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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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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歸吉하니 利貞하니라
漸은 여자의 시집감이 吉하니, 貞함이 이롭다.
[注]漸者 漸進之卦也 止而巽하니 以斯適進하여 漸進者也 以止巽爲進故 女歸吉也 進而用正故 利貞也
‘漸’은 점점 나아가는 卦이다. 그치고 공손하니 이로써 나아가서 점점 나아가는 자이다. 그치고 공손함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여자의 시집감이 吉한 것이요, 나아가면서 바름을 쓰기 때문에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疏]正義曰:漸者, 不速之名也. 凡物有變移, 徐而不速, 謂之漸也.
正義曰:[漸] 속히 하지 않는 이름이다. 모든 물건에 變移가 있는데 서서히 하고 속히 하지 않음을 ‘漸’이라 한다.
‘女歸吉’者, 歸, 嫁也, 女人生有外成之義, 以夫爲家, 故謂嫁曰歸也.
[女歸吉] ‘歸’는 시집감이니, 여인은 태어나면 밖에서 이루어지는 뜻이 있어 남편을 자기 집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시집감을 일러 ‘돌아감[歸]’이라고 한다.
婦人之嫁, 備禮乃動, 故漸之所施, 吉在女嫁, 故曰“女歸吉”也.
부인의 시집감은 혼례를 갖추어야 비로소 動하므로 점점함을 베푸는 바는 그 吉함이 여자의 시집감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자의 시집감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利貞] 여자의 시집감에 점점함이 있어서 禮의 바름을 얻었다. 그러므로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漸 之進也
〈彖傳〉에 말하였다. “漸은 나아감으로 가는 것이니,
[注]之於進也
나아감으로 가는 것이다.
正義曰: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漸’은 서서히 動하는 이름이니, 나아가고 물러가서는 안 되나 다만 卦를 ‘漸’이라 이름한 것은 나아감으로 가기 때문이다.
女歸吉也 進得位하니 往有功也 進以正하니 可以正邦也 其位 剛得中也
여자의 시집감이 吉하다. 나아가 지위를 얻었으니 가면 功이 있는 것이요, 나아가기를 바름으로써 하니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요, 그 자리는 剛이 中을 얻었다.
[注]以漸進得位也
점점 나아가 지위를 얻은 것이다.
[疏]‘女歸吉也’至‘得中也’
經의 [女歸吉也]에서 [得中也]까지
○正義曰:‘女歸吉也’者, 漸漸而進之, 施於人事, 是女歸之吉也.
○正義曰:[女歸吉也] 점점 나아가니, 이것을 사람의 일에 베풀면 바로 여자의 시집감이 吉한 것이다.
‘進得位 往有功也 進以正 可以正邦也’者, 此就九五得位剛中, 釋利貞也.
[進得位 往有功也 進以正 可以正邦也] 이는 九五가 지위를 얻고 剛이 中에 있음을 가지고 ‘利貞’을 해석한 것이다.
言進而得於貴位, 是往而有功也, 以六二適九五, 是進而以正, 身旣得正, 可以正邦也.
‘나아가 귀한 지위를 얻었으니 이는 가서 功이 있는 것이요, 六二로서 九五에 가니 이는 나아가기를 바름으로써 한 것이니, 몸이 이미 바름을 얻었으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其位剛得中’者, 上言進得位, 嫌是兼二ㆍ三ㆍ四等,
[其位剛得中] 이 卦는 爻가 모두 正位를 얻었는데, 위에서 “나아가 지위를 얻었다”고 말하였으므로, 이 말이 六二ㆍ九三ㆍ六四를 겸한 것인가 혐의된다.
故特言剛得中, 以明得位言, 唯是九五也.
그러므로 특별히 “剛이 中을 얻었다.”라고 말하여, 지위를 얻었다는 말이 오직 九五임을 밝힌 것이다.
止而巽하니 動不窮也
그치고 공손하니, 動함에 곤궁하지 않다.”
[疏]正義曰:此就二體, 廣明漸進之美也. 止不爲暴, 巽能用謙, 以斯適進, 物无違拒, 故能漸而動, 進不有困窮也.
正義曰:이는 두 體를 가지고 점점 나아가는 아름다움을 넓혀 밝힌 것이다. 그치면 갑작스럽지 않고 공손하면 능히 겸손함을 쓰니, 이로써 나아가면 물건(사람)이 어기고 막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점점 動하여 나아감에 곤궁함이 있지 않은 것이다.
象曰 山上有木이니 君子以居賢德善俗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山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漸卦이니, 君子가 賢德이 있는 자를 지위에 거하게 하고 풍속을 좋게 한다.”
[注]賢德以止巽則居하고 風俗以止巽이면 乃善이라
賢德은 그침과 공손함으로써 하면 지위에 거하고, 풍속은 그침과 공손함으로써 하면 마침내 善해진다.
[疏]正義曰:‘山上有木 漸’者, 木生山上, 因山而高, 非是從下忽高, 故是漸義也.
