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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4)

주역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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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정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疏]正義曰:‘子曰書不盡言’至‘乎德行’ 此第十二章也.
此章言立象盡意, 繫辭盡言, 易之興廢, 存乎其人事也.
子曰 書不盡言하고 言不盡意하니 然則聖人之意 其不可見乎
[疏]正義曰:此一節, 夫子自發其問, 謂聖人之意難見也.
所以難見者, 書所以記言, 言有煩碎, 或, 有言无字, 雖欲書錄, 不可盡竭於其言, 故云“書不盡言”也.
‘言不盡意’者, 意有深邃委曲, 非言可寫, 是言不盡意也.
聖人之意, 意又深遠. 若言之不能盡聖人之意, 書之又不能盡聖人之言, 是聖人之意, 其不可見也,
故云“然則聖人之意, 其不可見乎”, 疑而問之, 故稱乎也.
聖人 立象以盡意하고 設卦以盡情僞하고 繫辭焉以盡其言하고 變而通之以盡利하고
[注]極變通之數 則盡利也라하니라
[疏]正義曰:‘子曰聖人立象以盡意’已下至‘幾乎息矣’
此一節, 是夫子還自釋聖人之意, 有可見之理也.
‘聖人立象以盡意’者, 雖言不盡意, 立象可以盡之也.
‘設卦以盡情僞’者, 非唯立象以盡聖人之意, 又設卦以盡百姓之情僞也.
‘繫辭焉以盡其言’者, 雖書不盡言, 繫辭, 可以盡其言也.
‘變而通之以盡利’者, 變謂化而裁之, 通謂推而行之, 故能盡物之利也.
鼓之舞之以盡神하니 乾坤 其易之縕邪인저
[注]縕 淵奧也
[疏]正義曰:‘鼓之舞之以盡神’者, 此一句, 總結“立象盡意․繫辭盡言”之美.
聖人立象以盡其意, 繫辭則盡其言, 可以說化百姓之心,
百姓之心, 自然樂順, 若鼓舞然, 而天下從之, 非盡神, 其孰能與於此, 故曰“鼓之舞之以盡神”也.
‘乾坤其易之縕邪’者, 上明盡言盡意, 皆由於易道,
是與易爲奧藏, 故云“乾坤其易之縕邪.”
乾坤成列하면 而易立乎其中矣 乾坤毀 則无以見易이요 易不可見이면 則乾坤或幾乎息矣리라
[疏]正義曰:‘乾坤成列 而易立乎其中矣’者, 夫易者, 陰陽變化之謂, 陰陽變化, 立爻以效之, 皆從乾坤而來.
變而相重, 而有六十四卦․三百八十四爻, 本之根源, 從乾坤而來.
故乾坤旣成列位, 而易道變化建立乎乾坤之中矣.
‘乾坤毀 則无以見易’者, 易旣從乾坤而來, 乾坤若缺毀, 則易道損壞, 故云“无以見易”也.
‘易不可見 則乾坤或幾乎息矣’, 若易道毀壞, 不可見其變化之理, 則乾坤亦壞, 或其近乎止息矣, 幾, 近也.
猶若樹之枝幹生乎根株, 根株毀, 則枝條不茂, 若枝幹已枯死, 其根株雖未全死, 僅有微生, 將死不久.
根株譬乾坤也, 易譬枝幹也, 故云“易不可見, 則乾坤或幾乎息矣.”
是故 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化而裁之 謂之變이요
[注]因而制其會通하여 適變之道也
[疏]正義曰:‘是故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者, 道是无體之名, 形是有質之稱.
凡有從无而生, 形由道而立, 是先道而後形, 是道在形之上, 形在道之下, 故自形外已上者謂之道也, 自形內而下者謂之器也.
形雖處道器兩畔之際, 形在器, 不在道也. 旣有形質, 可爲器用, 故云“形而下者謂之器”也.
‘化而裁之謂之變’者, 陰陽變化而相裁節之, 謂之變也, 是得理之變也.
猶若陽氣之化不可久長, 而裁節之以陰雨也, 是得理之變也. 陰陽之化, 自然相裁, 聖人亦法此而裁節也.
