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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3)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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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生色이라
張君名徹이요 字某 以進士至范陽府監察御史하니라
長慶元年 奏君名迹中御史選하니 詔卽以爲御史하니라
惜不敢留하야 遣之하고 而密奏호되 하고且久니이다
하고 臣又始至하야 孤怯하니 須強佐乃濟니이다하니
發半道 有詔以君還之하고 仍遷殿中侍御史하야 하니라
且相約호대 張御史長者 毋侮辱我事하니 毋庸殺하라하고 置之帥所하니라
居月餘 聞有中貴人自京師至하고 君謂其帥호대 公無負此土人하니 上使至커든 可因請見自辨이면 幸得脫免歸리다하고
卽推門求出하니라 하니 魁與其徒皆駭曰 必張御史리라 張御史忠義하여
必爲其帥告此리라 餘人不如遷之別館이라하고 卽與衆出君하니라
君出門하야 罵衆曰 汝何敢反 하고 하고
同惡者父母妻子皆屠死하야 肉餧狗鼠鴟鵶어늘 汝何敢反 汝何敢反
行且罵하니惡其言하야 不忍聞하고 且虞生變하야 卽擊君以死한대 君扺死口不絶罵하니
衆皆曰 義士義士라하니라 或收瘞之以俟하니라
事聞 天子壯之하야 贈給事中하니라 其友侯雲長佐鄆使러니 請於其帥馬僕射하야 爲之選於軍中하야
得故與君相知張恭李元實者하야 使以幣請之范陽하니 范陽人義而歸之하니라
以聞하니 詔所在給船轝하야 傳歸其家하고 賜錢物以葬하니라
長慶四年四月某日 其妻子以君之喪葬于某州某所하니라
君弟復 亦進士 得疾하야 하야 이라
君得閒이면 卽自視衣褥薄厚하고 하며 禁其家無敢高語出聲하니라
其物多諸奇怪物하여 劑錢至十數萬이로되
皆自君手하고 不假之人하니라 家貧하야 妻子常有饑色하니라
祖某 某官이요 父某 某官이라 妻韓氏 禮部郞中某之孫이요 汴州開封尉某之女 於余爲叔父孫女
君常從余學 選於諸生而嫁與之하니라 孝順祗修하니 群女效其所爲하니라 男若干人이니 曰某 女子曰某 銘曰
嗚呼徹也
世慕顧以行이로되
子揭揭也로다
噎喑以爲生이로되
子獨割也로다
爲彼不淸하야
作玉雪也하고
仁義以爲兵일새
用不缺折也
知死不失名일새
得猛厲也하고
自申于闇明하니

我銘以貞之
不肖者之呾也로라


06. 給事中 淸河 사람 張君墓誌銘
광채가 밖으로 드러난다.
張君은 이름이 이고 가 아무이다. 進士로서 공적을 쌓아 관직이 范陽府監察御史에 이르렀다.
長慶 원년(821)에 지금의 재상 牛僧儒御史中丞으로 있을 때에 장군의 명성과 행적이 御史 후보[]에 맞다고 아뢰니, 조서를 내려 즉시 장군을 어사로 삼았다.
范陽節度使府에서는 그를 빼앗기는 것이 아까웠으나 감히 挽留할 수 없어서 그를 보내면서 “幽州節度使父子間世襲하고 조정에서 選任하지 않은 지가 오래입니다.
이제 幽州를 막 收復하였고, 또한 막 부임한 처지여서 외롭고 두려우니, 반드시 강력한 보좌를 얻어야 治績을 이룰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密奏를 올렸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장군이 출발해 가는 도중에 조서를 내려 范陽으로 돌려보내고, 이어 장군을 殿中侍御史로 승진시키고서 朱衣銀魚加賜하였다.
張君이 돌아온 지 며칠 만에 幽州軍이 변란을 일으켜,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節度府從事(幕僚)들을 원망해 모두 살해하고 그 節度使(張弘靖)까지 囚禁하였다.
그리고 서로 약속하기를 “張御史는 점잖은 분이라 우리를 모욕하거나 우리를 괴롭힌 일이 없으니 죽이지 말라.”고 하고서 張君을 절도사의 처소에 안치하였다.
