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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4)

주역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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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정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疏]正義曰:‘聖人有以’至‘如蘭’ 此第六章也.
上章旣明易道變化, 神理不測, 聖人法之, 所以配於天地, 道義從易而生, 此章又明聖人擬議易象, 以贊成變化.
又明人擬議之事, 先愼其身, 在於愼言語, 同心行, 動擧措, 守謙退, 勿驕盈, 保靜密, 勿貪非位, 凡有七事.
是行之於急者, 故引七卦之, .
聖人 有以見天下之賾하여 而擬諸其形容하고 象其物宜
[注]乾剛坤柔 各有其體 曰 擬諸形容이라하니라
[疏]正義曰:‘聖人有以見天下之 聖人有其神妙, 以能見天下深賾之至理也.
‘而擬諸其形容’者, 以此深賾之理, 擬度諸物形容也, 見此剛理, 則擬諸乾之形容, 見此柔理, 則擬諸坤之形容也.
‘象其物宜’者, 聖人又法象其物之所宜, 若象陽物, 宜於剛也, 若象陰物, 宜於柔也, 是各象其物之所宜.
六十四卦, 皆擬諸形容, 象其物宜也.
若泰卦比擬泰之形容, 象其泰之物宜, 若否卦則比擬否之形容, 象其否之物宜也, 擧此而言, 諸卦可知也.
是故 謂之象이라 聖人 有以見天下之動하여 而觀其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니
[注]典禮 適時之所用이라
[疏]正義曰:‘是故謂之象’者, 以是之故, 謂之象也, 謂六十四卦是也.
, 此以上, 結成卦象之義也.
‘聖人有以見天下之動’者, 謂聖人有其微妙, 以見天下萬物之動也.
‘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者, 旣知萬物以此變動, 當此會通之時, 以施行其典法禮儀也.
繫辭焉하여 以斷其吉凶이라 是故 謂之爻 言天下之至賾而不可惡也 言天下之至動而不可亂也
[注]易之爲書 不可遠也 惡之則逆於順이요 錯之則乖於理
[疏]正義曰:‘繫辭焉 以斷其吉凶’者, 旣觀其會通而行其典禮, 以定爻之通變, 而有三百八十四爻,
於此爻下, 繫屬文辭, 以斷定其吉凶.
若會通典禮得則爲吉, 若會通典禮失則爲凶也.
‘是故謂之爻’者, 以是之故, 此會通之事而爲爻也.
夫爻者, 效也, 效諸物之通變. 故上章云“爻者, 言乎變者也.” 自此已上, 結爻義也.
[疏]‘言天下之至賾 而不可惡也’者, 此覆說前文“見天下之賾”, 卦象義也.
謂聖人於天下至賾之理, 必重愼明之, 不可鄙賤輕惡也, 若鄙賤輕惡, 不存意明之, 則逆於順道也.
‘言天下之至動 而不可亂’者, 爻之義也.
謂天下至賾變動之理, 論說之時, 明不可錯亂也, 若錯亂, 則乖違正理也.
擬之而後言하며 議之而後動하여 擬議以成其變化하니라
[注]擬議以動이면 則盡變化之道
[疏]正義曰:‘擬之而後言’者, 覆說上“天下之至賾不可惡也”, 聖人欲言之時, 必擬度之而後言也.
‘議之而後動’者, 覆說上“天下之至動不可亂也”, 謂欲動之時, 必議論之而後動也.
‘擬議以成其變化’者, 言則先擬也, 動則先議也, 則能成盡其變化之道也.
鳴鶴在陰이어늘 其子和之로다 我有好爵하여 吾與爾靡之라하니
[注]鶴鳴則子和하고 脩誠則物應하나니 我有好爵하여 與物散之하면 物亦以善應也
明擬議之道하고 繼以斯義者 誠以吉凶失得 存乎所動하니
莫不以同相順하고 以類相應하여 動之斯來하고 之斯至
鶴鳴于陰 氣同則和하고 出言戶庭 千里或應하나니
出言猶然이어든 況其大者乎 千里或應이어든 況其邇者乎
하고 定失得者 愼於樞機 是以 君子擬議以動하여 愼其微也
[疏]正義曰:‘鳴鶴在陰’者, 上旣明擬議而動, 若擬議於善, 則善來應之, 若擬於惡, 則惡亦隨之.
