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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3)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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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直敍
殿中侍御史李君 名虛中이요 字常容이라 하니라
父惲 河南溫縣尉 娶陳留太守薛江童女하야 生六子하니라 君最後生하야 愛於其父母하니라
年少長 喜學하야 學無所不通이나 最深於하야 以人之始生年月日所直日辰支干相斟酌하야
推人壽夭貴賤利不利하되 輙先其年時 百不失一二하니라
其說하야 하여 參錯重出이라
學者就傳其法호되 初若可取 卒然失之 莫能與其校得失이라
進士及第하고入等하야 補祕書正字 母喪去官이라가 卒喪하고 太子校書하니라
하야 授伊闕尉하야 佐水陸運事하니라 以公爲運佐如初하니라
奏奪爲觀察推官이라가 授監察御史하니라
未幾 御史臺疏호되 言行能高하니 不宜用外府라하니 卽詔爲하니라 半歲 分部東都臺라가 遷殿中侍御史하니라
元和八年四月 詔徵하야 旣至 宰相欲白以爲起居舍人하니라
經一月 疽發背하야 六月乙酉卒하니 年五十二
其年十月戊申 葬河南洛陽縣하니 距其祖澠池令府君僑墓十里
君昆弟六人이러니 先君而沒者四人이라 其一人嘗爲鄭之滎澤尉러니
信道士長生不死之說하야 旣去官 絶不營人事하니라
故四門之寡妻孤孩 與滎澤之妻子 衣食百須 하니라
自初爲伊闕尉하야 佐河南水陸運使 換兩使하고 經七年不去 所以爲供給敎養者니라
及由蜀來하얀 輩類御史皆樂在朝廷進取로되 君獨念寡分司東出하니 嗚呼 其仁哉ㄴ저
君亦好道士說하야 於蜀得祕方하야 能以水銀爲黃金하야 服之冀果不死하니라
將疾 謂其友衛中行大受韓愈退之曰 吾夢大山裂하야 流出赤黃物如金이라 曰 是所謂 라하니라
君旣沒 愈追占其夢曰 이요 裂而流赤黃 疽象也 大還者 大歸也 其告之矣니라
妻范陽盧氏 鄭滑節度使兼御史大夫群之女 與君合德하야 하니라
男三人이니 長曰初 協律이요 次曰彪 其幼曰還이니 適三歲 女子九人이라 銘曰
不贏其躬하고 以尙其後人이로다


02. 殿中侍御史 李君墓誌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서술하였다.
殿中侍御史 李君은 이름이 虛中이고 常容이다. 그의 11대조 李沖拓拔氏(北魏) 때에 고위직에 올라 명성을 드날렸다.
父親 李惲河南 溫縣縣尉를 지냈고, 陳留太守 薛江童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아들 여섯을 낳았다. 이군은 가장 뒤에 태어난 막내여서 부모에게 寵愛를 받았다.
李君이 장성한 뒤엔 배움을 좋아하여 배운 것을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으나, 五行書에 가장 조예가 깊어서 사람이 출생한 에 해당하는 地支天干相生相剋으로 ()‧을 짐작하여
그 사람의 壽夭貴賤利不利推算하되 매양[] 〈그 사람이 출생한 로 그 사람의 壽夭貴賤利不利를〉 推測[]하면 백에 한둘도 틀리지 않았다.
그 학설이 深廣하고 優美하여 關鍵(중요한 부분)을 분석하는 방법이 복잡하고 번다하여 어지럽게 뒤섞이고 중복 출현하였다.
그리하여 배우는 자가 그에게 가서 그 術法傳受받되 처음에는 배울 듯하지만 끝내는 배우지 못하였다. 星官이나 曆翁도 그와 得失(優劣)을 따질 수 없었다.
李君進士에 급제한 뒤에 吏部에서 주관하는 書判試에 응시해 합격하여 祕書省 正字補任되었으나 母親喪으로 인해 관직에서 떠났다가 상을 마친 뒤에 太子校書選補되었다.