한 달 남짓 지난[] 뒤에 京師에서 中貴人(지위가 高貴宦官)이 사신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張君이 절도사에게 “께서는 이곳 사람들을 저버린 적이 없으시니, 조정의 使者가 오거든 뵙기를 청하여 스스로 변명하면 행여 이곳을 탈출해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고서
즉시 문을 밀치며 내보내주기를 요구하였다. 문을 지키던 자가 그 魁首에게 보고하니, 괴수와 졸개가 모두 놀라며 “반드시 張御史일 것이다. 장어사는 충성스럽고 의로운 분이니,
반드시 절도사를 위해 이런 계책을 고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사람들은 別館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고서 즉시 사람들과 함께 장군을 꺼내주었다.
장군은 문을 나오자마자 軍衆을 향해 욕하기를 “너희들이 어찌 감히 반역하느냐? 吳元濟는 전일에 동쪽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렸고, 李師道는 어제 軍中에서 목이 잘렸으며,
함께 惡逆을 저지른 자들의 父母妻子까지 모두 屠戮하여 그 고기를 개와 쥐, 올빼미와 까마귀에게 먹이로 주었는데, 너희들은 어찌 감히 반역하느냐? 너희들은 어찌 감히 반역하느냐?”고 하였다.
끌려가면서도 욕을 해대니 軍衆은 그 욕하는 소리가 두렵기도 하고 싫기도 하여 차마 들을 수 없고, 또 변란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즉시 張君을 때려 죽였는데 장군은 죽을 때까지 욕하는 소리가 입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군중이 모두 “義士이다. 義士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자는 張君의 시체를 거두어 묻고 〈후일 장사 지내기를〉 기다렸다.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자 天子께서 張君을 장하게 여기시어 給事中에 추증하셨다. 鄆州節度使僚屬으로 있는 장군의 벗 侯雲長이 그 절도사 馬僕射(馬總)에게 장군을 위해 〈그 靈柩를 운송해 올 사람을〉 軍中에서 선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기를 청하여,
본래부터 장군과 서로 알고 지내던 張恭李元實을 선발해서, 두 사람에게 禮幣를 가지고 范陽으로 가서 〈장군의 시체를 돌려주기를〉 청하게 하니, 범양 사람들이 의롭게 여겨 돌려주었다.
조정에 보고하자, 詔書를 내려 靈柩가 당도하는 곳마다 〈역참에서〉 船舶喪輿를 지급하여 차례로 운송해 그 집까지 돌아가게 하고, 돈과 물품을 하사하여 장사 지내게 하였다.
長慶 4년(824) 4월 아무 날에 그 妻子가 장군의 영구를 아무 고을 아무 곳에 장사 지냈다.
張君의 아우 張復進士(宜武節度使)을 보좌하였는데, 정신병에 걸려 행동이 평소와 다르고 겁을 냈다 의심했다 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았다.
장군은 틈이 나면 즉시 가서 직접 아우의 옷과 이불이 얇은지 두꺼운지를 살피고, 일정한 시간에 가서 아우가 먹고 마시는 것을 살피고서 친히 수저로 음식을 떠서 먹였으며, 그 집안에 禁令을 내려 감히 큰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
병을 치료하는 藥材에는 空靑雄黃奇怪藥物이 많아서 약값이 수십만 에 이르렀다.
그런데 돈을 마련해 약물을 購入하는 괴로운 일을 모두 장군이 손수하고 남의 도움을 빌리지 않았다. 집이 가난하여 妻子가 항상 주린 기색이 있었다.
祖父 아무는 아무 관직을 지냈고, 부친 아무는 아무 관직을 지냈다. 아내 韓氏禮部郞中 아무의 손녀이고 汴州 開封尉 아무의 딸이니, 나에게는 叔父의 손녀(堂姪女)가 된다.
張君이 일찍이 나에게 와서 배웠기 때문에 여러 학생 중에서 골라서 질녀를 그에게 시집보낸 것이다. 질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며 공경으로 삼가 몸을 닦으니 모든 딸들도 질녀의 행실을 본받았다. 아들은 若干人이니 아무이고 딸은 아무이다. 은 다음과 같다.
張徹이여!
