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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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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歐公之好言 如此
近覽 亦煞有歐陽公風致
然亦以有力而彊이라 故能如此耳
物常聚於所好하고 而常得於有力之彊하나니 有力而不好하고 好之而無力이면 雖近且易라도 有不能致之
象犀虎豹 蠻夷山海殺人之獸 然其齒角皮革 可聚而有也
玉出崑崙流沙萬里之外하니 經十餘譯이라야 乃至乎中國이요
珠出南海 常生深淵이라 採者腰絙而入水 形色非人이요 往往不出하면 則下飽蛟魚
金礦于山 鑿深而穴遠이라 篝火餱糧而後進이라가 其崖崩窟塞하면 則遂葬于其中者 率常數十百人이니 其遠且難而又多死禍 常如此
然而金玉珠璣 世常兼聚而有也 凡物好之而有力이면 則無不至也
其去人不遠하고 其取之無禍
然而風霜兵火 湮沒磨滅하야 散棄於山崖墟莽之間하야 未嘗收拾者 由世之好者少也일새라
幸而有好之者라도 又其力或不足이라 故僅得其一二而不能使其聚也
夫力莫如好하고 好莫如一이라
予性顓而嗜古하야 凡世人之所貪者 皆無欲於其間이라
하니 好之已篤이면 則力雖未足이라도 猶能致之
故上自周穆王以來 下更秦漢隋唐五代하야 外至四海九州名山大澤窮崖絶谷荒林破塜神僊鬼物詭怪 所傳 莫不皆有하야 以爲集古錄하되
以謂轉寫失眞이라 故因其石本하야 軸而藏之
有卷帙次第 而無時世之先後하니 蓋其取多而未已 故隨其所得而錄之
又以謂聚多而終必散이라하야 乃撮其大要하야 別爲錄目하고 因幷載夫可與史傳正其闕謬者하야 以傳後學하니 庶益於多聞하리라
或譏予曰 物多則其勢難聚 聚久而無不散이니 何必區區於是哉아하야늘
予對曰 足吾所好하야 玩而老焉 可也
象犀金玉之聚 其能果不散乎
予固未能以此而易彼也라하노라


08. 《집고록集古錄》 목록에 대한 서문
구양공歐陽公이 말하기를 좋아함이 이와 같다.
근자에 보건대 왕정위王廷尉고서화제발古書畫題跋이 또한 매우 구양공歐陽公풍치風致가 있다.
그러나 또한 힘이 있으면서 강건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을 수 있는 것이다.
사물은 항상 그 사물을 좋아하는 이에게 모이고 항상 굳건한 힘을 지닌 이에게 이르니, 힘이 있으되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되 힘이 없으면 비록 가까이 있고 또 얻기 쉬운 사물이라 하더라도 이르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코끼리와 무소와 호랑이와 표범은 오랑캐 지방의 산해山海에서 사람을 죽이는 짐승이지만 그 이빨과 뿔과 가죽은 모아서 소유할 만하다.
은 만 리나 되는 사막 바깥에 있는 곤륜산崑崙山에서 나오니 다른 언어를 쓰는 10여 곳의 지역을 지나야 이에 중국에 이를 수 있다.
보주寶珠남해南海에서 나오는데 항상 심연深淵의 바다에서 생겨나는지라 채취하는 자가 끈을 허리에 묶고 물속에 들어감에 그 몰골이 사람의 모습이 아니며 왕왕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바닷속에서 물고기의 배를 채워주게 된다.
산에서 금광金礦을 채굴할 때에 깊이 파고 멀리 굴을 뚫는지라 횃불과 양식을 갖춘 뒤에 굴속을 나아가다가 절벽이 무너지고 굴이 막히면 마침내 땅속에 묻히게 되는 자가 통상 수십백 인이니, 그 멀고도 어렵고 또 죽게 되는 불상사가 다발多發하는 것이 항상 이와 같다.
그럼에도 보주寶珠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여〉 항상 겸하여 모아서 소유하는 물건들이니, 무릇 사물을 좋아하면서 힘이 있으면 나에게 오지 못하게 할 것은 없다.
탕반湯盤공정孔鼎기양고岐陽鼓대산岱山추역산鄒嶧山회계산會稽山각석刻石나라와 나라 이래로 성군聖君현사賢士들의 환비桓碑이기彝器명시銘詩서기序記로부터, 아래로 고문古文주전籀篆분예分隷제가諸家들의 자서字書에 이르기까지, 모두 삼대三代 이래의 지극한 보물들로 기괴하고 화려하고 공교로워서 좋아할 만한 물건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취하여도 가 없다.
