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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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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性道 自宋儒以後 纔說得分明하니 而蘇家論性道處 不免癡人說夢矣
이나 通篇因主論客하고 因客見主 自是文家一法門이니라
昔之爲性論者多矣하야 而不能定于一이라
孟子以爲善하고 而荀子以爲惡하고 이어늘者又取夫三子之說하야하야
로라하고 以爲라하니 而天下之所是者於愈之說多焉하니라
嗟夫
是未知乎所謂性者하야 而以夫才者 言之
夫性與才 相近而不同하야 其別 不啻若黑白之異也
聖人之所與小人共之하야 而皆不能逃焉 是眞所謂性也 而其才 固將有所不同이라
今夫木 得土而後生하야 雨露風氣之所養 暢然而遂茂者 是木之所同也 性也 而至於堅者爲轂하고 柔者爲輪하고 大者爲楹하고 小者爲桷하야 桷之不可以爲楹하고 輪之不可以爲轂하야는 是豈其性之罪耶리오
天下之言性者 皆雜乎才而言之
是以 紛紛而不能一也니라
孔子所謂中人可以上下 而上智與下愚不移者 是論其才也
而至於言性하야는 則未嘗斷其善惡하사而已라하시니라
是故 其論終莫能通이라
彼以爲性者 果泊然而無爲耶인댄 則不當復有善惡之說이요 苟性而有善惡也인댄 則夫所謂情者 乃吾所謂性也
人生而莫不有饑寒之患 牝牡之欲하니 今告乎人曰 饑而食 渴而飮 男女之欲 不出於人之性也라하면 可乎
是天下知其不可也
聖人無是 無由以爲聖이요 而小人無是 無由以爲惡이니라
聖人 以其七者御之하야 而之乎善하고 小人 以是七者御之하야 而之乎惡이니 由此觀之하면 則夫善惡者 性之所能之 而非性之所能有也
且夫言性者 安以其善惡爲哉리오
雖然이나 揚雄之論 則固已近之하야
人之性 善惡混하야 修其善則爲善人이요 修其惡則爲惡人이라하니
此其所以爲異者 唯其不知性之不能以有夫善惡하야 而以爲善惡之皆出乎性也而已니라
夫太古之初 本非有善惡之論하야 唯天下之所同安者 聖人指以爲善하고 而一人之所獨樂者 則名以爲惡이라
天下之人 固將卽其所樂而行之하니 孰知夫聖人唯其一人之獨樂 不能勝天下之所同安하야 是以 有善惡之辨이리오
而諸子之意 將以善惡으로 爲聖人之私說하니 不已疏乎
區區乎以后稷之岐嶷 文王之不勤 瞽, 鯀, 管, 蔡之迹而明之하니라
聖人之論性也 將以盡萬物之天理 與衆人之所共知者하야 以折天下之疑어늘
而韓愈 欲以一人之才 定天下之性하고
且其言曰 今之言性者 皆雜乎佛, 老라하니라
愈之說 以爲性之無與乎情하야 而喜怒哀樂 皆非性者 是愈流入於佛, 老而不自知也니라
唐荊川曰
題是揚雄이로되 而專辨韓愈하니 亦一體也니라


06. 양웅揚雄에 대한
나라 유자儒者들인 염락濂洛 이후로부터 겨우 분명하게 말해졌으니, 소씨蘇氏 집안에서 를 논한 부분은 어리석은 사람이 꿈 얘기하는 정도를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전편全篇에 걸쳐 주인을 인하여 객을 논하고, 객을 인하여 주인을 나타낸 것은 본래 문장가의 한 법칙이다.
옛날에 에 대해 논한 자들이 많아서 하나로 결정되지 못하였다.
처음에 맹자孟子하다고 하였고, 순자荀子하다고 하였고, 양자揚子이 혼재한다고 하였는데, 한유韓愈라는 분은 또 이 세 분의 말을 취하여 공자孔子의 의논으로 절충해서 을 분리하여 세 가지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중인中人(중간 정도의 사람)은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아래로 내려갈 수 있지만, 상지上智하우下愚는 옮길 수 없다.”라 하고, 또 말하기를 “세 분의 말씀은 모두 그 중인中人에서 나왔고 상지上智하우下愚는 빠뜨렸다.”라고 하였는데, 천하에서 한유韓愈의 말을 옳게 여기는 자들이 많았다.
