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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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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爲女氏序 從兄之詩母之墓銘來得體
天聖七年 予始遊京師하야 得吾友謝景山하니 景山少以進士中甲科하야 以善知名
其後予於他所 又得今所爲景山母夫人之墓銘하니 言夫人好學通經하야 自敎其子라하니
乃知景山出於數千里之外하야 負其藝於大衆之中하야 一賈而售하야 遂以名知於人者 繄其母之賢也로다
今年 한대 景山出其女弟希孟所爲詩百餘篇하니
然後又知景山之母 不獨成其子之名이요 而又以其餘遺其女也로다
景山嘗學杜甫杜牧之文하야 以雄健高逸自喜하고 希孟之言 尤隱約深厚하야 守禮而不自放하야 有古幽閒淑女之風하니 非特婦人之能言者也
然景山嘗從今世賢豪者遊 故得聞於當時 而希孟不幸爲女子하야 莫自章顯於世
이러니 今有傑然巨人能輕重時人而取信後世者 一爲希孟重之 其不泯沒矣리라
予固力不足者 復何爲哉 復何爲哉
希孟嫁進士陳安國하고 卒時年二十四


10. 사씨謝氏에 대한 서문
부인을 위해 쓴 서문인데 〈사씨謝氏의〉 형인 경산景山의 시와 어머니의 묘지명墓誌銘으로부터 골자骨子를 얻었다.
천성天聖 7년(1029)에 내가 처음 경사京師에 가 있으면서 나의 벗 사경산謝景山을 만났으니, 경산景山은 어릴 때 진사시進士試갑과甲科로 급제하여 가시歌詩를 잘 지어 이름이 알려졌다.
그 뒤에 내가 다른 곳에서 또 현재 사인舍人 송공宋公이 지은 경산景山의 어머니의 묘지명墓誌銘을 얻어 보니, “부인이 학문을 좋아하고 경학經學에 통달하여 스스로 아들을 가르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제야 경산景山이 수천 리 먼 곳인 구민甌閩에서 태어나 대중들 가운데서 재예才藝를 자부하여 단번에 재능을 인정받아서 마침내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것은 바로 어머니의 현명함 때문이었음을 알았다.
올해 내가 이릉夷陵으로부터 허창許昌에 이르렀는데, 경산景山이 자기 누이 희맹希孟이 지은 시 100여 편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런 뒤에 또 경산景山의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이루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남은 것을 딸에게도 남겨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경산景山은 일찍이 두보杜甫두목杜牧의 글을 배워 웅건하고 고아한 것을 스스로 좋아하였고, 희맹希孟의 시는 더욱 함축적이고 심후하여 를 지켜 스스로 방임放任하지 않아 옛날 유한幽閑숙녀淑女의 기풍이 있었으니, 부인으로서 시를 잘 짓는 사람일 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경산景山은 일찍부터 당대의 뛰어난 인물들과 종유하였기 때문에 당세에 이름이 알려졌지만, 희맹希孟은 불행히도 여자라서 스스로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다.
옛날 위장강衛莊姜허목부인許穆夫人의 시가 공자孔子에게 채택되어 《시경詩經》 〈국풍國風〉에 나열되어 있는데, 지금 당대의 사람을 포폄하여 후세에 믿음을 줄 수 있는 걸출한 위인偉人이 한번 희맹希孟을 위하여 중하게 평가한다면 그녀의 문장은 민몰泯沒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실로 힘이 부족한 자이니 다시 어찌하겠는가, 다시 어찌하겠는가.
희맹希孟진사進士 진안국陳安國에게 시집갔고, 했을 때의 나이는 24세였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景祐 4년(1037) 8월에 謝希孟의 詩集에 쓴 서문이다. 謝氏는 歐陽脩의 벗인 謝景山의 누이 謝希孟이다. 謝希孟의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역주2 歌詩 : 악보가 있어 가창할 수 있는 樂府詩를 이른다.
역주3 舍人宋公 : 宋公은 宋庠(996~1066)을 가리킨다. 北宋 安州 安陸 사람으로 초명은 郊인데 仁宗이 庠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初字는 伯庠, 후에 公序로 바꾸었다. 天聖 2년(1024)에 進士가 되고, 翰林學士에 올랐다. 皇祐 원년(1049)에 재상이 되었고 후에 莒國公에 봉해졌다. 英宗이 즉위하자 鎭寧武軍으로 옮겨 鄭國公으로 바뀌어 봉해졌다가 司空으로 致仕하였다. 시호는 元憲이다. 저서에 《宋元憲集》 40권과 《國語補音》 등이 있다. 아우인 宋祁와 함께 문학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려 사람들이 ‘二宋’이라 불렀는데, 宋庠이 大宋이고 宋祁가 小宋이다.
역주4 甌閩 : 甌越‧閩越로 지금의 浙江省 溫州와 福建 일대를 이른다.
역주5 予自夷陵 至許昌 : 景祐 3년(1036)에 歐陽脩가 館閣校勘으로 있으면서 글을 지어 范仲淹을 변호하다가 夷陵令으로 貶謫되었고, 다음 해 3월에 휴가를 신청하여 許昌으로 갔는데 이 시기를 가리켜 한 말이다.
역주6 昔衛莊姜許穆夫人 錄於仲尼而列之國風 : 衛나라 莊姜과 許穆夫人의 시가 孔子에게 채택되어 《詩經》의 〈國風〉에 수록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衛莊姜은 齊나라 여자로 衛 莊公의 부인이다. 《詩經》에 수록된 그녀의 시는 〈綠衣〉와 〈燕燕〉이다. 〈綠衣〉는 莊公이 嬖妾에게 迷惑되어 莊姜이 어진데도 총애하지 않아 지은 것이며, 〈燕燕〉은 莊姜이 아들이 없어서 陳나라에서 시집온 戴嬀의 아들 完을 자기의 아들로 삼았는데, 莊公이 죽고 完이 즉위하자, 嬖人의 아들인 州吁가 그를 시해하였다. 그러므로 戴嬀가 陳나라로 영영 돌아가게 되자 그녀를 전송하면서 지은 시이다.
許穆夫人은 宣姜의 딸로 許 穆公의 夫人이다. 《詩經》에 수록된 그녀의 시는 〈載馳〉인데, 許穆夫人이 그의 宗國인 衛나라가 狄人에게 멸망함을 슬퍼하여 지은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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