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兮生我
하시고 母兮鞠我
하시니 인댄 이라하니 에 이 라
若
를 父母不許
어시든 則必
하여 이요 若終不許
라도 則亦不可
也
니라
每日
하여 하고 하여 하여 하며 昏則
하여 定其褥席
하고 하며 에 하여 應對恭敬
하고 하여 極盡其誠
하며 出入
에 必拜辭拜謁
이니라
今人
이 하고 不能以己力養其父母
하니 이면 則終無忠養之時也
리라
必須
하여 然後
에 니 이면 則雖不能幹家
나 亦當周旋補助
하여 而盡力得甘旨之具
하여 以
可也
니라
若心心念念이 在於養親이면 則珍味를 亦必可得矣리라
每念王延
이 隆冬盛寒
에 體無全衣
호되 而親極滋味
하여 也
니라
에 子不敢坐臥
하며 에 하며 에 子不敢上下馬 可也
니라
父母之志 若非害於義理
어든 則當
하여 요 는 則
하여 反覆開陳
하여 이니라
,
을 不忘父母然後
에 乃名爲孝
니 하며 하여 者
는 니라
무릇 사람들이 부모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되 효도하는 자가 심히 드무니, 이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연고이다.
“아버님!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 나를 기르시니, 그 은덕을 갚고자 할진댄 하늘 같아 다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자식이 생명을 받을 적에 성명과 혈육이 모두 어버이가 남겨 주신 것이다.
숨을 쉬어 호흡함에 기맥이 서로 통하니, 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요, 바로 부모께서 남겨 주신 기운이다.
그러므로 《시경詩經》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도다.” 하였으니, 부모의 은혜가 어떠한가.
어찌 감히 스스로 자기 몸을 사유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항상 이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생길 것이다.
[출전] ○ 父兮生我~生我劬勞 : 본래 《시경詩經》 〈소아小雅‧소민지십小旻之什‧육아蓼莪〉에 나오는 구절로 주周나라 유왕幽王의 학정에 시달린 백성들이 부모를 끝까지 잘 봉양하지 못함을 슬퍼하면서 지은 시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蓼蓼者莪 匪莪伊蒿 哀哀父母 生我劬勞 : 길고 긴 아름다운 쑥인줄 알았더니 아름다운 쑥이 아니라 나쁜 쑥이었구나. 슬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셨도다.
蓼蓼者莪 匪莪伊蔚 哀哀父母 生我勞瘁 : 길고 긴 아름다운 쑥인줄 알았더니 아름다운 쑥이 아니라 제비쑥이었구나. 슬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하고 병드셨도다.
缾之罄矣 維罍之恥 鮮民之生 不如死之久矣 無父何怙 無母何恃 出則銜恤 入則靡至 : 작은 병이 텅 비었으니 큰 병의 수치로다. 연약한 백성들의 삶이여, 죽음보다 못함이 오래되었구나! 아버지가 없으면 누구를 믿으며 어머니가 없으면 누구를 믿을까? 나가면 근심 품고 들어오면 이를 곳이 없네.
父兮生我 母兮鞠我 拊我畜我 長我育我 顧我復我 出入腹我 欲報之德 昊天罔極 :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길러 주시니 나를 어루만지고 나를 길러 주시며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키워 주시며 나를 돌아보고 나를 또 돌아보시며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나를 가슴에 품으시니 그 은혜를 갚고자 할진댄 저 하늘처럼 끝이 없구나.
南山烈烈 飄風發發 民莫不穀 我獨何害 : 남산은 높고 큰데 표풍은 빠르고 빠르다. 사람들은 좋지 않음이 없건마는 나만 홀로 어찌 해침을 당하는고.
南山律律 飄風弗弗 民莫不穀 我獨不卒 : 남산은 높고 큰데 표풍은 빠르고 빠르다. 사람들은 좋지 않음이 없건마는 나만 홀로 끝마치지 못하는구나.
