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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3)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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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唐大家韓文公文抄 卷14 墓誌銘
歸安 鹿門 茅坤 批評
孫男 闇叔 茅著 重訂
誌中無他述하고 獨指採藥煮黃金一事 文旨自澹宕雋永이라
君諱某 字某 中書舍人御史中丞諱某之子 贈太子洗馬諱某之孫이라
家世習儒學詞章하야 昆弟 俱傳父祖業하야 從進士擧로되 君獨不與俗爲事하고 하니라
父中丞薨旣三年 與其弟中行別曰 若旣하야 及先人存하야 進士하고 하니하라
爲孝子在不怠니라 我恨已不及이어니와 假令今得이라도 不足自貰
我聞南方多水銀丹砂하니 雜他奇藥하야 이면 可餌以不死라하니라하리라
遂踰하야 南出이나 藥貴不可得일새하니 帥且曰 可一日具하리라하야늘
許之하고 得藥하야 試如方이나 不效하니 曰 方良是 我治之未至耳라하고
留三年이나 藥終不能爲黃金하고 而佐帥政成하야 以功再遷監察御史하니라 帥遷于桂하니 從之하니라
帥坐事免하니 君攝其治하야 歷三時 稱便하니라
新帥將奏功이나 君捨去하니라 使謂君曰 리라
至南海하야 未幾竟死하니 年五十三이라 子曰某
元和十年十二月某日 葬河南某縣某鄕某村하니 祔先塋하니라
於時中行爲尙書兵部郞하야 號名人이라 而與余善하야 請銘하니라 銘曰
嗟惟君
이라
하야
弊精神이라
以棄餘
이나
脫外累하고
이라
訊來世하야
述墓文하노라


01. 唐故 監察御史 衛府君墓誌銘
墓誌銘 중에 다른 것은 진술하지 않고, 오직 藥物을 채집해 달여서 黃金을 만드는 한 가지 일만을 진술하였다. 문장의 지취가 豪放하고 豁達하며 意味深長하다.
衛君가 아무이고 자가 아무이니 中書舍人 御史中丞 아무개의 아들이고, 太子洗馬追贈 아무개의 손자이다.
그 집안이 대대로 儒學詞章(詩文)을 익혀, 형제 세 사람이 모두 父祖家業을 이어[] 進士科에 응시하였으되, 은 홀로 세속과 어울리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부친 御史中丞께서 薨逝하신 3년 뒤에 아우 衛中行과 작별하며 말하기를 “너[]는 이미 스스로 삼가고 노력하여, 아버님께서 생존하셨을 때에 先人美德을 계승하여 進士가 되었고, 선인의 명성을 계승하여 한 宗派를 이루었으니, 오직 직무만을 봉행하여 을 세우라.
孝子가 되는 것은 怠慢하지 않음에 달려 있다. 나는 한스럽게도 이미 미칠 수 없으나 설령 지금 진사가 된다 하더라도 〈어버이께서 계시지 않으니〉 스스로 용서할 수가 없다.
내 듣건대, ‘남방에는 水銀丹砂가 많이 생산되는데, 다른 신기한 藥材와 섞어 製鍊하여 黃金으로 만들어 복용하면 長生不死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너[]에게 허락해주기를 청하니, 나의 청을 허락해주면 나는 즉시 떠나겠다.”고 하였다.
드디어 嶺阨를 넘어 남쪽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 품귀하여 구할 수가 없으므로 容帥(容管經略使)에게 청탁[]하니, 容帥가 머뭇거리면서 “그대가 나의 從事(막료)가 된다면 하루면 마련해줄 수 있다.”고 하기에,
이에 허락하고서 약을 얻어서 藥方文대로 製鍊해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에 “藥方文은 매우 옳으나, 내가 다루는 방법이 지극하지 못해서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고서,
3년을 머물면서 〈제련해보았으나〉 약은 끝내 黃金이 되지 않고, 容帥를 보좌해 政績만을 이루어, 그 공로로 두 차례 승진하여 監察御史가 되었을 뿐이다. 容帥桂管觀察使로 옮겨가니 衛君도 따라갔다.
容帥가 어떤 일에 연좌되어 파면되자, 衛君이 세 계절 동안 그곳 정치를 代理하였는데, 그곳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칭송하였다.
