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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3)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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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昌黎文多이나 然亦多生割處
樊紹述旣卒하야 且葬할새 愈將銘之하야 從其家求書하야 得書하니 者三十卷 曰樊子者又三十卷
春秋集傳十五卷 傳記凡二百九十一篇
道路所遇及器物門里雜銘二百二十賦十詩七百一十九하고
曰 多矣哉 古未嘗有也 然而必出於己하고 不襲蹈前人一言一句하니 又何其難也
然而不煩於而自合也 嗚呼 紹述於斯術 其可謂至於斯極者矣
生而其家貴富로되 長而不有其藏一錢이라 妻子告不足이면 顧且笑曰 라하니
皆應曰 然이라하고 無不意滿하니라 嘗以金部郞中이라가 還言某師不治하야 罷之하니라
以此出爲綿州刺史하니라 一年 徵拜左司郞中하고 又出刺絳州하니라
綿絳之人至今皆曰 於我有德이라하니라 以爲諫議大夫하야 命且下 遂病以卒하니 年若干이라
紹述諱宗師 父諱澤이니하야 官至右僕射하고 贈某官하니라 祖某官이요 諱泳이라
自祖及紹述三世 皆以以進하니라
紹述無所不學이요 於辭於聲天得也 在衆若無能者 嘗與觀樂
問曰 何如 曰 後當然이리라 已而果然하니라 銘曰
惟古於詞必己出이러니
降而不能乃剽賊이라
後皆指前公相襲하야
從漢迄今用一律이라

神徂聖伏道絶塞이라
旣極乃通發紹述하니
이라
有欲求之此其躅이라


12. 南陽 사람 樊紹述墓誌銘
昌黎의 문장에는 奇崛한 곳이 많으나, 難澁한 곳도 많다.
樊紹述이 서거하여 장사 지내려 할 때에 나 韓愈가 그의 墓誌銘을 지으려고 그 집안에 그가 지은 글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지은 ≪魁紀公≫ 30권, ≪樊子≫ 30권,
春秋集傳≫ 15권, 表牋狀策書序傳記紀誌說論今文讚銘 등 모두 291편과
도로에서 만났던 器物이나 門里에 새긴 雜銘 220, 10, 719편을 얻고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많기도 하구나. 옛사람 중에도 〈지은 문장이〉 이처럼 많은 이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장이 반드시 자기에게서 나왔고 前人一言半句因襲하지 않았으니 또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의 문장은〉 반드시 仁義出入하여 내용의 풍부함이 마치 〈천지가〉 생산하고 蓄養하여 만물이 모두[] 갖추어진 것 같고, 바다가 百川을 용납하듯, 大地가 만물을 싣듯, 자유분방하게 문장을 구사하여 얽매임이 없었다.
번거롭게 바로잡고 깎아내지 않아도 저절로 문장의 법도에 맞았다. 아! 紹述은 문장에 대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자라고 이를 만하다.”
紹述이 출생했을 때는 그 집안이 富貴하였는데, 장성한 뒤에는 집안에 간직한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아내나 자식이 돈이 부족하다고 고하면 紹述은 돌아보고 웃으면서 “나의 는 대체로 이런 것이다.”라고 하니,
妻子는 모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뜻이 없었다. 일찍이 金部郞中으로 南方告哀使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아무 節度使가 정치를 잘못한다고 보고하여 그 절도사를 파직시킨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 紹述綿州刺史로 나갔다. 1년 뒤에 부름을 받아 左司郞中에 제수되고, 또 絳州刺史로 나갔다.
綿州絳州의 백성들은 지금까지 모두 “우리에게 恩德이 있었다.”라고 한다. 그를 諫議大夫로 삼고서 任命狀을 내리려 하였는데 마침내 병으로 하였으니 향년이 若干 였다.
紹述宗師이다. 父親인데 일찍이 襄陽節度使江陵節度使를 지냈으며, 관직이 右僕射에 이르고 某官에 추증되었다. 祖父某官을 지냈고, 이다.
祖父로부터 紹述에 이르기까지 3대가 모두 軍謀宏遠堪任將帥科對策에 상등으로 급제하여 進用되었다.
紹述은 배우지 않은 것이 없고, 문장과 음악에 天賦의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하였다. 그와 음악을 감상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 “이 음악이 어떻게 흘러가겠는가?”라고 묻자, 그는 “이 은 뒤에 응당 저렇게 펼쳐질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는데, 이윽고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文詞가 반드시 자기에게서 나왔는데
후세에는 그럴 능력 없어서 표절하였네
후인들 모두 前人을 공공연히 표절하여
漢代부터 지금까지 시문의 격식이 판에 박은 것 같네
오랫동안 적막하여 문장 짓는 방법 깨닫지 못한 것은
神人은 가고 聖人은 은둔하여 道統이 끊어졌기 때문이네
궁극에 도달하면 통하는 것이라서 紹述이 나오니
문맥이 잘 통하고 용어사용이 적절하여 각각 합당하였네
작문의 방법을 배우려 하면 소술이 바로 그 궤적이네


