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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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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8.
今之人以一善爲行而恥爲之하고而稱夫通才者多矣
然而汨沒以至於老死者相繼 亦未見他之稱하니 其豈非亂敎賊名之術歟
與天地皆生이라 然而天下之人不得其師 終不能自知而行之矣
故堯之前千萬年 天下之人促促然不知其讓之爲美也러니 於是許由哀天下之愚하야 且以爭爲能하야
迺脫屣其九州하고 高揖而辭堯하니라 由是後之人竦然而言曰 雖天下猶有薄而不售者어든 況其小者乎아하니라
故讓之敎行於天下 許由爲之師也ㄹ새니라
自桀之前千萬年 天下之人循循然不知忠易其死也
故龍逢哀天下之不仁하야 觀君父百姓入水火而不救하고 於是進盡其言하고 退就割烹이라
故後之臣竦然而言曰 雖萬死猶有忠而不懼者어든 況其小者乎 故忠之敎行於天下하니 由龍逢爲之師也ㄹ새니라
自周之前千萬年 渾渾然不知義之可以換其生也 故伯夷哀天下之偸하야 且以彊則服하야 食其葛薇하고 逃山而死
故後之人竦然而言曰 雖餓死猶有義而不懼者어든 況其小者乎 故義之敎行於天下하니 由伯夷爲之師也ㄹ새니라
是三人俱以一身立敎하야 而爲師於百千萬年間하니라 其身亡而其敎存하야 扶持天地하니 功亦厚矣
嚮令三師恥獨行하고 慕通達이면 則堯之日 必曰得位而濟道 安用讓爲리오
夏之日 必曰長進而否退 安用死爲리오 周之日 必曰和光而同塵이니 安用餓爲리오
若然者ㄴ댄 天下之人促促然而爭하고 循循然而佞하며 渾渾然而偸 其何懼而不爲哉
是則三師生於今이라도 必謂偏而不通者矣 其可不謂之大賢人者哉ㄴ저 嗚呼 今之人其慕通達之爲弊也
且古聖人言通者 蓋百行衆藝備於身而行之者也 今恒人之言通者 蓋百行衆藝闕於身而求合者也
是則古之言通者 通於道義 今之言通者 通於私曲이니 其亦異矣로다
將欲齊之者ㄴ댄 其不猶矜糞丸而擬質隋珠者乎
且令今父兄敎其子弟者曰 爾當通於行如仲尼라하면 雖愚者亦知其不能也어니와
曰 爾尙力一行如古之一賢이라하면 雖中人亦希其能矣리니 豈不由聖可慕而不可齊邪 賢可及而可齊也
今之人行未能及乎賢而欲齊乎聖者 亦見其病矣로다
夫古人之進修하야 或幾乎聖人이러니 今之人行不出乎中行이로되 而恥乎力一行爲獨行하고 且曰 我通同如聖人이라하니
彼其欺心邪 吾不知矣로라 彼其欺人而賊名邪 吾不知矣로라 余懼其說之將深하야 爲通解하노라


18. 通達에 대한 解說
지금 사람들은 한 가지 善行만을 행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모든 凡節에 통달해 通才(모든 것에 달통한 人才)로 칭송되는 것을 부러워하는 자가 많다.
그러나 약삭빠르게 한 가지 일에만 빠져 살다가 늙어 죽는 자가 줄을 이었고, 달리 칭송을 받는 자를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敎化를 혼란시켜 명예를 훔치는 術法이 아니겠는가?
五常의 교화는 천지와 함께[] 생겨났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끝내 스스로 알아서 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임금 이전의 천만 년 동안은 천하 사람들이 살기에 바빠서 겸양이 美德인 줄 몰랐다. 이에 許由가 천하 사람들이 우매하여 爭奪을 능사로 삼는 것을 가엾게 여겨,
마치 짚신을 벗어버리듯이 九州(천하)를 버리고, 손을 높이 들어 하고서 임금을 떠났다.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엄숙히 말하기를 “천하의 〈주인 자리도〉 오히려 가벼이[] 여겨 받지 않은 분이 있었는데, 하물며 이보다 작은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겸양의 교화가 천하에 행하게 된 것은 許由가 스승이 되었기 때문이다.
夏桀 이전의 천만 년 동안은 천하 사람들이 옛것만을 따라서 충성은 목숨과 바꾸는 것임을 몰랐다.
그러므로 龍逢이 천하 사람들이 어질지 못하여 君父와 백성이 도탄에 빠졌는데도 구제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가엾게 여겨, 이에 에게 나아가서 直言으로 하고 물러나와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후세의 신하들이 엄숙히 말하기를 “비록 일만 번 죽임을 당하더라도 충성을 다해 두려워하지 않은 분이 있었는데, 하물며 이보다 작은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충성의 교화가 천하에 행하게 된 것은 龍逢이 스승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라 이전의 천만 년 동안은 천하 사람들이 혼미하여 가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임을 몰랐다. 그러므로 伯夷가 천하 사람들이 구차하게 살면서 強者에게 굴복하는 것을 슬퍼하여, 산중으로 도망가서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
李唐(宋), 〈采薇圖〉(부분)李唐(宋), 〈采薇圖〉(부분)

