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고문진보전집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石壕吏
杜甫
暮投石壕注+石壕 : 澠地 有二崤하니 東土崤 西石崤 石崤 卽石壕하니
有吏夜捉人이라
老翁踰墻走하고
老婦出門看이라
吏呼一何怒
婦啼一何苦
하니

一男附書至하니
二男新戰死
存者且偸生이요
死者長已矣
室中更無人하고
所有乳下孫이라
孫有母未去
出入無完裙이라
老嫗力雖衰
請從吏夜歸
急應河陽役하여
猶得備晨炊注+急應河陽役 猶得備晨炊 : 時 二節度屯兵於此하여 以禦慶緖 兵敗 無丁可抽 故老嫗請赴河陽之役하여 以供炊爨而已
夜久語聲絶하니
如聞泣幽咽이라
天明登前途하니
獨與老翁別이라


石壕의 아전
두보
저녁에 石壕村注+(민)땅에 두 崤山이 있으니, 동쪽은 土崤이고 서쪽은 石崤인 바, 석효가 바로 석호이다.에 투숙하니
아전이 밤에 사람을 잡으러 왔네.
늙은 노인 담 넘어 달아나고
늙은 할미 문에 나와서 보누나.
아전의 호통은 어찌 그리도 노여우며
할미의 울음은 어찌 그리도 괴로운가.
할미 앞으로 나와 말하는 것 들어보니
세 아들이 鄴城에서 수자리 살고 있다오.
한 아들이 부친 편지가 왔는데
두 아들이 새로운 싸움에서 戰死하였다 하오.
산 사람도 겨우 삶 이어가고
죽은 자는 영영 그만이라오.
집안에 다시 사람이 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가 있을 뿐이오.
손자 있어 어미는 떠나가지 못하고
출입할 만한 성한 치마도 없다오.
늙은 할미 氣力은 비록 쇠하였으나
부디 아전 따라 밤에 돌아가리다.
급히 河陽의 전쟁터에 나가게 되면
오히려 새벽밥은 지을 수 있을 것이오.注+이때에 두 節度使가 이 곳에 군대를 주둔하여 安慶緖를 막았는데, 군대가 패배하여 뽑을 만한 壯丁이 없으므로 늙은 할미가 河陽의 戰役에 달려가서 취사하는 일에 이바지하기를 청한 것이다.
밤 깊어지자 말소리 끊기니
눈물 흘리며 속으로 오열하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
날이 밝아 예전 길에 오르니
할미는 떠나고 홀로 늙은 노인과 작별하였네.
賞析
이 시는 《杜少陵集》7권에 실려 있는 바, 두보의 대표적인 社會詩로 꼽힌다. 시의 내용 중에 鄴城의 싸움이 언급된 것으로 볼 때 乾元 元年(758)이후에 지어진 것인 듯하다. 업성은 지금의 河南省에 있는 鄴縣의 성으로 安慶緖가 지키고 있었는데, 安祿山을 이어 일어난 史思明에게 건원 원년 10월 포위 당하였다가 두 달만에 풀려났으니, 鄴城의 싸움은 바로 이 때의 일이다. 예전에는 형제중에 한 사람만 從軍하였으나 이 때는 모든 壯丁을 전쟁터로 내몰아 노약자에게까지 미쳤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세 아들이 수자리 나가 두 아들이 전사하였으며 손자는 젖먹이이고 며느리는 변변한 치마가 없으며 노인은 담을 넘어 도망가고 할미는 밤에 끌려가는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읊은 시에서 작자의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역주
역주1 聽婦前致詞 : 金隆의《勿巖集》4권에 “저 할미가 관리 앞으로 나와 고하는 내용을 들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2 三男鄴城戍 : 鄴城은 일명 相州로 河南省 臨漳縣 서쪽에 있던 城인데 당시 史思明과 安祿山의 아들인 安慶緖 때문에 전쟁이 심하던 곳이다.
동영상 재생
1 석호리 531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