그러나 풍상風霜병화兵火에 사라지고 마멸되어 산비탈과 황야 사이에 흩어지고 버려져 수습된 적이 없는 것은 세상에 그것을 좋아하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다행히 좋아하는 자가 있더라도 또 그 힘이 혹 부족하기 때문에 겨우 그 가운데 한둘 정도만 얻고 나머지는 모을 수 없는 것이다.
대저 힘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한결같은 것만 못하다.
나는 성품이 어리석고 옛것을 좋아하여 세상 사람들이 탐하는 것들은 모두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에 좋아하는 바를 한결같이 할 수 있었으니, 좋아함이 이미 독실하면 힘이 비록 부족하더라도 오히려 좋아하는 사물을 이르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위로는 목왕穆王 이래로부터 아래로는 나라와 나라, 나라와 나라, 오대五代를 거쳐 밖으로는 사해四海구주九州, 명산名山대택大澤, 심산深山궁곡窮谷, 황량한 숲과 무너진 무덤, 신선과 귀물鬼物, 기괴한 존재들에 이르기까지, 전해지는 것들을 모두 소유하지 못한 것이 없어서 이것들을 기록하여 《집고록集古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들을 전사轉寫하다가 그 참된 모습을 잃어버릴 것이라 여겼으므로 그 석각石刻탁본拓本을 말미암아 권축卷軸을 만들어 보관하였다.
이 《집고록》에는 권질卷帙의 순서는 있으나 시대의 선후는 없으니, 대개 수집한 것이 많음에도 수집을 그치지 않았으므로 그 얻은 바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또 수집한 것이 많더라도 끝내는 반드시 흩어질 것이라고 여겨, 이에 그 대요大要를 뽑아 별도로 목록을 만들고 이어서 사전史傳과 함께 역사의 빠지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들을 아울러 기재하여 후학들에게 전하니 거의 견문을 넓히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혹자가 나를 나무라며 말하기를 “사물이 많으면 형세상 모으기 어렵고 모은 지 오래되면 흩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 하필이면 이런 것에 구구하게 힘을 쓴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나는 대답하기를 “내가 좋아하는 바를 충족하여 그것을 완상玩賞하면서 늙는 것이 좋다.
상아와 무소의 뿔, 금과 옥을 모은들 과연 흩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진실로 이것으로 저것을 바꿀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 이 서문은 嘉祐 8년(1063)에 지은 것이다. 《集古錄》은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金石學 저작으로 구양수가 家藏하고 있던 금석문 자료들을 집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목록을 별도로 만들어 아래와 같이 서문을 붙인 것이다.
역주2 王廷尉古書畫題跋 : 王廷尉는 아마도 王世貞을 가리키는 듯하다. 왕세정의 《弇州四部稿》에 書畵에 대한 題跋이 몇 편 실려 있는데 王廷尉가 王世貞이 맞다면 古書畫題跋 역시 이들 題跋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역주3 湯盤孔鼎……下至古文籀篆分隷諸家之字書 : 湯盤은 殷 湯王의 浴盤으로 銘文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大學》에 “진실로 어느 날에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명문의 내용이 있다. 孔鼎은 전설에 孔子의 先世로부터 내려오던 솥으로 역시 명문이 있었다고 한다. 岐陽之鼓는 기양의 石鼓이다. 기양은 岐山의 남쪽을 가리키고, 석고는 周 宣王 때에 史官인 史籀가 선왕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지어서 새겨놓은 돌로 그 모양이 북과 비슷하다 하여 석고라 한 것이다.
岱山은 泰山의 別稱이다. 鄒嶧은 邾嶧山으로도 불리며 지금 山東 邾縣의 동남쪽에 있다. 會稽 역시 산 이름으로 浙江 紹興縣 동남쪽에 있다. 이 세 산은 모두 秦 始皇이 巡遊하면서 자신의 공을 새긴 비석을 세운 곳이다.
桓碑는 높고 큰 비석을 가리킨다. 彝器는 고대에 청동으로 만든 祭器이다. 銘詩는 銘文과 詩歌이며 序記는 序文과 記文이다. 古文은 秦나라 이전의 문자를 가리킨다. 籀篆에서 籀는 大篆을, 篆은 小篆을 가리킨다. 分隷는 八分書과 隷書를 가리킨다.
역주4 得一其所好於斯 : 세상 사람들이 탐하는 일반적인 것들에 마음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好古 취미를 한결같이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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