推而行之 謂之通이요
[注]乘變而往者 无不通也
[疏]正義曰:因推此以可變而施行之, 謂之通也. 猶若亢陽之後, 變爲陰雨, 因陰雨而行之, 物得開通, 聖人亦當然也.
擧而錯之天下之民 謂之事業이라
[注]事業 所以濟物이라 擧而錯之於民이라
[疏]正義曰:謂擧此理, 以爲變化, 而錯置於天下之民. 凡民得以營爲事業, 故云“謂之事業”也.
此乃自然以變化, 錯置於民也, 聖人亦當法此, 錯置變化於萬民, 使成其事業也.
凡繫辭之說, 皆說易道, 以爲聖人德化, 欲使聖人法易道, 以化成天下, 是故易與聖人, 恒相將也.
以作易者, 本爲立敎故也, 非是空說易道, 不關人事也.
是故 夫象 聖人 有以見天下之賾하여 而擬諸其形容하고 象其物宜 是故 謂之象이요
聖人 有以見天下之動하여 而觀其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니 繫辭焉以斷其吉凶이라 是故 謂之爻
[疏]正義曰:‘是故夫象聖人有以見天下之賾’至‘是故謂之爻’者, 於第六章, 已具其文, 今於此復言者何也.
爲下云“極天下之賾存乎卦, 鼓天下之動存乎辭”, 爲此故更引其文也.
且已下又云“存乎變”․“存乎通”․“存乎其人”, 廣陳所存之事, 所以須重論也.
極天下之賾者 存乎卦하고 鼓天下之動者 存乎辭
[注]辭 爻辭也 爻以鼓動 效天下之動也
[疏]正義曰:‘極天下之賾存乎卦’者, 言窮極天下深賾之處存乎卦, 言觀卦以知賾也.
‘鼓天下之動存乎辭’者, 鼓謂發揚天下之動, 動有得失, 存乎爻卦之辭, 謂觀辭以知得失也.
化而裁之 存乎變하고 推而行之 存乎通하고 神而明之 存乎其人이니
[注]體神而明之 不假於象이라 存乎其人이라
[疏]正義曰:‘化而裁之存乎變’者, 謂覆說上文“化而裁之謂之變”也.
‘推而行之存乎通’者, 覆說上文“推而行之謂之通”也.
‘神而明之存乎其人’者, 言人能神此易道而顯明之者, 存在於其人.
若其人聖, 則能神而明之, 若其人愚, 則不能神而明之, 故存於其人, 不在易象也.
默而成之하고 不言而信 存乎德行이니라
[注]德行 賢人之德行也 順足於內故 默而成之也 體與理會故 不言而信也
[疏]正義曰:若能順理足於內, 默然而成就之, 闇與理會, 不須言而自信也.
‘存乎德行’者, 若有德行, 則得默而成就之, 不言而信也, 若无德行, 則不能然.
此言德行, 據賢人之德行也, 前經“神而明之存乎其人”, 謂聖人也.


정의왈正義曰의 [자왈서부진언子曰書不盡言]에서 [乎德行]까지 이는 제12장이다.
이 장은 ‘을 세워 뜻을 다하고 글을 달아 말을 다해서, 의 흥하고 폐지됨이 인사人事에 달려 있음’을 말하였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니,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뜻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정의왈正義曰:이 한 절은 부자夫子가 스스로 물음을 내어서 성인聖人의 뜻을 보기 어려움을 말씀한 것이다.
보기 어려운 이유는, 글은 말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말은 번쇄煩碎함이 있어서 혹 가 똑같지 않고, 말만 있고 글자가 없어서 비록 글로 기록하고자 하나 그 말을 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言不盡意] 뜻에는 심오하고 곡진함이 있어서 말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것이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함’이다.
성인聖人의 뜻은 의미가 또 심원하다. 만약 말로는 성인의 뜻을 다하지 못하고 글로도 또 성인의 말씀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는 성인聖人의 뜻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다면 성인의 뜻을 볼 수 없단 말인가.”라고 하였으니, 의심하여 물었으므로 ‘’라고 칭한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을 세워 뜻을 다하고, 를 베풀어 정위情僞를 다하고, 글을 달아 말씀을 다하고, 하여 해서 〈물건의〉 이로움을 다하고,
변통變通하는 를 다하면 이로움을 다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면 하고 하면 하고 하면 오래간다.”라고 한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의 [子曰聖人立象以盡意] 이하에서 [幾乎息矣]까지
이 한 절은 부자夫子가 다시 ‘성인聖人의 뜻을 볼 수 있는 이치’를 스스로 해석한 것이다.
