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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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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子固感歐公之知하여 又欲歐公倂覽睹其所自期待處하여 蘊思綴語 種種斟酌이라
學士先生執事
伏以執事 好賢樂善하고 孜孜於道德하여 以輔時及物爲事하여 方今海內 未有倫比
其文章智謀材力之雄偉挺特 信韓文公以來一人而已
某之獲幸於左右 非有一日之素 賓客之談하고 然自進於門下어늘 而執事不以衆人待之
坐而與之言할새 未嘗不以前古聖人之至德要道可行於當今之世者하여 使鞏薰蒸漸漬하여 忽不自知其益하고 而及於之門戶하니 受賜甚大 且感且喜
重念鞏無似 하니 環視其中所有 頗識涯分이라
故報罷之初 釋然不自動하니
豈好大哉리오
誠其材資召取之如此故也
道中來 見行有操瓢囊負任挽車挈携老弱而東者하니
曰 某土之民 避旱暵饑饉與征賦徭役之事하여 將徙占他郡하여 覬得水漿藜糗하여 竊活旦暮라하고
行且戚戚하여 懼不克如願하여 晝則奔走在道하고 夜則無所容寄焉하니
若是者 所見殆不減百千人이라
因竊自感하되 幸生長四方無事時하여 與此民均被朝廷德澤涵養이로되 而獨不識襏襫耡耒辛苦之事하고 旦暮有衣食之給이라
及一日有文移發召之警이라도 則又承藉世德하여 不蒙矢石하여 備戰守하고 馭車僕馬하여 數千里饋餉이라
自少至于長 業乃以詩書文史하여 其蚤暮思念 皆道德之事
前世當今之得失 誠不能盡解 亦庶幾識其一二遠者大者焉이라
今雖群進於有司하여 與衆人偕下하여 名字不列於薦書하여 不得比數於하여 以望主上之休光이나 而尙獲收齒於大賢之門이라
道中來 又有鞍馬僕使代其勞하여 以執事於道路하고
至則可力求簞食瓢飮하여 以支旦暮之饑餓하니 比此民綽綽有餘裕 是亦足以自慰矣
此事屑屑不足爲長者言이나 然辱愛幸之深 不敢自外於門下 故復陳說하여 覬執事知鞏居之何如하니라
所深念者 執事每曰 過吾門者百千人이나 獨於得生爲喜라하고
及行之日하여 不以規而以賞識其愚하고 又嘆嗟其去하니
此鞏得之於衆人이라도 尙宜感知己之深하여 懇惻不忘이어든 況大賢長者 海內所師表 其言一出 四方以卜其人之輕重이리오
某乃得是하니 是宜感戴欣幸 倍萬於尋常可知也
然此實皆聖賢之志業이라 非自知其材能與力能當之者 不宜受此
此鞏旣夤緣幸知少之所學 有分寸合於聖賢之道 旣而又敢不自力於進修哉리오
日夜剋苦하여 不敢有媿於古人之道 是亦爲報之心也
然恨資性短缺하고 學出己意하여 無有師法이라
覬南方之行李 時枉筆墨하여 特賜敎誨하면
不惟增疎賤之光明이라 抑實得以刻心思銘肌骨하여 而佩服矜式焉이라
想惟循誘之方 無所不至하여 曲借恩力하여 使終成人材하고 無所愛惜窮陋之迹이라
故不敢望於衆人하고 而獨注心於大賢也로다
徒恨身奉甘旨 不得旦夕於几杖之側하여 禀敎誨竢講畫하니
不勝馳戀懷想之至
이라


02. 구양학사歐陽學士께 올린 두 번째 편지
자고子固구공歐公이 자기를 알아준 것에 감격한 나머지, 또 구공歐公으로 하여금 그가 구공歐公에게 기대하는 점을 아울러 살펴줄 것을 바라는 뜻에서 많은 생각을 함축하고 논리를 전개하여 여러 가지로 법도에 적합하게 하였다.