河南尹奏章을 올려 〈이군을 추천하여〉 伊闕縣縣尉로 삼아 水陸轉運使의 일을 보좌하게 하였다. 옛 宰相 鄭公 餘慶이 후임 하남윤으로 와서도 여전히 이군을 轉運使의 보좌관으로 삼았다.
재상 武公 元衡劒南節度使로 나갈 때에 上奏하여 이군을 빼앗아 觀察推官으로 삼았다가 監察御史에 제수하였다.
오래지 않아 御史臺에서 上疏하기를 ‘〈이군처럼〉 말을 하면 실행하고 재능이 높은 사람을 地方官[外府]으로 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니, 즉시 조서를 내려 정식으로 御史에 제수하였다. 반년 뒤에 東都 御史臺職任을 맡았다가 殿中侍御史로 승진하였다.
元和 8년(813) 4월에 徵召하는 詔書를 받고 京師로 올라가자, 재상이 조정에 보고하고서 이군을 起居舍人으로 삼고자 하였다.
한 달이 지난 뒤에 등에 종기가 나서 6월 乙酉日하였으니 향년이 52세였다.
그해 10월 戊申日河南府 洛陽縣에 장사 지냈으니, 그의 祖父澠池縣令 李僑府君의 무덤과는 거리가 10리이다.
李君은 형제가 여섯이었는데, 이군보다 먼저 죽은 자가 넷이었다. 형제 중 한 사람은 일찍이 鄭州 滎澤縣縣尉를 지낸 적이 있는데,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는 道士의 말을 믿어, 관직을 버린 뒤에 인간의 일을 단절하고 경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네 집의 寡婦孤兒, 滎澤尉妻子 등이 입고 먹을 것과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모두 이군이 마련해야 했다.
처음 伊闕縣縣尉가 되어 河南水陸轉運使를 보좌한 때로부터 두 轉運使가 바뀌고 7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았던 것은 寡婦들을 먹여 살리고 孤兒들을 敎養하기 위해서였다.
(四川)에서 京師로 돌아옴에 미쳐 同僚 御史들은 모두 朝廷에서 〈관직을 맡고〉 있으면서 進取하기를 좋아하였으나, 이군만은 유독 寡婦孤兒들의 부양을 위해 東都分司하기를 청하였으니, 아! 그는 참으로 仁者이다.
李君은 또한 道士을 좋아하여 에 있을 적에 祕方을 얻어 水銀製鍊黃金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복용하고 참으로 죽지 않기를 바랐다.
병이 나려 할 때에 이군은 벗인 衛中行 大受韓愈 退之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꿈에 큰 산이 갈라지더니 붉고 누런 물건이 흘러나오는데 마치 같았다. 左人(道士)이 말하기를 ‘이것은 이른바 大還이란 것이니, 곧 죽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군이 죽은 뒤에 내가 추후에 이군의 꿈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이니 은 등이다. 산이 갈라져서 붉고 누런 물건이 흘러나온 것은 종기를 상징하고, 大還大歸(죽음)이니 꿈이 이미 〈종기로 죽을 것을〉 알려준 것이다.”
아내 范陽 盧氏鄭滑節度使 兼御史大夫 盧群의 따님으로 李君이 같아 친척 중에 뒤에서 그를 비난하는 이가 없었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長子는 이름이 協律郞이고, 次子는 이름이 이고, 어린 막내는 이름이 으로 이제 막 세 살이다. 딸은 아홉이다. 은 다음과 같다.
자기의 수명 채우지 않고 후인들에게 보태주었네


역주
역주1 殿中侍御史李君墓誌銘 : 이 墓誌銘은 元和 8년(813)에 지은 것이다. 李君은 李虛中(761~813)을 가리킨다.
역주2 其十一世祖沖 貴顯拓拔世 : 李虛中의 11대조 李沖이 拓拔氏의 北魏 때에 淸淵侯에 封해졌다.