故引鳴鶴在陰, 取同類相應以證之, 此引中孚九二爻辭也.
鳴鶴在幽陰之處, 雖在幽陰而鳴, 其子則在遠而和之, 以其同類相感召故也.
‘我有好爵’者, 言我有美好之爵, 而在我身.
‘吾與爾靡之’者, 言我雖有好爵, 不自獨有, 吾與汝外物共靡散之.
謂我旣有好爵, 能靡散以施於物, 物則有感我之恩, 亦來歸從於我.
是善往則善者來, 皆證明擬議之事. 我擬議於善以及物, 物亦以善而應我也.
子曰 君子居其室 出其言善이면 則千里之外應之하나니 況其邇者乎
居其室 出其言不善이면 則千里之外違之하나니 況其邇者乎
言出乎身하여 加乎民하며 行發乎邇하여 見乎遠하나니 言行 君子之樞機
[注]樞機 制動之主
[疏]‘子曰君子’至‘樞機’
○正義曰:‘子曰君子居其室’者, 旣引易辭, 前語已絶, 故言“子曰.”
‘況其邇者乎’者, 出其言善, 遠尙應之, 則近應可知, 故曰“況其邇者乎.”
此證明擬議而動之事, 言身有善惡, 无問遠近皆應之也.
‘言行 君子之樞機’者, 樞謂戶樞, 機謂.
言戶樞之轉, 或明或闇, 弩牙之發, 或中或否, 猶言行之動, 從身而發, 以及於物, 或是或非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 君子之所以動天地也 可不愼乎
同人先號咷而後笑라하니 子曰 君子之道 或出或處하며 或默或語하나 二人同心하면 其利斷金이요
[注]同人終獲後笑者 以有同心之應也 夫所況同者 豈係乎一方哉
君子出處默語 不違其中이면 則其跡雖異 道同則應이라
[疏]正義曰:‘言行 君子之所以動天地’者, 言行雖初在於身, 其善惡積而不已, 所感動天地, 豈可不愼乎.
‘同人先號咷而後笑’者, 證擬議而動, 則同類相應. 以同人初未和同, 故先號咷, 後得同類, 故後笑也.
‘子曰君子之道’者, 各引易之後, 其文勢已絶, 故言“子曰.”
‘或出或處 或默或語’者, 言同類相應, 本在於心, 不必共同一事.
或此物而出, 或彼物而處, 或此物而默, 或彼物而語,
出處默語, 其時雖異, 其感應之事, 其意則同, 或處應於出, 或默應於語.
‘二人同心 其利斷金’者, 二人若同齊其心, 其利能斷截於金.
金是堅剛之物, 能斷而截之, 盛言利之甚也. 此謂二人心行同也.
同心之言 其臭如蘭이로다
[疏]正義曰:言二人同齊其心, 吐發言語, 氤氳臭氣, 香馥如蘭也. 此謂二人言同也.


정의왈正義曰의 [聖人有以]에서 [如蘭]까지 이는 제6장이다.
위의 장에서는 이미 ‘역도易道의 변화와 신리神理의 측량할 수 없음을 성인聖人이 본받았으니, 이 때문에 천지天地에 배합하여 도의道義으로부터 생겨남’을 밝혔고, 이 장은 또 ‘성인이 역상易象을 모의하고 의논하여 변화를 찬성贊成함’을 밝혔다.
또 ‘사람이 모의하고 의논하는 일은 먼저 자기 몸을 삼가야 하는데, 이는 언어를 삼가고, 마음과 행실을 똑같게 하고, 거조擧措를 동하고, 겸퇴謙退를 지키고, 교만하거나 가득 차지 말고, 고요하고 주밀周密함을 보존하고, 자기 자리가 아닌 것을 탐하지 마는 것, 모두 이 일곱 가지 일에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행함에 더욱 급한 것이므로 일곱 의의意義를 인용하여 증명해서 글을 이룬 것이다.
성인聖人천하天下의 그윽함을 보고서 그 형용形容비의比擬(견주어 비교함)하고 그 물의物宜(물건의 마땅함)를 형상하였다.
