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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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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震은 형통하니,
[注]懼以成則하니 是以亨이라
두려워하여 법칙을 이루니, 이 때문에 형통한 것이다.
[疏]正義曰:震, 動也. 此象雷之卦, 天之威動, 故以震爲名.
正義曰:‘震’은 動함이다. 이는 우레를 형상한 卦이니, 하늘의 위엄이 진동하므로 ‘震’으로 이름한 것이다.
震旣威動, 莫不驚懼, 驚懼以威, 則物皆整齊, 由懼而獲通, 所以震有亨德, 故曰“震亨”也.
‘震’이 이미 위엄을 진동하면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기를 위엄으로써 하면 물건(사람)들이 모두 整齊되어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형통함을 얻으니, 이 때문에 震에 형통한 德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震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震來虩虩이면 笑言啞啞이리라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다.
[注]震之爲義 威至而後 乃懼也 曰 震來虩虩이라하니 恐懼之貌也
震의 뜻은 위엄이 이른 뒤에 비로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라고 하였으니, 〈‘虩虩’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震者 驚駭怠惰하여 以肅解慢者也 震來虩虩 恐致福也 笑言啞啞 後有則也
震은 태만한 자들을 놀라게 하여 풀어지고 태만한 자를 엄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함은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하는 것이요,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 啞啞, 笑語之聲也. 震之爲用, 天之威怒, 所以肅整怠慢,
匕
正義曰:‘虩虩’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啞啞’은 웃고 말하는 소리이다. 震의 쓰임은 하늘이 위엄으로 怒하는 것이니, 태만한 자를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이다.
施之於人事, 則是威嚴之敎, 行於天下也.
그러므로 빠르게 우레가 치고 바람이 맹렬할 때에 君子가 이로 인하여 용모를 바꾸니, 이것을 사람의 일에 베풀면 위엄의 가르침이 천하에 행해지는 것이다.
故震之來也, 莫不恐懼, 故曰“震來虩虩”也. 物旣恐懼, 不敢爲非, 保安其福, 遂至笑語之盛, 故曰“笑言啞啞”也.
이 때문에 우레가 올 적에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라고 한 것이다. 물건이 이미 두려워하여 감히 나쁜 짓을 하지 못하면 그 福을 편안히 보존하여 마침내 웃고 말하는 盛함에 이른다. 그러므로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震驚百里 不喪匕鬯하나니라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에 숟가락과 鬱鬯酒(울창주)를 잃지 않는다.
[注]威震驚乎百里 則是可以不喪匕鬯矣 所以載鼎實이요 香酒 奉宗廟之盛也
위엄이 있는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에 숟가락과 鬱鬯酒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匕’는 솥에 담겨진 것을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는 것(숟가락)이요, ‘鬯’은 향기로운 술이니, 宗廟의 성대한 제사를 받드는 것이다.
[疏]‘震驚百里不喪匕鬯’
經의 [震驚百里不喪匕鬯]
○正義曰:匕, 所以載鼎實, 鬯, 香酒也, 奉宗廟之盛者也.
○正義曰:‘匕’는 솥에 담겨진 것을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고, 鬯은 향기로운 술이니, 宗廟의 성대한 제사를 받드는 것이다.
長子則正體於上, 將所傳重, 出則撫軍,
震卦를 사람에게 베풀면 또 長子가 되니, 長子는 위에서 몸을 바루어 장차 重함(宗統)을 전해서 나가면 군대를 鎭撫하고
威震驚於百里, 可以奉承宗廟, 彝器粢盛, 守而不失也, 故曰“震驚百里, 不喪匕鬯.”
지키면 나라를 감독하여 위엄 있는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하더라도 宗廟를 받들어서 彝器(종묘에서 常用하는 제기)의 粢盛을 지키고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에 숟가락과 鬱鬯酒를 잃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威震驚乎百里’至‘宗廟之盛也’
○注의 [威震驚乎百里]에서 [宗廟之盛也]까지
○正義曰:先儒皆云“雷之發聲, 聞乎百里. 故古帝王制國, 公侯地方百里, 故以象焉.”
○正義曰:先儒들은 모두 “우레가 소리를 냄이 百里에 들린다. 그러므로 옛날 帝王이 제후국을 제정할 때에 公과 侯의 땅이 넓이가 사방 百里였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竊謂天之震雷, 不應止聞百里, 蓋以古之啓土, 百里爲極. 文王作繇在殷時, 明長子威震於一國, 故以百里言之也.
내가 생각건대, 하늘의 진동하는 우레는 단지 百里에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니, 옛날 땅을 열어줌에 百里를 極으로 삼았다. 文王이 繇辭(卦辭)를 지은 것이 殷나라 때에 있었으니, 長子의 위엄이 한 나라에 진동함을 밝혔기 때문에 百里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匕 所以載鼎實 鬯 香酒’者, 陸績云“匕者, 棘匕, 橈鼎之器.” 先儒皆云“
鼎冪鼎冪
[匕 所以載鼎實 鬯 香酒] 陸績이 말하기를 “‘匕’는 가시나무 숟가락이니, 솥에 있는 것을 들어 올리는 기구이다.”라 하였고, 先儒들은 모두 말하기를 “‘匕’는 모양이 ‘畢’과 비슷한데 다만 두 갈래가 아닐 뿐이다.
以棘木爲之, 長三尺, 刊柄與末. 是也. 用棘者, 取其赤心之義.”
