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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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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感慨深湛하고 雍容典則하니 有道者之文也
豈淺儇者所及이리오
伏念昔者方鞏之得禍罰於河濱 去其家四千里之遠이라
南嚮而望 迅河大淮 天下之險 爲其阻阨이라
而以孤獨之身으로 하여 㷀㷀路隅 無攀緣之親 一見之舊 以爲之託이요 又無至行上之可以感人 利勢下之可以動俗이라
惟先人之醫藥 與凡喪之所急 不知所以爲頼하고 而旅櫬之重大 懼無以歸者러니
明公 獨於此時 閔閔勤勤하여 營救護視하고 親屈車騎하여 臨於河上하여
使其方先人之病으로 得一意於左右하고 而醫藥之有與謀하니라
至其旣孤 無外事之奪其哀하여 而毫髮之私 無有不如其欲하여 莫大之喪 得以卒致而南하니 其爲存全之恩 過越之義如此하니라
竊惟明公 相天下之道 唫頌推說者窮萬世 非如曲士汲汲一節之善이라
而位之極하고 年之高 天子不敢煩以政하니
豈鄕閭新學 危苦之情 藂細之事 宜以徹於視聽而蒙省察이리오
然明公存先人之故하여 而所以盡於鞏之德 如此하니
蓋明公雖不可起而寄天下之政이나 而愛育天下之人材하여 不忍一夫失其所之道 出於自然이라
推而行之 不以進退하니 而鞏獨幸遇明公於此時也하니라
在喪之日 不敢以世俗淺意 進謝하고 喪除 又惟大恩之不可名 空言之不足陳으로 徘徊迄今하여 一書之未進하니
顧其慚生於心하여 無須臾廢也로이다
伏惟明公 終賜亮察하라
夫明公 存天下之義而無有所私하니
則鞏之所以報於明公者 亦惟天下之義而已
誓心則然이요 未敢謂能也니라


06. 두상공杜相公께 사례한 편지
감동이 깊고 우아하면서도 법칙이 있으니 도를 지닌 자의 문장이다.
어찌 수준이 낮고 경박한 자가 미칠 수 있겠는가.
삼가 회상해보건대, 지난날 제가 황하黃河 강변에서 아비를 잃은 재앙과 징벌을 만났을 때 고향과는 4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남쪽을 향해 바라보니 보이는 것은 그저 사나운 황하黃河와 넓은 회수淮水, 제방과 방죽, 호수와 장강長江 등 천하의 험난한 것들이 이어진 것으로 제가 고향으로 영구靈柩를 운반해 가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들뿐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독한 몸으로 심각한 병을 앓으면서 길가에 쓸쓸히 서성거리는 신세가 되어 의지할 만한 친척이나 한 번 만나본 벗이라도 있어 의탁할 곳으로 삼을 만한 데가 없었고, 또 제가 위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높은 품덕도 없고 아래로는 세속의 대중에게 영향을 끼칠 만한 재력이나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인先人에게 필요한 의약醫藥상사喪事를 치를 때 급히 필요한 물자를 누구에게 의지하여 준비해야 할지 몰랐고, 게다가 객지타향에 놓여 있는 중대한 영구靈柩를 운송하여 돌아갈 방법이 없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명공明公께서 혼자 깊이 걱정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아 방법을 강구하여 구제하고 돌보아주었으며, 몸소 수레를 몰아 황하黃河의 물가에 왕림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선인先人의 병세가 위중한 기간에 곁에서 전념하여 간호할 수 있게 하고, 의원을 부르고 약을 쓸 때에도 함께 상의할 사람이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고아가 된 뒤에는 그때에도 잡다한 일로 인해 선인先人에 대한 애통한 정을 표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여, 극히 사소한 욕구까지도 제 소원대로 안 되는 것이 없게 함으로써 이 막중한 상례喪禮의 행차가 마침내 남쪽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였으니, 저를 돌보아 목적을 이루게 해주신 은혜와 일반 상식을 뛰어넘은 의리가 곧 이와 같았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명공明公께서 천하를 보좌하는 원칙은 천추만대까지 사람들이 읊조리며 높이 찬양할 만한 것이고, 식견이 좁은 사람이 힘겹게 애써 어떤 하나의 작은 일을 완전하게 이루어낸 경우와 다릅니다.
그리고 지위가 정점에 이르고 연세도 높아 천자께서도 감히 더 이상 정사를 가지고 귀찮게 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저와 같은 시골 후학이 어렵고 힘겨운 내용과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명공明公의 이목에 올려드려 살펴주시는 은혜를 입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명공明公께서 선인先人과의 옛정을 생각하여 있는 힘껏 저를 도와주신 은덕이 이와 같습니다.
이는 대체로 명공明公께서 비록 다시 임용되어 천하의 정사를 맡을 수는 없으나, 천하의 인재를 사랑하고 배양하여 차마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하지 못하시는 도의가 자연의 천성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더 확대하고 실행하여 현직에 있거나 물러나 있는 것으로 인해 변화가 없는데 제가 유독 이 시기에 다행히 명공明公을 만난 것입니다.
제가 거상居喪하는 동안 감히 세속의 얕은 생각으로 인해 예법을 어기고 찾아가 뵙고 사의謝意를 표하지 못하고, 상기喪期를 마친 뒤에는 또 저에 대한 큰 은혜를 뭐라고 형용할 방법이 없고 몇 마디 빈말로는 감사하는 저의 정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지금에 이르도록 한 통의 편지조차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가슴속으로부터 올라와 잠시라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명공明公께서는 저의 이와 같은 심정을 헤아려주십시오.
대체로 명공明公께서는 천하를 가슴에 품는 대의大義를 견지하여 한 점의 사심이나 잡념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제가 명공明公께 보답하는 것도 천하를 가슴에 품는 대의大義로 할 뿐입니다.
제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은 그렇습니다만 과연 제대로 그렇게 할 것이라고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역주
역주1 謝杜相公書 : 작자 나이 32세 때인 1050년에 杜衍(978~1057)에게 쓴 편지이다. 3년 전인 1047년에 작자가 아버지 曾易占을 모시고 汴京으로 올라가던 중 南京(지금의 河南 商丘)에 이르러 아버지가 병이 나서 죽었다. 이 당시 작자는 벼슬하기 전이었고 그곳은 고향인 江西 臨川으로부터 수천 리나 떨어진 타향이었으므로 주위에 가까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폐결핵으로 건강도 좋지 않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때 마침 벼슬에서 물러나 그곳에 살고 있던 옛 재상 杜衍의 각별한 도움으로 무사히 상을 치르고 靈柩를 고향으로 운반해 올 수 있었다. 작자는 3년 喪期를 마치고 그때 받은 은혜에 깊이 감동한 정을 이 편지에 담아 감사를 표하였다.
역주2 埭堰湖江 : 埭와 堰은 강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변에 흙을 쌓아올린 제방과, 물을 가두어 수위를 높이기 위해 쌓은 방죽 따위이다. 湖는 洪澤과 高郵 등 호수이고, 江은 長江을 가리킨다. 南京에서 작자의 고향인 南豐까지 가기 위해서는 黃河‧淮河‧運河‧長江을 경유해야 하는데, 도중에 洪澤‧高郵 등 여러 호수가 있다.
역주3 抱不測之疾 : 작자가 증세가 심각한 폐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하는 말이다.
역주4 越禮 : 예법을 어긴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부모의 居喪 기간에 외부사람과 교제하면 안 되는 보편적인 예법을 어기는 것을 뜻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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