역주3 五行書 : 星命家와 觀相家가 五行의 生剋으로 命運을 推算하는 책을 이른다.
역주4 生勝 衰死王相 : 生勝은 生剋과 같은 말로, 五行相生과 五行相剋을 가리킨다. 字書에 의하면 陰陽家가 王(旺盛)‧相(強壯)‧胎(孕育)‧沒(沒落)‧死(死亡)‧囚(禁錮)‧廢(廢棄)‧休(休退) 등 여덟 글자를 五行‧四時‧八卦에 차례로 서로 배합시켜 사물의 消長과 更迭을 표시하는 것이다. 五行 중에 用事者(때를 만나 힘을 발휘하는 것)가 ‘王’이 되고, ‘王’을 낳은 것이 ‘相’이 된다. 예컨대 봄에는 木이 王이 되고, 火가 相이 되며, 여름에는 火가 王이 되고, 土가 相이 되는 따위이다.
역주5 : 王引之의 ≪經義述聞≫에 “處가 居가 되고 止가 되는 것은 常訓이고, 또 審度이 되고 辨察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역주6 汪洋奧美 : 뜻이 深廣하고 文辭가 아름다움이다.
역주7 關節開解 : 關節은 중요한 부분이고, 開解는 해석함이다.
역주8 萬端千緖 : 내용이 복잡하여 번다함이다.
역주9 星官曆翁 : 星官은 星體의 明暗과 位置로써 人事의 吉凶禍福을 점치는 벼슬아치이고, 曆翁은 曆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역수는 天象을 관측해 年時의 節侯를 추산함이다.
역주10 書判 : 唐代에 科擧에서 사람을 선택하는 法에 身‧言‧書‧判 등 네 가지 法이 있었는데, 身은 體軀가 풍만하고 장대함이고, 言은 言辭가 화려하고 雅正함이고, 書는 楷法(楷書의 筆法)이 힘차고 아름다움이고, 判은 文理가 우수함이다.
역주11 選補 : 缺員이 생긴 자리에 사람을 선발해 보충함이다.
역주12 河南尹奏疏 : ≪舊唐書≫ 〈德宗紀〉에 “貞元 16년(800) 9월 癸酉日에 河南少尹 張式을 河南尹 水陸轉運使로 삼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13 故宰相鄭公餘慶繼尹河南 : ≪舊唐書≫ 〈憲宗紀〉에 “元和 元年(806) 11월 庚戌日에 國子祭酒 鄭餘慶을 河南尹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14 宰相武公元衡之出劒南 : ≪舊唐書≫ 〈憲宗紀〉에 宰相 武元衡을 西川節度使로 삼은 기록이 보인다.
역주15 眞御史 : 眞은 官署의 사무를 익히게 하기 위해 발령하여 그 능력을 시험한 뒤에 정식으로 관직에 임명하는 것이다.
역주16 皆由君出 : 모두 李君으로부러 나왔다는 말인데, 그 뜻은 모든 것을 다 이군이 마련해야 했다는 것이다.
역주17 (求稚)[稚求] : 저본에는 ‘求稚’로 되어 있으나, ≪韓文考異≫에 의거하여 ‘稚求’로 바로잡았다.
역주18 左人 : 占卜‧觀相‧算命을 業으로 삼은 사람을 이른다.
역주19 大還 : 道敎의 丹藥인 大還丹을 이른다.
역주20 今三矣 : 三에는 終의 訓이 있으니, 곧 생을 마칠 것이라는 말인 듯하다.
역주21 山者艮 : 艮卦는 山을 상징한다.
역주22 艮爲背 : 艮은 등[背]을 상징한다.
역주23 親戚無退一言 : ≪韓文考異≫의 注에는 “‘退一’이 ‘一退’로 되어 있다. 혹 ‘無’자는 ‘退’자 뒤에 있어야 할 듯하다.”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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