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府二十韻
杜甫
哥舒는 虜姓이요 名翰이라 王忠嗣表爲牙將이러니 天寶中에 爲河西隴右節度使하여 封西平郡王하다 廢在家라가 起爲兵馬副元帥러니 明年에 敗于潼關하여 降祿山하니라
今代
에何人第一功
고君王自神武
하니駕馭必英雄
이라開府當朝傑
이니論兵邁古風
이라先鋒百勝在
요略地兩隅空
이라注+隅空 : 翰이 北征突厥하고 西伐吐蕃하여 攻取其地라 故云兩隅空이라靑海無傳箭
이요注+靑海無傳箭 : 翰이 築城靑海하니 吐蕃이 不敢近하니라早掛弓
이라이라每惜
棄
하여이라智謀垂睿想
하니出入冠諸公
이라이라注+日月低秦樹 乾坤繞漢宮 : 此는 言收復之功也라 所謂日月所臨이 特低秦樹하고 乾坤所包獨繞漢宮이라胡人愁逐北
하고宛馬又從東
이라注+ 宛馬又從東 : 大宛은 西域國名이니 出良馬라 翰之威武에 胡人이 愁其攻逐而敗北하여 宛馬復來朝貢也라受命邊沙遠
터니歸來御席同
이라軒墀曾寵鶴
이요注+軒墀曾寵鶴 : 左傳에 衛懿公好鶴하여 鶴有乘軒者라이라하고山河誓始終
이라注+山河誓始終 : 漢高祖卽位하고 封功臣할새 爲之誓曰 使黃河如帶하고 太山若礪토록 國以永存하여 爰及苗裔라하니라이라勳業靑冥上
이요交親氣槪中
이라하고已見白頭翁
이라壯節初題柱
러니注+壯節初題柱 : 司馬相如初過成都昇仙橋할새 題其柱曰 不乘駟馬車면 不復過此橋라하니라이라幾年春草歇
고今日暮途窮
이라軍事留孫楚
요注+軍事留孫楚 : 晉孫楚는 字子荊이니 才藻卓絶이러니 年四十餘에 始參鎭東軍事하니라行間識呂蒙
이라注+行間識呂蒙 : 吳志에 呂蒙은 字子明이니 年十六에 拔刀殺吏於行伍中이러니 見知於孫策하여 策用之하니라防身一長劍
으로將欲倚崆峒
이라注+將欲倚崆峒 : 崆峒山은 在西하니 正當吐蕃所入之道라 子美謂將欲倚劍崆峒하여 從翰守節鎭也라
哥舒翰 開府에게 올린 二十韻의 詩
두보
哥舒는 오랑캐의 성이요 이름이 翰이다. 王忠嗣가 추천하여 牙將을 삼았는데, 天寶年間에 하서농우절도사가 되어 西平郡王에 봉해졌다. 폐출되어 집에 있다가 일어나 병마부원수가 되었는데, 이듬해에 潼關에서 패하여 安祿山에게 항복하였다.
지금 시대의 功臣 그린 麒麟閣에
어느 사람이 제일 가는 功 세웠는가.
君王은 절로 神武하시니
부리시는 사람들 반드시 英雄이라오.
開府는 지금 조정의 영걸이니
兵事를 논함에 옛사람의 風度 뛰어 넘네.
선봉으로 나가 백 번 싸워 승리하니
땅을 攻略하여 서북쪽 양 귀퉁이 비었네.
注+哥舒翰이 북쪽으로 突厥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吐藩을 정벌하여 이들 지역을 공략하여 점령하였으므로 양 귀퉁이가 비었다고 한 것이다.靑海 지방에는 화살을 전하여 신호함 없고
注+哥舒翰이 靑海에 城을 쌓으니, 吐蕃이 감히 근접하지 못하였다.天山에는 일찍 활 걸어놓았다오.
廉頗처럼 그대로 적을 패주시키고
魏絳처럼 이미 오랑캐를 강화시켰네.