[聖人立象以盡意] 비록 말이 뜻을 다하지 못하나 을 세우면 다할 수 있는 것이다.
[設卦以盡情僞] 비단 을 세워서 성인聖人의 뜻을 다할 뿐만이 아니요, 또 를 만들어 백성의 실정과 거짓을 다하는 것이다.
[繫辭焉以盡其言] 비록 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으나 글을 달면 그 말씀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變而通之以盡利] ‘’은 하여 제재함을 이르고, ‘’은 미루어 행함을 이른다. 그러므로 물건의 이로움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백성을〉 고무鼓舞시켜서 을 다하니, 의 〈가〉 깊이 쌓이게 된 〈근원일〉 것이다.
은 깊음[淵奧]이다.
정의왈正義曰:[鼓之舞之以盡神] 이 한 는 ‘을 세워 뜻을 다하고 글을 달아 말을 다하는 아름다움’을 총결한 것이다.
성인聖人을 세워 그 뜻을 다하고 글을 달아 그 말씀을 다해서 백성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감화할 수 있으니,
〈이렇게 하면〉 백성의 마음이 자연 즐거워하고 순종하여 마치 고무鼓舞함과 같아서 천하天下가 따르니, 을 다하는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백성을〉 고무시켜서 을 다하였다.”라고 말한 것이다.
[乾坤其易之縕邪] 위에서는 ‘말을 다하고 뜻을 다함이 모두 에 말미암은 것임’을 밝혔고,
여기에서는 ‘의 성립하는 바가 에 근본함’을 밝혔으니, 만약 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 말미암아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 깊이 쌓이게 된 근원인 것이다.
이는 과 더불어 천부川府의 깊이 감춰짐이 된다. 그러므로 “의 〈가〉 깊이 쌓이게 된 〈근원일〉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열위列位를 이루면 이 그 가운데에 건립되니, 이 훼손되면 을 볼 수가 없고, 을 볼 수가 없으면 이 혹 그쳐짐에 가까울 것이다.
정의왈正義曰:[乾坤成列 而易立乎其中矣] 음양陰陽변화變化함을 이르니, 음양의 변화를 를 세워 본받음이 모두 으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은 세 아들을 낳고 은 세 딸을 낳아서 팔괘八卦가 되었고, 변하여 서로 거듭해서 64와 384가 있게 되었으니, 근원을 근본해보면 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미 열위列位를 이루면 변화變化의 가운데에 건립되는 것이다.
[乾坤毀 則无以見易] 이 이미 으로부터 왔으니, 이 만약 망가지고 훼손되면 가 훼손되고 파괴된다. 그러므로 “을 볼 수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易不可見 則乾坤或幾乎息矣] 만약 가 훼손되고 파괴되어서 변화의 이치를 볼 수 없으면 또한 파괴되어서 혹 그쳐짐에 가깝게 될 것이니, ‘’는 가까움이다.
비유하건대 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뿌리 밑동에서 생겼으니 뿌리 밑동이 훼손되면 가지가 무성하지 못하고, 가지와 줄기가 이미 말라 죽으면 뿌리 밑동이 완전히 죽지 아니하여 겨우 조금 살아 있더라도 장차 오래지 않아 죽게 됨과 같은 것이다.
뿌리 밑동은 을 비유한 것이고, 은 가지와 줄기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을 볼 수가 없으면 이 혹 그쳐짐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형이상形而上인 것을 라 이르고 형이하形而下인 것을 라 이르니, 〈음양陰陽이〉 변화變化하여 제재함을 이라 이르고
인하여 회통會通(회합會合변통變通)을 제재해서 변화의 에 맞게 하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是故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는 형체가 없음의 이름이고, ‘’은 형질이 있음의 칭호이다.
무릇 로부터 생기고, 로 말미암아 성립되니, 이는 먼저 가 있은 뒤에 이 있는 것인바, 의 위에 있고 의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에 이상인 것을 ‘’라 이르고, 안에 이하인 것을 ‘’라 이르는 것이다.