가 각각 그 가 있다. 그러므로 “그 형용形容에 비의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성인유이견천하지색聖人有以見天下之賾] ‘’은 그윽하고 깊어서 보기 어려움을 이르니, 성인聖人이 신묘함을 소유하여 능히 천하의 깊고 그윽한 지리至理를 보는 것이다.
[而擬諸其形容] 이 깊고 그윽한 이치를 가지고 물건의 형용形容비의比擬하여 헤아린 것이니, 이 한 이치를 보면 의 형용에 비의하고, 이 한 이치를 보면 의 형용에 비의한 것이다.
[象其物宜] 성인聖人이 또 그 물건의 마땅한 바를 본받아 형상한 것이니, 예컨대 의 물건은 에 마땅함을 형상하고 의 물건은 에 마땅함을 형상한 것과 같은바, 이는 그 물건의 마땅한 바를 각각 형상한 것이다.
64가 모두 형용形容에 비의하고 물의物宜을 형상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태괘泰卦의 형용에 비의해서 물의物宜를 형상하고, 비괘否卦의 형용에 비의해서 물의物宜를 형상하였으니, 이것을 들어 말하면 여러 를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라 한 것이다. 성인聖人천하天下함을 보고서 회통會通(회합會合변통變通)을 관찰하여 전례典禮(전법典法예의禮儀)를 행하니,
전례典禮시용時用에 적합한 것이다.
정의왈正義曰:[是故謂之象] 이 때문에 이라 이른 것이니, 64가 이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앞 장에서는 “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이상은 괘상卦象의 뜻을 맺어 이룬 것이다.
[聖人有以見天下之動] 성인聖人이 미묘함을 소유하여 천하天下만물萬物함을 봄을 말한 것이다.
[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 이미 만물萬物이 이로써 변동變動함을 알고서 물건이 회합會合하고 변통變通함을 관찰하여 이 회통會通하는 때에 그 전법典法예의禮儀를 시행하는 것이다.
글[]을 달아서 길흉吉凶을 결단하였다. 이 때문에 라 이른 것이다. 천하天下의 지극히 그윽함을 말함에 싫어할 수가 없고, 천하天下의 지극히 함을 말함에 착란錯亂해서는 안 된다.
주역周易≫ 책은 멀리할 수가 없으니, 이를 싫어하면 순도順道를 거스르고, 이를 착란錯亂하면 정리正理에 어긋난다.
정의왈正義曰:[繫辭焉 以斷其吉凶] 이미 회통會通을 보고서 전례典禮를 행하여 통변通變을 정해서 384가 있게 되었으니,
아래에 글을 달아서 그 길흉吉凶을 단정하였다.
이를테면 회통과 전례가 〈마땅함을〉 얻으면 하고, 회통과 전례가 〈마땅함을〉 잃으면 한 것과 같은 것이다.
[是故謂之爻] 이 때문에 이 회통會通하는 일을 일러 라고 한 것이다.
는 본받음[]이니, 여러 물건의 통변함을 본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장에 “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로부터 이상은 의 뜻을 맺은 것이다.
[言天下之至賾 而不可惡也] 이는 앞글의 “천하天下의 그윽함을 본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니, 괘상卦象의 뜻이다.
성인聖人이 천하의 지극히 그윽한 이치에 대하여 반드시 거듭 삼가고 밝혀서 비천하게 여기고 경시하고 싫어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니, 만약 비천하게 여기고 경시하고 싫어하여 거기에 뜻을 두어 밝히지 않으면 순도順道를 거스르는 것이다.
[言天下之至動 而不可亂] 위의 “성인聖人천하天下의 지극히 함을 본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니, 의 뜻이다.
천하天下의 지극히 그윽하고 변동變動하는 이치를 논설論說할 때에는 분명히 해서 착란錯亂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니, 만약 착란하면 정리正理에 어긋난다.
만약 문세文勢상하上下를 가지고 말하면 마땅히 “지동이불가난야至動而不可亂也”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의比擬한 뒤에 말하며 의논한 뒤에 하여 비의하고 의논해서 변화變化를 이룬다.
비의하고 의논하여 하면 변화變化를 다한다.
정의왈正義曰:[擬之而後言] 위의 “천하天下의 지극히 그윽한 이치에 대하여 싫어할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니, 성인聖人이 이것을 말하고자 할 때에 반드시 이것을 비의하고 헤아린 뒤에 말하는 것이다.
