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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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虢國夫人夜遊圖
蘇軾
唐明皇 貴妃楊氏三姊 封韓國虢國秦國三夫人하니 八姨 卽虢國夫人也 最承寵幸하니라
佳人自鞚玉花驄하니
翩如驚燕踏飛龍이라
金鞭爭道寶釵落하니
何人先入
宮中催花柳하니注+宮中፿鼓催花柳 : 太平廣記 明皇 好羯鼓催花하다 十月 花柳未吐러니 命取羯鼓하여 臨軒擊一曲하니 名春光好 及顧柳杏 皆已拆矣 上笑曰 不喚我作天公 可乎아하니라
玉奴絃花奴手注+玉奴絃索(삭)花奴手 : 楊妃 名玉環이니 玉奴 謂楊妃하니 妃善琵琶하니라 汝陽王璡 小名花奴 尤善羯鼓 帝嘗曰 速召花奴하여 將羯鼓來하라하니라
坐中八姨眞貴人이니
走馬來看不動塵이라
明眸皓齒誰復見
只有丹靑餘淚痕이라

當時亦笑張麗華
不知門外韓擒虎注+當時亦笑張麗華 不知門外韓擒虎 : 大業拾遺 載煬帝昏湎滋深이러니 嘗行吳公臺下라가 恍惚與陳後主遇하다 後主云 每憶張麗華 方憑臨春閣하여 作璧月詞未終 見韓擒虎躍領萬騎하고 直來衝入이라 殿下還此逸遊하니 曩時何見罪之深也잇가 帝叱之 不復見이라


虢國夫人이 밤에 노는 것을 그린 그림
소식
唐나라 明皇은 貴妃 楊氏의 세 자매를 韓國ㆍ虢國ㆍ秦國 세 夫人에 봉해주니, 八姨는 바로 괵국부인이다. 가장 총애를 받았다.
佳人이 스스로 玉花馬의 고삐 잡으니
날렵하기 놀란 제비처럼 飛龍에 오르는 듯하네.
금 채찍으로 길 다투다가 보배 비녀 떨어지니
어느 사람이 먼저 明光宮에 들어갔나.
궁중에서는 羯鼓로 꽃과 버들 재촉하니注+《太平廣記》에 “明皇이 갈고를 쳐서 꽃이 피는 것을 재촉하기를 좋아하였다. 시월에 꽃과 버들이 아직 피지 않았는데 갈고를 가져오라고 명하여 정자에 임하여 한 곡조를 타니, 이름을 春光好라 하였다. 그리고는 버드나무와 살구꽃을 돌아보니, 모두 이미 꽃봉우리를 터뜨렸으므로 임금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나를 天公(하느님)이라 부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했다.” 하였다.
玉奴가 비파 줄 타고 花奴가 갈고 친다오.注+楊貴妃의 이름은 玉環이니, 玉奴는 양귀비를 이르는 바 양귀비는 비파를 잘 탔다. 汝陽王 璡은 어렸을 적의 이름이 花奴이니, 갈고를 더욱 잘 연주하였다. 황제는 항상 말하기를 “속히 화노를 불러서 갈고를 가져오게 하라.” 하였다.
座中에 여덟째 분 참으로 貴人이니
말 달려 와서 보되 먼지도 일어나지 않네.
밝은 눈동자에 흰 이의 美人 누가 다시 볼런가
오직 丹靑 그림 속에 눈물 흔적 남아 있네.
人間은 俯仰하는 사이에 예와 이제 되니
吳公臺 아래에 雷塘의 길 생겼구나.
당시에 또한 陳後主가 張麗華에게 빠져
문밖에 韓擒虎가 이른 줄 몰랐던 것 비웃었다오.注+《大業拾遺》에 “煬帝가 술에 빠짐이 더욱 심하였는데, 일찍이 吳公臺 아래를 지나가다가 황홀하게 陳나라 後主와 만났다. 후주는 말하기를 ‘언제나 張麗華를 그리워하여 臨春閣에 기대어〈璧月詞〉를 짓다가 끝마치기 전에 韓擒虎가 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달려 와서 곧바로 쳐들어와 충돌했던 것을 기억하곤 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이렇게 편안하게 유람하시니, 지난번에는 어찌 나무라시기를 이렇듯 심하게 하셨습니까.’ 하였다. 황제가 꾸짖자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하였다.
賞析
괵국부인은 唐 玄宗 때 楊貴妃의 세 자매 중 가장 총애를 받은 여인이다. 虢國夫人夜遊圖는 張萱이 그린 그림으로, 당시 劉有方의 집에 많은 名畵가 있었는데 이 그림이 그중 가장 뛰어났으므로 소식이 이 그림을 보고 시를 지은 것이다. 陳 後主가 張麗華에게 빠져 나라를 망친 것을 인용하여 唐 玄宗이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安祿山의 난을 초래한 사실을 비판한 내용이다.


역주
역주1 明光宮 : 漢나라 궁전의 이름으로 未央宮 서쪽에 있었는 바, 금과 옥으로 발을 장식하여 밤낮으로 환했다 한다. 여기서는 唐 玄宗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역주2 羯鼓 : 오랑캐인 羯나라에서 들어온 북으로, 모양은 통같이 생겼으며 양쪽을 다 두드릴 수 있어 兩杖鼓라고 하였다.
역주3 : 삭
역주4 人間俯仰成今古 吳公臺下雷塘路 : 俯仰은 머리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는 것으로 짧은 시간을 이른다. 隋나라 煬帝가 죽자, 吳公臺 아래에 장례하였는데 뒤에 唐나라가 江南 지방을 평정하고 江都縣 동북 10리 지점인 雷塘으로 옮겼는 바, 곧 잠깐 사이에 隋나라가 멸망하여 황제의 무덤도 이장하게 된 故事를 들어 玄宗과 楊貴妃 一族 역시 이처럼 허무함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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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괵국부인야유도 520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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