[해설]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것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형성하는 관계이며, 그 관계가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 덕목은 무엇보다 자애慈愛와 효孝이다. 특히 나를 기준으로 볼 때 나를 있게 해 주신 것은 부모이므로,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덕목이 바로 효이다. 따라서 효란 부모의 몸에서 태어나고 또한 최초의 지극한 보살핌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것 같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지만, 은혜의 유무를 떠나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당위성에 귀착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효도를 행하는 자가 매우 드문데, 이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외형적으로는 매우 열등한 존재이다. 황소와 같은 센 힘을 지닌 것도 아니고, 호랑이와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을 가진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어미의 젖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나서 적어도 3년은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이 없으면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예로부터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3년간의 극진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 문명의 무분별한 유입과 산업화의 부산물인 핵가족화, 도시집중화 등은 인간 행복의 기본 조건인 가정조차 해체하고 있으며, 개인의 절대주의가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어, 어버이를 섬기는 ‘효孝’마저 구시대적인 가치관, 가부장적 봉건시대의 구습 정도로 매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학의 덕목인 오륜五倫 중에 가장 첫 번째 덕목이 바로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친함이 있다’고 해석하는데, 이때의 친親이란 단순히 ‘친하다’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의 친親이란 어떤 것인가? 이때의 친親이란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남의 몸에 피가 날 때 내 몸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내 마음이 아프게 되는 것인데,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그리고 부모에 대한 자녀의 마음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 역시, 《시경詩經》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식이 생명을 받을 적에 성명과 혈육이 모두 어버이가 남겨 주신 것이다. 숨을 쉬어 호흡함에 기맥이 서로 통하니, 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요, 바로 부모께서 남겨 주신 기운이다.”고 하여 부모와 자식이 마치 한 몸과 같은 존재임을 강조하고, 또다시 《시경詩經》의 구절을 인용하여 나를 낳느라고 수고롭고 고생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마땅히 효도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부모님의 사랑은 보답을 구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면 그만이다.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마음을 백분의 일이라도 생각한다면 아무리 작은 효행이라 할지라도, 매우 정성껏, 그리고 진정한 마음에서 효를 행해야 한다.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행실일지라도 감히 스스로 멋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부모에게 명령을 받은 뒤에 시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일 중에서 해도 좋을 것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거든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서 허락하신 뒤에 시행할 것이요,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또한 곧바로 자기 뜻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출전] ○ 毋敢自專 稟命而後行 : 《논어論語》 〈선진先進〉 21장章의 주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보인다. “의義를 들으면 진실로 마땅히 용감하게 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부형이 계시면 멋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부형의 명령을 받지 않고 행한다면 도리어 의를 해치게 된다.[聞義 固當勇爲然 有父兄在 則有不可得而專者 若不禀命而行 則反傷於義矣]”
[해설] 부모를 섬기는 사람은 부모가 아직 정정하여 집안일을 주관하고 있을 때에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아버지에게서 가장의 역할을 물려받은 경우라 하더라도 부모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사소한 일과 행동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부모에게 여쭈어 허락을 받은 다음에 행해야 한다. 또한 자식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할 수 있거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일 경우라도 부모가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도 자식은 부모가 틀렸다고 해서 멋대로 자기의 뜻을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공자도 아무리 부모가 돌아가신 뒤라 하더라도 “3년 동안 아버지의 도道를 고침이 없어야 효孝라 이를 수 있다.[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논어論語》 〈학이學而〉”고 하였으니,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이제는 내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식 된 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의義에 맞고 또 행해도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부모에게 공경스럽고 간절한 태도로 자세히 말씀드려 허락을 받은 뒤에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띠를 띠고서 부모의 침소로 나아가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더운지 추운지와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여쭙고, 날이 어두워지면 침소에 나아가 이부자리를 정해 드리고, 따뜻한지 서늘한지를 살펴보며, 낮 동안 받들어 모실 적에는 항상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용모를 공손히 하여 응대하기를 공경히 하고,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여 그 정성을 극진히 하며, 나가고 들어올 적에는 반드시 절하고 하직하며, 절하고 뵈어야 한다.
