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人稱太史公傳酷吏刺客等文이 各肖其人이라하더니 今以此文頌伯夷亦爾라 然不如史遷本傳이라
士之
하야 適於義而已
요 不顧人之是非
는 皆豪傑之士
로 信道篤而自知明者也
라
一家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寡矣요 至於一國一州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는 蓋天下一人而已矣라
若至於擧世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는 則千百年乃一人而已耳니
若伯夷者
는 窮天地
萬世而不顧者也
라 昭乎日月
이 不足爲明
이요 崒乎泰山
이 不足爲高
요 巍乎天地
가 不足爲容也
라
武王周公聖也
라 天下之賢士與天下之諸侯而往攻之
로되 未嘗聞有非之者也
어늘
彼伯夷叔齊者는 乃獨以爲不可하고 殷旣滅矣에 天下宗周어늘 彼二子乃獨恥食其粟하야 餓死而不顧하니
繇是而言이면 夫豈有求而爲哉리오 信道篤而自知明也ㄹ새니라
今世之所謂士者는 一凡人譽之면 則自以爲有餘하고 一凡人沮之면 則自以爲不足이어늘
彼獨非聖人而自是如此하니라 夫聖人은 乃萬世之標準也라
余故曰 若伯夷者는 特立獨行하야 窮天地亘萬世而不顧者也라호라 雖然이나 微二子면 亂臣賊子接跡於後世矣리라
荊川曰 昌黎此文은 分明自孟子中脫出來어늘 人都不覺이라
옛사람이 “太史公이 지은 ≪史記≫의 〈酷吏列傳〉과 〈刺客列傳〉 등의 문장은 각각 그 사람(酷吏와 刺客)들과 닮았다.”고 말하였는데, 지금 伯夷를 찬송한 이 문장도 그러하다. 그러나 太史公 司馬遷이 지은 本傳(〈伯夷列傳〉)만은 못하다.
선비가 世俗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 소신대로 행동[特立獨行]하여 義에 맞게 할뿐, 남의 是非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모두 豪傑스런 선비로서 道를 믿음이 독실하고 자신을 앎이 분명한 자이다.
一家가 비난해도 힘써 행하고 의심하지 않는[不惑] 자가 드물며, 한 나라나 한 고을 사람들이 비난해도 힘써 행하고 의심하지 않는 자는 아마 천하에 한 사람뿐일 것이며,
온 세상이 비난해도 힘써 행하고 의심하지 않는 자는 천백 년에 한 사람뿐일 것이다.
伯夷로 말하면 천지가 다하고 萬世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이 비난한다 하여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밝은 日月도 〈그에 비하면〉 밝음이 되지 못하고, 높은 태산도 높음이 되지 못하고, 높고도 큰 천지도 그를 포용하기에 모자랄 것이다.
殷나라가 망하고 周나라가 일어날 때를 당하여 微子는 賢人이라 祭器를 가지고 〈殷나라 紂王을〉 떠났고,
武王과 周公은 聖人이라 천하의 賢士와 천하의 諸侯들을 거느리고 가서 殷紂를 공격하였으되, 그(武王)를 비난하는 자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저 伯夷와 叔齊는 홀로 “不可하다.”고 하였고, 殷나라가 멸망한 뒤에 천하가 周나라를 宗主國으로 삼았으되, 저 두 분은 홀로 周나라의 곡식 먹는 것을 치욕으로 여겨, 굶어 죽으면서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로써 말하면 저 두 분이 어찌 구하는 것이 있어서 그리하였겠는가? 道를 믿음이 독실하고 자신을 앎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말하는 ‘士’란 자들은 평범한 한 사람이 칭찬하면 자기의 〈德行이〉 넉넉하다고 여기고, 평범한 한 사람이 헐뜯으면 자기의 〈德行이〉 부족하다고 여기는데,
저 두 분은 유독 聖人(武王)을 비난하고 자신을 옳게 여김이 이와 같았으니, 聖人은 바로 만세의 표준이다.
나는 그러므로 “伯夷로 말하면 천지가 다하고 萬世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이 비난한다 하여도〉 돌아보지 않을 분이다.”라고 한 것이다. 비록 그러나 두 분이 아니었다면 후세에 亂臣賊子가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唐荊川이 말하였다. “昌黎의 이 문장은 분명히 ≪孟子≫의 글 가운데서 빠져 나온 것인데 사람들이 모두 깨닫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