가시나무로 만들어 길이가 3尺이고 자루와 끝을 깎았으니, ≪詩經≫에 ‘굽어 있는 가시나무 숟가락[有捄棘匕]’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가시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속이 붉은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祭祀之禮, 先烹牢於鑊, 旣納諸鼎而加冪焉, 將薦, 乃擧羃而以匕出之, 升于俎上,
제사의 禮에는 먼저 犧牲을 가마솥[鑊]에서 삶고 솥[鼎]에 넣어 冪(덮개)을 가했다가 장차 올리려 할 때에 비로소 冪을 들어서 숟가락으로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故曰“匕, 所以載鼎實”也. 鬯者, 鄭玄之義, 則爲秬黍之酒, 其氣調暢, 故謂之鬯.
그러므로 “숟가락은 솥에 담겨진 것을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鬯’은, 鄭玄의 뜻은 ‘검은 기장으로 술을 만들면 그 향기가 조화롭고 通暢한다. 그러므로 鬯이라 한다.’는 것이고, ≪毛詩≫의 〈毛傳〉에는 鬯을 香草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王度記≫에 “天子는 鬯을 쓰고 諸侯는 薰을 쓰고 大夫는 난초를 쓴다.”라고 하였으니, 이 準例를 가지고 말하면 ‘鬯’은 풀임이 분명하다.
今特言匕鬯者, 鄭玄云“人君於祭祀之禮,
畢
尙牲薦鬯而已, 其餘, 不足觀也.”
지금 특별히 ‘匕’와 ‘鬯’을 말한 것에 대해, 鄭玄이 말하기를 “人君이 제사하는 禮에 있어서 희생을 숭상하고 鬯酒를 올릴 뿐이요, 그 나머지는 족히 볼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彖曰 震하니 震來虩虩 恐致福也 笑言啞啞 後有則也 震驚百里 驚遠而懼邇也
〈彖傳〉에 말하였다. “震은 형통하니,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함’은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하는 것이요,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두려워한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 ‘우레가 百里를 놀라게 함’은 멀리 있는 자를 놀라게 하면 가까이 있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니,
[注]威驚乎百里 則惰者懼於近也
위엄이 있는 진동이 百里를 놀라게 하면 게으른 자가 가까운 곳에서 두려워한다.
[疏]‘彖曰震亨’至‘懼邇也’
經의 [彖曰震亨]에서 [懼邇也]까지
○正義曰:‘震亨’者, 卦之名德. 但擧經而不釋名德所由者, 正明由懼得通, 故曰“震亨”, 更无他義. 或本无此二字.
○正義曰:[震亨] 卦의 이름과 德이다. 다만 經文을 들고 卦의 이름과 德이 말미암은 이유를 해석하지 않은 것은, 바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형통함을 얻었으므로 “震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요 다시 다른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어떤 本에는 이 두 글자(震亨)가 없다.
‘震來虩虩 恐致福也’者, 威震之來, 初雖恐懼, 能因懼自修, 所以致福也.
[震來虩虩 恐致福也] 위엄이 있는 진동이 올 때에 처음에는 비록 두려워하나 능히 두려움으로 인하여 스스로 닦으니, 이 때문에 福을 오게 하는 것이다.
‘笑言啞啞 後有則也’者, 因前恐懼自修, 未敢寬逸, 致福之後, 方有笑言,
[笑言啞啞 後有則也] 전에 두려워하여 스스로 닦음으로 인해 감히 방심하고 안일하지 않으면 福을 오게 한 뒤에 비로소 웃고 말함이 있으니,
以曾經戒懼, 不敢失則, 必時然後言, 樂然後笑, 故曰“笑言啞啞, 後有則也.”
일찍이 경계하고 두려워함을 겪어 감히 법칙을 잃지 않아서 반드시 때에 맞은 뒤에 말하고 기뻐한 뒤에 웃는다. 그러므로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두려워한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震驚百里 驚遠而懼邇’者, 言威震驚於百里之遠, 則惰者恐懼於近也.
[震驚百里 驚遠而懼邇] 위엄 있는 진동이 百里의 먼 곳을 놀라게 하면 게으른 자가 가까운 곳에서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다.
하면 可以守宗廟社稷하여 以爲祭主也니라
〈군주가〉 밖으로 나가면 〈長子가〉 宗廟와 社稷을 지켜서 祭主가 되는 것이다.”
[注]明所以堪長子之義也 不喪匕鬯이면 則己出可以守宗廟
長子가 감당할 수 있는 바의 뜻을 밝힌 것이다. 숟가락과 울창주를 잃지 않으면 자기(군주)가 나감에 〈長子가〉 宗廟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疏]‘出可以守宗廟’至‘爲祭主也’
經의 [出可以守宗廟]에서 [爲祭主也]까지
○正義曰: 出, 謂君出巡狩等事也. 君出, 則長子留守宗廟社稷, 攝祭主之禮事也.
○正義曰:‘숟가락과 鬱鬯酒를 잃지 않음’의 뜻을 해석하였다. ‘出’은 군주가 나가 巡狩하는 등의 일을 이른다. 군주가 나가면 長子가 남아 宗廟와 社稷을 지켜서 祭主의 禮事를 攝行하는 것이다.
[疏]○注‘己出’
○注의 [己出]
○正義曰:己出, 謂君也.
○正義曰:‘己出’은 군주를 이른다.
象曰 洊雷 震이니 君子以恐懼修省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거듭된 우레가 震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두려워하여 〈자기를〉 닦고 살핀다.”
[疏]正義曰:洊者, 重也, 因仍也. 雷相因仍, 乃爲威震也, 此是重震之卦, 故曰“洊雷震”也.
