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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4)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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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凄淸逸調
嗚呼曼卿이여 生而爲英이요 死而爲靈이라 其同乎萬物生死而復歸於無物者 暫聚之形이요
不與萬物共盡而卓然其不朽者 後世之名이니 此自古聖賢 莫不皆然이요 而著在簡冊者 昭如日星이라
嗚呼曼卿이여 吾不見子久矣로되 猶能髣髴子之平生하니
其軒昻磊落하고 突兀崢嶸이어늘 而埋藏於地下者 意其不化爲朽壞하고 而爲金玉之精이라 不然이면 生長松之千尺하고 이어늘
奈何荒烟野蔓 荊棘縱橫하고 風凄露下 走燐飛螢 但見牧童樵叟 歌吟而上下 與夫驚禽駭獸 悲鳴躑躅而咿嚶
今固如此하니 更千秋而萬歲兮 安知其不穴藏狐貉與鼯鼪이리오 此自古聖賢亦皆然兮 獨不見夫纍纍乎曠野與荒城
嗚呼曼卿이여 盛衰之理 吾固知其如此어니와 而感念疇昔 悲涼悽愴하야 不覺臨風而隕涕者 有媿乎이로다 尙享


07. 石曼卿에 대한 祭文
내용은 처량하면서 韻致가 빼어나다.
아, 曼卿이여. 살아서는 英敏하였고, 죽어서는 英靈이 되었습니다. 萬物生死와 똑같이 다시 無物로 돌아가는 것은 잠시 모여서 생긴 몸이고,
萬物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우뚝이 영원히 남겨지는 것은 후세의 명성입니다. 이는 예로부터 聖賢들조차 모두 그러하였고 서책에 드러나 있는 것은 日月과 같이 분명합니다.
아, 曼卿이여 제가 그대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그대의 평생을 비슷하게 서술할 수 있습니다.
그 훤칠하고 우뚝한 풍모와 기운이 특출하고 탁월하였으므로 지하에 묻힌 것은 변화하여 썩지 않고 金玉精粹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 자나 되는 長松으로 자라나고 아홉 줄기를 가진 靈芝를 생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황량한 안개와 덩굴풀 우거진 들판에 가시나무만 우거져 있고 바람은 쓸쓸하고 이슬 내림에 도깨비불 떠다니고 반딧불 나는 곳에서, 다만 목동과 나무꾼이 노래 부르며 오르내리는 것과 놀란 들짐승 날짐승들이 슬프게 울부짖으며 배회하는 것만 보인단 말입니까.
지금 실로 이와 같으니 천추의 세월이 지난 뒤에는 여우와 담비, 날다람쥐와 족제비가 굴을 파고 살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는 옛날 聖賢조차도 모두 그러하였으니 넓은 들판과 황폐한 성에 즐비한 무덤을 유독 보지 못하였습니까.
아, 曼卿이여 盛衰의 이치는 내 실로 이와 같은 줄 알지만 옛날을 회상해봄에 슬프고 처량하여 나도 모르게 멀리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잊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尙享.


역주
역주1 祭石曼卿文 : 이 글은 治平 4년(1067)에 지은 것이다. 曼卿은 石延年(994~1041)의 字이다. 北宋 宋城 사람으로 또 다른 字는 安仁이다. 여러 차례 進士試를 보았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大理寺丞, 祕閣校理, 太子中允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石曼卿詩集≫ 1권이 있다. 본서 권30 〈石曼卿墓表〉 참조.
역주2 産靈芝而九莖 : 漢 武帝 元封 2년(B.C.109)에 甘泉宮에서 芝草가 자랐는데 줄기는 아홉에 금빛이 나고 잎은 여섯에 붉은 열매가 달렸으며, 밤에 빛이 났다. 무제는 이를 상서로운 일이라 하여 〈齋房歌〉를 지었다. ≪漢書 권6 武帝紀≫
역주3 太上之忘情 : ≪世說新語≫ 〈傷逝〉에 “王戎이 아들 萬子를 잃었는데, 山簡이 가서 위문하였다. 왕융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산간이 ‘아이는 품속의 자식이거늘, 어찌 이렇게 슬퍼하십니까?’라고 하자, 왕융이 ‘성인은 정을 잊고[忘情] 하등의 물건은 정을 느낄 줄 모르네. 그렇다면 정을 다 쏟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라네.’라고 하였다. 산간이 그 말에 감복하여 다시 그를 위해 통곡하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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