正義曰:[山上有木 漸] 나무가 산 위에서 자라니, 산을 인하여 높아진 것이요 아래로부터 갑자기 높아진 것이 아니니, 진실로 ‘점점 나아감’의 뜻인 것이다.
‘君子以居賢德善俗’者, 夫止而巽者, 漸之美也. 君子求賢, 得使居位, 化風俗, 使淸善,
[君子以居賢德善俗] 그치고 공손함은 점점함의 아름다움이다. 君子가 賢者를 구하여 그로 하여금 지위에 있게 해서 풍속을 교화하여 깨끗하고 善하게 하니,
若以卒暴威刑, 物不從矣.
모두 모름지기 文德이 있고 겸손하고 낮추어서 점점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갑작스러움과 위엄과 형벌을 사용하면 물건(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
鴻
初六 鴻漸于干이니 小子厲하여 有言하나 无咎니라
初六은 기러기가 江岸[干]으로 점점 나아가니, 小子에게 위태로움을 당하여 비방하는 말이 있으나 허물이 없다.
[注]鴻 水鳥也 適進之義 始於下而升者也 以鴻爲喩之 又皆以進而履之 爲義焉이라
‘鴻’은 水鳥이다. 나아가는 뜻은 아래에서 시작하여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러기로써 비유하였고, 또 여러 爻가 모두 나아가 밟는 것으로 뜻을 삼았다.
始進而位乎窮下하고 又无其應하니 若履于干하여 危不可以安也 始進而未得其位하면 則困於小子하여 窮於謗言이라
처음 나아가 맨 아래에 자리하고 또 應이 없으니, 마치 江岸을 밟아서 위태로워 편안하지 못함과 같다. 처음 나아가 지위를 얻지 못하면 小子(小人)에게 시달림을 당하여 비방하는 말에 곤궁하다.
曰 小子厲하여 有言也라하니라 困於小子讒諛之言이나 未傷君子之義 曰 无咎也라하니라
그러므로 “小子에게 위태로움을 당하여 비방하는 말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小子의 비방하는 말에 곤궁하나 君子의 의리를 손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初六鴻漸’至‘无咎’
經의 [初六鴻漸]에서 [无咎]까지
○正義曰:[鴻漸于干] ‘鴻’은 水鳥이다. ‘干’은 물가이다. 점점 나아가는 道는 아래로부터 높은 데로 올라간다. 그러므로 취하여 비유하였으니, 기러기의 飛行은 아래에서 위로 나아간다.
初之始進, 未得祿位, 上无應援, 體又窮下, 若鴻之進于河之干, 不得安寧也, 故曰“鴻漸于干”也.
初六이 처음 나아가서 祿과 지위를 얻지 못하고 위에 應援이 없으며 體가 또 맨 아래이니, 마치 기러기가 江岸에 나아가서 편안함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江岸으로 점점 나아간다.”라고 한 것이다.
‘小子厲 有言 无咎’者, 始進未得顯位, 易致陵辱, 則是危於小子, 而被毁於謗言, 故曰“小子厲, 有言.”
[小子厲 有言 无咎] 처음 나아감에 현달한 지위를 얻지 못해서 능욕을 불러오기가 쉬우니, 이는 小子에게 위태로움을 당하여 비방하는 말에 훼방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小子에게 위태로움을 당하여 비방하는 말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小人의 말이 君子의 의리를 손상하지 못하므로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小子之厲 義无咎也
〈象傳〉에 말하였다. “小子의 위태로움은 의리상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義无咎’者, 備如經釋.
正義曰:[義无咎] 經文의 해석과 모두 같다.
六二 鴻漸于磐이라 飮食衎衎하니하니라
六二는 기러기가 磐石으로 점점 나아간다.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니, 吉하다.
[注]磐 山石之安者 進而得位하고 居中而應하니 本无祿養이어늘 進而得之하여 其爲歡樂하여 願莫先焉이라
‘磐’은 산의 돌이 〈넓적하여〉 편안한 것이다. 나아가 지위를 얻고 中에 거하고 應하여 본래 祿으로 길러줌이 없는데 나아가 얻으니, 歡樂하여 소원을 얻음이 이보다 더할 수가 없는 것이다.
[疏]‘六二鴻漸’至‘衎衎吉’
經의 [六二鴻漸]에서 [衎衎吉]까지
○正義曰:磐, 山石之安者也. 衎衎, 樂也. 六二進而得位, 居中而應, 得可安之地, 故曰“鴻漸于磐.”
○正義曰:‘磐’은 산의 돌이 편안한 것이다. ‘衎衎’은 즐거워하는 것이다. 六二가 나아가서 지위를 얻고 中에 거하고 應하여 편안할 수 있는 땅을 얻었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磐石으로 점점 나아간다.”라고 한 것이다.
旣得可安之地, 所以飮食衎衎然, 樂獲吉福也, 故曰“鴻漸于磐, 飮食衎衎, 吉”也.