正義曰:[洊] 거듭함이니, 인습[因仍]하는 것이다. 우레가 서로 인습하면 마침내 위엄이 있는 진동이 되니, 이는 震이 거듭된 卦이다. 그러므로 “거듭된 우레가 震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恐懼修省’者, 君子恒自戰戰兢兢, 不敢懈惰, 今見天之怒, 畏雷之威, 彌自修身, 省察己過, 故曰“君子以恐懼修省”也.
[君子以恐懼修省] 君子가 항상 스스로 戰戰兢兢하여 감히 태만히 하지 않으니, 지금 하늘의 노여움을 보고 우레의 위엄을 두려워해서 더욱 스스로 몸을 닦아 자신의 잘못을 성찰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보고서 두려워하여 〈자기를〉 닦고 살핀다.”라고 한 것이다.
初九 震來虩虩이면 笑言啞啞이리니하니라
初九는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뒤에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니, 吉하다.
[注]體夫剛德하여 爲卦之先하니 能以恐懼修其德也
剛한 德을 體行하여 卦의 맨 먼저가 되었으니, 능히 두려움으로써 그 德을 닦는 것이다.
[疏]正義曰:初九剛陽之德, 爲一卦之先, 剛則不闇於幾, 先則能有前識.
正義曰:初九는 剛陽의 德으로 한 卦의 먼저가 되었으니, 剛하면 기미에 어둡지 않고 먼저 하면 능히 미리 아는 것이 있다.
故處震驚之始, 能以恐懼自修, 而獲其吉, 故曰“震來虩虩, 後笑言啞啞, 吉.”
그러므로 우레가 놀라게 하는 시초에 처하여 능히 두려움으로써 스스로 닦아서 그 吉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뒤에 웃고 말하여 기뻐할 것이니,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蓋卦主威震之功, 令物恐懼致福,
이 爻辭의 두 句는 이미 卦辭와 같고 〈象傳〉에서 해석한 것이 또 〈彖傳〉과 다르지 않은 것은, 卦辭에서는 위엄 있는 우레의 功이 물건으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함을 주장하였고,
爻論遇震而懼, 修省致福之人, 卦則自震言人, 爻則據人威震, 所說雖殊, 其事一也.
爻辭에서는 震을 만나 두려워해서 닦고 살펴 福을 오게 하는 사람을 논하였으니, 卦辭는 우레의 입장에서 사람을 말하였고 爻辭는 사람에 근거하여 우레를 두려워한 것이니, 말한 것은 비록 다르나 그 일은 똑같다.
所以爻卦二辭, 本末俱等, 其猶屯卦初九與卦俱稱利建侯.
이 때문에 爻辭와 卦辭가 本과 末이 모두 같으니, 이는 屯卦 初九의 爻辭가 卦辭와 더불어 모두 ‘侯를 세움이 이롭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屯卦의 卦辭는 무릇 어려울 때에 마땅히 封建하는 바가 있어야 함을 들었고, 爻辭는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낮추는 것이니, 이는 封建을 감당하는 사람인바, 이 震卦의 初九도 저 屯卦와 같은 類이다.
象曰 震來虩虩 恐致福也 笑言啞啞 後有則也
〈象傳〉에 말하였다.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함’은 두려워하여 복을 오게 하는 것이요, ‘웃고 말하여 기뻐함’은 두려워한 뒤에 법칙이 있는 것이다.”
六二 震來厲하여 億喪貝하니 躋于九陵이나 勿逐이라도 七日得하리라
六二는 震이 옴에 위태로워 패물을 잃으니, 높은 언덕에 올라가나 쫓아가지 않아도 7일 만에 잡히리라.
[注]震之爲義 威駭怠懈하여 肅整惰慢者也 初幹其任이어늘 而二乘之하여 震來則危하여 喪其資貨하고 亡其所處矣
震의 뜻은 게으른 자들을 위엄으로 놀라게 하여 태만한 자들을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이다. 初九가 이 임무를 주간하는데 六二가 初九를 타고 있어서 震이 오면 위태로워 그 資貨를 잃고 자기가 거처하는 곳을 잃는다.
故曰 震來厲하여 億喪貝라하니라 辭也 資貨糧用之屬也
그러므로 “震이 옴에 위태로워 패물을 잃는다.”라고 한 것이다. ‘億’은 어조사이다. ‘貝’는 資貨와 식량과 쓰는 물건의 등속이다.
犯逆受戮하고 无應而行이면 行无所舍 威嚴大行하여 物莫之納하여 无糧而走하니
悖逆을 범하여 죽임을 받고 應이 없이 가면 감에 머물 곳이 없고, 위엄이 크게 행해져서 물건(남)이 자기를 받아주지 아니하여 양식이 없이 달아나니,
雖復超越陵險이나 必困于窮匱하여 不過七日이라 故曰 勿逐이라도 七日得也라하니라
비록 다시 구릉과 험한 곳을 뛰어넘으나 반드시 궁핍함에 곤액을 당하여 7일을 지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쫓아가지 않아도 7일 만에 잡힌다.”라고 한 것이다.
[疏]‘六二震來厲億’至‘勿逐七日得’
經의 [六二震來厲億]에서 [勿逐七日得]까지
○正義曰:‘震來厲 億喪貝’者, 億, 辭也. 貝, 資貨糧用之屬. 震之爲用, 本威惰慢者也.
○正義曰:[震來厲 億喪貝] ‘億’은 어조사이다. ‘貝’는 資貨와 식량과 쓰는 물건의 등속이다. 震의 쓰임은 본래 태만한 자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初九以剛處下, 聞震而懼, 恐而致福, 卽是有德之人.
初九가 剛으로 아래에 처하여 우렛소리를 듣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福을 오게 하니, 바로 德이 있는 사람이다.