[출전] ○ 昏則詣寢所……察其溫凉 : 이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보인다. “사람의 자식이 된 자로서 지켜야 할 예는 겨울에는 부모를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 드리며, 저녁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정해 드리고 새벽에는 아침 문안을 살피며, 동기나 친구들과 싸우지 않는다.[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 在醜夷不爭]”
○ 좌우취양左右就養 : 원래 《예기禮記》 〈단궁상檀弓上〉에서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직책이나 일의 성격을 따지지 않고 봉양해야 한다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은미하게 간하고 범간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되 일정한 방향이 없으며, 수고롭게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삼년 동안 극진히 상을 치른다. 임금을 섬길 때에는 범간하고 은미하게 간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되 일정한 방향을 지켜야 하며, 수고롭게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부모님에 견주어 삼년상을 치른다. 스승을 섬길 때에는 은미하게 간하거나 범간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되 일정한 방향이 없으며, 수고롭게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마음으로 삼년상을 치른다.[事親有隱而無犯 左右就養無方 服勤至死 致喪三年 事君有犯而無隱 左右就養有方 服勤至死 方喪三年 事師無犯無隱 左右就養無方 服勤至死 心喪三年]”
[해설] 어버이를 섬길 때 하루 일과와 지켜야 할 행동거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의하면 “자식이 부모를 섬길 때에는 우선 첫닭이 울면 모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하며 머리 빗고 검은 비단으로 머리털을 싸매며, 비녀 꽂고 비단으로 묶어서 상투 짜며, 다발머리 위의 먼지를 털어버리며, 갓 쓰고 갓 끝을 드리우며, 현단복을 입고 무릎 덮개를 착용하며, 큰 띠를 띠고 홀을 꽂는다.[子事父母 鷄初鳴 咸盥漱 櫛縰笄總 拂髦冠緌纓 端韠紳 搢笏]” 그리고 나서 부모님 침소에 나아가 밤 사이의 안부를 묻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였다.
낮 동안에도 항상 공경하는 태도로 부모님을 응대하고, 봉양함에 정성을 극진히 하는 것이다. 또한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절하고 하직하고, 절하고 뵌다는 말은 곧 얼굴을 뵙고 가는 곳을 말씀드린 후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도 반드시 얼굴을 뵙고 돌아온 사실을 말씀드린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父母에게 양육을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부모를 봉양奉養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하여 어느덧 세월을 보낸다면 끝내 정성으로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몸소 집안일을 담당하여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자식의 직분이 비로소 닦여지는 것이니, 만일 부모님께서 굳이 들어주지 않으시면 비록 집안일을 담당하지는 못하나, 또한 마땅히 이리저리 움직여 도와드려서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얻어, 어버이의 입맛에 맞도록 함이 옳다.
만일 마음과 생각이 항상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있다면, 진미를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양 왕연王延이 한겨울 몹시 추운 때에 자기 몸에는 성한 옷이 없었으되 어버이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극진하게 대접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출전] ○ 왕연王延 : 진晉나라 때의 효자. 계모 복씨卜氏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성으로 섬겨 결국 복씨가 자신의 소생처럼 왕연을 사랑하게 되었다.《진서晉書》 〈효우전孝友傳‧왕연王延〉에 자세한 내용이 전한다.
[해설] 왕연王延은 중국 진晉나라 때 서하西河 사람이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3년 동안 읍혈泣血로 지내며 소년으로서 거의 성명性命을 잃을 지경이었는데 매양 그 어머니의 기월(忌月 : 제사가 든 달)이 되면 상중하 3순(三旬) 동안을 슬피 체읍涕泣하였다. 계모 복씨卜氏가 그러한 왕연을 무도無道하게 대우하여 항상 부들대나 썩은 삼대머리 따위로 입성을 만들어 주었으나 연은 알고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한 복씨가 한번은 엄동설한에 산 물고기가 생각나 연을 시켜 이를 구처해 오게 하였는데 연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매질을 하여 피가 흐르게 하였다. 연이 분수汾水로 찾아가 얼음판을 두드리며 우니 홀연히 길이 다섯 자나 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얼음 위로 튀어 올라왔다. 연이 이를 잡아 가지고 와 계모에게 드리니 계모가 이를 여러 날을 두고 먹어도 다하지 않았다. 이에 그 마음이 깨달음을 얻어 계모가 연을 어루만지기를 자기 소생과 같이 하였다. 연은 어버이 섬기기를 그 낯빛을 살펴 알아차리는 것으로 받들었는데 여름에는 부채질로 부모의 이부자리를 서늘하게 식히고 겨울에는 제 몸으로 이불을 따스하게 녹이면서 융동성한隆冬盛寒에도 겹옷을 갖추어 입은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버이에게는 좋은 음식으로 극진히 봉양했고 부모가 돌아가서는 묘소 곁에 여차廬次를 짓고 수호하였다.
이 이야기는 계모의 학대에 자식이 앙심으로 대응하는 대신 인효仁孝로 용해시킨 경우이다. 사람으로서 학대에 증오 대신 선량한 효도로 대응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한다면 이것은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름과 같은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왕연은 이미 소년에 도를 깨우친 자이다. 후세인이 기린 시는 다음과 같다.
