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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學而篤志하고 切問而 仁在其中矣니라
莊子曰 人之不學 如登天而無術하고學而智遠이면 如披祥雲而覩靑天하고 登高山而望四海니라
曰 玉不琢이면 不成器하고人不學이면니라
太公曰 不學이면이니라
曰 人不通古今이면 馬牛而襟裾니라
朱文公曰 이라도 不可因貧而廢學이요家若富라도 不可恃富而怠學이니이면 可以立身이요富若勤學이면이니라 惟見學者顯達이요 不見學者無成이니라學者 學者 乃世之珍이니라是故 學則乃爲 不學則爲小人이니後之學者니라
曰 學者하고 不學者로다 國之精糧이요 世之大寶로다如蒿如草兮하고 니라 他日 로다
學如不及이요恐失之니라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널리 배워서 뜻을 두텁게 하고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에서 생각해나가면 이 그 가운데 있다.”
[출전]논어論語》〈子張 육장六章전문全文이다.
[해설] 이 글은 《중용》 이십장二十章박학博學(널리 배움)‧심문審問(자세히 물음)‧명변明辨(분명하게 분석함)‧독행篤行(돈독하게 행함)이라는 ‘하늘의 도리인 을 우리가 성되게 갖기 위한 조목’[誠之之目]과 통한다.
널리 배워서 의지를 돈독하게 하고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에서 생각해나가면 을 행하는데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기에 종사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리지 않아 보존하는 것이 저절로 익숙해지므로 이 그 속에 있다는 말이다.
장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하늘에 오르려는데 재주가 없는 것과 같고, 배워서 지혜가 원대해지면 상서祥瑞로운 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며 산에 올라 사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해설]장자莊子》에 보이지 않는 이 글은, 배워서 지혜를 넓히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예기》에 말하였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의道義를 알지 못한다.”
[출전] “玉不琢이면 不成器하고 人不學이면 不知道하나니 是故로 古之王者 建國君民하시고 敎學으로 爲先하시다 :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를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옛날의 왕노릇하는 사람이 나라를 세우고 백성에 군림君臨할 때는 교학敎學을 우선으로 하였다.”《예기禮記》〈學記 일장一章
[해설]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 즉, 배우지 않으면 도의道義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태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움이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라.”
[해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어두워서 밤길을 가는 인생의 여정旅程과 같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한문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고금의 일을 통달하지 못하면 금수에 옷을 입힌 것과 같다.”
[출전]한창려전집韓昌黎全集》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보인다.
[해설] 사람이 고금의 일, 곧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알고 지금의 지식을 쌓지 못하면 사람답지 못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주문공이 말하였다. “집이 혹시 가난하더라도 가난 때문에 배우는 것을 버리지 말 것이요, 집이 만약 부유하더라도 부유한 것을 믿고 학문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가난한 자가 만약 부지런히 배운다면 입신立身할 수 있을 것이요, 부유한 자가 만약 부지런히 배운다면 이름이 더욱 빛날 것이니라. 오직 배운 자가 훌륭해지는 것을 보았으며, 배운 사람으로써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배움이란 것은 곧 몸의 보배요, 배운 사람은 곧 세상의 보배이다. 이 때문에 배우면 군자君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小人이 될 것이니, 후에 배우는 자는 마땅히 각기 힘써야 한다.”
[해설]빈부貧富에 관계없이 어떤 일이 있어도 부지런히 배워야 하고, 배움의 여부에 따라 군자와 소인으로 갈라진다는 간절한 의미를 담고 있다.
휘종황제가 말하였다. “배운 사람은 낟알 같고 벼 같지만, 배우지 않은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도다. 아아, 날알 같고 벼 같음이여! 나라의 좋은 양식이요, 온 세상의 보배로다.
쑥 같거나 풀 같음이여 밭을 가는 자가 미워하고 밭을 매는 자가 걱정스러워 한다. 다른 날 담장에 얼굴을 대한 듯 할 적에 〈배우지 않은 것을〉 뉘우친들 이미 늙었도다.”
