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書歌行
李白(太白)
按 陸羽撰懷素傳에 云 懷素疎放하여 不拘細行하여 飮酒以養性하고 草書以暢志라 酒酣興發이면 遇寺壁里墻에 靡不書之하며 貧無紙일새 乃種芭蕉萬餘株하여 以供揮洒하니라
少年上人號
하니草書天下稱獨步
라墨池飛出北溟魚
요라八月九月天氣凉
하니酒徒詞客滿高堂
이라牋麻素絹排數廂
하니石硯墨色光
이라吾師醉後倚繩床
하여須臾掃盡數千張
이라飄風驟雨驚颯颯
이요落花飛雪何茫茫
고起來向壁不停手
하니一行數字大如斗
라恍恍如聞神鬼驚
이요時時只見蛟龍走
라左盤右蹙如飛電
하니狀同楚漢相攻戰
이라湖南七郡凡幾家
오家家屛障書題徧
이라이古來幾許浪得名
고老死不足數
하니我師此義不師古
라古來萬事貴天生
이니오
草書歌를 읊은 노래
이백(태백)
살펴보건대 陸羽가 찬한《懷素傳》에 “회소는 소탈하고 방탕하여 자잘한 행실에 구애받지 않았다. 술을 마셔 성품을 기르고 草書로 뜻을 펼쳤다. 술이 거나하여 흥이 나면 사찰의 벽과 마을의 담장에 닥치는 대로 모두 글씨를 썼으며 가난하여 종이가 없으므로 마침내 파초 만여 주를 심어서 붓을 휘갈기는데 제공하였다.” 하였다.
少年 上人은 호를 懷素라 하는데
草書가 천하에 독보라고 칭해지네.
먹물 못에서는 北溟의 물고기 날아 나오고
필봉은 中山의 토끼 다 잡아 없앴다오.
팔월과 구월에 天氣 서늘하니
술꾼과 詩客들 高堂에 가득하네.
삼베 종이와 흰 비단 여러 방에 늘어놓으니
宣州의 벼루돌에는 묵빛 빛난다오.
우리 스님 취한 뒤에 胡床에 기대어
삽시간에 수천 장 휩쓸어버리누나.
회오리 바람과 소낙비처럼 휙휙하는 소리에 놀라고
지는 꽃 나는 눈과 같으니 어이 그리 아득한가.
일어나 벽을 향해 손 멈추지 않고 써내리니
한 줄에 너댓 字 크기 말 만하네.
정신이 아득하여 鬼神의 놀라는 소리 듣는 듯하고
때때로 다만 蛟龍이 달리는 것만 보는 듯하다오.
왼쪽은 서리고 오른쪽은 끌어당겨 나는 번개 같으니
모양이 흡사 楚漢이 서로 공격하고 싸우는 듯하누나.
湖南의 일곱 郡 모두 몇 가호나 되는가
집집마다 屛風과 障子에 글 쓴 것 두루미쳤네.
王逸少와 張伯英은
예로부터 얼마나 헛되이 명성 얻었던가.
張顚은 늙어 죽어 굳이 꼽을 것 없으니
우리 스님의 이 筆法 옛것을 본받은 것 아니라오.
예로부터 萬事는 天然 귀하게 여기니
하필 公孫大娘의 渾脫舞 배울 것 있겠는가.
賞析이 시는《李太白集》8권에 실려 있는 바, 懷素에게 준 것으로, 회소에 대해서는《國史補》에 “長沙의 僧 회소는 초서를 잘하여 스스로 草聖三昧를 터득했다고 여겼다. 다 쓰고 버린 붓이 쌓이자 산 아래에 묻고 筆塚이라 했다.” 하였고,《宣和書譜》에는 “釋 회소의 字는 藏眞이며 俗姓은 錢으로 長沙 사람이다. 京兆로 옮겨와 玄奘三藏의 門人이 되었다. 처음에는 律法에 힘썼고 晩年에는 翰墨에 정진하여 다 쓰고 버린 붓이 무덤을 이루었다. 어느 날 저녁 여름 구름이 바람을 따르는 것을 보고 문득 筆意를 깨달아 草書三昧를 얻었다고 여겼다. 당시의 名流인 李白ㆍ戴叔倫ㆍ竇衆ㆍ錢起 등이 모두 시를 지어 찬미하였는데, 그의 필체를 형용하여 ‘驚蛇走虺’ ‘驟雨狂風’과 같다.”고 하였다. 회소는 筆札의 妙로써 張旭과 나란히 一世에 이름을 떨친 名人이다.
그런데 이 시의 작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蘇東坡는 이 시를 평하여 “〈초서가〉는 결코 이백이 지은 것이 아니다. 唐末 五代의 禪月을 모방하였으나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는 바, 禪月은 僧 貫休의 法號이다. 蕭士贇도 “초서가는 先儒 이백의 작품이 아니다.” 하였고, 王琦는 “일개 연소한 上人을 위하여 王羲之와 張旭을 貶下함으로써 그를 推獎하였으니 毁譽의 실제를 크게 잃었다. 張旭은 이백이 이미 酒中八仙으로 함께 노닐었고 또 시를 지어 ‘胸藏風雲世莫知’라고 칭찬한 바 있는데, 이 시에서 갑자기 ‘老死不足數’라고 폄하하였으니, 이백이 결코 무분별하게 이처럼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僞作임이 틀림없다.” 하였다.
徐居正〈1420(세종 2)-1488(성종 19)〉의《四佳集》52권 金子固에게 준〈草書行〉에 “굳이 顚長史가 술에 취해 머리에 먹물을 적셔 미친 짓 하는 것 배울 필요 없고, 굳이 公孫大娘이 劍器로 혼탈무 추는 것 볼 필요 없네.[不必學顚長史濡頭醉狂突 不必見公孫娘技劍舞混脫]”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전장사는 張芝를 가리킨 것으로 장사는 그의 관명이다.
이외에도 成俔〈1439(세종 21)-1504(연산군 10)〉의《虛白堂集》詩集 1권에〈草書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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