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篇極論正意하고 只收一句作結하니 是一體却自過秦論來하니라 其文平直通顯하야 反近蘇氏하니 亦非公本色이라
詩曰
이라하고 書曰
이라하니 諸侯之於天子
에 不惟守土地奉職貢而已
라 固將有以翰蕃之也
니라
今人有宅於山者가 知猛獸之爲害면 則必高其柴楥而外施窞穽以待之요
宅於都者가 知穿窬之爲盜면 則必峻其垣墻而內固扃鐍以防之리라
今之通都大邑
이 介
於
之間
이로되 而不知爲之備
하니 噫
라 亦惑矣
로다
野人鄙夫能之어늘 而王公大人反不能焉이면 豈材力爲有不足歟아 蓋以謂不足爲而不爲耳니라
天下之禍는 莫大於不足爲요 材力不足者次之니라 不足爲者는 敵至而不知어니와
彼之屈強者는 帶甲荷戈不知其多少요 其綿地則千里라 而與我壤地相錯이로되
無有丘陵, 江河, 洞庭, 孟門之關其間
하니 又自知其不得與天下
하고
朝夕擧踵引頸
하야 冀
하야 以乘吾之便
하니 此其暴於禽獸穿窬也甚矣
라 嗚呼
라 胡知而不爲之備乎哉
아
之不戒
면 童子之不抗
이며 라 今夫鹿之於豹
에 非不巍然大矣
로되 然而卒爲之禽者
는 爪牙之材不同
하고 猛怯之資殊也
ㄹ새니라 曰 然則如之何而備之
오 曰 在得人
이라
全篇에 바른 뜻을 論하고서 단지 한 句만을 거두어 결론을 맺었으니, 이 한 體는 〈過秦論〉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그 문장이 平直하고 通顯하여 도리어 蘇氏에 가까우니, 韓公의 本色이 아니다.
≪詩經≫에 “큰 諸侯國은 王室의 根幹이다.”라고 하였고, ≪書經≫ 〈微子之命〉에 “王室의 울타리가 되라.”고 하였으니, 諸侯는 天子에게 土地를 지키고 職貢을 바칠 뿐만 아니라 본래 왕실을 保衛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오늘날 山中에 사는 자들은 猛獸가 害가 됨을 알면 반드시 울타리를 높이 세우고 밖에 함정을 만들어 방어[待]하고,
都城에 사는 자들은 도둑이 담을 넘거나 벽을 뚫고 들어와서 도둑질해 갈 것을 알면 반드시 담을 높이 쌓고 안에 자물쇠를 단단히 잠가 방비할 것이다.
이는 野人과 鄙夫도 할 수 있는 일이니 남보다 뛰어난 지혜가 있은 뒤에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사통팔달하는 큰 도시가 方鎭[屈強] 사이에 끼었으면서도 대비할 줄을 모르니, 아! 이 또한 迷惑(사리분별을 못함)이로다.
野人과 鄙夫도 할 수 있는 일을 王公大人이 도리어 할 수 없다면 어찌 재능과 역량이 부족해서이겠는가? 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 하지 않는 것뿐이다.
천하의 화란 중에는 미리 경계할 만한 가치가 없다 하여 경계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화란이 없고, 재능과 역량이 부족한 것은 그 다음에 속한다. 경계할 가치가 없다 하여 〈경계하지 않는〉 자들(王公大人)은 적이 쳐들어와도 알지 못하지만,
재능과 역량이 부족한 자는 事前에 미리 생각해 대비하니 화란과 〈약간의〉 거리[間]가 있다.
저 方鎭들은 갑옷을 입고 창을 맨 병사가 얼마인지도 알 수 없고, 그 領地도 천 리에 뻗쳐 우리의 영토와 서로 들쭉날쭉 맞닿아 있다.
그런데 兩方 사이에 丘‧陵, 江‧河, 洞庭湖‧孟門關 같은 〈險要가〉 없으니, 저들은 또 스스로 자기들이 천하의 州郡과 함께 나란히 벌려 설 수 없음을 알고,
아침저녁으로 발꿈치를 들고 목을 빼고서 천하에 動亂이 발생하여 우리의 지친 틈을 이용해 공격할 수 있는 편리한 기회가 오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이는 그들의 凶暴함이 禽獸나 穿窬보다 심한 것이다. 아! 어찌하여 이럴 줄을 알면서 대비하지 않는가?
孟賁과 夏育도 경계하지 않으면 어린아이를 저항할 수 없으며, 魯雞(큰 닭)도 防備[期]하지 않으면 蜀雞(작은 닭)를 扺抗[支]하지 못한다. 지금 사슴을 표범에 비교하면 훨씬 크지만 마침내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발톱과 어금니의 기능[材]이 같지 않고 용맹하고 비겁한 자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겠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인재를 얻는 데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