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之士君子는 名而無所言하고 言則不能稱述以見乎遠이라
谷之爲義
는 하며 動而能應
하고 湛然而深
이 有似乎賢人君子之德
하니 其所謂名而可言者也
라
宜易其字曰應之니 蓋容以言其虛之狀이 不若應以體乎容之德也니라
君早以
文藝
로 考行於鄕里
하야 薦之於有司
하고 而又試其用於
者之選
하야 深中隱厚
하고 學優道充
하니 其有以應乎物矣
라
然今方爲小官主簿書하야 其所應者近而小하니 誠未能有以發乎其聲也라
余知夫虛以待之면 則物之來者益廣하며 響之應者益遠하니 可涯也哉아
余與君同以進士登于科하고 又同爲吏于此하야 群居肩隨에 宴閒相語하야 得以字而相呼라
전傳에 이르기를 “이름으로써 그 사람의 분의分義를 제정制定한다.”라고 하니, 명명命名하면 반드시 사리에 맞아 말할 만함을 이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의 사군자士君子들은 이름은 있지만 말할 만한 것이 없고, 말을 하더라도 칭술하여 오랜 뒤에까지 전해지지 못한다.
내 벗 하남주부河南主簿 장군張君은 이름이 곡谷이고 자字는 중용仲容이다.
곡谷이라는 뜻[의義]은 움푹 패여 물을 채워도 가득 차지 않으며 진동하기만 하면 메아리로 응하고 물이 맑으면서도 깊은 것이 마치 현인賢人ㆍ군자君子의 덕과 비슷한 점이 있으니, 바로 이른바 ‘명명하면 사리에 맞아 말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나는 속으로 중용仲容이라는 자字는 그가 곡谷이라고 명명한 뜻을 충분히 드러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대체로 사물 가운데 지극한 비움으로 쓰이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각각의 양상은 다르다.
그 형체를 비워서 담을 수 있는 것은 둥글거나 모난 그릇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담는 데에 한량限量이 있기 때문에 가득 차 넘치거나 뒤집어지는 지나침이 많이 생긴다.
그 중심을 비워서 외부로 울릴 수 있는 것은 종과 북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울리려면 반드시 다른 물건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걸어 매거나 두드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몸체를 비워서 사물에 호응할 수 있는 것은 빈 골짜기[곡谷]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호응하자면 반드시 무언가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자연스럽게 지극한 고요함으로 사물을 접하여 다함이 없다.
선비가 이것으로 그 이름을 삼았으니 장군張君이 지키는 도리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의당 그 자字를 응지應之라고 바꿔야 할 것이니 용容이라는 글자로 그 비운 모양을 명명하는 것이 응應이라는 글자로 용容의 덕德을 체현體現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장군張君은 일찍 효렴孝廉과 문예文藝로 향리鄕里에서 좋은 평판을 받아 유사有司에게 천거되었고, 또 춘관春官의 고시에서 그 재능을 펼쳐서 염정廉正하고 충후忠厚하며 학식이 넉넉하고 도덕이 충실하니 사물에 호응함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문서를 관장하는 미관微官이 되어 그 호응함이 천근淺近하면서 쇄소瑣小하니 참으로 아직 그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있다.
비움으로 기다리면 사물이 다가오는 것이 더욱 광대해지고 호응하는 메아리가 더욱 멀리 미칠 것임을 나는 아노니 그 끝이 있겠는가.
내가 장군張君과 함께 진사進士로 과거에 급제하였고 또 함께 여기에서 관리가 되어 무리 지어 지내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가로이 지낼 때 담소하면서 자字를 가지고 서로 불렀다.
그래서 이에 사양하며 침묵하고 있지 못하겠기에 감히 서문을 지어 자字를 바꾸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