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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4)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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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知音之言이라
然抱其器하고 知其聲하야 而調其律呂 如此者 工之善也
今指其器以問於工曰 하며 何也오하면 彼必曰 鼗鼓鐘磬絲管干戚也라하고
又語其聲以問之曰 彼 或在郊하며 或在廟堂之下而羅者 何也오하면
彼必曰 五聲 라하야 其聲器名物 皆可以數而對也
하야 使人可以喜하며 可以悲하야 或歌或泣하야 不知手足鼓舞之所以然
問其何以感之者 則雖有善工이라도 猶不知其所以然焉이니 蓋不可得而言也
樂之道深矣 故工之善者 必得於心하고 應於手 而不可述之言也 聽之善이면 亦必得於心而會以意 不可得而言也
하야 逾千百歲間 未聞有得之者
其天地人之和氣相接者 旣不得泄於金石하니 疑其遂獨鍾於人이라 故其人之得者 雖不可和於樂이나 尙能歌之爲詩
唐之時 子昻李杜沈宋王維之徒 或得其淳古淡泊之聲하며 或得其舒和高暢之節이요
由是而下 得者時有而不純焉이러라
今聖兪亦得之 然其體長於本人情狀風物하야 英華雅正 變態百出하니 哆兮其似春이요 凄兮其似秋
使人讀之 可以喜하며 可以悲하야 陶暢酣適하야 不知手足之將鼓舞也하니 斯固得深者邪 其感人之至 所謂與樂同其苗裔者耶
余嘗問詩於聖兪러니 其聲律之高下 文語之疵病 可以指而告余也어니와
余亦將以心得意會而未能至之者也
聖兪久在洛中하니 其詩亦往往人皆有之 今將告歸어늘 余因求其藁而寫之
然夫前所謂心之所得者 不相語而意相知也 余今得聖兪之藁 猶伯牙之琴絃乎인저


10. 梅聖兪文藁 뒤에 쓰다
음악을 아는 이의 말이다.
무릇 音樂天地의 조화를 틔우고 사람의 氣運과 서로 접한다. 그래서 그 박자와 두드림을 마음에서 느낄 수 있으며 기쁨과 슬픔을 소리에서 살필 수 있다.
五聲金石에서 단독으로 나오니 스스로 조화시킬 수 없는데 樂工은 조화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악기를 잡고 그 소리를 알고서 그 廉肉을 조절하고 그 律呂를 고르게 한다면 이처럼 하는 자는 훌륭한 樂工이다.
지금 그 악기를 가리켜 악공에게 묻기를 “저 이며 鐘磬을 매달아 엮어놓고 방패를 잡고 창을 벌여놓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그 악공이 반드시 “鼗鼓鐘磬絲管干戚이다.”라고 할 것이고,
 簨과 簴(≪三才圖會≫) 鼗鼓(≪三才圖會≫) 簨과 簴(≪三才圖會≫) 鼗鼓(≪三才圖會≫)
또 그 소리를 가리켜 묻기를 “저 한 음과 한 음이 굳세면서 떨치고 부드러우면서 늘어지는 것이 혹은 郊外에 혹은 廟堂의 아래에 나열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그 악공이 반드시 “八音五聲六代樂曲이 위에 있는 것은 歌曲이고 아래 있는 것은 舞曲이다.”라고 하여, 그 聲器名物을 모두 일일이 가리키면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血脈을 요동하며 精神을 유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여 혹은 노래 부르기도 하고 혹은 흐느끼기도 하여 손과 발이 鼓舞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여 감동시키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비록 훌륭한 악공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말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음악의 가 깊으므로 훌륭한 악공은 반드시 마음에 얻고 손으로 호응하는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음악을 잘 듣는다면 역시 반드시 마음에 얻고 뜻으로 이해할 뿐 말로 할 수가 없다.
堯舜의 시대에 가 이를 얻어 사람과 귀신을 화합하게 하며 뭇 짐승들을 춤추게 하였고, 三代春秋시대에 師襄師曠州鳩의 무리가 이를 얻어 樂官이 되어 國家를 다스림에 興亡의 이치를 알았는데,
百獸率舞圖(≪書經圖≫)百獸率舞圖(≪書經圖≫)
나라가 쇠퇴하여 악관이 사라지고 樂器가 없어져서 河海로 흩어져서는 천백 년이 지나는 동안에 이를 얻은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 하늘과 땅과 사람의 和氣가 서로 접하는 것이 이미 金石에서 흘러나오지 못하니 결국 사람에게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얻은 사람은 비록 음악을 조화롭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노래하여 를 지을 수는 있다.
