직하여 쓰일 때를 기다리고 버리지 않는 것은 훌륭한 醫師이다.
등용하기를 嚴明하게 하고 선발하기를 공정하게 하며, 총명한 자[巧]와 愚拙한 자를 모두 등용하여 紆餘한 자를 아름답게 여기고 탁월한 자를 英傑로 여겨, 장단을 비교해 오직 그 그릇에 맞게 쓰는 것은 宰相의 방법(用人의 방법)이다.
옛날에 孟軻가 변론하기를 좋아하여 孔子의 道가 이로 인해 밝아졌으나 천하를 周遊하다가 마침내 길에서[行] 늙어 죽었고, 荀卿은 正道를 지켜 大論(儒家의 學說)을 크게 宣揚하였으나 참소를 피해 楚나라로 갔다가 버림을 받고 蘭陵에서 죽었다.
이 두 儒者는 말을 하면 經典이 되고 행동을 하면 법도가 되어, 무리에서 크게 뛰어나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기에 넉넉하였으나, 그들이 세상에서 받은 대우는 어떠하였는가?
지금 나[先生]는 學習을 비록 부지런히 하였으나 道統을 따르지 않았고, 言論을 많이 하였으나 도리에 맞기를 구[要]하지 않았으며, 문장이 비록 신기하나 實用에 도움이 되지 않고, 행실이 비록 수양되었으나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히려 달마다 〈조정의〉 俸錢을 소비하고 해마다 〈국가의〉 廩粟을 축내며, 자식은 밭 갈 줄을 모르고 아내는 길쌈할 줄을 모른다. 말을 타고 〈외출하면〉 奴僕이 따르고 〈집안에 있으면〉 편안히 앉아 밥을 먹는다.
조심스럽게 세속의 常途(常規)를 따르고 古書를 엿보아 剽竊이나 할 뿐이다. 그런데도 聖主께서 誅罰하지 않으시고 宰臣이 배척하지 않으니, 이것이 나의 행운이 아니겠는가?
걸핏하면 비방을 받았으나 명성 또한 뒤따랐으니 내가 閑散한 職位에 버려진 것은 분수에 마땅한 바이다.
만약 財賄의 유무를 헤아리고 官職의 고하를 계산하며, 자기 力量에 맞는 바를 망각하고 前人의 瑕疵를 지적한다면,
이것은 이른바 ‘목수에게 왜 말뚝을 기둥으로 쓰지 않느냐고 詰責하고, 醫師에게 왜 昌陽을 수명을 연장하는 약으로 쓰느냐고 비난하여 豨苓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