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河篇
宋之問
武后時에 少俊有文才者 多補北門學士라 之問이 求之한대 后不許曰 宋之問은 有口過라하니 遂作明河篇自況하니라 明河는 喩后而自傷其不見親寵也라
八月凉風天氣晶
하니萬里無雲河漢明
이라昏
南樓淸且淺
하고曉落西山縱復橫
이라洛陽城闕天中起
하니長河夜夜千門裏
라複道連甍共蔽虧
하니畵堂瓊戶特相宜
라前初汎濫
이요水精簾外轉逶迤
라倬彼昭回如練白
하니復出東城接南陌
이라南北征人去不歸
하니誰家今夜擣寒衣
오鴛鴦機上踈螢度
요烏鵲橋邊一雁飛
라雁飛螢度愁難歇
하니坐見明河漸微沒
이라已能舒卷任浮雲
하니不惜光輝讓流月
이라明河可望不可親
하니이라更將織女支機石
하여還訪成都賣卜人
이라注+還訪成都賣卜人 : 博物志에 有人乘槎하고 到天河하여 見婦人織하고 丈夫飮牛하다 還問嚴君平한대 君平云 某年某月에 客星이 犯斗牛하니 卽其人也라하니라
명하편
송지문
武后 때에 젊고 준걸스럽고 문재가 있는 자들은 대부분 北門學士에 보임되었다. 宋之問이 북문학사에 보임해 줄 것을 청하자, 무후는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송지문은 口過(입냄새)가 있다.” 하니, 송지문은 마침내 〈明河篇〉을 지어 자신을 비유하였다. 명하는 무후를 비유하고 총애를 받지 못함을 스스로 서글퍼한 것이다.
八月이라 서늘한 바람 天氣 맑으니
萬里에 구름 없어 銀河水 밝네.
저녁에 남쪽 누각 위에 나타나면 맑고 또 얕게 보이고
새벽에 西山에 질 때에는 縱橫으로 있다오.
洛陽의 城과 대궐 하늘 가운데 높이 솟으니
긴 은하수 밤마다 천 개의 宮門 가운데에서 보이네.
복도와 이어진 용마루에 함께 가리워져 반만 보이니
그림 그린 집의 玉門에 특히 서로 어울리네.
雲母 장막 앞에 처음에는 수없이 보이고
水精 주렴 밖에는 더욱 길게 이어져 있다오.
분명히 보이는 저 밝은 빛 흰 비단 같은데
다시 동쪽 城에 나와 남쪽 길거리와 이어지네.
남북으로 부역 간 사람 가고 돌아오지 못하니
뉘집에서 오늘밤 겨울옷 다듬이질 하는가.
원앙새 무늬 짜는 베틀 위에 외로운 반딧불 지나가고
烏鵲橋 가에 한 기러기 날아가네.
기러기 날고 반딧불 지나가니 시름 그치기 어려워
앉아서 밤 새우며 밝은 은하수 점점 희미해짐 보노라.
이미 펴지고 걷힘 뜬구름에 맡기니
밝은 빛 흐르는 달에게 빼앗김 아까워하지 않네.
밝은 은하수 바라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할 수 없으니
원컨대 뗏목 타고 한번 나루터 물으리라.
다시 織女가 베틀 받치던 돌 가져다가
成都에 점치는 사람 찾아가리라.
注+《博物志》에 “어떤 사람이 뗏목을 타고 天河에 이르러 부인은 베를 짜고 장부는 소에게 물을 먹이는 것을 보고는 돌아와서 卜術家인 嚴君平에게 묻자, 엄군평은 말하기를 ‘ 아무 해 아무 달에 객성이 南斗星과 牽牛星을 범하였으니, 바로 이 사람이다.’ 했다.” 하였다. 賞析이 시는《唐文粹》17권에 실려 있는 바, 제목 그대로 하늘의 은하수를 읊은 내용이다. 宋之問이 則天武后에게 北門學士로 제수해 줄 것을 바랬으나 허락받지 못하자, 이 시를 지어 스스로 위로하였다고 한다.
宋之問은 훌륭한 文才가 있었으나 則天武后에게 아첨하여 간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李德弘의《艮齋集》續集 4권에 “그 글이 淸麗하고 奇偉할수록 그 사람의 惡의 실상을 더욱 가릴 수가 없다.《唐書》本傳에 宋之問에 대한 本末을 낱낱이 서술하고 끝에 평하기를 ‘천하 사람들이 그의 행실을 미워한다.’고 하였으니, 史官이 참으로 악을 미워하는 의리를 잘 알았다.” 하였다.
成俔의《虛白堂集》風雅錄 1권과 金麟厚〈1510(중종 5)-1560(명종 15)〉의《河西全集》4권에도 明河를 소재로 한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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