六二以陰賤之體, 不能敬於剛陽, 尊其有得, 而反乘之, 是傲尊陵貴, 爲天所誅.
그런데 六二가 천한 陰의 體로서 剛陽을 공경하지 못하고서 자기가 얻음이 있음을 높여 도리어 〈剛陽을〉 타고 있으니, 이는 높은 이를 업신여기고 귀한 이를 능멸하여 하늘에게 주벌을 받는 자이다.
震來則有危亡, 喪其資貨, 故曰“震來厲, 億喪貝”也.
우레가 오면 危亡이 있어서 그 資貨를 잃는다. 그러므로 “震이 옴에 위태로워 패물을 잃는다.”라고 한 것이다.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者, 躋, 升也. 犯逆受戮, 无應而行, 行无所舍, 威嚴大行, 物莫之納,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 ‘躋’는 오름이다. 悖逆을 범하여 죽임을 받고 應이 없이 가면 감에 머물 곳이 없고, 위엄이 크게 행해져서 물건이 자기를 받아주지 않으니,
이미 資貨를 잃고 양식이 없이 달아나면 비록 다시 구릉과 험한 곳을 높이 뛰어넘으나 반드시 궁핍함에 곤액을 당하여 7일을 지나지 못하고서 有司에게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언덕에 올라가나 쫓아가지 않아도 7일 만에 잡힌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震來厲 乘剛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震이 옴에 위태로움’은 剛을 탔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乘剛也’者, 只爲乘於剛陽, 所以犯逆受戮也.
正義曰:[乘剛也] 다만 剛陽을 타고 있는지라 이 때문에 悖逆한 일을 범하여 죽임을 받는 것이다.
六三 震蘇蘇하나 震行无이리라
六三은 두려워하여 蘇蘇하나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으리라.
[注]不當其位하여 位非所處 懼蘇蘇也 而无乘剛之逆이라 可以懼行而无𤯝也
자리에 합당하지 아니하여 자리가 자신이 처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蘇蘇하나 剛을 탄 悖逆이 없으므로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六三震蘇蘇震行无𤯝’
經의 [六三震蘇蘇震行无𤯝]
○正義曰: 六三居不當位, 故震懼而蘇蘇然也.
○正義曰:‘蘇蘇’는 두려워하여 불안해하는 모양이다. 六三이 거한 것이 자리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두려워하여 蘇蘇하는 것이다.
비록 자리에 합당하지 않으나 剛을 탄 패역이 없으므로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蘇蘇하나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注‘故懼’
○注의 [故懼]
○正義曰:驗註, 蓋懼不自爲懼, 由震故懼也. 自下爻辭, 皆以震言懼也.
○正義曰:註를 징험해보건대, 震을 두려움으로 訓하였으니, 두려움은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요 우레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래의 爻辭부터는 모두 震을 두려움으로 말하였다.
象曰 震蘇蘇 位不當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여 蘇蘇함’은 자리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位不當’者, 其猶竊位者, 遇威嚴之世, 不能自安也.
正義曰:[位不當] 그 자리를 도둑질한 자와 같아서 위엄이 있는 세상을 만나면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九四하면 遂泥
九四는 두려워하면 마침내 진흙에 빠진다.
[注]處四陰之中하고 居恐懼之時하여 爲衆陰之主하니 宜勇其身하여 以安於衆이어늘 若其震也 遂困難矣
네 陰의 가운데에 처하고 두려워하는 때에 거하여 여러 陰의 주체가 되었으니, 마땅히 자기 몸을 용감히 하여 무리를 편안히 하여야 하는데, 만약 두려워하면 마침내 곤란해진다.
履夫不正하여 不能除恐하여 使物安己하니 德 未光也
바르지 못한 자리를 밟아서 두려움을 제거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자기를 편안히 여기게 하지 못하니, 德이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疏]正義曰:九四處四陰之中, 爲衆陰之主, 當恐懼之時, 宜勇其身, 以安於衆,
正義曰:九四가 네 陰의 가운데에 처하고 여러 陰의 주체가 되어서 두려워하는 때를 당하였으니, 마땅히 자기 몸을 용감히 하여 무리를 편안히 하여야 하는데,
然四失位違中, 則是有罪自懼, 遂沈泥者也.
만약 스스로 두려운 마음을 품으면 마침내 침체하고 빠져서 곤란하게 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면 마침내 진흙에 빠진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九四가 正位를 잃고 中을 어겼으니, 이는 죄가 있어 스스로 두려워하여 마침내 진흙에 빠지는 자인 것이다.
象曰 震遂泥 未光也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면 마침내 진흙에 빠짐’은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疏]正義曰:‘未光也’者, 身旣不正, 不能除恐, 使物安己, 是道德未能光大也.
正義曰:[未光也] 몸이 이미 바르지 못해서 두려움을 제거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자기를 편안히 여기게 하지 못하니, 이는 道德이 광대하지 못한 것이다.
六五 震往來하면하니 无喪이면 有事리라
六五는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우니, 잃음이 없으면 훌륭한 일이 있으리라.
[注]往則无應하고 來則乘剛하여 恐而往來하면 不免於危
가면 應이 없고 오면 剛을 타고 있어서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움을 면치 못한다.
夫處震之時하여 而得尊位하니 斯乃有事之機也어늘 而懼往來하면 將喪其事 曰 億无喪이면 有事也라하니라
震의 때에 처하여 높은 지위를 얻었으니, 이는 바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장차 자기의 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잃음이 없으면 훌륭한 일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震往來厲’者, 六五往則无應, 來則乘剛, 恐而往來, 不免於咎, 故曰“震往來厲”也.