학사선생學士先生 집사執事께 올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집사執事께서는 현자를 좋아하고 선행을 즐기며 도덕을 닦기를 부지런히 하면서 시정時政을 보조하고 민생을 유리하게 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 지금 천하에서 동등하게 겨룰 자가 없습니다.
그 위대하고 걸출한 문장과 지모와 재능은 진실로 한문공韓文公(한유韓愈) 이후 〈집사執事〉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집사執事에게 사랑을 얻은 것을 〈돌아보건대,〉 단 하루라도 이전에 교분이 있었다거나 〈중간에서〉 어떤 빈객이 소개를 해준 일도 없이 경솔하게 스스로 문하門下에 찾아갔는데도 집사執事께서는 저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앉아서 저와 대화를 나눌 적에 오로지 오늘날 세상에 적용하여 행할 수 있는 옛 성인聖人의 가장 아름다운 도덕과 가장 핵심적인 도리를 〈일러주시어,〉 저로 하여금 차츰차츰 그 속에 젖어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움을 얻고 중용中庸의 입구까지 도달하게 하였으니, 제가 받은 은혜가 매우 커 감격스럽고도 기쁩니다.
깊이 생각해보니, 못난 제가 유사有司에게 버려졌는데 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역량의 폭이 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낙방하였다는 소식을 들을 당시 마음이 태연하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매사를 대범하게 생각하기를 좋아해서 그랬겠습니까.
진정 저의 자질이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오던 길에 행인들 중에 물바가지와 포대자루를 소지하고 등에 짐을 진 채 수레를 끌면서 노인과 어린아이를 대동하고 동쪽으로 가는 자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자기는 아무 지방의 백성인데 가뭄과 기근, 세금과 부역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고을로 옮겨 자리 잡아 약간의 국물과 명아주나물이며 미숫가루를 얻어 며칠이라도 살아가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걸어가면서 근심걱정을 하여 혹시 소원대로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낮에는 허둥지둥 길을 걸어가고 밤이 되면 어디 붙여 잘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자를 제가 본 것이 거의 백 명, 천 명에 밑돌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내심 생각하기를 ‘나는 다행히 사방이 무사한 때에 생장하여 이러한 백성과 함께 조정의 덕택과 보살핌을 고르게 받고 살면서도, 나만은 도롱이 차림으로 호미와 쟁기를 가지고 땅을 파는 고달픈 사정을 알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편히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공문이 내려와 병사를 징발하고 소집하는 비상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또 조상의 은덕을 힘입어 〈굳이〉 화살과 돌덩이를 받아내면서 전투와 수비를 준비한다거나, 전차를 몰고 말을 몰아 수천 리를 달려 군량을 운반할 일이 없다.
어릴 적부터 장성할 때까지 《시경詩經》, 《서경書經》, 문학서, 역사서 등을 업으로 삼아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도덕에 관한 일이었다.
그래서 전대前代와 현재의 〈정사의〉 잘잘못을 진정 완전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한두 가지 장구한 주요 사정은 알고 있다.
지금 비록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유사有司에게 나아가 〈응시하였다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낙방하여 이름자가 합격자의 명부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하사下士 가운데 일원이 되어 주상主上의 거룩하신 광채를 우러러보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대현大賢의 문하에 들어가는 영광은 얻었다.’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도중에 또 저는 안장 얹은 말과 하인이 있어 수고로움을 대신해주는가 하면 길 위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도와줬습니다.
〈고향에〉 당도하면 이들이 힘껏 약간의 음식을 구해주어 아침저녁의 굶주림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 백성들에 비해 여유롭기 그지없으니, 이 점 또한 충분히 스스로 위안이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자질구레하여 장자長者에게 말씀드릴 만한 것이 못 됩니다만, 총애를 많이 받아 감히 제 자신을 문하 이외 사람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에 이처럼 진술하여 집사께서 저의 생활이 어떠한가 알아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은 집사執事께서 매번 말씀하기를 “내 문하를 찾아온 자가 수없이 많지만 유독 〈이와 같은〉 문생을 얻은 것에 대해 기쁜 일로 삼고 있다.”고 한 점입니다.