이미 편안할 수 있는 땅을 얻었으니, 이 때문에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면서 吉함과 福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磐石으로 점점 나아간다.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니,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磐山石之安者也’
○注의 [磐山石之安者也]
○正義曰:馬季云“山中石磐紆, 故稱磐也.” 鴻是水鳥, 非是集於山石陵陸之禽, 而爻辭以此言鴻漸者,
○正義曰:馬季長(馬融)이 말하기를 “山中의 돌이 넓적하게 퍼져 있으므로 ‘磐’이라 칭하였다.”라고 하였다. ‘鴻’은 水鳥이니 산의 돌과 구릉[陵]과 높은 평지[陸]에 앉는 새가 아닌데 爻辭에서 이것을 ‘鴻漸’이라 말한 것은,
蓋漸之爲義, 漸漸之於高, 故取山石陵陸, 以應漸高之義, 不復係水鳥也.
漸의 뜻이 점점 높은 데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산의 돌과 구릉과 높은 평지를 취하여 점점 높아지는 뜻에 應하고, 다시 水鳥로 한정해두지 않은 것이다.
象曰 飮食衎衎 不素飽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함’은 평소 배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正義曰:[不素飽] ‘素’는 예전[故]이니, 예전에는 祿으로 길러줌이 없다가 오늘날 얻었으므로 소원을 얻음이 이보다 더할 수가 없는 것이다.
九三 鴻漸于陸이니 夫征不復하면 婦孕不育하여하나 利禦寇하니라
九三은 기러기가 높은 평지[陸]로 점점 나아가니, 남편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婦人이 남의 자식을 임신하여 기르지 못해서 凶하나 寇難을 막는 것은 이롭다.
[注]陸 高之頂也 進而之陸하여 與四相得하여 不能復反者也
‘陸’은 높은 頂上이니, 나아가 높은 평지로 가서 六四와 더불어 서로 뜻이 맞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자이다.
夫征不復 樂於邪配 則婦亦不能執貞矣 非夫而孕故 不育也
‘남편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음’은 간사한 짝을 좋아하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婦人 또한 정조를 지키지 못하는바, 제 남편이 아니면서 임신했으므로 자식을 기르지 못하는 것이다.
三本艮體어늘 而棄乎群醜하고 與四相得하여 遂乃不反하여 至使婦孕不育하니
九三은 본래 艮體인데 자기 무리를 버리고 六四와 더불어 서로 뜻이 맞아 마침내 돌아오지 아니하여 부인으로 하여금 남의 자식을 임신하여 기르지 못하게 함에 이르렀으니,
見利忘義하고 貪進忘舊 凶之道也 異體合好하여 順而相保하여 物莫能間이라 利禦寇也
이익을 보고 의리를 잊으며 나아가기를 탐하여 옛것을 잊음은 凶한 道이다. 다른 體로서 화합하고 좋아해서 順하여 서로 保全해서 물건(사람)이 이간질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寇難을 막음이 이로운 것이다.
[疏]‘九三鴻漸于陸’至‘利禦寇’
經의 [九三鴻漸于陸]에서 [利禦寇]까지
○正義曰:‘鴻漸于陸 夫征不復 婦孕不育 凶’者, 陸, 高之頂也. 九三居下體之上, 是進而得高之象, 故曰“鴻漸于陸”也.
○正義曰:[鴻漸于陸 夫征不復 婦孕不育 凶] ‘陸’은 높은 頂上이다. 九三이 下體의 위에 거하였으니, 이는 나아가서 높은 것을 얻은 象이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높은 평지로 점점 나아간다.”라고 한 것이다.
進而之陸, 无應於上, 與四相比, 四亦无應, 近而相得.
나아가서 높은 평지로 가면 위에 應이 없고, 六四와 서로 가까운데 六四 또한 應이 없어서 가까워 서로 뜻이 맞는다.
三本是艮體, 與初ㆍ二相同一家, 棄其群類, 而與四合好, 卽是夫征而不反復也.
九三은 본래 艮體이니, 初六ㆍ六二와 서로 한 집에 함께 살았는데 자기 무리를 버리고 六四와 화합하여 좋아하면 이는 바로 남편이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이미 간사한 짝과 좋아하면 아내 또한 그 정조를 보전하지 못하니, 제 남편이 아니면서 임신하였으므로 자식을 기르지 못하는 것이다.
見利忘義, 貪進忘舊, 凶之道也, 故曰“夫征不復, 婦孕不育, 凶”也.
이익을 보고 의리를 잊으며 나아가기를 탐하여 옛 것을 잊음은 凶한 道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婦人이 남의 자식을 임신하여 기르지 못해서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利禦寇] 다른 體로서 화합하고 좋아할 적에는 이간질하는 寇難이 있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화목하고 서로 順해서 서로 保全하고 편안히 하여 사람들이 능히 이간질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寇難을 막음을 씀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陸高之頂也’
○注의 [陸高之頂也]
○正義曰:‘陸 高之頂也’者, 爾雅云“高平曰陸.” 故曰“高之頂也.”