孝道能敦在穉年 : 효도는 능히 어린 나이에 도타움을 이루고
良心一點出天然 : 좋은 마음 한 점은 천연으로 타고났네
三年泣血應堪憫 : 삼년 동안의 읍혈 사실 딱하고
忌月悲涕更可憐 : 제삿달 슬피 우니 다시 가련하네
繼母相看性不慈 : 계모의 슬하에 있는데 그 성품이 자애롭지 못하나
心存孝敬未曾衰 : 마음에 지닌 효도와 공경심 쇠하는 일이 없으니
汾濱哀哭魚隨躍 : 분수 물가에서 애처로이 울자 물고기 따라 나왔네
此意皇天后土知 : 그 뜻을 하늘과 땅이 알았음이라.
사람들 집안에서 부자간에 대부분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치니, 반드시 옛 습관을 통렬히 씻어 버려, 존경을 극진히 하여야 한다.
부모가 앉고 누우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앉거나 눕지 않으며, 부모가 손님을 접대하시는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사사로운 손님을 접대하지 않으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는 것이 옳다.
[출전] ○ 애유어경愛逾於敬 : 《논어論語》 〈위정爲政〉 7장章의 주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보인다. “호씨가 말하였다. ‘세속에서 부모를 섬김에 있어 봉양만 잘하면 족하다고 여겨 은혜에 친압하고 사랑을 믿어서, 점점 불경으로 흐르면 작은 잘못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자유子游는 성문聖門의 고제高弟이니, 반드시 이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나, 성인은 다만 그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칠까 두려워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깊이 경계하여 일깨우신 것이다.’[胡氏曰 世俗事親 能養足矣 狎恩恃愛 而不知其漸流於不敬 則非小失也 子游 聖門高弟 未必至此 聖人直恐其愛踰於敬 故 以是深警發之也]”
[해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손윗사람의 손아랫사람에 대한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른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부모 자식 간에는 공경보다는 언제나 사랑이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식의 불경한 태도에도 엄히 꾸짖지 못하여 자식의 잘못된 행동이 점점 커지게 되고, 결국에는 자식으로서 마땅히 앉거나, 눕거나, 손님을 접대하거나, 말을 타고 내리지 말아야 할 부모의 자리까지 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옳지 못한 옛 습관은 뼈아프게 씻어 버려 존경을 극진히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뜻이 만일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마땅히 부모의 뜻을 따라 부모의 뜻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받들어 순종하여 조금이라도 어기지 말 것이요, 만일 의리에 해로운 것이면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음성을 따뜻하게 하여 간해서, 반복하여 아뢰어 반드시 들어 따르시게 하기를 기약하여야 한다.
[출전] ○ 若其害理者……必期於聽 : 이 부분과 관련하여는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부모가 과실이 있거든 기운을 내리고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음성을 따뜻하게 하여 간한다. 간하는 말이 만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를 하여 기뻐하시면 다시 간한다. 부모님이 기뻐하지 않더라도 향당鄕黨‧주려州閭에서 죄를 얻기보다는 차라리 익숙히 간해야 할 것이니, 부모가 노하여 기뻐하지 않아서 종아리를 쳐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부모를 미워하고 원망하지 말 것이요, 더욱 공경하고 효를 하라.[父母有過 下氣怡色柔聲以諫 諫若不入 起敬起孝 説則復諫 不説 與其得罪於鄉黨州閭 寧孰諫 父母怒不説而撻之流血 不敢疾怨 起敬起孝]”
[해설] 인간의 도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와 하나 됨, 즉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오직 부모만이 나를 자기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므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부모의 사랑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하므로 그 몸을 잘 봉양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의義가 아닌 일을 행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뜻을 잘 봉양해야 하며, 끝으로 사랑이 계속 주어질 수 있도록 그 뜻을 잘 받들어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몸을 봉양하는 일이란 주로 음식으로 공양供養함을 말한다. 음식으로 봉양함이란 짐승 역시 사람에게 의지해서 먹으니, 또한 봉양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논어論語》 〈위정爲政〉에서 공자도 “지금의 효孝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한다고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개나 말에게도 모두 길러 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라고 했으니, 이는 불경不敬의 죄를 심하게 말한 것이며, 또한 깊이 경계한 것이다.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 무엇보다 그 뜻을 잘 받들어 한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부모가 의義에 어긋나는 일을 할 경우 그 일을 한 후에 가서 따지기보다는 의를 해치기 전에 불의不義의 조짐이 보일 때 은밀히 설득함으로써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부모는 아무리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하더라도, 간혹 자식이 자신의 불의不義를 지적할 경우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자식의 뜻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만 믿고 강력히 자신의 요구만을 주장하게 되면 오히려 부모 자식 간에 감정이 상하게 되어 가장 중요한 하나 됨을 잃을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부모의 불의不義를 모른 척할 수만도 없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부모로 하여금 또한 향당鄕黨‧주려州閭에서 죄를 얻게 하는 꼴이 되고 만다. 