옛날 淸廟에 노래 올리는 일을 太師가 관장하였고, 諸侯國에서도 저마다 가 있어서 자기 나라의 風土性情을 말하였으며, 投壺饗射의 경우에도 반드시 악공으로 하여금 노래 불러 그 뜻을 전달하게 해서 을 즐겁게 하였다.
라는 것은 음악의 支流이다. 나라의 蘇武李陵, 나라의 曹植劉楨은 그 正始의 음을 얻었는데, 이하로는 그 浮淫하고 流佚한 것만을 얻었고,
唐代에는 陳子昻, 李白, 杜甫, 沈佺期, 宋之問, 王維의 무리가 혹은 그 淳古하고 淡泊한 소리를 얻기도 하며 혹은 그 舒和하고 高暢節奏를 얻기도 하였고,
孟郊賈島의 무리는 더욱 그 슬퍼하고 근심하며 억울하고 답답해하는 氣格을 얻었다. 이로부터 이하는 얻은 자가 이따금 있었으나 순수하지는 못하였다.
지금 聖兪 또한 이를 얻었다. 그러나 그 詩體人情에 근본하고 風物을 형용하는 데 뛰어나 英華雅正에서 變態가 갖가지로 나오니 온화한 것이 봄인 듯하고 처량한 것이 가을인 듯하다.
사람이 이를 읽게 됨에 기뻐할 만하며 슬퍼할 만하여 마음이 시원해지고 유쾌해져서 손과 발이 춤추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참으로 깊은 이치를 얻은 것인가. 그 사람을 지극히 감동시키는 것이 이른바 음악과 그 支流를 함께하는 것인가.
내가 일찍이 聖兪에게 시를 물었는데 그 聲律高下文語의 병통은 가리켜 나에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마음에 얻은 것의 경우에는 말로 일러줄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장차 마음에 얻고 뜻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이다.
聖兪가 오래도록 洛陽에 살았으니 그가 지은 역시 종종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 돌아간다고 하는데 내가 인하여 그 文藁를 구해서 베꼈다.
王振鵬(元), 伯牙鼓琴圖王振鵬(元), 伯牙鼓琴圖
그렇지만 앞서 이른바 마음에 얻었다는 것은 이를테면 伯牙을 연주하고 鍾子期가 그 연주를 들을 때 서로 말하지 않고도 뜻으로 서로 아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 聖兪文藁를 얻은 것도 伯牙琴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역주
역주1 書梅聖兪藁後 : 이 글은 歐陽脩가 明道 원년(1032) 26세 때 지은 것이다. 梅堯臣은 字가 聖兪로, 宣州 宣城 사람이다. 숙부의 공로로 蔭補되어 太廟齋郞에 임명되었고 桐城縣主簿가 되었다. 天聖 9년(1031)에 歐陽脩가 西京留守推官에 임명되었을 때 梅堯臣은 河陽主簿로 부임하게 되어 가는 도중에, 洛陽에서 歐陽脩가 만나서 봄부터 가을까지 두 사람이 함께 노닐면서 唱和하고 평생의 知己가 되었다. 이해 가을 梅堯臣이 도성을 떠나 부임지로 떠날 때 歐陽脩는 그를 위해 〈送梅聖兪歸河陽序〉를 지어주고 아울러 그의 詩稿를 읽고 이 後記를 지었다.
이 글은 音樂과 詩歌의 관계를 논술하고 있는데 詩歌가 발전한 맥락을 서술하면서 梅聖兪의 시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 글과 아울러 歐陽脩가 55세 때 지은 〈梅聖兪詩集序〉가 상호 참고가 된다.
역주2 凡樂(악)……可以察於聲 : 古代에는 禮와 樂, 刑과 政 모두 통치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는바, 樂은 聖人이 風雨와 雷霆, 四時와 寒暖 등의 天地의 氣를 본받아 만들어 사람의 사상과 감정에 영향을 주는 데 사용하였다. ≪史記≫ 〈樂書〉에 “음악이라는 것은 天地의 조화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 五聲……而工者和之 : 宮‧商‧角‧徵‧羽 五聲은 하나하나 金石으로부터 발하여 나오는 것으로, 五聲이 스스로 조직하여 조화로운 樂章을 이룰 수 없고 단지 樂工이 이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金石은 鐘磬 같은 악기를 말한다. ≪禮記≫ 〈樂記〉에 “金‧石‧絲‧竹은 음악을 만드는 악기이다.”라고 하였다.