그러므로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엄숙히 말하기를 “비록 굶어 죽을지라도 오히려 節義를 지켜 두려워하지 않은 분이 있었는데, 하물며 이보다 작은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節義의 교화가 세상에 행하게 된 것은 伯夷가 스승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 분은 모두 한 몸으로 세상에 교화를 세워, 백 년 천 년 만 년 동안 스승이 되었다. 그 몸은 죽었으나 그 가르침은 보존되어 천지의 〈綱常을〉 扶植하였으니, 그 또한 크다 하겠다.
그때 가령 세 분 스승이 한 가지 행실만 행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통달을 사모하였다면 임금 때에 〈사람들은 許由에 대해〉 반드시 “君位를 얻어 를 실현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사양하였는가?”라고 하였을 것이고,
夏桀 때에 〈사람들은 龍逢에 대해〉 반드시 “군자의 興旺[]하면 나아가고 否塞하면 물러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라고 하였을 것이고, 나라 때에 〈사람들은 伯夷에 대해〉 반드시 “재능을 숨기고 세속을 따를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굶어 죽었는가?”라고 하였을 것이다.
만약 그러했다면 천하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며 쟁탈하고, 옛것을 따르며 아첨하고, 멍청하게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을 무엇이 두려워서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세 스승이 지금 세상에 살았더라도 〈사람들은〉 반드시 한쪽에 치우쳤고 통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를 것이고, 이들을 大賢人이라고 이르지 않을 것이다. 아! 지금 사람들은 통달을 羨慕하는 것이 폐단이다.
또 옛 성인이 말한 ‘통달한 사람’이란 그 몸에 온갖 행실과 각종 技藝를 갖추고서 이를 실행하는 자이고,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통달한 사람’이란 그 몸에 온갖 행실과 각종 技藝가 없으면서 세상에 영합하기를 구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옛사람이 말한 ‘통달한 사람’이란 道德節義에 통달한 자이고, 지금 사람이 말하는 ‘통달한 사람’이란 私曲에 통달한 자이니, 이 둘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이를〉 동일시하고자 한다면 어찌 똥덩이를 자랑하여 隋珠에 견주는 꼴이 아니겠는가?
가령[且令] 지금 父兄이 그 子弟들에게 “너희는 마땅히 仲尼처럼 모든 행위에 통달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 하더라도 가능하지 않음을 알 것이지만,
“너희들은 옛날의 賢人처럼 한 가지 행실에 힘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면 비록 중등 자질의 사람이라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니, 이는 어찌 성인은 사모할 수는 있으나 같아질 수는 없고, 현인은 미칠 수도 있고 같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 사람들은 행실이 현인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성인과 같아지기를 바라니, 이 또한 자기의 病弊(결점)를 드러냄이다.
옛사람에는 道德增進하고 學業修習하여 聖人의 경지에 거의 도달[]한 분이 더러 있었으나, 지금 사람들은 행실이 中等人의 행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한 가지 행실만을 힘써 행하는 ‘獨行’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나는 성인처럼 통달하였다.”라고 하니,
저자가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고, 저자가 남을 속여 명예를 훔치려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이런 말이 장차 사람들에게 깊이 刻印될 것이 두려워 이 〈通解〉를 짓는다.


역주
역주1 通解 : 옛 성인이 통달했다고 말하는 사람과 지금의 보통 사람이 통달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비교하여 통달하였다는 것에 대해 해석한 글이다.
역주2 達節 : 常規에 얽매이지 않고 天命에 순응함이다.
역주3 脂韋 : 기름을 뺀 부드러운 가죽인데, 아첨을 잘하는 것을 비유한다.
역주4 五常之敎 : 五常은 仁‧義‧禮‧智‧信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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