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甫遇는 常山眞定人也라 爲人有勇力하고 虯髯善射라
少從唐明宗征伐하야 事唐爲武勝軍節度使러니 所至苛暴하야 以誅斂爲務하니 賓佐多解官逃去하야 以避其禍하다
晉高祖時에 歷義武昭義建雄河陽四鎭하고 罷爲神武統軍하다
契丹入寇
하야 陷貝州
하니 以高行周爲北面行營都部署
하고 遇爲馬軍右廂排陣使
하다
是時에 靑州楊光遠據城反이어늘 出帝乃遣李守貞及遇하야 分兵守鄆州하다
遇等至馬家渡에 契丹方將渡河助光遠이어늘 遇等擊敗之하야 以功拜義成軍節度使馬軍都指揮使하다
開運二年에 契丹寇西山하고 遣先鋒趙延壽하야 圍鎭州하니 杜重威不敢出戰하다 延壽分兵大掠하고 攻破欒城柏鄕等九縣하야 南至邢州하다
是時歲除에 出帝與近臣飮酒라가 過量得疾하야 不能出征일새 乃遣北面行營都監張從恩하야 會馬全節安審琦及遇等禦之하다
從恩等至相州
하야 陣
南
하고 遣遇與慕容彦超
하야 率數千騎前視虜
하다
遇渡漳河라가 逢虜數萬하야 轉戰十餘里하야 至榆林하야 爲虜所圍어늘 遇馬中箭而踣하니 得其僕杜知敏馬하야 乘之以戰하다
知敏爲虜所擒하니 遇謂彦超曰 知敏義士也니 豈可失之리오하고 卽與彦超躍馬入虜하야 取之而還하다
虜兵與遇戰하야 自午至未하야 解而復合에 益出生兵하야 勢甚盛이라
遇戒彦超曰 今日之勢는 戰與走爾니 戰尙或生이어니와 走則死也라 等死니 死戰이면 猶足以報國이라하다
已而요 有馳騎報遇被圍하니 安審琦率兵將赴之어늘 從恩疑報者詐하야 不欲往하다
審琦曰 成敗天也니 當與公共之하리라 雖虜不南來라도 吾屬失皇甫遇면 復何面目見天子리오하고 卽引騎渡河한대
諸軍皆從而北하야 距虜十餘里하니 虜望見救兵來하고 卽解去하다 遇與審琦等收軍而南하니 契丹亦皆北去하다
是時에 契丹兵已深入하야 人馬俱乏이라 其還也에 諸將不能追하고 而從恩率遇等退保黎陽하니 虜因得解去하다
三年冬에 以杜重威爲都招討使하고 遇爲馬軍右廂都指揮使하야 屯於中渡하다 重威已陰送款契丹하고 伏兵幕中하야 悉召諸將列坐하고 告以降虜하니 遇與諸將愕然不能對하다
重威出降表어늘 遇等俛首以次自書其名하고 卽麾兵解甲出降하다
契丹遣遇與張彦澤先入京師러니 遇行至平棘하야 絶吭而死하다
梁之簒唐에 用翔之謀爲多는 猶子佐其父而弑其祖니 可乎아 其不戮於斧鉞은 爲幸免矣라
方晉兵之降虜也에 士卒初不知라가 及使解甲하야 哭聲震天하니 則降豈其欲哉아
使遇奮然攘臂而起하야 殺重威於坐中이면 雖不幸不克而見害라도 猶爲得其死矣니 其義烈豈不凛然哉아 旣俛首聽命하야 相與亡人之國矣니 雖死라도 不能贖也라 豈足貴哉리오
君子之於人에 或推以恕하고 或責以備라 恕故遷善自新之路廣이나 備則難得하니 難得故可貴焉이라 然知其所可恕與其所可貴는 豈不又難哉아
황보우皇甫遇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어 더욱 가련하니, 아마도 경상敬翔과는 다를 듯하다.
황보우皇甫遇는 상산常山 진정眞定 사람이다. 사람됨이 용력勇力이 있고 구레나룻이 있었으며 활을 잘 쏘았다.
어려서 당唐 명종明宗을 따라 정벌征伐하여 당唐나라를 섬겨 무승군절도사武勝軍節度使가 되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가혹한 정사를 펼쳐 가렴주구를 일삼으니, 요좌僚佐들이 많이들 관직을 버리고 달아나 화를 피하였다.
진晉 고조高祖 때에 의무義武, 소의昭義, 건웅建雄, 하양河陽 네 진鎭의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고 파직되어 신무통군神武統軍이 되었다.
거란契丹이 침범하여 패주貝州를 함락하니, 출제出帝가 고행주高行周를 북면행영도부서北面行營都部署로 삼고 황보우皇甫遇를 마군우상배진사馬軍右廂排陣使로 삼았다.
이때에 청주靑州의 양광원楊光遠이 성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출제가 이에 이수정李守貞과 황보우를 보내 병사를 나누어 운주鄆州를 수비하게 하였다.
황보우 등이 마가도馬家渡에 이르자 거란契丹이 막 강을 건너 양광원을 도우려고 하였는데 황보우 등이 격퇴하여 그 공으로 의성군절도사義成軍節度使 마군도지휘사馬軍都指揮使에 배수되었다.
개운開運 2년(945)에 거란이 서산西山을 침범하고 선봉先鋒 조연수趙延壽를 보내 진주鎭州를 포위하니 두중위杜重威가 감히 나와 싸우지 못하였다. 조연수가 병사를 나누어 크게 노략질하고 난성欒城과 백향柏鄕 등 9개 현縣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남쪽으로 가 형주邢州에 이르렀다.