역주4 節其廉肉 : 高低의 음을 고려하여 音律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廉은 廉直한 音으로 高音을 가리키고, 肉은 肉好의 音으로 低音을 가리킨다.
역주5 彼簨者簴(거)者 : 簨簴는 古代에 鐘, 磬, 鼓를 매달아놓은 나무 틀인데, 가로로 댄 나무를 簨이라고 하고 簨 옆에 세운 두 개의 기둥을 簴라고 한다.
역주6 堵而編 : ≪周禮≫ 〈春官 小胥〉에 “鐘磬을 매달 때 반만 매다는 것이 堵이고 전부 매다는 것이 肆이다.[凡縣鍾磬 半爲堵 全爲肆]”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鐘磬은 엮어서 매다는데[編懸] 두 줄에 여덟 개씩 16枚를 簴 하나에 엮어 매다는 것을 堵라고 한다. 鐘 1堵, 磬 1堵를 매다는 것을 肆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7 執而列者 : 뒤에 나오는 干戚을 가리키는바, 방패를 잡고 창을 벌여놓는 것이다.
역주8 淸者濁者 : 淸者는 淸音으로 발음할 때 聲帶가 울리지 않아 맑고 시원한 음이고, 濁者는 濁音으로 발음할 때 聲帶가 울려서 낮고 거친 음이다.
역주9 剛而奮 柔而曼衍者 : 剛而奮은 激動시키고 奮進하게 하는 음이고, 柔而曼衍은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느릿한 음이다.
역주10 八音 : 金, 石, 絲, 竹, 匏, 土, 革, 木 여덟 가지 악기에서 나오는 각각의 소리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들면 金은 銅鐘, 石은 石磬, 絲는 琴‧瑟, 竹은 簫, 匏는 笙, 土는 壎‧篪, 革은 鼓, 木은 柷‧敔이다.
金, 石, 絲, 竹, 匏, 土, 革, 木으로 만든 악기(≪樂學軌範≫)金, 石, 絲, 竹, 匏, 土, 革, 木으로 만든 악기(≪樂學軌範≫)
역주11 六代之曲 : 黃帝, 唐, 虞, 夏, 商, 周 六代의 음악이다. ≪晉書≫ 〈樂志 上〉에 “周나라는 〈二南〉에서 시작하고 〈國風〉은 六代의 음악을 겸하였다. 옛날 黃帝는 〈雲門〉을 만들었고 堯는 〈咸池〉를 만들었으며 舜은 〈大韶〉를 만들었고 禹는 〈大夏〉를 만들었으며 殷나라는 〈大濩〉를 만들었고 周나라는 〈大武〉를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역주12 上者歌 而下者舞也 : 八音五聲은 歌曲이고, 六代之曲은 舞曲이다.
역주13 然至乎動盪血脈 流通精神 : ≪史記≫ 〈樂書〉에 “그러므로 音樂이라는 것은 血脈을 요동케 하며 精神을 유통하게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는 수단이다.[動盪血脈 通流精神而正心也]”라고 하였다.
역주14 <그림 name="2020_구양수4_1245633371" sizex="300" sizey="" type="jpg" unit="pixel"><키워드/><그림설명>百獸率舞圖(≪書經圖≫) 夔得之……舞百獸 : 夔는 舜임금 때의 樂官으로, ≪尙書≫ 〈益稷〉에 夔가 말하기를 “아, 내가 큰 경쇠와 작은 경쇠를 두드리니, 온갖 짐승들이 모두 따라서 춤을 추고, 모든 관부의 장관들이 진실로 화합합니다.[於 予擊石拊石 百獸率舞 庶尹允諧]”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15 師襄師曠州鳩之徒得之……知興亡 : 師襄은 春秋시대 魯나라의 樂官이고, 師曠은 春秋시대 晉나라의 樂官이며, 州鳩는 자세하지 않다. ≪春秋左氏傳≫과 ≪韓非子≫ 등에 이들은 모두 음악을 살펴 政敎의 治亂을 분별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전해온다. ≪春秋左氏傳≫ 襄公 14년에 師曠이 晉 悼公과 함께, 衛國人이 國君을 내쫓은 일을 토론하는 내용이 보이고, ≪史記≫ 〈孔子世家〉에는 孔子가 師襄에게 琴을 배운 내용이 보인다.