역주
역주1 南陽樊紹述墓誌銘 : 이 墓誌銘은 長慶 4년(824)에 樊宗師를 위해서 지은 것이다. 紹述은 번종사의 字이다. 번종사는 唐代에 古文運動의 倡導者로 韓愈의 벗이다.
역주2 奇崛 : 문장이 신기하고 힘이 있음이고, 生割은 문장이 難澁함이다.
역주3 : 冊名을 이른다.
역주4 魁紀公 : 書名이다. 魁는 北斗의 첫째 별부터 넷째 별까지의 총칭인데, ≪史記≫ 〈天官書〉에 “北斗가 中央에서 운행하면서……星紀(세월)를 정한다.”라고 하였다. 書名을 ‘魁紀公’으로 칭한 것은 일체의 사물을 헤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역주5 表牋 : 文體의 하나이다. 表는 奏章의 일종으로 陳述‧請求‧謝恩‧陳賀 등에 사용하고, 牋(箋)은 書牘과 같은 것으로 자기보다 職位가 높은 사람에게 사용한다.
역주6 狀策 : 文體의 이름이다. 狀은 公文의 일종으로 상급기관에 의견이나 사실을 진술하는 문서이고, 策은 考試 때에 擧子들이 제출한 策問의 해답을 이른다. 이 또한 일종의 議論文體이다.
역주7 書序 : 문체의 이름이다. 書는 정사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때 사용하고, 序는 書籍의 著述이나 혹은 出版의 意圖, 編次의 體例와 작자의 정황 등을 설명한다. 또 贈序體의 문장도 있다.
역주8 紀誌 : 문체의 이름이다. 紀는 ‘記’와 같다. 誌는 일을 기록한 서적이나 혹은 문장을 이른다.
역주9 說論 : 문체의 이름이다. 說은 어떤 도리나 주장을 밝게 논술함이고, 論은 사리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역주10 今文讚銘 : 韻文으로 지은 讚과 銘이다. 今文은 당시에 유행하던 문장이다. 讚銘도 문체의 이름이다. 讚은 인물을 찬송하는 문자이고, 銘은 器物이나 碑石에 새기는 문자이다.
역주11 出入仁義 : 仁義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12 若生蓄 萬物必具 : 천지가 만물을 생산하고 蓄養하여 만물이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樊紹述의 문장에도 그 내용이 빠짐없이 구비되었다는 뜻이다.
역주13 海含地負 : 바다가 百川을 용납하듯이 포함한 것이 深廣하고, 大地가 만물을 받쳐 싣고 있듯이 싣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역주14 放恣橫從 無所統紀 : 放恣는 放縱으로 제약을 받지 않음이고, 縱橫은 남북이니, 남북으로 멋대로 달린다는 뜻이다. 곧 제약을 받지 않고 문장을 마음대로 구사함을 비유한 말이다.
역주15 繩削 : 먹줄을 치고 깎아내는 것으로, 문장의 修正을 뜻한다.
역주16 我道蓋是也 : 내가 강구한 聖人의 道가 대개 이렇다는 말이다.
역주17 告哀南方 : 元和 15년(820) 정월에 唐 憲宗이 崩御하였을 때에 樊宗師가 告哀使가 되어 남방으로 가서 各地에 喪을 알렸다.
역주18 帥襄陽江陵 : 帥는 統帥를 이르니, 여기서는 節度使를 가리킨다. 襄陽은 山南東道節度使의 治所(地方長官의 官署가 있는 곳)이고, 江陵은 荊南節度使의 治所이다.
역주19 軍謀堪將帥策上第 : 軍謀堪將帥는 唐나라 때의 과거인 軍謀宏遠堪任將帥科를 가리킨다. 策上第는 對策이 높은 등급으로 뽑혀 급제한 것이다.
역주20 寥寥久哉莫覺屬 : 寥寥久哉는 文壇이 텅 비어 오랫동안 적막하였다는 말이고, 莫覺屬의 屬은 作文이니, 곧 문장을 짓는 바른 방법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역주21 文從字順各識職 : 文從字順은 문맥이 잘 통하고 용어사용이 적절함이고, 識職은 합당함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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