새로 부임한 觀察使[]가 衛君功績을 조정에 上奏하려 하였으나, 衛君은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南海馬大夫가 사람을 보내어 衛君에게 이르기를 “〈나에게로 와서〉 혹시라도 숭상하는 일(鍊丹)을 이룬다면 두 가지 이로운 일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위군은 〈鍊丹하는 일이〉 더욱 싫어졌으나, 일말의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南海로 갔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죽었으니, 향년이 53세였다. 아들은 아무개이다.
元和 10년(815) 12월 아무 날에 河南府 아무 아무 아무 마을에 장사 지냈으니, 先塋附葬(先塋 곁에 安葬)한 것이다.
이때 衛中行尙書兵部郞이 되어 名人으로 불리었다. 나와 사이가 좋아 나에게 을 청하였다. 은 다음과 같다.
아! 衛君
鍊丹하는 일을 독실히 믿고 의심치 않았네
있지도 않은 물건을 구하느라
정신만 피폐해졌네
남아서 버려야 할 것을
남에게 팔았지만
외부의 속박 벗어던지고
자기만을 진귀하게 여겼네
후세에 알리기 위해
墓誌文을 짓노라


역주
역주1 唐故監察御史衛府君墓誌銘 : 衛府君은 衛中立을 가리킨다. 監察御史는 御史臺의 屬官으로 京城 내외의 불법적인 일을 모두 감찰해 탄핵한다. 府君은 본래 漢나라 때에 太守에 대한 존칭으로 쓰였는데, 후대에는 職位가 태수와 같으면 부군이라 칭하고, 심지어 직위가 없어도 부군으로 칭하였다.
역주2 三人 : 衛之玄‧衛中立‧衛中行이다.
역주3 樂弛置自便 : ‘弛’와 ‘置’에는 모두 放下(내려놓음) 또는 廢棄(버림)의 뜻이 있고, ‘自便’에는 ‘자유로이 행동하다’의 뜻이 있으므로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4 克自敬勤 : 능히 스스로 敬謹하고 勤勉함이다.
역주5 趾美 : 先人의 美德을 계승함이다.
역주6 續聞成宗 : 續聞은 先人의 명성을 계승함이고, 成宗은 功德이 있는 자손이 있어 한 宗派를 이룸이다.
역주7 服任遂功 : 服任은 職任를 服行(實行)함이고, 遂功은 功을 이룸이다.
역주8 爊(오)爲黃金 : 道家의 法術로 水銀과 朱砂를 製鍊하여 얻은 丹藥[黃金藥]을 이른다. 단약은 不死藥이다.
역주9 於若丐我 我卽去 : “너에게 청하노니, 나의 청을 들어준다면 나는 즉시 떠나겠다.”는 말이다. ‘若’은 ‘너’이고, ‘丐’는 ‘줌’이다.
역주10 嶺阨 : 大庾嶺 등 5嶺의 要塞를 가리킨다. 阨는 險要 또는 關塞(관문이나 요새)이다.
역주11 干容帥 : 干은 청탁함이고, 容帥는 容管經略使 房啓를 이른다.
역주12 若能從事於我 : ‘그대가[若] 나에게 從事할 수 있다면’이라는 말이다. 從事는 經略使나 節度使府의 幕僚를 이른다.
역주13 夷人 : 古代에 中國人이 漢族 이외의 異民族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역주14 南海馬大夫 : 桂管觀察使로 廣州刺史‧嶺南節度使가 된 馬總을 이른다.
역주15 幸尙可成 兩濟其利 : 幸은 ‘행여’ 또는 ‘혹시’이고, 尙은 숭상하는 일로 곧 鍊丹하는 일을 이른다. 兩濟其利는 연단하는 일과 幕僚가 되어 節度使를 보좌하는 일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역주16 君雖益厭 然不能無萬一冀 : 衛君은 鍊丹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연단하는 일에 더욱 싫증이 났다. 그러나 일말의 희망[冀]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역주17 篤所信 : 鍊丹하는 일에 대해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역주18 要無有 : 있지도[有] 않은[無] 물건을 구[要]함이다.
역주19 以棄餘 賈於人 : 자기가 버려야 할 여유분을 남에게 팔았다는 말로, 곧 衛中立이 功名을 唾棄했으면서 幕僚가 되어 공적을 세운 것을 이른다.
역주20 脫外累 自貴珍 : 자신을 얽어매는 身外의 功名과 利祿 등은 벗어던지고 자신만을 珍貴하게 여겼다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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