역주16 周衰官失……散之河海 : ≪論語≫ 〈微子〉에 “태사 摯는 齊나라로 가고, 亞飯干은 楚나라로 가고, 三飯繚는 蔡나라로 가고, 四飯缺은 秦나라로 가고, 북을 치는 方叔은 河內로 들어가고, 小鼓를 흔드는 武는 漢中으로 들어가고, 少師 陽과 경쇠를 치는 襄은 海島로 들어갔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17 古者登歌淸廟 太師掌之 : 登歌는 古代에 祭典이나 朝會를 거행할 때 樂師가 堂에 올라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일 혹은 그 노래를 가리킨다. 太師는 古代의 樂官의 우두머리이다.
역주18 諸侯之國……以道其風土性情 : ≪詩經≫의 열다섯 〈國風〉을 가리킨다.
역주19 至於投壺饗射 必使工歌以達其意而爲賓樂 : 士大夫가 宴享할 때 投壺와 饗射를 거행하는데 이때 樂曲을 사용하여 흥을 돋우고 賓客을 즐겁게 한다.
역주20 漢之蘇李……得其正始 : 漢代의 蘇武와 李陵, 魏나라의 曹植과 劉楨은 詩歌의 참된 妙理를 얻었다는 말이다. ≪文選≫에는 李陵의 〈與蘇武詩〉 3수와 蘇武의 詩 4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의 시와 曹植‧劉楨 등 建安 시인들의 시는 혼란한 세상을 감개하고 이별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작품이 많아 시의 본질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역주21 宋齊而下 得其浮淫流佚 : 六朝시대 시의 宮體 風格을 가리킨다.
역주22 子昻李杜沈宋王維之徒……又得其悲愁鬱堙之氣 : 陳子昻, 李白, 杜甫, 沈佺期, 宋之問, 王維는 모두 初唐과 盛唐 때 저명한 시인들이다. 陳子昻의 시는 慷慨하면서 기세가 있어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고, 李白과 杜甫의 시는 각종 體裁와 風格의 훌륭한 작품들을 산출하여 중국 전통 시가의 최고봉을 이룬다. 王維는 山水田園詩로 유명하여 唐詩 가운데 독특한 풍격을 드러낸다. 沈佺期와 宋之問의 시는 格律 부분에서 近體詩의 성숙을 가져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는데, 후기의 작품들은 폄적 생활을 묘사하면서 개인의 眞情을 토로하여 전기 작품들보다 좀 더 현실에 밀착되어 있다. 孟郊와 賈島의 시는 민간의 질고를 묘사하기도 하고 失意한 士人의 심리 상태를 서술하여 처절한 가운데 억울해하고 不平해하는 기운이 있다.
역주23 余嘗問詩於聖兪……不可以言而告也 : 歐陽脩의 ≪六一詩話≫에는 歐陽脩와 梅堯臣이 시를 논한 대화가 여러 건 수록되어 있다. 예를 하나 들면 다음과 같다.
“聖兪가 나에게 말하기를 ‘詩家는 비록 마음과 뜻을 다하더라도 造語는 역시 어려운 일이네.……반드시 묘사하기 어려운 景을 마치 눈앞에 보듯이 묘사해내고 다하지 않은 뜻을 함축해야 하니 이렇게 하여 말 밖에 드러낸 뒤에야 지극한 것이네.’라고 하니, 내가 말하기를 ‘造語를 잘하는 경우야 본래 이러하겠는데, 묘사하기 어려운 景을 묘사하고 다하지 않은 뜻을 머금는 것은 어떤 시가 그러한 것인가?’라고 하니, 聖兪가 말하기를 ‘作者는 마음에 얻고 읽는 이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가리켜 말하기 어렵다네.[作者得於心 覽者會以意 殆難指陳以言也]’라고 하였다.”
한편 歐陽脩는 梅堯臣에 대해 “시를 지은 30년 동안 나를 후배처럼 보았었지.[作詩三十年 視我猶後輩]”(〈水谷夜行寄子美聖兪〉)라고 노래하였으니, 여기서 歐陽脩가 시에 있어서는 매요신에게 배우는 처지였음을 알 수 있다.
역주24 伯牙鼓琴 子期聽之 : 春秋시대에 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種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어서, 백아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적에는,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험준하기가 태산 같구나.[峩峩兮若泰山]” 하였고,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탈 적에는,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광대히 흐르는 것이 강하와 같구나.[洋洋兮若江河]” 하여,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자기가 죽은 뒤에는 백아가 자기 거문고 소리를 알아줄 사람이 없다 하여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 타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湯問≫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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