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黎病荀不醇하야 而末引孔子一轉하고 却安頓自家方好라
始吾讀孟軻書然後에 知孔子之道尊하고 聖人之道易行하고 王易王하고 霸易霸也로라
以爲孔子之徒沒에 尊聖人者는 孟氏而已라 晩得楊雄書하고는 益尊信孟氏로라
相亂
하야 六經與百家之說錯雜
이라 然老師大儒猶在
하니라
及得荀氏書
하야 於是又知有荀氏者也
로라 考其辭
면 時若不粹
나 면 與孔子異者鮮矣
니 猶在軻雄之間乎
ㄴ저
故詩書春秋無疵하니라 余欲削荀氏之不合者하야 附於聖人之籍하노니 亦孔子之志歟ㄴ저
昌黎는 荀子의 醇粹하지 못함을 결점으로 여겨, 末尾에 孔子를 이끌어 문장을 한 번 轉換하고서 자기의 의견을 배치한 것이 참으로 좋다.
처음에 내가 孟軻의 글을 읽은 뒤에 孔子의 道가 尊貴하고, 聖人의 道가 行하기 쉽고, 王道는 王業을 이루기가 쉽고, 霸道는 霸業을 이루기가 쉽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孔子의 제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 聖人(孔子)을 尊崇한 이로는 孟氏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뒤에 楊雄의 글을 읽고는 더욱 孟氏를 尊信하였다.
楊雄의 글로 인해 孟氏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으니, 그렇다면 楊雄 또한 聖人의 門徒이다.
聖人의 道가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였다. 周나라가 衰微하자, 好事家들이 각각 자기들의 學說로 당시 君主들에게 유세하여 부귀를 구하니,
〈이로 인해 학설이〉 잡다하고 혼란하여 六經과 百家의 학설이 錯雜(뒤섞여 복잡)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오히려 年老한 大儒가 살아 있었다.
秦나라 때에 經典을 불사르고 漢나라 때에 黃老의 학설이 성행하였으니, 純正한 儒家의 학설[其]이 보존된 것으로는 孟軻氏의 글뿐이고 楊雄氏의 글뿐이었다.
그러다가 荀氏의 글을 읽고 나서 이에 또 荀氏란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文辭를 상고해보면 때로 순수하지 못함이 있는 것 같으나 그 大旨(중요한 뜻)를 탐구해보면 孔子와 다른 것이 적으니, 아마도 그는 〈위상이〉 孟軻와 楊雄의 중간에 있는 듯하다.
孔子께서는 ≪詩≫와 ≪書≫를 刪削하고 ≪春秋≫를 筆削하실 적에 道에 부합하는 것은 남겨두고 道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削除하셨다.
그러므로 ≪詩≫‧≪書≫‧≪春秋≫에는 瑕疵가 없다. 나는 荀氏의 글 중에 〈성인의 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삭제하고서 성인의 經籍(≪論語≫와 ≪孟子≫) 뒤에 붙이고자 하니, 이 또한 孔子의 뜻일 것이다.
孟氏는 醇粹하고도 순수한 분이고, 荀子와 楊雄은 大體는 순수하나 사소한 瑕疵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