○正義曰:[陸 高之頂也] ≪爾雅≫에 “높고 평평한 곳을 陸이라 한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높은 정상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夫征不復 離群醜也 婦孕不育 失其道也일새요 利用禦寇 順相保也
〈象傳〉에 말하였다. “‘남편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음’은 무리를 떠난 것이요, ‘부인이 남의 자식을 임신하여 기르지 못함’은 그 道를 잃었기 때문이요, ‘寇難을 막음을 씀이 이로움’은 順하여 서로 保全하는 것이다.”
[疏]正義曰:‘離群醜’者, 醜, 類也, 言三與初ㆍ二, 雖有陰陽之殊, 同體艮卦, 故謂之群醜也.
正義曰:[離群醜] ‘醜’는 무리이니, 九三이 初六ㆍ六二와 더불어 비록 陰陽의 다름이 있으나 똑같이 艮卦의 體이므로 ‘群醜’라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失其道也’者, 非夫而孕, 孕而不育, 失道故也.
[失其道也] 제 남편이 아니면서 임신하였으므로 임신하여 기르지 못함은 道를 잃었기 때문이다.
‘順相保也’者, 謂四以陰乘陽, 嫌其非順, 然好合相得, 和比相安, 故曰“順相保也.”
[順相保也] 六四가 陰으로서 陽을 타고 있어서 順하지 않을까 혐의하나 좋아하고 화합하여 서로 뜻이 맞고 화목해서 서로 편안하다. 그러므로 “順하여 서로 보전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六四 鴻漸于木하여 或得其桷이니 无咎리라
六四는 기러기가 나무로 점점 나아가서 그 서까래를 얻으니 허물이 없으리라.
[注]鳥而之木 得其宜也 遇安棲也 雖乘于剛이나 志相得也
새가 나무로 감은 그 마땅함을 얻은 것이요, ‘서까래를 얻음’은 편안히 깃들 곳을 만난 것이니, 비록 剛을 타고 있으나 뜻이 서로 맞는 것이다.
正義曰:[鴻漸于木] 새가 나무로 감은 그 마땅함을 얻은 것이다. 六四가 나아가서 지위를 얻었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나무로 점점 나아간다.”라고 한 것이다.
‘或得其桷 无咎’者, 桷, 榱也. 之木而遇堪爲桷之枝, 取其易直可安也.
[或得其桷 无咎] ‘桷’은 서까래이다. 나무로 가서 서까래가 될 만한 가지를 만남은 평탄하고 곧아서 편안할 수 있음을 취한 것이다.
六四가 九三과 더불어 서로 뜻이 맞아서 順하여 서로 보전한다. 그러므로 “그 서까래를 얻었다.”라고 한 것이다. 이미 더불어 서로 뜻이 맞으면 剛을 탄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或得其桷 順以巽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그 서까래를 얻음’은 順하고 공손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順以巽也’者, 言四雖乘三體, 巽而,
正義曰:[順以巽也] 六四가 비록 九三의 體를 타고 있으나 공손하여 아래(九三)가 붙고
三雖被乘, 上順而相保, 所以六四得其安栖, 猶順以巽也.
九三이 비록 탐을 당하였으나 위가 順하여 서로 보존함을 말하였으니, 이 때문에 六四가 편안히 깃듦을 얻어서 오히려 순하고 공손한 것이다.
九五 鴻漸于陵이니 婦三歲不孕하나 終莫之勝하여하니라
九五는 기러기가 구릉[陵]으로 점점 나아가니, 婦人이 3년 동안 임신하지 못하나 끝내 이길 수가 없어서 吉하다.
[注]陵 次陸者也 進得中位 而隔乎三ㆍ四하여 不得與其應合이라 婦三歲不孕也
‘陵’은 陸의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나아가서 中位을 얻었으나 九三과 六四에 막혀서 그 應과 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婦人이 3년 동안 임신하지 못한 것이다.
各履正而居中하여 三ㆍ四不能久塞其塗者也 不過三歲하여 必得所願矣
〈六二와 九五가〉 각각 正位를 밟고 中에 거하여 九三과 六四가 오랫동안 그 길을 막지 못하니, 3년을 넘지 않아서 반드시 소원을 얻을 것이다.
進以正邦하여 三年有成하니 成則道濟 不過三歲也
나아가 나라를 바로잡아서 3년 만에 이룸이 있으니, 이루면 道가 구제된다. 그러므로 3년을 넘지 않는 것이다.
[疏]‘九五鴻漸于陵’至‘終莫之勝吉’
經의 [九五鴻漸于陵]에서 [終莫之勝吉]까지
○正義曰:‘鴻漸于陵’者, 陵, 次陸者也. 九五進于中位, 處於尊高, 故曰“鴻漸于陵.”
