然抱其器
하고 知其聲
하야 而調其律呂
면 如此者
는 工之善也
라
今指其器以問於工曰
에 하며 는 何也
오하면 彼必曰 鼗鼓鐘磬絲管干戚也
라하고
又語其聲以問之曰 彼
가 가 或在郊
하며 或在廟堂之下而羅者
는 何也
오하면
彼必曰
五聲
이 라하야 其聲器名物
을 皆可以數而對也
라
하야 使人可以喜
하며 可以悲
하야 或歌或泣
하야 不知手足鼓舞之所以然
은
問其何以感之者면 則雖有善工이라도 猶不知其所以然焉이니 蓋不可得而言也라
樂之道深矣라 故工之善者는 必得於心하고 應於手요 而不可述之言也라 聽之善이면 亦必得於心而會以意요 不可得而言也라
其天地人之和氣相接者가 旣不得泄於金石하니 疑其遂獨鍾於人이라 故其人之得者는 雖不可和於樂이나 尙能歌之爲詩라
唐之時에 子昻李杜沈宋王維之徒가 或得其淳古淡泊之聲하며 或得其舒和高暢之節이요
今聖兪亦得之나 然其體長於本人情狀風物하야 英華雅正에 變態百出하니 哆兮其似春이요 凄兮其似秋라
使人讀之에 可以喜하며 可以悲하야 陶暢酣適하야 不知手足之將鼓舞也하니 斯固得深者邪아 其感人之至가 所謂與樂同其苗裔者耶아
余嘗問詩於聖兪러니 其聲律之高下와 文語之疵病은 可以指而告余也어니와
聖兪久在洛中하니 其詩亦往往人皆有之라 今將告歸어늘 余因求其藁而寫之라
然夫前所謂心之所得者
는 如
에 不相語而意相知也
라 余今得聖兪之藁
도 猶伯牙之琴絃乎
인저
무릇 音樂은 天地의 조화를 틔우고 사람의 氣運과 서로 접한다. 그래서 그 박자와 두드림을 마음에서 느낄 수 있으며 기쁨과 슬픔을 소리에서 살필 수 있다.
五聲은 金石에서 단독으로 나오니 스스로 조화시킬 수 없는데 樂工은 조화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악기를 잡고 그 소리를 알고서 그 廉肉을 조절하고 그 律呂를 고르게 한다면 이처럼 하는 자는 훌륭한 樂工이다.
지금 그 악기를 가리켜 악공에게 묻기를 “저
簨이며
簴에
鐘磬을 매달아 엮어놓고 방패를 잡고 창을 벌여놓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그 악공이 반드시 “
鼗鼓와
鐘磬과
絲管과
干戚이다.”라고 할 것이고,
簨과 簴(≪三才圖會≫) 鼗鼓(≪三才圖會≫)
또 그 소리를 가리켜 묻기를 “저 淸한 음과 濁한 음이 굳세면서 떨치고 부드러우면서 늘어지는 것이 혹은 郊外에 혹은 廟堂의 아래에 나열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그 악공이 반드시 “八音과 五聲과 六代의 樂曲이 위에 있는 것은 歌曲이고 아래 있는 것은 舞曲이다.”라고 하여, 그 聲器와 名物을 모두 일일이 가리키면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血脈을 요동하며 精神을 유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여 혹은 노래 부르기도 하고 혹은 흐느끼기도 하여 손과 발이 鼓舞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여 감동시키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비록 훌륭한 악공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말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음악의 道가 깊으므로 훌륭한 악공은 반드시 마음에 얻고 손으로 호응하는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음악을 잘 듣는다면 역시 반드시 마음에 얻고 뜻으로 이해할 뿐 말로 할 수가 없다.
堯舜의 시대에
夔가 이를 얻어 사람과 귀신을 화합하게 하며 뭇 짐승들을 춤추게 하였고,
夏‧
殷‧
周 三代와
春秋시대에
師襄‧
師曠‧
州鳩의 무리가 이를 얻어
樂官이 되어
國家를 다스림에
興亡의 이치를 알았는데,
百獸率舞圖(≪書經圖≫)
周나라가 쇠퇴하여 악관이 사라지고 樂器가 없어져서 河海로 흩어져서는 천백 년이 지나는 동안에 이를 얻은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 하늘과 땅과 사람의 和氣가 서로 접하는 것이 이미 金石에서 흘러나오지 못하니 결국 사람에게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얻은 사람은 비록 음악을 조화롭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노래하여 詩를 지을 수는 있다.
옛날 淸廟에 노래 올리는 일을 太師가 관장하였고, 諸侯國에서도 저마다 詩가 있어서 자기 나라의 風土와 性情을 말하였으며, 投壺와 饗射의 경우에도 반드시 악공으로 하여금 노래 불러 그 뜻을 전달하게 해서 賓을 즐겁게 하였다.
詩라는 것은 음악의 支流이다. 漢나라의 蘇武와 李陵, 魏나라의 曹植과 劉楨은 그 正始의 음을 얻었는데, 宋과 齊 이하로는 그 浮淫하고 流佚한 것만을 얻었고,
唐代에는 陳子昻, 李白, 杜甫, 沈佺期, 宋之問, 王維의 무리가 혹은 그 淳古하고 淡泊한 소리를 얻기도 하며 혹은 그 舒和하고 高暢한 節奏를 얻기도 하였고,
孟郊와 賈島의 무리는 더욱 그 슬퍼하고 근심하며 억울하고 답답해하는 氣格을 얻었다. 이로부터 이하는 얻은 자가 이따금 있었으나 순수하지는 못하였다.
지금 聖兪 또한 이를 얻었다. 그러나 그 詩體가 人情에 근본하고 風物을 형용하는 데 뛰어나 英華와 雅正에서 變態가 갖가지로 나오니 온화한 것이 봄인 듯하고 처량한 것이 가을인 듯하다.
사람이 이를 읽게 됨에 기뻐할 만하며 슬퍼할 만하여 마음이 시원해지고 유쾌해져서 손과 발이 춤추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참으로 깊은 이치를 얻은 것인가. 그 사람을 지극히 감동시키는 것이 이른바 음악과 그 支流를 함께하는 것인가.
내가 일찍이 聖兪에게 시를 물었는데 그 聲律의 高下와 文語의 병통은 가리켜 나에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마음에 얻은 것의 경우에는 말로 일러줄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장차 마음에 얻고 뜻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이다.
聖兪가 오래도록
洛陽에 살았으니 그가 지은
詩 역시 종종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 돌아간다고 하는데 내가 인하여 그
文藁를 구해서 베꼈다.
王振鵬(元), 伯牙鼓琴圖
그렇지만 앞서 이른바 마음에 얻었다는 것은 이를테면 伯牙가 琴을 연주하고 鍾子期가 그 연주를 들을 때 서로 말하지 않고도 뜻으로 서로 아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 聖兪의 文藁를 얻은 것도 伯牙의 琴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