偪側行
杜甫(子美)
偪側何偪側
고我居巷南子巷北
이라可恨隣里間
에十日一不見顔色
이라으로行路難行澀如棘
이라我貧無乘非無足
이나昔者相遇今不得
이라實不是愛微軀
요又非關足無力
이라徒步翻愁官長怒
하니此心炯炯君應識
이라曉來急雨春風顚
하니睡美不聞鐘鼓傳
이라東家蹇驢許借我
하나泥滑不敢騎朝天
이라已令
하니注+已令請急會通籍 : 元帝紀通籍註에 籍者는 爲二尺竹牒하여 記其年紀名字物色하여 懸之官門하고 省禁相應이라야 乃得入也라男兒性命絶可憐
이라焉能終日心拳拳
고憶君誦詩神凜然
이라始花亦已落
하니況我與子非壯年
가街頭酒價常苦貴
하니方外酒徒稀醉眠
이라速宜相就飮一斗
니이라
궁핍함을 읊은 노래
두보(자미)
핍측하고 어이 그리 핍측한가
나는 거리의 남쪽에 살고 그대는 거리의 북쪽에 산다오.
한스럽게도 이웃과 마을 사이에
열흘에 한 번도 얼굴 보지 못하누나.
官馬를 관청으로 돌려보낸 뒤로는
길가기 어려움 가시밭길 같다오.
내 가난하여 탈것 없으나 발 없지 않건만
옛날에는 서로 방문하였는데 지금은 할 수 없네.
실로 하찮은 몸 아껴서가 아니요
또 발에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오.
徒步로 걷다가는 도리어 官長의 노여움 살까 걱정되니
이 마음 밝고 밝아 그대 응당 알리라.
새벽에 소낙비 내리고 봄바람 미친 듯이 불어대니
단잠들어 鐘鼓의 전하는 소리 듣지 못한다오.
동쪽집에서 저는 나귀 나에게 빌려 주기로 허락하였으나
진흙길 미끄러워 감히 타고 朝天할 수 없다오.
이미 말미를 청하여 마침 通籍을 하였으니
注+《元帝記》의 通籍 註에 “籍이라는 것은 두 자 되는 竹牒을 만들어서 출생 연도와 名字와 物色(얼굴의 모습 등 특징)을 기록하여 관청의 문에 매달고 省禁에서 서로 대조하여 부합하여야 비로소 관청에 들어갈 수 있다.” 하였다.男兒의 性命 참으로 아낄 만하네.
어찌 하루 종일 마음에 잊지 못하고 걱정하겠는가
그대 생각하며 詩 외니 정신이 늠연해지누나.
辛夷花 처음 피었다가 또한 이미 졌으니
더구나 나와 그대 壯年이 아니라네.
길거리의 술값 항상 너무 비싸 괴로우니
方外의 술꾼들 취하여 자는 이 적구나.
빨리 서로 만나 한 말 술 마셔야 할 것이니
마땅히 三百錢의 푸른 동전 있어야 하리.
賞析이 시는《杜少陵集》6권에 실려 있는 바, 乾元 元年(758) 봄에 두보가 左拾遺로 있을 때에 지은 것이다. 偪側은 궁핍하다는 뜻인 바, 이 시는 곤궁함을 노래한 것으로 제목 밑의 주에 “贈畢曜[필요에게 주다]” 라는 세 글자가 덧붙여져 있다. 畢曜는 글을 좋아하는 杜甫의 친구로 몹시 곤궁하게 살았는데, 해학적인 필치로 그의 곤궁한 생활을 묘사하고 친구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情을 읊은 것이다.
趙希逸〈1575(선조 8)-1638(인조 16)〉의《竹陰集》10권에 白善鳴에게 준〈偪側行〉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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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측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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