正義曰:[震往來厲] 六五는 가면 應이 없고 오면 剛을 타고 있어서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허물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롭다.”라고 한 것이다.
[億无喪 有事] 震의 때에 처하여 높은 지위를 얻었으니, 이는 바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장차 자기 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경계하기를 “잃음이 없으면 훌륭한 일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震往來厲 危行也 其事在中하면 大无喪也리라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움’은 위태로운 행실이요, 그 일이 中에 있어 〈큰 功을 세우면〉 크게 잃음이 없을 것이다.
[注]大則无喪이요 往來乃危也
크면 잃음이 없고, 오고가면 마침내 위태로울 것이다.
正義曰:[危行也] 두려운 마음을 품고 오고가면 이는 위태로움을 부르는 행실이다.
‘其事在中 大无喪也’者, 六五居尊, 當有其事, 在於中位, 得建大功.
[其事在中 大无喪也] 六五가 높은 지위에 거하여 마땅히 그 일을 소유하여야 하고, 中의 자리에 있으면 큰 功을 세울 수 있다.
若恐懼往來, 則致危无功也.
만약 中을 지켜서 큰 功을 세우면 잃음이 없어서 훌륭한 일이 있을 것이요, 만약 두려워하며 오고가면 위태로움을 불러 功이 없을 것이다.
上六 震索索하고 視矍矍이니 征凶이라 震不于其躬하고 于其隣이면 无咎어니와 婚媾有言이리라
上六은 두려워하여 索索하고 보면서 두리번거리는 것이니, 가면 凶하다. 두려움을 자기 몸에서 하지 않고 이웃에서 하면 허물이 없지만 혼인하는 자(자신의 짝)가 의심하는 말이 있으리라.
[注]處震之極하니 極震者也 居震之極하여 求中未得이라 懼而索索하고 視而矍矍하여 无所安親也
震의 極에 처하였으니, 지극히 두려워하는 자이다. 震의 極에 거하여 中을 구하나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索索하고 보면서 두리번거려 편안하고 친한 바가 없는 것이다.
已處動極而復征焉이면 凶其宜也 若恐非己造 彼動故懼하여 懼隣而戒하면 合於備預
이미 動의 極에 처하였는데 다시 가면 凶한 것이 당연하다. 만약 두려움이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요, 저것이 동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이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면 미리 대비함에 부합한다.
无咎也 極懼相宜 雖婚媾而有言也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두려움이 지극하면 마땅함을 살펴보므로 비록 혼인하는 자라도 의심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疏]‘上六震索索’至‘㛰媾有言’
經의 [上六震索索]에서 [婚媾有言]까지
○正義曰:‘震索索 視矍矍’者, 索索, 心不安之貌. 矍矍, 視不專之容. 上六處震之極, 極震者也.
○正義曰:[震索索 視矍矍] ‘索索’은 마음이 불안해하는 모양이다. ‘矍矍’은 〈두리번거려〉 보는 것이 專一하지 않는 용모이다. 上六이 震의 極에 처하였으니, 지극히 두려워하는 자이다.
旣居震, 欲求中理以自安, 而未能得, 故懼而索索, 視而矍矍, 无所安親.
이미 震의 極에 거하여 中의 이치를 구해서 스스로 편안히 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索索하고 보면서 두리번거려 편안하고 친한 바가 없는 것이다.
‘征凶’者, 夫處動懼之極而復征焉, 凶其宜也, 故曰“征凶”也.
[征凶] 動하여 두려워하는 極에 처해서 다시 가면 凶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가면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震不于其躬 于其隣 无咎’者, 若恐非己造, 彼動故懼,
[震不于其躬 于其隣 无咎] 만약 두려움이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요, 저것이 동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이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미리 대비함에 부합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자기 몸에서 하지 않고 이웃에서 하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婚媾有言’者, 居極懼之地, 雖復婚媾相結, 亦不能无相之言, 故曰“婚媾有言”也.
[婚媾有言] 지극히 두려워하는 자리에 거하였으니 비록 다시 혼인을 서로 맺었더라도 서로 의심하는 말이 없지 못하다. 그러므로 “혼인하는 자가 의심하는 말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震索索 中未得也일새요 雖凶无咎 畏隣戒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두려워하여 索索함’은 中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요, 비록 凶하나 허물이 없음은 이웃의 動함에 두려워하여 경계하기 때문이다.”
正義曰:[中未得也] ‘未得中’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畏隣戒也] 이웃의 動함을 두려워하여, 두려워하고 스스로 경계하여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역주
역주1 虩虩 恐懼之貌也 : 程伊川은 虩虩을 “돌아보고 생각하여 편안히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顧慮不安之貌]”라고 하였고, 朱子는 “두려워하고 놀라 돌아보는 모양이다.[恐懼驚顧之貌]”라고 하였다.
역주2 迅雷風烈 君子爲之變容 : ≪禮記≫ 〈玉藻〉에 “만약 빠른 바람과 빠른 우레와 폭우가 있으면 반드시 얼굴빛을 바꾸어 비록 한밤중이라도 반드시 일어나서 의복을 입고 관을 쓰고 앉는다.[若有疾風迅雷甚雨 則必變 雖夜 必興 衣服冠而坐]”라고 하였고, ≪論語≫ 〈鄕黨〉에는 孔子가 “빠른 우레와 맹렬한 바람이 불 때에는 반드시 얼굴빛을 바꾸셨다.[迅雷風烈必變]”라고 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震卦施之於人 又爲長子 : 八卦 가운데 乾卦와 坤卦는 가족으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징하고, 나머지 여섯 卦는 6명의 자녀를 상징하는바, 震卦☳는 長男, 坎卦☵는 次男, 艮卦☶는 少男, 巽卦☴는 長女, 離卦☲는 次女, 兌卦☱는 少女에 해당한다. 卦의 主爻는 홀로 陰이거나 홀로 陽인 爻이므로 한 爻가 陰爻이면 여자, 陽爻이면 남자가 되고, 爻의 생성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므로 主爻가 初爻이면 長子, 中爻이면 次子, 上爻이면 少子가 되는 것이다.