○正義曰:[鴻漸于陵] ‘陵’은 陸의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九五가 中位로 나아가서 높은 곳에 처하였으므로 “기러기가 구릉으로 점점 나아간다.”라고 한 것이다.
‘婦三歲不孕’者, 有應在二, 而隔乎三ㆍ四, 不得與其應合, 是二ㆍ五情意, 徒相感說, 而隔礙不交, 故曰“婦三歲不孕”也.
[婦三歲不孕] 應이 六二에 있으나 九三과 六四에 막혀서 그 應과 합하지 못하니, 이는 六二와 九五의 情意가 다만 서로 감동하여 좋아할 뿐이요, 막혀서 사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婦人이 3년 동안 임신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終莫之勝 吉’者, 然二與五合, 各履正而居中, 三ㆍ四不能久塞其路, 終得遂其所懷, 故曰“終莫之勝, 吉”也.
[終莫之勝 吉] 그러나 六二가 九五와 더불어 합하여 각각 正位를 밟고 中에 거하여 九三과 六四가 오랫동안 그 길을 막지 못해서 끝내 그 所懷(소원)를 얻는다. 그러므로 “끝내 이길 수가 없어서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進以正邦’至‘不過三歲’
○注의 [進以正邦]에서 [不過三歲]까지
○正義曰:‘進以正邦 三年有成’者, 九五居尊得位, 故曰“進以正邦”也.
○正義曰:[進以正邦 三年有成] 九五가 높은 자리에 거하고 지위를 얻었다. 그러므로 “나아가 나라를 바로잡는다.”라고 한 것이다.
三年有成, 則三ㆍ四不敢塞其路, 故曰“不過三歲”也.
3년 만에 이룸이 있으면 九三과 六四가 감히 그 길을 막지 못한다. 그러므로 “3년을 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終莫之勝吉 得所願也
〈象傳〉에 말하였다. “‘끝내 이길 수 없어서 吉함’은 所願을 얻는 것이다.”
[疏]正義曰:‘得所願也’者, 所願在於與合好, 旣各履中正, 无能勝之, 故終得其所願也.
正義曰:[得所願也] 所願이 六二와 더불어 합하여 좋아함에 있는데 이미 각각 中正을 밟고 있어서 능히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끝내 그 소원을 얻는 것이다.
上九 鴻漸于陸이니 其羽可用爲儀하여하니라
上九는 기러기가 점점 陸으로 나아감이니, 그 깃털을 사용하여 儀表로 삼을 수가 있어서 吉하다.
[注]進處高絜하여 不累於位하여 无物可以屈其心而亂其志하여 峨峨淸遠하여 儀可貴也
나아가 고결한 곳에 처하여 지위에 얽매이지 않아서 그 마음을 굽히고 그 뜻을 어지럽힐 만한 물건이 없어서 높고 높아 깨끗하고 멀어서 儀表가 귀할 만하다.
曰 其羽可用爲儀하여이라하니라
그러므로 “그 깃털을 사용하여 儀表로 삼을 수가 있어서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鴻漸于陸’者, 上九最居上極, 是進處高潔, 故曰“鴻漸于陸”也.
正義曰:[鴻漸于陸] 上九와 九三이 모두 卦의 위에 처하였으므로 모두 ‘陸’이라 칭한 것이다. 上九가 가장 上의 極에 거하였으니, 이는 나아가 고결한 곳에 처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점점 陸으로 나아간다.”라고 한 것이다.
‘其羽可用爲儀 吉’者, 然居无位之地, 是不累於位者也.
[其羽可用爲儀 吉] 지위가 없는 자리에 거하였으니, 이는 지위에 얽매이지 않는 자이다.
可貴可法也, 故曰“其羽可用爲儀, 吉”也.
높은 곳에 처하여 능히 지위로써 스스로 얽매이지 않으면 그 깃털을 사용하여 물건의 儀表로 삼을 수 있으니, 귀할 만하고 법으로 삼을 만하다. 그러므로 “그 깃털을 사용하여 儀表로 삼을 수가 있어서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必言羽者, 旣以鴻明漸, 故用羽表儀也.
반드시 ‘깃털’을 말한 것은 이미 기러기로 漸進함을 밝혔기 때문에 깃털을 사용하여 儀表로 삼은 것이다.
象曰 其羽可用爲儀하여 不可亂也
〈象傳〉에 말하였다. “‘그 깃털을 사용하여 儀表로 삼을 수가 있어서 吉함’은 어지럽힐 수가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不可亂也’者, 進處高潔, 不累於位, 无物可以亂其志也.
正義曰:[不可亂也] 나아가 고결한 곳에 처하여 지위에 얽매이지 않아서 그 뜻을 어지럽힐 만한 물건이 없는 것이다.