은 비록 의 두 두둑(경계)의 사이에 있으나 에 있고 에 있지 않다. 이미 형질이 있으면 기용器用을 만들 수 있으므로 “형이하形而下인 것을 라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化而裁之謂之變] 음양陰陽이 변화하여 서로 제재해서 절도節度에 맞게 함을 ‘’이라 이르니, 이는 이치의 변화를 얻은 것이다.
이는 양기陽氣의 변화가 오래가지 못해서 음우陰雨로써 제재하여 절도에 맞게 함과 같으니, 이것이 이치의 변화를 얻은 것이다. 음양의 변화가 자연히 서로 제재하니, 성인聖人이 또한 이것을 본받아 제재하여 절도에 맞게 하는 것이다.
미루어 행함을 이라 이르고
을 타고 가는 것은 통하지 않음이 없다.
정의왈正義曰:이것을 인하여 미루어서 변하여 시행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이라 이른다. 이는 마치 항양亢陽(심한 가뭄)의 뒤에 변하여 음우陰雨가 되어서 음우로 인해 행하여 물건이 개통되는 것과 같으니, 성인聖人 또한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들어서 천하의 백성에게 조치함을 사업事業이라 이른다.
사업事業은 사물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들어서 백성에게 조치하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이 이치를 들어서 변화를 만들어 천하의 백성에게 조치함을 이른 것이다. 무릇 백성이 사업事業을 경영할 수 있으므로 “사업이라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자연히 변화하여 백성에게 조치하는 것이니, 성인聖人 또한 마땅히 이것을 본받아서 변화를 만민에게 조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사업을 이루게 해야 한다.
무릇 계사繫辭의 말은 다 를 말해서 이를 성인聖人덕화德化로 삼아 성인으로 하여금 를 본받아 천하를 교화하여 이루고자 한 것이니, 이 때문에 과 성인이 항상 서로 이어가는 것이다.
을 지은 까닭은 본래 가르침을 세우기 위함 때문이니, 를 공연히 말하여 인사人事에 관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천하天下의 그윽함(심오함)을 보고서 형용形容비의比擬하고 사물의 마땅함을 형상한 것이므로 이라 이르고,
성인이 천하의 함을 보고서 그 회통會通을 관찰하여 전례典禮를 행하니 글을 달아 길흉吉凶을 결단하기 때문에 라 이른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의 [是故夫象聖人有以見天下之賾]에서 [是故謂之爻]까지 제6장에 이미 이 글이 갖추어져 있는데, 지금 여기에서 다시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아래에서 “천하天下의 그윽함을 다함은 에 달려 있고, 천하의 함을 고무시킴은 글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다시 이 글을 인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하에 또 ‘에 달려 있다’․‘에 달려 있다’․‘사람에게 달려 있다’라 하여 달려 있는 바의 일을 넓게 말하였으니, 이 때문에 거듭 논해야 했던 것이다.
천하天下의 그윽함을 다함은 에 달려 있고, 천하의 함을 고무鼓舞시킴은 글(괘사卦辭효사爻辭)에 달려 있다.
효사爻辭이다. 로써 고동鼓動함은 천하天下함을 본받은 것이다.
정의왈正義曰:[極天下之賾者存乎卦] 천하의 깊고 그윽한 곳을 다함은 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니, 를 보고서 그윽한 이치를 앎을 말한 것이다.
[鼓天下之動者存乎辭] ‘’는 천하天下함을 발양發揚함을 말하니, 동함에 득실得失이 있는 것이 효사爻辭괘사卦辭에 달려 있는바, ‘글을 보고서 득실을 앎’을 이른 것이다.
하여 제재함은 에 달려 있고, 미루어 행함은 에 달려 있고, 신묘하게 하여 밝힘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을 체행하여 밝힘은 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化而裁之存乎變] 윗글의 “〈음양陰陽이〉 변화變化하여 제재함을 이라 이른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다.
[推而行之存乎通] 윗글의 “미루어 행함을 이라 이른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다.
[神而明之存乎其人] ‘사람이 능히 이 를 신묘하게 해서 드러내어 밝힘은 그 사람에 존재함’을 말한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성스러우면 신묘하게 하여 밝힐 수 있고, 만약 그 사람이 어리석으면 신묘하게 하여 밝히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달려 있고 에 달려 있지 않은 것이다.