따라서 이럴 때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공경하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며, 부모를 섬기는 일이 비록 수고롭더라도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달아 부모가 노하여 기뻐하지 않아서 종아리를 쳐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부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부모는 결국 의義를 깨달아 자식의 뜻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아직 어려 세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자녀의 말을 듣지 않다가, 자녀가 점점 자라면서 더욱 훌륭해지면 자녀의 방법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부모께서 병환이 걸리시면 마음으로도 근심하고 얼굴빛으로도 근심하여, 다른 일은 버려두고 다만 의원에게 묻고 약을 짓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니, 병이 그치면 평소대로 돌아간다.
[출전] ○ 父母有疾……復初 :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 이 대목과 유사한 대목이 보인다. “부모님께서 병을 앓으시거든 자식은 근심하여 성인의 남자는 머리를 빗지 않으며, 다닐 때에는 두 팔을 벌리고 휘젓지 않으며, 바르지 않은 말을 하지 않으며, 거문고나 비파를 다루지 않으며, 고기를 먹되 입맛을 잃을 정도로 많이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되 얼굴빛이 변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며, 웃어도 잇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며, 성이 나더라도 남을 큰소리로 꾸짖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 것이니 병이 나으시면 도로 예전과 같이 한다.[父母有疾 冠者不櫛 行不翔 言不惰 琴瑟不御 食肉不至變味 飮酒不至變貌 笑不至矧 怒不至詈 疾止 復故]”
[해설] 부모가 병중에 있을 때 자식으로서 해야 할 행동거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의 행복 조건 중에 제일 먼저 꼽는 것은 가족의 건강이다. 부모 자식 할 것 없이 가족의 일원이 건강이 나빠지면 그 집안에는 자연 그늘이 드리우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부모의 경우는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자식이 병이 나서 아프면 자식의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하면서 간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자식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더더욱 의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불치병 내지 난치병이 아닌 경우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는 실정이다. 자식으로서 어릴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어 주시고, 심지어 대‧소변을 직접 맛으로 보고서 자식의 건강 상태를 살펴 주신 부모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께서 병환이 나셨을 때, 예전과 같이 만사를 제쳐 두고 병이 낫게 하기를 힘쓸 수는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마음으로 항상 근심하고 힘닿는 데까지 부모님의 병이 회복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한편 《근사록近思錄》 〈가도家道〉에는 정이程頤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부모나 자식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데 그들을 실력이 없는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자애롭지 않고 효성스럽지 않은 것과 같으니 어버이를 섬기는 자도 또한 반드시 의술을 알아야 된다.[病臥於床 委之庸醫 比之不慈不孝 事親者亦不可不知醫]”
부모나 자식이 병으로 누워 있을 때 실력이 없는 의사라든가 돌팔이 의사에게 치료를 맡긴다면 병이 더욱 악화되어 부모나 자식을 더욱 고생시킬 수 있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부모나 자식 된 도리로서는 마땅히 훌륭한 의사를 가려서 치료를 담당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를 전적으로 의사에게만 맡기고 자기는 부모의 질병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이나 의약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도 아니 된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담당하셨던 선생님께서 직접 겪으신 일로 선생님의 아들이 음식을 급히 먹다 체하게 되었는데, 병원으로 옮기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는 음식을 먹다 급체를 하게 되면 주로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따는 것만으로도 응급처치가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는 당시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고 했다. 이와 같은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부모나 자식이 병으로 누워 있을 때 전적으로 치료를 의사에게만 맡기려 하지 말고 작은 의술이나 응급조치법이라도 알아서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하는 사이와 잠깐 동안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은 뒤에야 효도한다고 이름 할 수 있으니, 저 몸가짐을 삼가지 않으며 말을 함에 법도가 없어 장난이나 치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는 모두 부모를 잊어버린 것이다.
