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溫公獨樂園
蘇軾(子瞻)
公居洛할새 於國子監之側에 得故營地하여 創獨樂園하니라
靑山在屋上
하고流水在屋下
라中有五畝園
하니라花香襲杖屨
하고竹色侵盞斝
라樽酒樂餘春
하고棋局消長夏
라洛陽古多士
하니風俗猶爾雅
라하니冠盖傾
라雖云與衆樂
이나中有獨樂者
라하니所貴知我寡
라注+所貴知我寡 : 老子云 知我者希면 則我貴矣라하니라先生獨何事
로四海望陶冶
오라持此欲安歸
오라라라
司馬溫公의 獨樂園
소식(자첨)
溫公이 洛陽에 거할 적에 국자감 곁에서 옛 營地를 얻어 獨樂園을 창건하였다.
푸른 산은 지붕 위에 있고
흐르는 물은 지붕 아래에 있네.
가운데에 五畝의 동산 있으니
꽃과 대나무 빼어나고 자연스럽다오.
꽃 향기는 지팡이와 신에 스며들고
대나무 빛은 술잔에 들어오누나.
항아리의 술로 남은 봄 즐기고
바둑판으로 긴 여름 소일한다오.
洛陽에는 옛부터 선비 많으니
風俗이 아직도 바름에 가까워라.
先生이 누워 세상에 나오지 아니하니
冠 쓰고 日傘 쓴 洛社의 貴人들 모두 사모하네.
비록 여러 사람과 즐긴다고 하나
그 중에는 홀로 즐기는 것 있다오.
재주가 온전하여도 德을 드러내지 않으니
귀한 것은 나를 알아주는 이 적은 거라오.
注+《老子》에 이르기를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면 내가 귀해진다.” 하였다.先生은 홀로 무슨 일로
四海에서 陶冶해 주기 바라는가.
아이들도 君實을 외우고
달리는 병졸들도 司馬를 아네.
이 명성 가지고 어디로 돌아가려 하오
造物主가 나를 놓아두지 않으리라.
名聲이 우리들 좇아다니니
이 병은 하늘이 죄수의 옷 입힌 것과 같다오.
손뼉 치며 선생을 웃노니
年來에 벙어리 흉내 내는구려.
賞析이 시는 熙寧 10년(1077) 5월 6일 徐州에서 지은 것으로 《蘇東坡集》3책 8권에 실려 있다. 소식과 司馬溫公은 오랜 정치상의 교우로서 소식이 온공에게 준 편지에 “오래도록 공이 새로 지은 글을 보지 못하여 홀연 〈獨樂園記〉를 꺼내 음미하였다. 문득 스스로 시 한 수를 지어 그런 대로 한번 웃음거리로 삼는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시가 지어진 배경을 알 수 있다. 사마온공의 독락원에 대해서는 宋나라 李格非(字 文叔)의 〈洛陽名園記〉에 “사마온공이 洛陽에 있을 때에 迂叟라 自號하고 그 정원을 獨樂園이라 칭하였다. 정원이 극히 협소하여 다른 정원에 비할 바가 못되었으니, 讀書堂은 수십 개의 서까래로 지은 작은 집이었고 澆花亭은 더욱 작았으며 弄水種竹齋는 그보다 더 좁았고 見山臺는 높이가 한 길에 불과하였다. 釣魚菴과 採藥圃는 다만 대나무 끝이 얽혀서 낙엽이 무성하고 잡초가 우거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온공이 스스로 지은 序와 여러 누대와 정자를 노래한 詩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사람들이 흠모하는 바가 정원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이 시 또한 독락원을 빌어 사마온공의 인품을 칭송한 것이다. 사마온공의〈독락원기〉는 본서 후집 6권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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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온공독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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