아!
이것은 이른바 이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라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는 서로 비슷하나 똑같지 않아서 그 분별이 흑과 백이 다른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니다.
성인聖人소인小人이 똑같아서 모두 도피할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이른바 이란 것이고, 는 진실로 똑같지 않은 것이다.
지금 나무가 흙을 얻은 뒤에 싹이 나서 비와 이슬과 바람과 기운이 길러주는 바에 자라나서 마침내 무성해지는 것은 모든 나무가 똑같은 것이니 본성本性이요, 나무 중에 단단한 것은 바퀴통이 되고 부드러운 것은 바퀴가 되고 큰 것은 기둥이 되고 작은 것은 서까래가 되어서, 서까래가 기둥이 될 수 없고 바퀴가 바퀴통이 될 수 없음에 이르러는 이것이 어찌 그 의 책임이겠는가?
천하에 을 말하는 자들이 모두 를 뒤섞어서 을 말하였다.
이 때문에 분분하여 통일되지 못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중인中人은 위로도 올라가고 아래로도 내려갈 수 있으나 상지上智하우下愚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은 를 말씀한 것이다.
을 말씀함에 이르러는 일찍이 그 을 결단하지 않으셔서 말씀하시기를 “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에 따라 서로 거리가 멀어진다.”라고 하셨을 뿐이다.
그런데 한유韓愈의 설은 또 이보다 더 심하여, 을 분리하여 이라 하고 를 합하여 이라 하였다.
이 때문에 그 의논이 끝내 통할 수 없는 것이다.
한유韓愈가 말하는 이라는 것이 과연 담박淡泊하여 작위함이 없는 것이라면 다시는 의 설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만일 이 있다고 한다면 한유韓愈가 말하는 이라는 것은 바로 내가 말하는 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누구나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근심과 남녀의 정욕이 없을 수 없으니, 지금 남에게 말하기를 “굶주리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과 남녀의 정욕이 사람의 본성에서 나오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되겠는가?
이것은 천하 사람들이 그 불가함을 아는 것이다.
성인聖人이 이것이 없으면 말미암아 성인聖人이 될 수가 없고, 소인小人이 이것이 없으면 말미암아 악행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일곱 가지 을 사용하여 으로 가고, 소인小人은 이 일곱 가지 을 사용하여 으로 가니, 이것을 가지고 본다면 이라는 것은 이 가게 할 수는 있고 이 소유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을 말하는 자가 어찌 그 을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양웅揚雄의 의논은 진실로 이치에 가까워서 말하기를
“사람의 이 혼재되어 있어서 을 닦으면 선인善人이 되고 을 닦으면 악인惡人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다른 것은 오직 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이 모두 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저 태고시대에는 본래 의 의논이 있지 않아서 오직 천하 사람들이 똑같이 편안히 여기는 것을 성인聖人이 가리켜 이라 하고, 군주 한 사람이 홀로 즐거워하는 것을 일러 이라 하였다.
천하 사람들은 진실로 장차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나아가서 이를 행하니, 저 성인聖人께서 오직 군주 한 사람이 홀로 즐거워하는 것이 천하 사람들이 똑같이 편안히 여기는 것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 때문에 분변分辨이 있게 한 것임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제자諸子의 뜻은 장차 성인聖人의 사사로운(개인적) 말씀이라고 여겼으니, 너무 엉성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한유韓愈는 책에서 전하여 들은 옛사람들의 사적事迹을 가지고 세 사람의 의논을 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구구하게 후직后稷이 어려서 영특하고 숙성한 것과, 문왕文王이 어머니를 수고롭게 하지 않은 것과, 고수瞽叟관숙管叔채숙蔡叔의 행적을 가지고 을 밝혔다.
성인聖人을 논하신 것은 장차 만물의 이치와 중인衆人들이 함께 아는 것을 다해서 천하의 의심을 꺾고자 해서였는데,
한유韓愈는 한 사람의 재주를 가지고 천하 사람들의 을 결정하고자 하고,
또 그 말에 이르기를 “지금 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의 이론에 뒤섞여 있다.”라고 하였다.
한유韓愈의 말에 “과 관계가 없어서 이 모두 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한유韓愈로 흘러 들어갔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이다.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제목題目양웅揚雄이나 오로지 한유韓愈를 변론하였으니, 이 또한 문장의 한 이다.”


