竊以校讐之職
은 是正爲難
이니 하고 折群疑於獨見
이라
脫
에 簡編多前後之乖
하니 幷
之一篇
에 文章有合離之異
라
況乃
는 備帝者之來臨
이요 은 非人間之所見
이니 自匪識窮元本
하고 學漸淵源
하야 究百世之放紛
하고 總群言而博達
이면 則何以
하고 리오
如脩者
는 器惟庸妄
하고 族本
單
이라 雖出逢千載之期
나 而生有百罹之苦
라
過時之年
이 已
堅而難入
이요 少作可悔
하니 終
以無功
이라
逮親而得斗祿하니 雖慰於子心이나 斂版以揖上官에 遂成於俗狀이라
學久矣而將落
하고 思兀然而欲枯
하니 進無取當塗之資
하고 退已
라
歲月其忽에 徒有志於分陰이요 英俊竝遊에 方問途而孤進이라
顧蕪庸之末學
이 已屢試於有司
하니 를 能盡於是矣
어늘 을 其可再乎
아
恣窺
之書
하고 坐費
之膳
하니 內循忝據
에 有溢情涯
라
圓方有範
하니 大陶冶以
鎔
하고 高下不欺
하니 正權衡而輕重
이라
閔此庸懦
하야 曲以甄收
하니 誓堅
하고 永荷丘山之賜
라
우러러 은총의 영광에 보답하려니 실로 더욱 마음이 떨리고 두렵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교감校勘을 맡은 직책은 그야말로 어려우니, 선본善本을 통하여 서책을 자세히 살피고 개인의 견해로 많은 의심스런 곳들을 판단해야 합니다.
책을 묶은 끈이 끊어짐에 간편簡編이 전후로 많이 어긋났으니, 〈반경盤庚〉 한 편은 모두 문장에 착간錯簡이 있습니다.
중니仲尼의 박학함으로도 ‘곽공郭公’이란 대목을 미심쩍은 상태로 남겨두었으니, 경전을 부지런히 연구한 원개元凱(杜預)가 아니라면, ‘문왕門王’이 윤閏자가 된 줄 뉘라서 알았겠습니까.
더구나 서곤西崑의 책부冊府는 제왕이 드나드는 곳이고, 봉래蓬萊라 선산仙山은 인간세상에서 볼 수 없는 곳이니, 식견은 근원을 궁구窮究하고 학문은 연원淵源을 거슬러 올라 백세百世의 복잡한 역사를 꿰뚫고 많은 기록을 두루 통달한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천록각天祿閣에서 벼슬하여 청려장靑藜杖을 대하고 저술을 하며, 우릉羽陵에서 서책을 안고서 좀벌레를 털어내고 읽을 수 있겠습니까.
수脩 같은 자는, 자질은 용렬하고 종족은 한미寒微하여 천추에 드문 좋은 시대를 만났으나 살아가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습니다.
국학國學에 들어와 명부名簿에 이름을 올린 것이 제생諸生들 중에서 가장 늦었으니, 인물을 품평하는 자리에서 한 번 보아주기를 감히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한갓 문명한 시대의 덕택에 젖어들고, 교육의 인덕에 한가로이 노닐었습니다.
그렇지만 공부할 때를 지난 나이라 이미 배워도 공부가 진보하기 어렵고, 소싯적에 지은 글들은 후회할 만하니 조충전각雕蟲篆刻과 같아 아무런 공효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찍이 훌륭한 인재들 틈에 끼어서 과거를 보았고 이내 관복을 입고 관리에 임용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살아 계실 때 적은 녹봉이나마 받게 되었으니 비록 자식의 마음에 위안은 되지만, 수판手版[笏]을 쥐고 상관에게 읍揖을 하다 보니 마침내 속리俗吏의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문은 세월이 오래 지남에 수준이 낮아지고 문사文思는 멍청히 앉아 있노라면 고갈되려 하니, 나아가서는 당로자當路者에게 인정받을 자질이 없고 물러나서는 옛날의 공부도 이미 잃었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니 한갓 촌음寸陰을 아낄 생각은 있지만, 영재英才들과 함께 노닐면서 바야흐로 길을 물어 홀로 나아갔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둔하기가 이와 같으니, 감히 영광스런 지우知遇를 입을 마음을 먹겠습니까.
그런데 천행天幸이 와서 특별히 중신重臣의 추천을 받을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감히 사람을 알아보시는 감식안을 욕되게 한 것이리오.
아마도 동류同類들에 섞여서 함께 뽑혀 올라간 것일 터입니다.
그런데 신을 보살펴 아울러 포용해주시어 서적을 살펴보고 교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이 거칠고 비루한 학식이 이미 유사有司에 의해 누차 시험을 받았으니 보잘것없는 재능을 이미 여기서 다했거늘, 연도鉛刀와 같은 무딘 재능을 다시 써서야 되겠습니까.
진실로 좋아할 만한 문장이 없는데 너무도 과분한 우대를 해주시어 빈객의 자리로부터 서림書林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한 번 품계가 올라 영광스러우니, 성상의 은총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 절하고 명을 들음에 그 내용에 감복하였습니다.
대궐에 들어가자 눈이 휘둥그레져 어지러웠고, 운대芸臺는 깊고 넓어 성신星辰이 빛나는 하늘에 가까웠습니다.
이에 금궤金匱의 서책을 맘껏 보고 태관太官의 요리를 앉아서 먹으니, 돌이켜보면 과분한 자리가 실정에 넘치는 것입니다.
이는 대개 소문상공昭文相公께서 사람들을 장려하여 고루 은덕을 베풀고 인재를 좋아하여 장려해주신 덕분입니다.
모나고 둥근 모양에 법도가 있으니 큰 도공陶工은 이로써 질그릇을 만들고, 무게에 따라 오르고 내림을 속이지 않으니 저울추를 바르게 하여 무게를 재는 격입니다.
그래서 이 용렬한 자를 불쌍히 여겨 잘 보아서 선발해주셨으니, 몸을 바쳐 충성할 것을 굳게 맹서하고 산악山嶽처럼 큰 은혜에 길이 감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