묵묵히 하여 이루고 말하지 않아도 믿음은 덕행德行에 달려 있다.”
덕행德行현인賢人의 덕행이니, 순리順理가 안에 충족되어 있으므로 묵묵히 이루는 것이요, 와 맞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믿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만약 순리順理가 안에서 충족되어 있으면 묵묵히 성취하여 은연중 이치와 맞아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는 것이다.
[存乎德行] 만약 덕행德行이 있으면 묵묵히 성취해서 말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것이요, 만약 덕행이 없으면 이렇게 하지 못한다.
여기서 말한 덕행은 현인賢人의 덕행을 근거한 것이요, 앞 경문의 “신묘하게 하여 밝힘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성인聖人을 이른 것이다.


역주
역주1 楚夏不同 : 말소리가 각기 다름을 이르는바, ‘楚’는 남쪽 초나라를 말하고 ‘夏’는 諸夏를 말한다. 漢나라 荀悅의 ≪申鑒≫ 권2 〈時事 第二〉에 “글은 마멸됨이 있고 말은 南楚 지방과 諸夏의 〈차이가〉 있다.[文有磨滅 言有楚夏]”라고 보이며, 明나라 楊愼의 〈上林賦 連綿字〉에 “글자에는 고금의 〈차이가〉 있고 말소리에는 南楚와 諸夏의 〈차이가〉 있다.[字有古今 音有楚夏]”라고 보인다.
역주2 子曰 : 朱子는 위의 節과 이 節의 ‘子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두 ‘子曰’자는 의심컨대 그 하나는 衍文인 듯하니, ‘子曰’이란 글자는 모두 後人이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류가 있으니, 근세에 ≪通書≫는 바로 周子(周敦頤)가 스스로 지은 것인데, 또한 후인들이 매 章마다 ‘周子曰’이라는 글자를 가한 것과 같으니, 그 문답을 가설한 부분이 바로 여기와 같다.[兩子曰字 疑衍其一 蓋子曰字 皆後人所加 故有此誤 如近世通書 乃周子所自作 亦爲後人每章加以周子曰字 其設問答處 正如此也]”
역주3 易窮則變……通則久 : 이 말은 아래 〈繫辭傳 下〉 2장에 보인다.
역주4 乾坤其易之縕邪者……故乾坤是易道之所縕積之根源也 : ‘乾坤其易之縕邪’를 孔穎達은 ‘乾과 坤은 易의 道가 깊이 쌓이게 된 근원’이라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반면 朱子는 이를 ‘乾과 坤은 易에 들어 있는 진리’이라는 뜻으로 풀었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縕은 싸고 있는 것이니, 옷의 솜과 같다. 易에 들어 있는 것은 陰․陽일 뿐이니, 무릇 陽은 모두 乾이고 무릇 陰은 모두 坤이다.[縕 所包蓄者 猶衣之著也 易之所有 陰陽而已 凡陽皆乾 凡陰皆坤]”
역주5 川府 : 만물이 깊이 쌓여 있는 곳을 가리킨다.
역주6 故乾生三男……而爲八卦 : 八卦 중의 乾卦와 坤卦는 가족으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징하고, 나머지 여섯 卦는 6명의 자녀를 상징하는바, 震卦☳는 장남, 坎卦☵는 차남, 艮卦☶는 소남, 巽卦☴는 장녀, 離卦☲는 차녀, 兌卦☱는 소녀에 해당한다. 卦의 主爻는 홀로 陰이거나 홀로 陽인 爻이므로 한 爻가 陰爻면 여자, 한 爻가 陽爻면 남자가 되고, 爻의 생성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므로 主爻가 初爻면 長子나 長女, 中爻면 次子나 次女, 上爻면 少子나 少女가 되는 것이다. 이는 아래 〈說卦傳〉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역주7 (以)[其] : 저본에는 ‘以’로 되어 있으나, 阮元의 〈校勘記〉에 “盧文弨가 이르길, ‘「以」는 「其」가 되어야 한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其’로 바로잡았다.
역주8 [者] : 저본에는 ‘者’가 없으나, 經文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者] : 저본에는 ‘者’가 없으나, 經文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주역정의(4)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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