역주
역주1 揚雄論 : 이 글은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揚雄(B.C. 53~A.D. 18)은 漢나라의 유학자, 문인으로 字가 子雲이며 蜀郡 成都 사람이다. 저서로 《易經》을 모방하여 지은 《太玄經》과 《論語》를 모방하여 지은 《法言》이 있다.
역주2 濂洛 : 濂溪와 洛陽을 축약한 것으로, 濂溪는 周敦頤가 거처한 곳이고, 洛陽은 明道 程顥와 伊川 程頤가 거주한 곳인데, 인신하여 周敦頤와 二程子를 가리킨다. 이들은 宋代 性理學의 元祖이다.
역주3 揚子以爲善惡混 : 揚雄의 《法言》 〈修身〉에 “사람의 性은 善과 惡이 혼재되어 있어서 善을 닦는 자는 善人이 되고 惡을 닦는 자는 惡人이 된다.[人之性也善惡混 修其善者則爲善人 修其惡者則爲惡人]”라고 보인다.
역주4 韓愈 : 768~824. 唐나라의 대문호이자 정치가로 字는 退之이고 諡號는 文이며, 뒤에 昌黎伯에 봉해졌으므로 ‘韓昌黎’로 불린다.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古文復興運動을 주창하였으며, 《昌黎先生集》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性에 대한 韓愈의 견해는 그가 지은 〈原性〉에 보인다.
역주5 折之以孔子之論 離性以爲三品 : ‘孔子之論’은 《論語》 〈陽貨〉에 “오직 上智와 下愚는 변화되지 않는다.[唯上知(智)與下愚 不移]”라고 말씀한 내용을 이른다. 上智는 지극히 지혜로운 자로 聖人을 가리키고, 下愚는 가장 어리석은 자를 가리키며, 三品은 사람의 性을 셋으로 나누어 上智, 中人, 下愚의 세 등급으로 구분함을 이른다.
역주6 中人可以上下 而上智與下愚不移 : 이 내용은 〈原性〉에 “그렇다면 上智와 下愚는 끝내 변화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上智는 학문에 나아가면 더욱 밝아지고, 下愚는 위엄을 두려워하면 죄를 적게 짓는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上智는 가르칠 수 있고 下愚는 제어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등급은 孔子께서 말씀하신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然則性之上下者 其終不可移乎 曰 上之性就學而愈明 下之性畏威而寡罪 是故上者可敎 而下者可制也 其品則孔子謂不移也]”라고 보인다.
역주7 三子者皆出乎其中而遺其上下 : 三子는 孟子․荀子․揚子를 이르며, 性을 세 등급으로 나눈 것 중에 中은 中人을, 上下는 上智와 下愚를 이른다.
〈原性〉에 “孟子는 ‘사람의 性은 善하다.’고 하였고, 荀子는 ‘사람의 性은 惡하다.’고 하였고, 揚子는 ‘사람의 性은 善과 惡이 혼재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처음에는 善했다가 惡으로 나아간 것인가? 처음에는 惡했다가 善으로 나아간 것인가? 처음에는 善과 惡이 혼재되어 있다가 善해지거나 惡해지는 것인가? 세 분은 모두 中人만을 들고 上智와 下愚는 빠뜨린 것이니, 그 하나만을 얻고 그 둘은 잃은 것이다.[孟子之言性曰人之性善 荀子之言性曰人之性惡 揚子之言性曰人之性善惡混 夫始善而進惡與 始惡而進善與 始也混而今也善惡 皆擧其中而遺其上下者也 得其一而失其二者也]”라고 하였다.