역주4 出則撫軍 守則監國 : 임금이 朝會나 征伐로 出行하는 일이 있을 때, 太子가 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지키면 이를 ‘監國’이라 하고, 임금을 隨行하여 함께 나가면 이를 ‘撫軍’이라 한다. ≪春秋左氏傳≫ 閔公 2년조에 “태자는 宗廟와 社稷의 제사를 받들고 朝夕으로 임금의 음식을 살피는 자이다. 그러므로 冢子라고 하는 것이다. 임금이 外出하면 태자는 남아서 나라를 守護하고, 달리 수호할 사람이 있으면 임금을 따라가는데, 따라가는 것을 ‘撫軍’이라 하고 수호하는 것을 ‘監國’이라 하니, 이는 옛날의 제도이다.[大子奉冢祀社稷之粢盛 以朝夕視君膳者也 故曰冢子 君行則守 有守則從 從曰撫軍 守曰監國 古之制也]”라고 보인다.
역주5 匕形似畢 但不兩岐耳 : 畢은 고기를 들어올리는 祭器로, 喪祭에는 뽕나무로 만든 畢을 쓰고 吉祭에는 가시나무로 만든 畢을 썼다. ≪禮記≫ 〈雜記 下〉에 “畢은 뽕나무를 사용하되 길이가 3尺이요, 그 자루와 끝을 깎는다.[畢 用桑 長三尺 刊其柄與末]”라고 보인다.
역주6 詩云有捄棘匕 : 이 詩는 ≪詩經≫ 〈小雅 大東〉이다. 朱子는 “‘棘匕’는 가시나무로 수저를 만든 것이니, 솥의 고기를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다.[棘匕 以棘爲匕 所以載鼎肉 而升之於俎也]”라고 註를 내었다.
역주7 詩傳則爲鬯是香草 : ≪詩經≫ 〈大雅 江漢〉에 ‘秬鬯一卣’라 하였는데, ≪毛詩正義≫의 〈毛傳〉에 “鬯은 香草이다.[鬯 香草也]”라고 하였다.
역주8 鬯者……則鬯是草明矣 : ‘鬯’에 대하여 王弼은 “향기로운 술이다.”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鄭玄의 ‘검은 기장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이라는 說을 함께 소개하였다. 그러나 朱子는 “검은 기장의 술을 鬱金이라는 향초에 섞어 만든 것이니, 땅에 부어 降神하는 것이다.[以秬黍酒 和鬱金 所以灌地降神者也]”라 하고 이를 鬱鬯酒라 하였으므로 이를 따랐음을 밝혀둔다.
역주9 (靈)[震] : 저본에는 ‘靈’으로 되어 있으나, 經文의 ‘震驚百里’와 宋本에 의거하여 ‘震’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釋不喪匕鬯之義也 : 孔穎達은 〈彖傳〉의 이 말을 卦辭의 ‘不喪匕鬯’을 해석한 말로 보았으나, 程伊川은 이 위에 ‘不喪匕鬯’ 네 글자가 빠진 것으로 보고 보충하였는바, 朱子도 이를 따랐다.
역주11 此爻辭兩句……又與彖不異者 : ‘震來虩虩’과 ‘笑言啞啞’이 卦辭와 初六 爻辭에 모두 나오고, 아래 初六 〈象傳〉의 말과 위 〈彖傳〉의 말이 같음을 가리킨다.
역주12 所以爻卦二辭……亦其類也 : 屯卦의 卦辭는 “屯 元亨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인데 〈彖傳〉에서 ‘利建侯’를 해석하여 “天造가 草昧할 때에는 마땅히 諸侯를 세워야 하고 편안히 여겨서는 안 된다.[天造草昧 宜建侯 而不寧]”라고 하였고, 疏에서 卦辭를 해석하기를 “‘勿用有攸往 利建侯’는 어려운 세상에 世道가 처음 창건되어서 물건이 아직 편안하지 못하므로 마땅히 諸侯를 세움을 이롭게 여겨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初九 爻辭는 “磐桓 利居貞 利建侯”인데 〈象傳〉에서 ‘利建侯’를 해석하여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낮추니 크게 백성을 얻도다.[以貴下賤 大得民也]”라고 하였고, 疏에서 〈象傳〉을 해석하기를 “‘貴’는 陽을 이르고 ‘賤’은 陰을 이르니, 初九의 陽이 세 陰의 아래에 있음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以貴下賤이다. 어려운 세상은 백성들이 그 군주를 그리워하는 때인데 이미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낮추니, 이 때문에 민심을 크게 얻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3 初九以剛處下……七日得 : 王弼과 孔穎達은 六二에 대하여 대체로 ‘존귀한 이를 능멸하여 주벌을 당하는 자’로 보았는데, 이는 六二가 初九를 타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또 ‘七日得’을 ‘剛을 타고 있어 悖逆을 행한 六二가 아무리 험한 못을 뛰어넘어 도망해도 7일이 못 되어 有司에게 잡히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六二를 ‘震에 잘 대처하는 자’로 보고, ‘七日得’을 ‘六二가 震에 잘 대처하므로 7일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음’의 의미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二는 中에 거하고 正을 얻었으니 震에 잘 대처하는 자이나 初九의 剛을 탔으니, 初九는 震의 주체이다. 