역주
역주1 利貞者……故曰利貞也 : 朱子는 “卦됨이 아래에 그치고 위에 공손하니 갑자기 나아가지 않는 뜻이 되고, 여자가 시집가는 象이 있으며, 또 二爻로부터 五爻에 이르기까지 자리가 모두 正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 占이 女歸의 吉함이 되고 또 利貞하라고 경계한 것이다.[爲卦止於下而巽於上 爲不遽進之義 有女歸之象焉 又自二至五 位皆得正 故其占爲女歸吉而又戒以利貞也]”라고 하여, ‘利貞’을 경계의 말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여러 卦에 ‘利貞’이 많이 있는데 이 말을 놓은 것이 혹 똑같지 않으니, 不正한 의심에 걸려 경계한 경우가 있으며, 일이 반드시 貞하여야 마땅함을 얻는 경우가 있으며, 이로운 까닭은 貞이 있기 때문임을 말한 경우가 있다. 이른바 不正한 의심에 걸려 경계했다는 것은 損卦의 九二爻가 이것이니 陰에 처하고 說에 있으므로 마땅히 貞하라고 경계한 것이요, 일이 반드시 貞하여야 마땅함을 얻는다는 것은 大畜卦가 이것이니 쌓는 바가 貞함이 이로움을 말한 것이요, 이로운 까닭은 貞이 있기 때문임을 말했다는 것은 漸卦가 이것이니 女歸가 吉한 이유는 이와 같이 貞正함이 이로움을 말한 것이니, 이는 固有한 것이요 경계를 베푼 것이 아니다.[卦多有利貞 而所施或不同 有涉不正之疑而爲之戒者 有其事必貞 乃得其宜者 有言所以利者 以其有貞也 所謂涉不正之疑而爲之戒者 損之九二是也 處陰居說 故戒以宜貞也 有其事必貞 乃得宜者 大畜是也 言所畜利於貞也 有言所以利者以其有貞者 漸是也 言女歸之所以吉 利於如此貞正也 蓋其固有 非設戒也]”라고 하여, ‘利貞’을 ‘女歸가 이로운 까닭은 貞正하기 때문이다.’로 해석하였다.
역주2 漸是徐動之名……是之於進也 : ‘之進也’의 ‘之’를 王弼과 孔穎達은 ‘가다’로 訓하였으나, 程伊川은 “漸의 뜻과 같이하여 나아가면 女歸의 吉함이니, 바르고 점점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如漸之義而進 乃女歸之吉也 謂正而有漸也]”라고 하여 ‘之’를 어조사로 보았고, 朱子는 “‘之’자는 의심컨대 衍文이거나 혹 ‘漸’자인 듯하다.[之字 疑衍 或是漸字]”라고 하였다.
역주3 此卦爻皆得位 : 陰爻가 陰位에 거하고 陽爻가 陽位에 거함이 ‘正位를 얻음’이 되는바, 漸卦는 初六과 上九를 제외하고 모든 爻가 正位를 얻었다. 初六과 上九가 正位를 얻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 것은, 王弼과 孔穎達은 初爻와 上爻에는 陰陽의 定位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주4 (言)[之] : 저본에는 ‘言’으로 되어 있으나, 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5 君子以居賢德善俗者……漸以進之 : ‘居賢德善俗’을 王弼은 ‘賢德이 있는 사람을 君相이 止巽으로써 대하면 그를 지위에 있게 할 수 있고, 풍속을 君相이 止巽으로써 대하면 백성들이 善해짐’의 뜻으로 풀이하였으나, 孔穎達은 ‘賢德者를 지위에 거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풍속을 善하게 만들도록 함’의 의미로 보아 일관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君子 자신이 賢德에 머물러 풍속을 善하게 함’으로 해석하였고, 朱子는 “두 가지를 모두 마땅히 점점하여 나아가야 한다. 의심컨대 ‘賢’자가 衍文이거나 혹 ‘善’자 아래에 脫字가 있는 듯하다.[二者 皆當以漸而進 疑賢字衍 或善下有脫字]”라고 하였다. 이는 ‘居賢德’과 ‘善俗’이 對가 맞지 않기 때문에 말한 것으로, ‘賢’을 衍文으로 처리하면 ‘居德’과 ‘善俗’이 對가 되고, ‘善’자 아래에 脫字가 있는 것으로 보면 ‘居賢德’과 ‘善風俗’이 역시 對가 이루어진다. 王肅本에는 ‘善風俗’으로 되어 있다.
역주6 鴻水鳥也……自下而上也 : 기러기를 비유로 취한 이유에 대하여, 程伊川은 “기러기란 물건은 오는 것이 때가 있고 무리에 질서가 있으니, 때와 질서를 잃지 않는 것은 漸이 된다.[鴻之爲物 至有時而群有序 不失其時序 乃爲漸也]”라고 하였고, 朱子는 “기러기의 날아감은 질서가 있고 나아감은 점진함이 있다.[鴻之行有序而進有漸]”라고 하였다.
