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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4)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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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愴刺骨이라
이라 余仕方初 子年亦壯이라 讀書飮酒 握手相歡이요 譚辯鋒出 賢豪滿前이라
謂言仕宦 所至皆然이라 但當行樂이니 何以憂患이리오
하니 三十年間 乖離會合이라 晩被選擢하야 濫官朝廷하고 이라
余才過分하니 可愧非榮이요 子雖窮厄이나 日有聲名이라 余狷而剛하야 中遭多難하니 氣血先耗 髮鬚早變이라
子心寬易하야 在險如夷하니 年實加我 其顔不衰 謂子仁人이니 自宜多壽어니와 余譬膏火 煎熬豈久리오
事今反此하니 理固難知 況於富貴 又可必期리오
念昔河南 同時一輩컨대 零落之餘 惟予子在러니 子又去我하고 余存無幾
凡今之游 皆莫余先하니 紀行琢辭 子宜余責이요 送終卹孤 則有衆力이라 惟聲與淚 獨出余臆이라


06. 梅聖兪에 대한 祭文
悲傷함이 매우 깊다.
옛날 그대를 처음 보았으니 伊川 가였습니다. 저는 벼슬을 막 시작한 때였고 그대의 나이 또한 장년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술을 마심에 손을 잡고 서로 즐겁게 지냈고 談論辯論이 끊임없이 이어짐에 賢者豪傑들이 앞에 가득하였습니다.
벼슬살이할 때에 이르는 곳마다 그러할 터이니 그저 行樂할 뿐 무엇을 근심하겠냐고 하였습니다.
그대는 河南으로 떠나고 저는 山峽으로 貶謫되었으니 30년 동안 만났다 헤어지곤 하였습니다. 만년에 발탁되어 외람되이 조정에 벼슬하게 되어 그대를 學舍에 천거하니 六經을 읊조렸습니다.
저의 재주로는 과분하여 부끄러울 뿐 영광이 아니었고 그대는 곤궁하였지만 날로 명성이 더해졌습니다. 저는 성격이 狷介하고 강직하여 중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라 血氣가 먼저 소모됨에 머리털과 수염이 일찍 세었습니다.
그대의 마음은 너그럽고 평탄하여 險地에 있어도 平地에 있는 듯하였으니 나이는 실로 저보다 많았지만 얼굴은 노쇠하지 않았습니다. 생각건대 그대는 어진 사람이니 절로 장수할 터이지만 저는 등불과 같은지라 타는 것이 어찌 오래가겠습니까.
일이 지금 반대로 되었으니 이치는 실로 알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富貴를 또 기필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河南에 있을 때에 만났던 同時의 벗들을 생각해보면 零落한 나머지 그대와 저만이 남았는데, 그대마저 또 저를 떠났고 저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교유하는 벗 중에 모두 저보다 더 친한 이가 없으니 평생의 사적을 기록하는 일은 그대가 의당 저에게 맡겼을 것이고, 죽은 이를 장사 지내고 孤兒를 돌보는 일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오직 곡소리와 눈물만이 저의 가슴에서 흘러나옵니다.


역주
역주1 祭梅聖兪文 : 이 글은 嘉祐 5년(1045)에 지은 것이다. 聖兪는 梅堯臣(1002~1060)의 字이다. 본서 권28 〈梅聖兪墓誌銘〉 참조.
역주2 昔始見子 伊川之上 : 歐陽脩가 天聖 8년(1030)에 進士試에 급제하고 이듬해 西京留守 錢惟演의 幕府로 들어갔을 때에 尹洙, 梅堯臣과 함께 伊川에서 매일 만나 古文歌詩를 짓곤 하였는데, 이때 歐陽脩는 나이가 25세였고, 梅堯臣은 나이가 30세였다. 伊川은 현재 河南 崇縣과 伊陽의 사이에 있다.
역주3 子去河南 余貶山峽 : 明道 元年(1032)에 梅堯臣이 河陽主簿가 되었으므로 河南으로 떠났다고 말한 것이고, 景祐 3년(1036)에 范仲淹이 國事를 함부로 논했다는 죄를 받고 睦州로 좌천되었는데, 歐陽脩가 高若訥에게 편지를 보내어 간언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책망하였다. 이 일로 인해 歐陽脩는 峽州 夷陵縣令으로 좌천되었으므로 山峽으로 폄적되었다 말한 것이다.
역주4 薦子學舍 吟哦六經 : 본서 권28 〈梅聖兪墓誌銘〉에 “嘉祐 元年(1056)에 한림학사 趙槩 등 10여 인이 조정에 늘어서서 말하기를 ‘梅某는 經術에 밝고 德行을 닦았으니, 원컨대 조정에 머물게 하여 國子監의 諸生들과 道德을 강론하고 雅頌을 지어 聖化를 노래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라고 하니, 마침내 國子監直講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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