이해 말에 출제出帝가 근신近臣들과 술을 마시다가 과음으로 병을 얻어 출정出征할 수 없었기에 북면행영도감北面行營都監 장종은張從恩을 보내 마전절馬全節, 안심기安審琦 및 황보우皇甫遇 등과 회합하여 막게 하였다.
장종은 등이 상주相州에 이르러 안양하安陽河 남쪽에 진陳을 치고 황보우와 모용언초慕容彦超를 보내 수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아가 거란契丹의 동향을 살펴보게 하였다.
황보우가 장하漳河를 건넜다가 오랑캐 수만 명을 만나 10여 리를 옮겨 다니며 전투하여 유림榆林에 이르러 오랑캐에게 포위되었는데, 황보우의 말이 화살에 맞아 넘어지자 그의 마부인 두지민杜知敏의 말을 바꾸어 타고서 싸웠다.
두지민이 오랑캐에게 사로잡히니 황보우가 모용언초에게 말하기를 “두지민은 의사義士이니 어찌 잃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즉시 모용언초와 함께 말을 달려 오랑캐의 진영으로 들어가 그를 구하여 돌아왔다.
오랑캐의 병사들이 황보우와 교전하여 오시午時에서 미시未時에 이르자 포위를 풀었다가 다시 포위하면서 새로운 군대를 더욱 많이 내보내 기세가 매우 대단하였다.
황보우가 모용언초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오늘의 형세는 싸우던지 달아나던지 둘 중 하나일 뿐이니 싸우면 오히려 혹 살 수도 있겠지만 달아나면 죽을 뿐이다. 죽기는 매한가지이니 싸우다 죽으면 그래도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수는 있다.”라고 하였다.
장종은과 장수들이 황보우가 오랑캐의 동향을 살피러 간 뒤 보고가 없음을 괴이하게 여기고 모두 황보우의 군대가 이미 적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윽고 전령이 말을 급히 달려와 황보우가 포위당하였음을 아뢰니, 안심기安審琦는 병사를 거느리고 달려가려 하였는데 장종은은 전령의 보고가 거짓이 아닐까 의심하여 가려고 하지 않았다.
안심기가 말하기를 “성패成敗는 하늘에 달려있으니, 응당 공과 함께 할 것입니다. 비록 오랑캐가 남쪽으로 오지 않더라도 우리들이 황보우를 잃는다면 다시 무슨 면목으로 천자天子를 뵙겠습니까.”라고 하고 즉시 기병을 이끌고 강을 건넜다.
군사들이 모두 따라서 북진北進하여 오랑캐와의 거리가 10여 리쯤 되자 오랑캐가 구원병이 왔음을 바라보고는 즉시 포위를 풀고 떠났다. 황보우가 안심기 등과 군사를 수습하여 남쪽으로 가니 거란契丹이 또한 모두 북쪽으로 떠났다.
이때에 거란의 병사들이 이미 깊이 들어와 인마人馬가 모두 부족하였으므로 진晉나라 병사가 돌아갈 때에 장수들이 추격하지 못하였고, 장종은이 황보우 등을 거느리고 물러나 여양黎陽을 지키니 오랑캐가 포위를 풀고 떠나갔다.
개운開運 3년(946) 겨울에 두중위杜重威를 도초토사都招討使로 삼고 황보우皇甫遇를 마군우상도지휘사馬軍右廂都指揮使로 삼아 중도中渡에 주둔시켰다. 두중위가 이미 몰래 거란契丹에 항복문서를 보내고 군막軍幕 속에 복병을 두고는 장수들을 모두 불러 나란히 앉게 하고 거란에 항복한 사실을 고하니 황보우와 장수들은 경악하며 대답하지 못하였다.
두중위가 항복하는 표문을 꺼내자 황보우 등이 머리를 숙이고 차례대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는 즉시 병사들을 지휘하여 갑옷을 벗기고 나와 항복하였다.
거란이 황보우와 장언택張彦澤을 먼저 경사京師에 들여보냈는데 황보우는 가다가 평극平棘에 이르러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아, 양梁나라가 망하자 경상敬翔이 자결하였지만 절의節義를 위해 죽은 것이 못되고 진晉나라가 망하자 황보우皇甫遇가 자결하였지만 국사國事를 위해 죽은 것이 못되니 그들의 전傳을 쓸 때에 생각한 바가 없겠는가.
양나라가 당唐나라를 찬탈簒奪할 때에 경상의 계책을 따른 것이 많았던 것은 오히려 아들이 아비를 도와 그 조부祖父를 시해한 것과 같으니, 그렇게 해서야 되겠는가. 형틀 아래에서 주륙당하지 않은 것은 요행히 형벌을 면한 것일 뿐이다.
바야흐로 진晉나라 병사가 오랑캐에 항복할 때에 사졸士卒들은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다가 무장을 해제하게 하자 통곡소리가 하늘에 진동하였으니, 그렇다면 항복이 어찌 그들이 바랐던 것이겠는가.
가령 황보우가 분연히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좌중에서 두중위杜重威를 죽였다면 비록 불행히 이기지 못하고 살해당했더라도 오히려 바르게 죽은 것이 될 터이니, 그 의열義烈이 어찌 늠름하지 않았겠는가. 이미 머리를 숙이고 명을 따라서 함께 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니, 비록 죽더라도 속죄할 수 없다. 어찌 족히 존중할 만하겠는가.
군자는 사람에 대해 혹 너그럽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혹 모든 일을 완전히 갖추어 잘하기를 요구한다. 너그럽게 이해하기 때문에 선善으로 옮겨가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이 넓지만, 완전히 갖춘 사람은 얻기 어려우니 얻기 어렵기 때문에 귀하게 여길 만하다. 그러나 너그럽게 이해할 만한 경우와 귀하게 여길 만한 경우를 분별하는 것은 어찌 더 어렵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