震剛이 동하여 위로 분발하면 누가 이것을 막겠는가. ‘厲’는 사나움이요 위태로움이니, 저가 옴이 이미 맹렬하면 자신이 위태로움에 처하게 된다. ‘億’은 億度(탁)이요, ‘貝’는 가지고 있는 物資이다. ‘躋’는 오름이요, ‘九陵’은 높은 언덕이요, ‘逐’은 가서 쫓음이다. 震動의 옴이 맹렬할 때에 능히 감당하지 못하여 반드시 소유한 것을 상실할 것을 헤아리고서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가 피하는 것이다.……‘勿逐七日得’은 六二가 귀히 여기는 것은 中正이니, 震懼의 옴을 만남에 비록 형세를 헤아려 공손히 피하나 마땅히 中正함을 지켜 스스로 잃지 말아야 하니, 億測해봄에 반드시 상실할 것이므로 멀리 피하여 스스로 지키고, 지나가면 平常으로 돌아오는 것이니, 이는 쫓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 것이다. ‘逐’은 물건에 나아감이니, 자기로써 물건에 나아가면 그 지킴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쫓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멀리 피하고 스스로 지킴은 震에 대처하는 큰 방법이니, 六二와 같은 자는 危懼를 당하여 잘 대처하는 자이다. 卦의 자리가 여섯이 있으니, 일곱은 바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 일이 끝나고 때가 이미 바뀐 것이다. 그 지킴을 잃지 않으면 비록 일시적으로는 그 옴을 막지 못하나 때가 지나고 일이 끝나면 평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7일에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六二居中得正 善處震者也 而乘初九之剛 九 震之主 震剛動而上奮 孰能禦之 厲 猛也危也 彼來旣猛 則己處危矣 億 度也 貝 所有之資也 躋 升也 九陵 陵之高也 逐 往追也 以震來之厲 度不能當而必喪其所有 則升至高以避之也……勿逐七日得 二之所貴者 中正也 遇震懼之來 雖量勢巽避 當守其中正 无自失也 億之必喪也 故遠避以自守 過則復其常矣 是勿逐而自得也 逐 卽物也 以己卽物 失其守矣 故戒勿逐 避遠自守 處震之大方也 如二者 當危懼而善處者也 卦位有六 七乃更始 事旣終 時旣易也 不失其守 雖一時不能禦其來 然時過事已 則復其常 故云七日得]”
朱子의 해석도 대체로 이와 같으나, ‘億’字와 九陵ㆍ七日의 象에 대해서는 未詳이라고 하였다.
역주14 (𤯞)[𤯝] : 저본에는 ‘𤯞’으로 되어 있으나, 注와 疏에 의거하여 ‘𤯝’으로 바로잡았다. ‘𤯞’은 ‘靑’의 이체자이다. ‘𤯝’은 ‘靑’과 ‘眚(생)’의 이체자인데, 여기서는 ‘眚’의 이체자이다.
역주15 蘇蘇 畏懼不安之貌 : ‘蘇蘇’를 程伊川은 ‘神氣가 흩어져 自失하는 모양’이라고 하였다.
역주16 雖不當位……震行无𤯝也 : 王弼과 孔穎達은 ‘震行无𤯝’을 ‘六三은 陽剛을 탄 패역이 없으므로 두려워하여 행하면 재앙이 없을 것임’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震行’을 ‘六三이 三位를 떠나 四位로 나아가면 허물이 없음’의 의미로 보았는바, 이는 陰爻가 陽位에 있으면 不正이 되고 陰位에 있으면 正이 되기 때문이다.
역주17 以訓震爲懼 : 阮元의 〈校勘記〉에 “盧文弨가 이르기를 ‘마땅히 「以震訓爲懼」가 되어야 한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18 九四處四陰之中……故曰震遂泥也 : 王弼과 孔穎達은 ‘震’을 두려움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程伊川과 朱子는 震奮(진동하여 분발함)의 뜻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四는 震動의 때에 거하여 中하지 못하고 正하지 못하니, 柔位에 처함은 剛健의 道를 잃은 것이요, 四에 거함은 中正의 德이 없는 것이니, 거듭된 陰(上六과 六五, 六三과 六二)의 사이에 빠져서 스스로 震奮하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진흙에 빠진다.’라고 말한 것이다.[九四居震動之時 不中不正 處柔 失剛健之道 居四 无中正之德 陷溺於重陰之間 不能自震奮者也 故云遂泥]”
역주19 (意)[億] : 저본에는 ‘意’로 되어 있으나, 아래의 注와 疏 및 毛本에 의거하여 ‘億’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0 億无喪有事者……有事也 : ‘億无喪 有事’를 王弼과 孔穎達은 ‘六五가 두려워하지 않고서 자기가 할 일을 잃지 않으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음’의 의미로 해석하였는바, 여기에서도 ‘億’을 어조사로 본 것이다.