[출전]증광현문增廣賢文》에도 “學者는 如禾如稻하고 不學者는 如蒿如草로다”가 보인다.
[해설] 이 글도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논어》에 말하였다. “배우기를 미치지 못할 것처럼 하고 〈때를〉 잃을까 두려워할지니라.”
[출전]논어論語》〈泰伯 십칠장十七章〉에 보인다.
[해설] 배움에 임하는 태도는 따라가지 못할 듯이 하고, 행여 공부하는 때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역주
역주1 勤學篇 : 이 편은 부지런히 學問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학문이란 내면적 수양공부이기보다는 객관적 지식 축적의 과정을 의미하는데, 가급적 광범위하게 배우고 긴밀히 물어 의문을 해결해야 미래에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조가 있다.
그리하여 학문의 방법, 범위, 방향 등에 대한 태도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역주2 子夏曰 : 통용본에는 ‘子曰’로 되어 있다.
역주3 近思 : 近思는 진리를 ‘자기 몸 가까이에서 생각해 찾아내는 것’이다. 朱熹와 呂祖謙이 함께 편찬한 책인 《근사록》은 여기서 따 온 것이다.
역주4 禮記 : 《詩經》․《書經》․《易經(周易)》․《春秋》와 더불어 五經 중의 하나인데, 禮法의 이론과 실제를 기록한 책이다. 그 구성은 〈曲禮〉,〈檀弓〉,〈王制〉,〈月令〉,〈曾子問〉 등 49편으로 되어 있는데, 《周禮》,《儀禮》와 함께 三禮의 하나이다.
그런데 《예기》에는 본래 周․秦․漢代의 여러 학자들의 禮說이 집대성되어 있었다. 사상 통일을 위한 진시황의 焚書坑儒로 불타버린 것을 前漢의 제9대 宣帝 때 劉向이 공자와 그의 제자 및 그 이후의 여러 학자들이 지은 131편의 古書를 수집하고 보충하여 214편으로 하였다. 이 때 禮學者 后蒼의 門人인 戴德과 그의 從兄인 戴聖이 있었는데 각기 《예기》를 정리하였던 바, 85편으로 된 대덕의 것을 《大戴禮記》(또는 大戴記, 大戴禮), 46편으로 된 대성의 것을 《小戴禮記》(또는 小戴禮, 小戴禮記)라 일컫는다. 그런데 후한 때 五經博士의 禮로 통용되다가, 唐 《五經正義》가 編著되었을 때는 戴聖의 《소대례》만 채택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예기》이다.
역주5 不知道 : 一本에는 ‘道’가 ‘義’로 되어 있다. 道義로 번역해도 의미는 통한다.
역주6 人生 : 그대로 번역해도 좋은데, ‘사람’을 가리킨다. 굳이 ‘사람이 살면서’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역주7 冥冥 : 어둑어둑한 상태, 곧 배우지 않아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분별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역주8 冥冥如夜行 : 이 같은 淸州本 원문과는 달리, 秋適本에는 如冥冥夜行으로 되어 있다. 추적본대로 한다면, “어둡고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 또는 “더듬더듬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로 번역하여야 한다.
《순자》〈解蔽 十三章〉에 다음의 글이 있는데, 본문의 이해를 위해 참고하자.
“ 冥冥而行者는 見寢石以爲伏虎也하고 見植木以爲立人也하나니 冥冥蔽其明也이니라:어둡고 어두운데 길을 가는 사람은 누워 있는 돌을 만나면 엎드린 호랑이로 생각하고, 꽂아 놓은 나무를 만나면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법인데, 어둠 그 분명한 것을 가리기 때문이다.”
역주9 韓文公 : 당나라 때의 유학자로, 이름은 愈, 자는 退之이고, 문공은 그의 시호이다. 이른바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여러 학문에 정통했고 벼슬은 兵部侍郞에 이르렀으며, 뒤에 禮部侍郞에 추증되었고 宋나라 때 昌黎伯에 追封되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柳宗元과 함께 古文의 부흥을 제창했다. 당나라 穆宗 長慶4년(신라 헌덕왕 4년 824년)에 57세로 죽었다. 저술로는 門人이 편찬한 《昌黎先生集》이 있다.
