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祐二年春
에 予幸得從五人者於尙書禮部
하야 考
凡六千五百人
하니 蓋絶不通人者五十日
이라
乃於其間時에 相與作爲古律長短歌詩雜言하니 庶幾所謂群居燕處言談之文이요 亦所以宣其底滯而忘其倦怠也라
然綢繆反復하야 若斷若續하고 而時發於奇怪하야 雜以詼嘲笑謔이로되 及其至也하얀 往往亦造於精微러라
夫君子之博取於人者는 雖滑稽鄙俚라도 猶或不遺어든 而況於詩乎아
古者詩三百篇은 其言無所不有하되 惟其肆而不放하며 樂而不流하야 以卒歸于正하니 此所以爲貴也라
於是
에 次而錄之
하야 得一百七十三篇
하야 以傳於
하노라
然이나 壯者有時而衰하고 衰者有時而老라 其出處離合이參差不齊니 則是詩也 足以追惟平昔하야 握手以爲笑樂이요 至於慨然掩卷而流涕噓嚱者하야도 亦將有之라
가우嘉祐 2년 봄에 내가 요행히 상서성尙書省의 예부禮部에서 다섯 사람을 따라 천하에서 천거된 선비 도합 6,500인을 고시考試하게 되었으니, 대개 전혀 외부인과 만나지 못한 것이 50일이었다.
이에 틈나는 시간에 서로 더불어 고시古詩, 율시律詩, 장구長句, 단구短句, 가시歌詩, 잡언시雜言詩를 지었으니 거의 이른바 무리 지어 한가로이 거처하면서 담론한 글이었으며 또한 침체된 기운을 펴고 권태로움을 잊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말이 쉬우면서도 천근하고 가리면서도 정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얽히고 반복되면서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듯하고 때때로 기이한 시어詩語가 나와 기롱譏弄하고 희학戱謔하는 말을 섞었으나 그 지극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왕왕 또한 정미한 지경에 나아갔다.
대저 다른 사람에게서 널리 배울 점을 취하는 군자는 비록 그것이 골계滑稽나 비속鄙俗한 것일지라도 오히려 버리지 않는데 하물며 시詩에 있어서이겠는가.
옛날에 《시경詩經》 300편은 없는 말이 없지만 오직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방일하지 않고 즐거우면서도 방종하지 않아, 마침내는 바른 데로 돌아갔으니 이것이 《시경》의 시가 귀하게 된 연유이다.
이에 동료들과 지은 시를 편차해 수록하여 173편을 얻어 여섯 사람에게 전한다.
우리 여섯 사람은 지기志氣가 성대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건장한 자도 때가 되면 쇠하고 쇠한 자는 때가 되면 늙는지라 그 출처出處와 이합離合이 엇갈려서 한결같지 않으니, 이 시들은 지난날을 추억하면서 손을 맞잡고 환담歡談거리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요, 심지어 개연히 이 시권詩卷을 덮고서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어찌 한갓 이와 같고 말 뿐이겠는가.
이 시들을 보는 자는 반드시 여기에서 취할 점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