반면 程伊川은 六二 爻辭에서와 마찬가지로 ‘億’을 億度(억탁)으로 보아, ‘億无喪有事’를 ‘억측하여 소유하고 있는 일을 상실하지 말아야 함’으로 해석하였는바, 소유하고 있는 일이란 中을 말한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五는 비록 陰으로서 陽位에 거하여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 不正함이 되나 柔로서 剛位에 거하고 또 中을 얻었으니, 이는 中德을 간직하고 있는 자이다. 中을 잃지 않으면 正에서 떠나지 않으니, 이 때문에 中이 귀한 것이다. 여러 卦에 二와 五는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더라도 中을 아름답게 여긴 경우가 많고, 三과 四는 자리가 마땅하더라도 혹 中하지 못함을 過라 한 경우가 있으니, 中이 항상 正보다 중하기 때문이다. 中이면 正에서 떠나지 않고 正은 반드시 中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天下의 이치가 中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六二와 六五에서 볼 수 있다. 六五의 동함은 위로 가면 柔라서 動의 極에 거할 수 없고, 아래로 오면 剛을 범하니, 이는 오고감이 모두 위태로운 것이다. 君位를 당하여 動의 主體가 되었으니, 마땅함에 따라 變에 應하여 中道에 있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億度하여 소유하고 있는 일을 상실하지 않을 뿐이니, 소유하고 있는 일이란 中德을 이른다. 만일 中을 잃지 않으면 비록 위태로움이 있더라도 흉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六五雖以陰居陽 不當位 爲不正 然以柔居剛 又得中 乃有中德者也 不失中 則不違於正矣 所以中爲貴也 諸卦 二五 雖不當位 多以中爲美 三四 雖當位 或以不中爲過 中常重於正也 蓋中則不違於正 正不必中也 天下之理 莫善於中 於六二六五可見 五之動 上往則柔不可居動之極 下來則犯剛 是往來皆危也 當君位 爲動之主 隨宜應變 在中而已 故當億度 无喪失其所有之事而已 所有之事 謂中德 苟不失中 雖有危 不至於凶也]”
한편 朱子는 經文을 “잃음은 없고 능히 일함은 있다.[无所喪而能有事也]”라고 해석하였는바, 王弼‧孔穎達과 마찬가지로 ‘億无喪’에서 句를 뗀 것이다.
역주21 危行也者……是致危之行 : 程伊川은 이를 “가면 위태로움이 있는 것이다.[行則有危也]”라고 해석하였는바, 올라가려 하면 陰柔로서 上位에 거할 수 없기 때문에 올라갈 수 없고, 내려가려 하면 아래의 陽剛(九四)을 범하기 때문에 내려갈 수 없는 것이다.
역주22 其事在中……則无喪有事 : ‘其事在中 大无喪也’를 王弼과 孔穎達은 ‘六五가 소유한 일이 中位에 있으면 큰 功을 세울 수 있어서 자기의 일을 잃지 않을 것임’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동함에 모두 위태로움이 있으니, 오직 하고 있는 일을 잃지 않음에 있을 뿐이니, 그 일이란 中을 이른다. 中을 잃지 않으면 스스로 지킬 수 있다. ‘大无喪’은 无喪을 큼으로 여기는 것이다.[動皆有危 唯在无喪其事而已 其事 謂中也 能不失其中 則可自守也 大无喪 以无喪爲大也]”라고 하였는데, 官本諺解에는 ‘大无喪’을 “크기 喪홈이 업스니라”라고 하였고, 退溪(李滉)의 ≪經書釋義≫에는 “喪티 마로미 大니라”라고 하였으며, 沙溪(金長生)의 ≪經書辨疑≫에는 “잃음에 큼이 없는 것이다.[喪之無大矣]”라고 하였다.
역주23 (位)[極] : 저본에는 ‘位’로 되어 있으나, 위의 注에 “處震之極 極震者也 居震之極 求中未得”이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極’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4 震不于其躬……无咎(疑)[也] : ‘震不于其躬 于其隣’을 王弼과 孔穎達은 ‘두려움이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고 이웃의 동함에 의한 것이어서 이웃을 두려워함’의 의미로 보았다. 이것이 ‘无咎’가 되는 이유는 이 경계가 위험을 미리 대비함이 되기 때문이다.
程伊川과 朱子도 이를 ‘미리 경계함’으로 보았으나, ‘不于其躬 于其隣’을 ‘震動이 자기에게 이르렀을 때 하지 않고 이웃에게 이르렀을 때에 미리 경계함’으로 해석한 차이가 있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진동이 몸에 미침은 바로 그 몸에 하는 것이니, ‘不于其躬’은 아직 몸에 미치지 않았을 때를 이른다. 이웃이란 몸에 가까운 자이니, 몸에 아직 미치기 전에 震懼하면 極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極에 이르지 않는다면 아직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震이 끝나면 마땅히 변하고 柔는 굳게 지키지 못하므로 이웃의 경계함를 두려워하여 능히 변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震之及身 乃于其躬也 不于其躬 謂未及身也 隣者 近於身者也 能震懼於未及身之前 則不至於極矣 故得无咎 苟未至於極 尙有可改之道 震終當變 柔不固守 故有畏隣戒而能變之義]”
역주25 (疑)[也] : 저본에는 ‘疑’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也’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6 (寲)[疑] : 저본에는 ‘寲’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疑’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7 中未得也者 猶言未得中也 : 孔穎達은 ‘中未得也’를 ‘未得中也’와 같은 말로 보아 ‘中을 얻지 못함’으로 해석하였으며, 程伊川도 이와 같은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恐懼하여 스스로 잃음이 이와 같은 까닭은 中道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니, 中을 지남을 이른다. 中道를 얻게 하면 索索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所以恐懼自失如此 以未得於中道也 謂過中也 使之得中 則不至於索索矣]”
반면 朱子는 ‘中’을 中心으로 해석하여 ‘中未得’을 ‘中心에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함’으로 보았다.
역주28 畏隣戒也者……乃得无咎 : ‘畏隣戒’를 孔穎達은 ‘이웃의 동함을 보고서 두려워하여 스스로 경계함’으로 해석하였는데, 程伊川은 ‘이웃의 경계함을 보고 두려워함’으로 해석하였다.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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