역주10 家若貧 : 여기서 若은 或과 통한다. 따라서 ‘혹’, ‘혹은’, ‘간혹’으로 표현하면 자연스럽다.
역주11 貧若勤學 : 여기서 若은 ‘만약’으로 보는 것이 좋다.
역주12 名乃光榮 : 여기서 乃는 행동의 결과 곧 ‘이에’로 새기면 된다.
역주13 乃身之寶 : 여기서 乃는 ‘곧’이라는 의미로 쓰여 주격의 역할을 한다.
역주14 君子 : 군자는 도덕을 겸비한 지배권의 사람이고, 그와 반대로 小人은 사회신분이나 도덕적 측면이 저급한 사람이다.
역주15 宜各勉之 : 부사 ‘宜’는 ‘宜當’으로, ‘마땅히 ~해야 한다’로 번역해야 하는데, 조동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역주16 徽宗皇帝 : 송나라 제 8대 임금(在位 기간은 25년, 1100~1125)으로, 성명은 趙佶(힐)이다. 그는 온갖 예술에 통하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으며 도교를 숭상하여 스스로 ‘敎主道君皇帝’라 일컬었다.’ 아들 欽宗과 함께 金나라에 잡혀가 宣和 4년(1122)에 五國城에서 죽었다. 오국성은 우리 나라 함경북도 會寧 서쪽, 강 건너 지금의 만주 吉林省 延吉縣의 雲頭山城으로, 거기에 휘종의 무덤이라는 皇帝陵이 있다.
역주17 如禾如稻 : 유용한 물건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18 如蒿如草 : 無用之物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19 如禾如稻兮 : 여기서 ‘兮’는 語氣辭로서 정지나 완만함을 나타내고 가끔 감정을 터뜨리는 작용을 지닌다. ‘아 ~여’의 뉘앙스가 담기도록 해석하면 좋다.
역주20 耕者憎嫌 : 농부가 매우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역주21 鋤者煩惱 : ‘耕者憎嫌’과 마찬가지로 농부가 매우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역주22 面墻 : 얼굴을 담장에 마주하고 서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아무일도 하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그의 아들 伯魚에게 《詩經》 학습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面墻(牆)’(술어+보어, 담장에 얼굴을 대다), 곧 ‘牆面’(술어+보어, 얼굴에 담장을 대다)이 나온다. 《논어》의 다음 글을 엿보자.
“공자가 伯魚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詩經》의 〈周南〉과 〈召南〉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얼굴을 담벼락에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 :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아 人而不爲周南召南이면 其猶正牆面而立也與인저”《논어》〈陽貨 十章〉
역주23 悔之已老 : 여기서 ‘之’는 不學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이다.
역주24 論語曰 : 淸州本에는 ‘論語云曰’으로, 秋適本에는 ‘論語曰’로 되어 있다. 출전인《論語》를 참고할 때 ‘子曰’로 고쳐야 한다. 《論語》는 四書의 하나이다. 책 이름은 공자가 論議하고 問答한 말씀임을 뜻한다.《논어》의 편자에 대해서는 공자의 자작이라는 설과 그 뒤의 문인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 중 曾子 계통의 사람의 편찬했다는 설이 타당하다고 보는 편이 많다. 《논어》는 한나라 때에는 古論․齊論․魯論의 세 가지가 있었는데, 지금 전하는 것은 學而․爲政․八佾․里仁․公冶長 등 20편으로 된 魯論이다.
역주25 : 추적본에는 ‘惟’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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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 근학편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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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 근학편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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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9. 근학편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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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9. 근학편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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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근학편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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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9. 근학편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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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9. 근학편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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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 근학편 99

명심보감 책은 2019.04.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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