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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5)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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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歐陽公 他文多本韓昌黎 而其序次國家之大及謀臣戰將得失處 余竊謂獨得太史公之遺
其爲唐書 則天子詔史官與輩共爲分局視草 故僅得其志論十餘首
而五代史 則出於公之所自勒者 故梁唐帝紀及諸名臣戰功處 往往點次如畫하야 風神燁然이라
惜也 五代兵戈之世 文字崩缺일새 公於其時 特本野史與勢家鉅室家乘所傳者而爲之耳
假令如太史公所本左傳國語戰國策楚漢春秋 又如所得劉向等書爲之本하야
揚搉古今하고 詮次當世 豈遽出其下哉리오 余錄若干首하고 稍爲品次而別傳之하야 以質世之有識者하노라 歸安鹿門茅坤題하노라


혹자가 나에게 묻기를 歐陽公에게 다시 史抄를 둔 것은 무엇 때문인가.
歐陽公은 다른 글은 대부분 韓昌黎(韓愈)를 본받았지만, 국가의 큰일 및 謀臣戰將의 득실을 차례로 논술한 부분은 太史公(司馬遷)의 遺法을 홀로 얻었다고 나는 내심 생각하고 있다.
新唐書≫를 편수할 때에는 천자가 조칙을 내려 史官宋庠 등이 함께 史局를 나누어 史草를 살피게 하였다. 그러므로 겨우 〈志論〉 10여 수뿐이었다.
그러나 ≪新五代史≫는 공이 스스로 편찬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梁本紀〉‧〈唐本紀〉 및 여러 名臣들의 戰功을 기록한 부분에 왕왕 그림같이 서술하여 文彩가 찬연하다.
안타깝다. 전쟁이 만연하던 五代의 시대에 문자가 붕괴되었기에 공이 그 당시에 다만 野史勢力家富豪家家乘에 전해오던 것에 근거하여 ≪新五代史≫를 지음이여.
가령 太史公이 근본으로 삼았던 ≪春秋左氏傳≫‧≪國語≫‧≪戰國策≫‧≪楚漢春秋≫와, 또 班掾(班固)이 얻었던 劉向의 ≪東觀漢記≫와 ≪西京雜記≫ 등의 책을 근본으로 삼아
古今을 평론하고 當世를 서술하였다면 어찌 곧바로 저들보다 못하였겠는가. 내가 약간 수를 수록하고 조금 편차하여 별도로 전하여 세상의 식견 있는 자들에게 질정한다. 歸安 鹿門 茅坤이 쓰다.


역주
역주1 於歐陽公復(부)有史抄 何也 : 茅坤이 다른 唐宋八大家와는 달리 歐陽脩의 경우에만 文抄 외에 또 史抄를 별도로 편찬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역주2 宋庠 : 996~1066. 北宋 安州 安陸 사람이다. 初名은 郊인데 仁宗이 개명해주었다. 자는 伯庠이었는데 후에 公序로 고쳤다. 天聖 2년(1024) 進士가 되었고 翰林學士에 올랐다. 후에 兵部尙書‧充樞密使 등을 역임하였고, 莒國公에 봉해졌으며, 司空으로 致仕하였다. 시호는 元憲이다. 저서에 ≪宋元憲集≫, ≪國語補音≫ 등이 있다. 동생 宋祁와 함께 문학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려 사람들이 ‘二宋’이라 불렀는데, 宋庠이 大宋이고 宋祁가 小宋이다.
역주3 班掾 : 後漢의 학자 班固(32~92 가리킨다. 班固는 和帝 때 흉노 정벌에 나선 대장군 杜憲의 종사관이 되었기 때문에 班掾이라고도 부른다.
역주4 東觀漢書 : ≪東觀漢記≫를 가리키는 듯하다. 중국 後漢 光武帝로부터 靈帝까지의 시대를 紀傳體로 기술한 역사서로 후한 明帝 때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영제 때 완성하였다. 東觀은 중국 洛陽 南宮의 修史官이 있었던 건물을 말한다.
역주5 西京雜記 : 漢나라 劉歆이 짓고 晉나라 葛洪이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잡록으로, 총 132조의 고사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짤막한 고사지만 그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正史를 보충하는 사료로 많이 활용된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5)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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