역주7 小子厲有言无咎者……故曰无咎也 : 王弼과 孔穎達은 ‘小子’를 小人으로 보아 ‘小子厲 有言 无咎’를 ‘小人의 비방하는 말에 의하여 위태로워지나 小人의 말이 君子의 의리를 해칠 수 없기 때문에 허물이 없음’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小子는 의리를 밝게 살피지 못하므로 初六을 위태롭게 여겨 말이 있으나 의리에는 허물이 없음’의 의미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이 初에 거함은 지극히 낮은 것이요, 陰의 재질은 지극히 약한데 위에 應援이 없으니, 이러한 처지로 나아감은 常情에 걱정하는 바이다. 君子는 깊이 알고 멀리 비추어 義理에 편안한 바와 時事에 마땅한 바를 알아서 대처하여 의심하지 않으나, 小人(어린 사람)과 幼子는 오직 已然의 일만 보고 衆人의 지혜를 따를 뿐이어서 능히 이치를 밝게 살피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하여 말이 있는 것이니, 아랫자리에 있음은 나아감이 있는 것이요 柔를 씀은 조급하지 않은 것이요 應이 없음은 능히 漸進하는 것이어서 義에 진실로 허물이 없음을 알지 못한다.[六居初 至下也 陰之才 至弱也 而上無應援 以此而進 常情之所憂也 君子則深識遠照 知義理之所安 時事之所宜 處之不疑 小人幼子 唯能見已然之事 從衆人之知 非能燭理也 故危懼而有言 蓋不知在下所以有進也 用柔所以不躁也 无應所以能漸也 於義自无咎也]”
역주8 (少)[也] : 저본에는 ‘少’로 되어 있으나, 위아래의 문맥으로 볼 때 ‘少安’의 뜻이 없으며, 아래 疏에 “注磐山石之安者也”라고 되어 있는바, 이에 의거하여 ‘也’로 바로잡았다.
역주9 (面)[而] : 저본에는 ‘面’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而’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0 (良)[長] : 저본에는 ‘良’으로 되어 있으나, 馬融의 字는 ‘季長’이므로 ‘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1 不素飽者……故願莫先焉 : 程伊川과 朱子는 ‘素’를 ‘空’으로 訓하였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素飽는 ≪詩經≫의 ‘素飡’이란 말과 같으니, 얻기를 道에 맞게 하면 헛되이 배부름이 되지 아니하여 처함이 편안할 것이다.[素飽 如詩言素飡 得之以道 則不爲徒飽而處之安矣]” ‘素飡’은 ‘素餐’으로도 표기하는바, 하는 일 없이 공밥만 먹는 것으로 ≪詩經≫ 〈魏風 伐檀〉에 “저 君子여! 공밥을 먹지 않도다.[彼君子兮 不素餐兮]”라고 보인다.
역주12 夫旣樂於邪配……故不育也 : ‘婦孕不育’을 王弼과 孔穎達은 ‘九三이 邪配인 六四에게 가서 돌아오지 않으므로 正配도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남의 아이를 임신해서 기르지 못함’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婦’를 六四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夫는 陽이니, 夫는 九三을 이른다. 九三이 만약 正道를 지키지 않고 六四와 합하면 이는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을 모르는 것이다. 征은 감이요 復은 돌아옴이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義理를 돌아보지 않음을 이른다. 婦는 六四를 이르니, 만일 부정하게 합하면 비록 임신하더라도 기르지 못하니, 그 道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와 같으면 흉하다.[夫 陽也 夫 謂三 三若不守正 而與四合 是知征而不知復 征 行也 復 反也 不復 謂不反顧義理 婦謂四 若以不正而合 則雖孕而不育 蓋非其道也 如是則凶也]”
역주13 利禦寇者……故曰利用禦寇也 : ‘利禦寇’를 王弼과 孔穎達은 ‘九三과 六四가 서로 順하여 서로 保全해서 사람들이 이간질하지 못하므로 적을 막음이 이로움’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禦寇’를 ‘도리가 아니면서 오는 자를 막음’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三의 이로운 바는 적을 막음에 있으니, 도리가 아니면서 오는 자가 적이다. 正道를 지켜 邪를 막음은 이른바 적을 막는다는 것이니, 적을 막지 못하면 스스로 잃어 흉할 것이다.[三之所利 在於禦寇 非理而至者寇也 守正以閑邪 所謂禦寇也 不能禦寇 則自失而凶矣]”
역주14 或得其桷 : 王弼과 孔穎達은 모두 經文의 ‘或得其桷’을 그대로 인용하였으나 ‘或’에 대한 해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或’을 어조사로 본 듯하다. 그리하여 大全本에는 ≪程傳≫과 ≪本義≫를 따라 “鴻漸于木이니 或得其桷이면”으로 懸吐하였으나, 여기에서는 ‘鴻漸于木’과 ‘或得其桷’을 일관된 것으로 보고 위와 같이 懸吐하고 ‘或’을 해석하지 않았다.