[해설] 효孝란 날 이 세상에 있게 해 주고, 길러 주고, 가르쳐 주신 부모의 은혜에 보답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유학적인 입장에서는 ‘하나 됨’을 잘 유지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유학에서는 부모 자식 간을 한 몸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길게는 먼 조상도 내 몸을 통해 그 삶을 이어 가는 것이며, 부모 역시 나와 내 자식을 통해 그 삶을 이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유학의 영생관이며 내세관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따라서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일상생활 하는 사이 잠깐 동안이라도 부모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효라는 것도 억지로 힘써야 할 어려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행동거지를 함부로 하며, 언행이 법도가 없는 사람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한 사람이다. 어느 날 맹무백孟武伯이 효孝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의 질병만을 근심하시게 된다.[父母 唯其疾之憂] 《논어論語》 〈위정爲政〉” 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르지 않는 데가 없으나 오직 자식에게 질병이 있을까 염려하여 항상 근심함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자식이 이것을 본받아 부모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모든 그 몸을 지키는 것이 스스로 삼가지 않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한 뒤라야 효孝라고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버이를 섬기기를 오래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식 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듯 함이 옳다.
옛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옛날 사람은 하루의 봉양을 삼공과도 바꾸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른바 날을 아낀다는 것이 이와 같다.
[출전] ○ 古人一日養 不以三公換 : 왕안석王安石의 〈송교수재귀고우送喬秀才歸髙郵〉라는 시詩의 일부분이다.
送喬秀才歸髙郵 : 교수재가 고우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
薄飯午不羮 : 낮엔 거친 밥에 국도 없고
空爐夜無炭 : 밤엔 빈 화로에 탄도 없네.
寥寥日避席 : 쓸쓸히 햇볕은 자리를 비켜나고
烈烈風欺幔 : 뜨거운 바람은 휘장에 불어오네.
謂予勿惡此 : 나더러 이를 싫어하지 말라 하지만
何爲向子歎 : 어찌 그대 향하여 탄식하리오?
長年客塵沙 : 오랜 세월 풍진 세상에 객이 되어
無婦助親爨 : 손수 밥 지어줄 마누라조차 없구나.
寒暄慰白首 : 인사를 나누며 흰머리를 위로해 주는
我弟纔將冠 : 우리 아우는 겨우 약관의 나이.
邅迴嵗又晩 : 머뭇거리면 시간 또한 늦으리니
想見淮湖漫 : 넘실대는 회호에서 만날 걸 생각하네.
古人一日養 : 옛사람은 하루 봉양을
不以三公換 : 삼공과도 바꾸지 않았다네.
田園在戮力 : 전원은 힘쓰기에 달렸으니
且欲歸鋤灌 : 또한 돌아가 농사지으려 하네.
行矣子誠然 : 그대 참으로 가려는가
光陰未宜翫 : 세월은 갖고 노는 것 아니네.
負米力有餘 : 쌀을 지고도 힘이 남는다면
能無讀書伴 : 책 읽는 친구가 없을 수 있겠나.
[해설]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매우 슬픈 곡소리가 들려 왔다. 공자가 수레를 몰아 앞으로 나아가 보니 고어臯魚라는 사람이 베옷을 입고 낫을 품고는 길가에서 울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그대는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슬피 곡을 하는 것인가?” 고어가 말하였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 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시니[子欲養而親不待], 돌아가시고 나면 뵈올 수 없는 것이 어버이입니다. 저는 이 길로 세상을 하직하고 싶습니다.”라고 하고는 그 자리에서 말라 죽어버렸다. 이에 공자가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말을 명심해 두거라. 훈계로 삼을 만하지 않느냐?” 이에 공자의 문인들 중에 공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버이를 섬긴 자가 13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는 실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참으로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잠시도 우리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 속에 부모님도 역시 나이가 들고 늙고 결국은 돌아가시게 된다. 그러므로 자식 된 자는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정성을 다하여 언제나 날이 모자란 듯이 해야 하는 것이다.
1
사친장 제5
502
2
사친장 제5
295
3
사친장 제5
424
4
사친장 제5
600
5
사친장 제5
232
6
사친장 제5
154
7
사친장 제5
129
8
사친장 제5
137
9
사친장 제5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