제가 출발하던 날 또 전별하는 글을 주셨는데, 저의 잘못을 꾸짖기보다는 우매한 저를 높이 평가하고 또 떠나가는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이는 제가 보통 사람으로부터 이와 같은 대우를 받았더라도 오히려 저를 깊이 알아준 은혜에 감격하여 가슴에 깊이 새겨 잊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대현장자大賢長者는 천하가 사표師表로 존경하는 분으로 〈어느 누구를 평하는〉 말씀이 한번 입 밖에 나오면 사방에서 그 사람의 경중을 짐작하는 그런 입장이겠습니까.
제가 이와 같은 인정을 받았으니 당연히 감격하여 받들고 다행으로 여기는 심정이 일반인의 경우보다 만 배나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부하신 내용은 사실 모두 성현聖賢지향志向과 사업으로써 스스로 자기의 재능과 역량이 능히 감당할 만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아니면 마땅히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에 저는 집사執事로 인하여 다행히 제가 어릴 적부터 배웠던 것이 다소나마 성현의 도와 부합되는 점이 있음을 알았으니, 앞으로 또 감히 〈도덕을〉 증진하고 〈학업을〉 닦는 데에 스스로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밤낮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감히 옛사람의 도에 부끄러운 점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것이 또한 제가 보답으로 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타고난 품성이 모자라고 학문을 하는 것도 자의적인 이해에 의해 이루어질 뿐 스승을 모범으로 삼은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바라건대 남쪽으로 오는 사자使者 편에 수시로 글월을 보내 특별히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그런다면 재주 없고 학문이 변변찮은 저에게 광명을 〈보태줄〉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그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뼈에 새기며 아울러 깊이 믿고 모범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집사執事께서는 〈차근차근 후생을〉 잘 인도하는 방법이 가해지지 않은 데가 없어, 자상하게 은혜와 힘을 베풀어 마침내 인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시고 곤궁하고 고루한 자취는 염두에 두지 않으십니다.
이 때문에 감히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고 유독 대현大賢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다만 제가 어버이를 시하에서 받들고 있는 처지라, 조석으로 늘 집사執事의 곁에 있으면서 말씀과 손가락으로 가르쳐주시는 은혜를 직접 받지 못하는 점이 한스럽습니다.
지극히 흠모하고 그리는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역주
역주1 上歐陽學士第二書 : 작자의 나이 24세 때인 慶曆 2년(1042)에 禮部의 進士試에 낙방하고 고향인 撫州(臨川)로 돌아와 集賢校理로 있던 歐陽脩(1007~1072)에게 쓴 편지이다. 작자가 18세 때 進士試에 낙방하고 이때 또 응시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여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당대의 명사인 歐陽脩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고 고무된 나머지 두 차례 편지를 보내 자기의 포부를 진술하고 아울러 계속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희망을 토로하였다.
역주2 : 저본에 ‘卒’로 되어 있는 것을 《元豐類藁》에 따라 수정하였다.
역주3 中庸 : 儒家의 윤리사상이다. 사물을 접할 때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쏠리지 않고 지나치거나 부족한 점이 없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가장 높은 경지의 도덕표준이다.
역주4 見棄於有司 : 進士試에 낙방했다는 말이다.
역주5 下士 : 上士와 中士 아래 품계로 조정의 말단 관리를 말한다.
역주6 贈序引 : 작자가 歐陽脩를 만나보고 떠날 때 그가 훌륭한 문생을 얻은 것을 흐뭇해하는 뜻과, 有司가 안목이 없어 불행하게 낙방하였으나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뜻으로 〈送曾鞏秀才序〉를 써준 것을 말한다. 《文忠集》
역주7 不宣 : 하나하나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편지 말미에 상용하는 투식어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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