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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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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逢故知하야 情誼婉然이라
多難百罹하고 流年半世하야 恍如昨夢이러니 復見故人이라
伏惟知郡承議 居以才稱하고 進由德選하니이다
不忘疇昔하고 曲賜拊存하시니 豈獨憐衰朽而借寵光이리오
蓋將敦風義以勵世俗이라
感佩之至 筆舌難周로소이다


25. 왕승의王承議에게 답한
편관編管 가던 도중에 옛 지인을 만나서 정의가 간곡하다.
반궁泮宮에서 학문이 이루어짐에 고향 사람들의 공경을 잘못 받았고, 바닷가에서 임명장을 받음에 또 가시나무 덤불에 깃든 봉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두루 겪고 반평생을 떠돌며 보내어 황홀하기가 어젯밤 꿈과 같았는데, 다시 옛 친구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지군승의知郡承議께서는 집에 있을 적에는 재주가 높다고 알려졌고, 벼슬길에 진출해서는 덕으로 말미암아 선발되었습니다.
연원淵源사우師友들은 예로부터 정공鄭公으로 높이 우러르고, 를 읊고 노래하는 풍류는 근래에 소부邵父를 이었다고 전하였습니다.
끝내 옛날을 잊지 않고 곡진히 살피고 위문해주시니, 어찌 다만 노쇠함을 불쌍히 여겨서 영광을 빌려줄 뿐이겠습니까?
장차 풍의風義를 돈독히 하여 세속을 권장할 것입니다.
감사하는 지극한 마음 필설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역주
역주1 答王承議啓 : 本集에는 이 글의 제목이 〈答臨江軍知軍王承議啓〉로 되어 있다. 蘇軾은 徽宗 建中靖國 元年(1101) 북쪽으로 돌아가는 도중 5월에 儀眞에 이르렀는데, 王承議가 京口(現 鎭江)로 사람을 보내 영접하였으므로 이 啓를 써서 답하였다. 承議는 관명인데 王承議에 대해서는 상고할 길이 없다. 다만 글의 내용으로 보아 蘇軾의 동향 후배인 듯하다.
역주2 編管 : 형벌의 일종으로 죄인의 얼굴에 刺字하지 않고 귀양 보내는 것을 이른다.
역주3 泮水受成 : 泮水는 반달 모양의 연못이 있는 제후국의 太學인 泮宮을 이르며, 受成은 학업을 성취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唐宋八大家文鈔 校注集評》에는 受成을 《禮記》 〈王制〉의 ‘受命於祖 受成於學’으로 해석하였으나, 〈王制〉의 내용은 天子가 군대를 출동할 적에 ‘祖廟에서 점을 쳐 명령을 받고 太學에서 계책을 결정함’을 말하는데, 본 글과는 상관이 없는 듯하며, 지방의 鄕學에서 학문을 익힌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아니면 泮宮을 王者의 太學을 지칭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역주4 桑梓之敬 : 桑梓는 뽕나무와 가래나무로, 고향을 뜻하는바, 곧 고향 사람들이 공경함을 이른다.
역주5 海邦畫諾 : 海邦은 蘇軾이 귀양 간 昌化軍(해남도)을 이르고, 畫諾은 문서에 서명함을 이른다. 蘇軾은 元符 3년(1100) 6월에 대사면령에 따라 해남도 유배가 풀리면서 8월에 舒州團練副使로 제수받고 永州에 거주하라는 조칙이 내려졌으므로 이 문서들에 서명한 것이다.
역주6 枳棘之栖 : 枳棘은 탱자나무와 가시나무로, 여기에 깃든다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지방의 낮은 벼슬을 하는 것을 비유한다. 後漢 때 考城令 王奐이 엄격한 政事를 펼치다가, 蒲의 亭長인 仇覽이 德으로 사람을 교화시킨다는 말을 듣고 그를 主簿로 삼은 다음 그에게 말하기를 “主簿는 陳元이란 자의 罪過를 듣고도 처벌하지 않고 그를 교화시켰다 하니, 鷹鸇(새매)과 같은 맹렬한 뜻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고 은근히 비난하자, 仇覽이 답하기를 “鷹鸇이 鸞鳳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王奐이 사과하고 그를 보내면서 말하기를 “가시나무는 鸞鳳이 깃들 곳이 아니니, 백리 고을이 어찌 大賢이 있을 곳이겠는가.[枳棘非鸞鳳所棲 百里豈大賢之路]”라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이후 賢士가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나 곤경에 처했을 경우에 자주 인용되었다.
역주7 淵源師友 舊仰鄭公之高 : 淵源은 학문의 연원으로 學統과 같이 쓰이며, 鄭公은 높은 학문으로 많은 저서를 남긴 後漢의 經學家인 鄭玄을 가리킨다. 이는 王承議의 학문이 높음을 鄭玄에 비유한 것이다.
역주8 歌詠風流 近傳邵父之繼 : 歌詠風流는 상대방의 높은 풍류를 노래로 읊는 것이다. 邵父는 前漢 元帝 때의 문신인 邵信臣으로, 南陽太守로 있을 적에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존경하여 邵父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는 백성을 위하여 직접 들녘을 돌아다니며 농사짓는 일을 권장하고 관개시설을 확장하곤 하였는데, 歌詠風流는 이 때문에 말한 듯하다. 이 또한 王承議를 邵父에 견주어 칭찬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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