세상 사람 모두 명리를 쫓지만
그대 홀로 물들지 않았지
세상 사람 모두 입을 닫고 살지만
그대 홀로 입을 열었지
저들이 깨끗지 못해
그대 玉雪 되었고
仁義로써 병기 삼았기에
이지러지지도 부러지지도 않았지
죽을 줄 알면서도 명예 잃지 않았기에
용감하단 명성 얻었고
어두울 때나 밝을 때나 뜻을 굽히지 않았으니
그 절조 누구도 빼앗지 못했지
을 지어 張君의 절조 드러냄은
불초한 자들 꾸짖기 위함일세


역주
역주1 給事中淸河張君墓誌銘 : 이 墓誌銘은 唐 穆宗 長慶 3년(823)에 지은 것이다. 張君은 張徹(?~821)을 가리킨다.
역주2 累官 : 공적이 쌓여 관직이 오름이다.
역주3 今牛宰相爲御史中丞 : 지금의 재상 牛僧儒가 御史中丞으로 있을 때에 張君을 御史 후보에 맞다고 아뢴 것이다. 唐나라는 후보를 選人이라 하였다.
역주4 其府 : 府는 范陽節度使府를 가리킨다. 당시 節度使는 張弘靖이었다.
역주5 幽州將父子繼續 : 幽州將은 幽州節度使를 이른다. 劉怦이 죽자 그 아들 劉濟가 뒤를 이어 節度使가 되었는데, 그 아들 劉總이 아비 유제를 독살하고 유주절도사가 된 것을 이른다.
역주6 廷選 : 조정에서 選任함이다.
역주7 新收 : 劉總이 幽州를 조정에 歸屬하고 스스로 물러나 僧侶가 되니, 조정에서 張弘靖을 幽州大都督에 임명한 것을 이른다.
역주8 加賜朱衣銀魚 : 加賜는 정해진 규정 이상을 賜與함이다. 朱衣는 唐‧宋 때에 4‧5品官이 입던 붉은 官服이고, 銀魚는 唐代에 5品官이 차던 銀으로 된 물고기 모양의 符信이다.
역주9 軍亂……而囚其帥 : 長慶 원년(821) 7월 10일에 幽州軍이 變亂을 일으켜 節度史 張弘靖을 囚禁하고, 判官 韋雍‧張宗厚‧崔仲卿‧鄭塤 등을 살해한 일을 이른다.
역주10 轢蹙 : 무시하고 괴롭힘이다.
역주11 守者以告其魁 : 문을 지키던 자가 그 魁首에게 보고한 것인데, 괴수는 당시 叛軍이 推戴해 留後로 삼은 朱克融이다.
역주12 前日吳元濟斬東市 : 元和 12년(817) 11월에 裵度가 淮西를 평정하고서 吳元濟를 사로잡아 압송해 와서 京師에서 斬하였다.
역주13 昨日李師道斬於軍中 : 元和 14년(819) 2월에 淄靑節度使 李師道가 수하의 兵馬使 劉悟에게 살해되었다.
역주14 (子)[畏] : 저본에는 ‘子’로 되어 있으나, ≪韓文考異≫에 의거하여 ‘畏’로 바로잡았다.
역주15 佐汴宋 : 汴州와 宋州는 宣武節度使 관할에 속하였으니, 佐汴宋은 바로 宣武節度使의 幕僚로 있었던 것이다.
역주16 變易喪心 : 喪心(실성)하여 행동이 평소와 다름이다.
역주17 驚惑不常 : 무시로 겁을 냈다 의심했다 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18 節時其飮食 而匕筯(저)進養之 : 節時는 일정한 때에 가서 돌봄이니, 곧 病者가 먹고 마시는 것을 살피고서 직접 수저로 음식을 떠서 먹여 기력을 차리게 하였다는 말인 듯하다. 時는 伺(살피다)와 통용된다. 進養之는 음식을 먹여 체력을 기름이다.
역주19 醫餌之藥 : 醫師가 치료제로 쓰는 藥物을 이른 듯하다.
역주20 空靑雄黃 : 空靑은 銅鑛에서 나는 빛이 푸른 鑛物인데, 空靑과 雄黃은 모두 顔料나 藥劑로 쓰인다.
역주21 營治勤劇 : 營治는 돈을 마련하고 약제를 구입하는 일에 勤勞함인 듯하다. 勤劇은 매우 勤勞함이다.
역주22 自申于闇明 莫之奪也 :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펴니 그 지조를 누구도 빼앗지 못했다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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