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瞻謫海南
黃庭堅(山谷)
謫은 貶官遠居也요 海南은 瓊崖儋萬四州也니 崖今爲吉陽軍이요 儋今南寧軍이요 萬今萬安軍이라 紹聖甲戌에 東坡謫授寧遠軍節度副使하여 惠州安置하니 坡居羅浮에 有詩云 報道先生春睡美하니 道人休打五更鍾이라한대 執政怒之하여 再貶儋州也하니라 時宰는 章惇子厚也라
子瞻謫海南
하니欲殺之
라하고細和淵明詩
라千載人
이요東坡百世士
라出處雖不同
이나氣味乃相似
라
子瞻(東坡)이 海南으로 귀양가다
황정견(산곡)
謫은 좌천하여 멀리 있는 것이요 해남은 瓊州ㆍ崖州ㆍ儋州ㆍ萬州의 네 고을이니, 애주는 지금의 吉陽軍이요 담주는 지금의 南寧軍이요 만주는 지금의 萬安軍이다. 紹聖 갑술년에 東坡가 영원군 절도부사로 좌천되어 惠州에 안치되니, 동파는 羅浮山에 있으면서 詩를 짓기를 “선생에게 알리기를 봄잠이 아름답다 하니 도인은 오경에 종을 치지 말라.[報道先生春睡美 道人休打五更鍾]” 하였다. 이에 執政大臣이 노하여 다시 담주로 좌천되었으니, 당시의 재상은 章惇 子厚였다.
子瞻이 海南으로 귀양가니
당시의 재상이 그를 죽이려 하였네.
惠州의 밥 배불리 먹고
陶淵明의 詩 가늘게 화답했네.
彭澤은 천년에 한 번 날 인물이요
東坡는 백세에 길이 전할 선비라오.
出處는 비록 똑같지 않으나
氣味는 마침내 서로 같구려.
賞析《山谷詩注》17권에 실려 있다. 본집에는 제목이 〈跋子瞻和陶詩〉로 되어 있는데, 그 주에 “동파가 도연명시에 화답하여 지은 것이 총 109편이다. 古人의 시에 화답한 것은 동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스승인 소식이 도연명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의 말미에 이 시를 붙임으로써 도연명과 소식을 아울러 존숭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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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첨적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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