역주15 鴻漸于木者……故曰鴻漸于木也 : 王弼과 孔穎達은 ‘기러기가 나무로 감은 마땅함을 얻은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鴻’을 ‘새’의 범칭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인바, 이 내용은 六二 爻辭의 疏에 보인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와 반대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漸의 때를 당하여 六四가 陰柔로 剛陽의 위에 나아가 점거하고 있으니, 陽은 剛하여 위로 나아간다. 어찌 陰柔의 아래에 편안히 처하겠는가. 그러므로 六四의 처지는 편안한 곳이 아니니, 마치 기러기가 나무에 나아간 것과 같은 것이다. 나무는 점점 높아 불안한 象이 있으니, 기러기는 발가락이 연결되어 나뭇가지를 잡지 못하므로 나뭇가지에 깃들지 않는다.[當漸之時 四以陰柔 進據剛陽之上 陽 剛而上進 豈能安處陰柔之下 故四之處非安地 如鴻之進于木也 木 漸高矣而有不安之象 鴻趾連 不能握枝 故不木棲]”
역주16 (二)[三]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7 或得其桷无咎者……故曰无咎 : 王弼과 孔穎達은 ‘或得其桷’을 ‘六四가 九三과 뜻이 맞아 서로 보전함이 마치 편안히 깃들 곳(서까래)을 만난 것과 같음’의 의미로 해석하고, ‘无咎’를 ‘六四와 九三이 뜻이 맞으므로 六四에게 剛을 탄 허물이 없음’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 經文을 해석하면서 九三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桷’을 평평한 나뭇가지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四의 처지가 본래 위태로우나 혹 스스로 安寧한 道를 얻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니, 기러기가 나무에 있어 본래 편안하지 않으나 혹 평평한 가지를 얻어 처하면 편안한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六四는 正位에 거하고 巽順하니, 마땅히 허물이 없을 자이나 반드시 得失을 말한 것은 得失을 인하여 그 뜻을 밝히려고 한 것이다.[謂四之處本危 或能自得安寧之道 則无咎也 如鴻之於木 本不安 或得平柯而處之 則安也 四居正而巽順 宜无咎者也 必以得失言者 因得失以明其義也]”
역주18 (附下)[下附] : 저본에는 ‘附下’로 되어 있으나, 錢本ㆍ宋本에 의거하여 ‘下附’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9 (三)[二] : 저본에는 ‘三’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20 上九與三……故並稱陸 : 孔穎達은 여기에서의 ‘陸’을 九三의 ‘陸’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모두 ‘逵(규)’로 바꾸어 해석하였는바, 程伊川은 “安定胡公(胡瑗)이 陸을 逵라 하였으니, 逵는 구름길이니 허공의 가운데를 이른다. ≪爾雅≫에 ‘아홉 군데로 통달함을 逵라 한다.’ 하였으니, 逵는 통달하여 막히고 가림이 없는 뜻이다.[安定胡公以陸爲逵 逵 雲路也 謂虛空之中 爾雅 九達謂之逵 逵 通達无阻蔽之義也]”라고 하였고, 朱子는 “胡氏와 程氏가 모두 ‘陸은 마땅히 逵가 되어야 하니 구름길을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이제 韻을 맞추어 읽어봄에 진실로 옳다.[胡氏程氏皆云 陸當作逵 謂雲路也 今以韻讀之 良是]”라고 하였다.
역주21 其羽可用爲儀……則其羽可用爲物之儀表 : ‘其羽可用爲儀’의 ‘儀’를 王弼과 孔穎達은 모두 ‘儀表’로 해석하였으나, 程伊川은 ‘儀法’으로 보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上九가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으니, 또 더욱 위로 나아가면 이는 지위의 밖으로 벗어난 것이니, 다른 때에 있으면 過함이 되나 漸의 때에는 巽의 極에 거하여 반드시 그 차례가 있을 것이니, 기러기가 앉는 곳을 떠나 구름이 떠 있는 공중을 나는 것과 같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常事의 밖으로 超逸하는 자이다. 나아가 이곳에 이르러 漸進함을 잃지 않음은 어진 이와 이치를 통달한 자의 높은 행위이다. 그러므로 儀法으로 삼을 수 있어 吉한 것이다.[上九在至高之位 又益上進 是出乎位之外 在他時則爲過矣 於漸之時 居巽之極 必有其序 如鴻之離所止而飛于雲空 在人則超逸乎常事之外者也 進至於是 而不失其漸 賢達之高致也 故可用爲儀法而吉也]”
반면 朱子는 “儀는 羽旄(우모)와 旌纛(정독)의 꾸밈이다. 上九는 지극히 높아 사람의 지위 밖으로 나오고, 그 깃털을 사용하여 儀飾으로 만들 수 있으니, 지위가 비록 지극히 높으나 无用함이 되지 않는 象이다.[儀 羽旄旌纛之飾也 上九至高 出乎人位之外 而其羽毛可用以爲儀飾 位雖極高 而不爲无用之象]”라고 하여 儀式에 사용하는 물건으로 해석하였다.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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