역주8 性相近也 習相遠也 : 이 내용은 《論語》 〈陽貨〉에 보인다. 蘇軾은 이를 孔子께서 性을 말씀함에 있어 일찍이 善과 惡을 결단하지 않으신 근거로 삼았으나, 程伊川은 “이는 氣質之性을 말한 것이요, 本然之性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만약 本然을 말하면 性은 곧 理이고 理는 善하지 않음이 없으니, 孟子가 말씀하신 性善이 바로 이것이다. 어찌 서로 비슷함이 있겠는가?[此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也 若言其本 則性卽是理 理無不善 孟子之言性善 是也 何相近之有哉]”라고 하였다. 《論語集註》
역주9 韓愈之說……而合才以爲性 : 韓愈는 〈原性〉에서 “性은 사람이 태어날 적에 함께 생기는 것이고, 情은 물건과 접할 적에 생기는 것이다. 性의 등급은 上․中․下 세 가지가 있고, 그 要素는 仁․義․禮․智․信의 다섯 가지가 있으며, 情의 등급은 上․中․下 세 가지가 있고, 그 要素는 喜․怒․哀․懼․愛․惡․欲의 일곱 가지가 있다.[性也者 與生俱生也 情也者 接于物而生也 性之品有三 而其所以爲性者五 情之品有三 而其所以爲情者七]”라고 하여, 性과 情을 분리하였고, 또 性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蘇軾은 이것을 性에 才를 합하여 생각한 것이라고 여긴 듯하다.
역주10 喜怒哀懼愛惡欲 : 사람의 七情을 가리킨다. 《禮記》 〈禮運〉에 “무엇을 사람의 情이라 이르는가? 喜․怒․哀․懼․愛․惡․欲이니, 이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능하다.[何謂人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弗學而能]”라고 보인다.
역주11 欲以書傳之所聞(一)[昔]人之事迹……瞽鯀管蔡之迹而明之 : 昔人은 韓愈가 지은 〈原性〉에서 例로 든 后稷 이하 여러 사람들로, 韓愈는 이들의 事迹을 예로 들어 세 분(孟子․荀子․揚子)의 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后稷은 周나라의 시조로 성은 姬이고 이름은 棄이다. 舜임금을 섬겨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그 공으로 后稷이라는 벼슬에 올랐다. 어머니는 有邰氏의 딸로 이름은 姜嫄인데 帝嚳의 부인이었다. 어머니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였으므로 불길하다 하여 세 차례나 버려졌으나, 새와 짐승들이 아기를 보호하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자 다시 데려다 길렀다. 岐嶷은 영특하고 숙성함을 이른다. 《詩經》 〈大雅 生民〉에 “后稷은 실로 기어 다니면서부터 능히 영특하고 숙성하셨다.[誕實匍匐 克崎克嶷]”라고 보인다.
文王은 周나라를 창건한 武王의 아버지로 이름은 昌이다. 殷나라 말기에 太公望 등의 어진 선비들을 모아 국정을 바로잡아 고대의 이상적인 聖君의 전형으로 꼽힌다. 文王은 독실한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자랄 적에 어머니인 太任에게 전혀 근심을 끼쳐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瞽는 장님이란 뜻으로 舜帝의 아버지 瞽叟를 이른다. 瞽叟는 瞽瞍로도 쓰는데, 後妻에게 빠져 後妻와 그의 소생인 象과 함께 舜임금을 죽이려 하였으나, 舜임금의 지극한 효성에 결국 감화되어 단란한 가정을 만들었다. 이에 사람들은 그가 효자를 몰라보았다 하여 장님이라는 뜻으로 瞽叟라 칭했다 한다.
鯀은 禹王의 아버지로 崇나라의 군주였는데, 堯임금의 명령을 받고 홍수를 다스렸으나 물길을 막아 도리어 피해를 키워 귀양 가서 죽었다. 그는 또한 성질이 고집스러워 《書經》 〈虞書 堯典〉에 堯임금은 鯀을 평하여 “왕명을 거역하고 族類들을 무너뜨린다.[方命圮族]”라고 하였으며, 屈原의 《離騷經》에는 “鯀은 고집스럽고 강직함으로써 몸을 망쳐, 끝내 羽山의 들판에서 죽었다.[曰鯀婞直以亡身兮 終然殀乎羽之野]”라고 하였다.
管蔡는 管叔 鮮과 蔡叔 度로 모두 成王의 숙부이며 周公의 庶兄弟들이다. 武王이 죽고 어린 成王이 즉위하여 周公이 섭정하자, 殷나라를 감시하던 管叔과 蔡叔 등은 “周公이 成王을 폐위하고 자신이 천자가 될 것이다.”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殷나라에 봉해진 武庚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周公이 成王의 명을 받아 이들을 정벌하여 武庚과 管叔을 죽이고 蔡叔을 유배 보냈다.
韓愈는 〈原性〉에서 后稷과 文王을 들어 性惡說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瞽叟와 鯀과 管叔․蔡叔을 들어 善惡混在說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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