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唐衢
韓愈(退之)
勉衢出仕하여 以致君澤民也라
虎有爪兮牛有角
하니虎可搏兮牛可觸
이라奈何君獨抱奇才
하여手把犁鋤餓空谷
고當今天子急賢良
하사匭函朝出開明光
이라注+匭函朝出開明光 : 에 從魚保宗之請하여 匣匱爲而鑰之하고 傍有一小竅하여 可入而不可出이라 置之朝堂하여 以受天下表疏하니라 明光은 漢武帝宮名이라胡不上書自薦達
하여坐令四海如
고
唐衢에게 올리다
한유(퇴지)
唐衢가 출사하여 군주를 훌륭한 군주로 만들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힐 것을 권면한 것이다.
범은 발톱 있고 소는 뿔 있으니
범은 발로 치고 소는 받을 수 있다오.
어이하여 그대 홀로 기특한 재주 안고서
손에 쟁기와 호미 잡고 빈 골짝에서 굶주리나.
지금 天子 賢良을 급히 찾아
匭函을 아침에 내어 明光殿에서 열어 보인다오.
注+唐나라 則天武后 垂拱 2년(686)에 魚保宗의 요청을 따라 궤짝 네 개를 만들어 자물쇠를 채우고 옆에 한 작은 구멍을 내어 문서를 넣을 수는 있으나 꺼낼 수는 없게 하였다. 이것을 조당에 두고 천하의 表와 疏를 받게 하였다. 明光은 漢 武帝의 궁궐 이름이다.어찌 글 올려 스스로 천거해서
앉아서 四海를 唐虞와 같이 하지 않는가.
賞析이 시는《韓昌黎集》3권에 실려 있다. 唐衢는 한유와 교유하였으므로 《당서》에는 한유의 傳 아래에 붙였으나 《신당서》에는 삭제하였다. 《당서》에 “唐衢는 진사에 응시하였으나 오래도록 급제하지 못하였다. 詩歌를 잘하였고 성품이 慷慨하여 남의 문장을 보다가 슬픈 내용이 있으면 반드시 울어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하였다. 白樂天 또한 시를 지어 “賈誼는 시사에 울었고 阮籍은 기로에서 울었네. 唐生이 지금 또 우니 시대는 다르지만 슬픔은 매한가지라오.[賈誼哭時事 阮籍哭岐路 唐生今亦哭 異代同其悲]” 하였다. 당생은 재주가 있으면서 숨어 살던 賢人인데, 그에게 세상에 나와 도를 행하여 요순시대처럼 만들 것을 권유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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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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