매양 河湟 지방이 버려짐 애석해 하여
새로 節制를 겸하여 길 통하게 하였네.
지혜로운 계책은 天子의 생각 드리우게 하니
출입함에 諸公들 중 으뜸이라오
功을 논하면 해와 달도 낮게 長安의 나무에 걸리고
乾坤도 겨우 漢나라 궁궐을 에워쌀 뿐이라오.
注+이는 수복한 공을 말한 것이다. 이른바 ‘해와 달의 임하는 바가 다만 秦나라 나무처럼 낮고 乾坤의 싸는 바가 홀로 漢나라 궁궐을 감돌 뿐’이라는 것이다.오랑캐들은 쫓겨 敗走함 걱정하고
宛땅의 말 또 동쪽으로 朝貢 오네.
注+大宛은 서역의 나라 이름이니, 좋은 말이 나온다. 哥舒翰의 威武에 오랑캐들이 공격과 추격을 당하여 패배할까 근심하여 대완국의 말을 다시 가지고 와서 조공한 것이다.명령 받고 변방 사막으로 멀리 가더니
돌아와서는 皇帝와 자리를 함께 하였네.
일찍이 軒墀에서 鶴처럼 총애 받고
注+《左傳》에 “衛나라 懿公이 鶴을 좋아하여 학으로서 軺軒을 탄 자가 있었다.” 하였다.그 옛날 사냥나가 곰이 아닌 太公望 얻은 것 같다오.
띠풀과 흙 받아 名數 더하고
山河와 始終을 함께 할 것 맹세하네.
注+漢 高祖가 즉위하고는 功臣을 봉할 적에 맹세하기를 “黃河가 말라 띠처럼 되고 太山이 닳아 숫돌처럼 되도록 나라가 길이 보존되어 후손들에게 미칠 것이다.” 하였다.계책이 행해져 戰伐 버리니
마음이 합해 군주의 마음 감동시킨다오.
功業은 푸른 하늘 위에 높이 솟고
사귀는 情은 氣槪있는 名士들이라오.
구슬신을 신은 손님 되지 못하고
이미 白頭의 늙은이 되었구나.
장한 뜻 처음에는 기둥에 글 썼었는데
注+司馬相如가 처음 成都의 昇仙橋를 지나면서 다리의 기둥에 쓰기를 “駟馬의 수레를 타지 않으면 내 다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 하였다.生涯가 굴러다니는 쑥대처럼 정처 없네.
몇 년이나 봄풀이 시들었나
오늘은 해 저문데 갈 곳 없는 신세 되었다오.
軍事에 孫楚 머물게 하고
注+晉나라 孫楚는 자가 子荊인데 재주와 照鑑이 뛰어났었는 바, 나이 40이 넘어서야 비로소 鎭東軍事에 참여되었다.隊伍 사이에서 呂蒙 알아보았지.
注+《吳志》에 “呂蒙은 자가 子明이니, 나이 16세에 칼을 뽑아 行伍 사이에서 관리를 죽이고는 孫策에게 인정을 받아 등용되었다.” 하였다.몸을 막을 한 자루 長劍으로
장차 崆峒山에 의탁하고 싶다오.
注+崆峒山은 서쪽에 있으니, 바로 吐藩이 침입하는 길이다. 杜子美가 이르기를 “장차 칼을 잡고 공동산에 가서 哥舒翰을 따라 節度의 鎭을 지키고자 한다.”고 하였다. 賞析이 시는 開府儀同三司 河西節度使 哥舒翰에게 올린 시로, 天寶 13년(754) 長安에서 지었으며 《杜少陵集》3권에 실려 있다. 哥舒翰은 突厥 출신의 장군으로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俠氣가 있는 인물이었으나, 안록산의 난에 적에게 항복하여 적중에서 죽었다. 이 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두보가 장안에 있을 때에 가서한에게 의탁하고자 하여 올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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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증가서개부이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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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증가서개부이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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