[議之而後動] 위의 “천하天下의 지극히 동하는 이치에 대하여 착란할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니, 동하고자 할 때에 반드시 의논한 뒤에 동함을 말한 것이다.
[擬議以成其變化] 말을 하게 되면 먼저 비의하고, 동하게 되면 먼저 의논하니, 이렇게 하면 변화變化를 다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우는 음지陰地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 내 좋은 관작官爵을 소유하여 내 너에게 흩어주겠다.”라고 하니,
이 울면 새끼가 화답하고 닦음이 성실하면 남[]이 응하니, 내가 좋은 관작을 소유하고서 남에게 흩어주면 남 또한 으로써 응하는 것이다.
비의比擬하고 의논하는 를 밝히고서 이 뜻을 가지고 뒤를 이은 것은, 진실로 길흉吉凶실득失得하는 바에 달려 있어서이니,
와 같아진 자는 또한 그를 얻고(그에게 응하고), 과 같아진 자는 또한 그를 어긴다.
같음으로써 서로 하고 무리로써 서로 응하지 않음이 없어서 하면 이에 따라오고 편안히 하면 이에 이르러오는 것이다.
이 음지에서 울 때에 기운이 같으면 새끼가 화답하고, 말을 호정戶庭에서 낼 적에 천리千里 밖에서도 혹 응하니,
말을 내는 것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이보다 큰 것이랴. 천리千里 밖에서도 혹 응하는데, 하물며 가까운 곳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회린悔吝을 근심함은 섬개纖介(작은 하자)에 있고, 실득失得을 정함은 언행[추기樞機]을 삼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비의하고 의논하여 동해서 그 은미함을 삼가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鳴鶴在陰] 위에서 이미 비의하고 의논하여 동함을 밝혔으니, 만약 을 비의하고 의논하면 이 와서 응하고, 만약 을 비의하고 의논하면 이 또한 따른다.
그러므로 우는 이 음지에 있음을 인용하여 ‘동류同類가 서로 응함’을 취해서 증명하였으니, 이는 중부괘中孚卦 구이九二효사爻辭를 인용한 것이다.
우는 학이 그윽하고 어두운 곳에 있어서 비록 그윽하고 어두운 곳에서 울지만 그 새끼가 멀리 있으면서 화답하니, 이는 동류同類여서 서로 감동하여 부르기 때문이다.
[아유호작我有好爵] 내가 아름다운 관작을 소유하여 내 몸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吾與爾靡之] 내 비록 좋은 관작을 소유하였으나 홀로 소유하지 않고 내 너에게 외물外物을 주어 함께 흩어줌을 말한 것이다.
내 이미 좋은 관작을 소유하고서 능히 흩어주어서 남에게 베풀면 남이 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한 나에게 귀의하여 나를 따르는 자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는 이 가면 이 오는 것이니, 모두 비의하고 의논하는 일을 증명한 것이다. 내가 을 비의하고 의논하여 남에게 미치면 남 또한 으로써 나에게 응하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방안에 있을 적에 말을 냄이 하면 천리千里의 밖에서도 하니, 하물며 가까운 자에 있어서랴.
방안에 있을 적에 말을 냄이 하지 못하면 천리千里의 밖에서도 어기니, 하물며 가까운 자에 있어서랴.
말은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가해지며 행실은 가까운 데서 나와 먼 곳에 나타난다. 말과 행실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니
추기樞機함을 제재하는 주체이다.
의 [子曰君子]에서 [추기樞機]까지
정의왈正義曰:[子曰君子居其室] 이미 ≪주역周易≫의 글을 인용하여 앞의 말이 이미 끝났으므로 “자왈子曰”이라고 〈다시〉 말한 것이다.
[況其邇者乎] 말을 냄이 하면 먼 곳에서도 오히려 하니, 그렇다면 가까운 데서 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물며 가까운 자에 있어서랴.”라고 한 것이다.
이는 비의하고 의논하여 하는 일을 증명한 것이니, ‘몸에 이 있으면 멀고 가까움을 막론하고 모두 함’을 말한 것이다.
[언행言行 君子之樞機] ‘’는 문의 지도리를 이르고, ‘’는 쇠뇌의 기아機牙를 이른다.
‘문의 지도리가 돎에 따라 〈방안이〉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쇠뇌의 기아를 발사함에 따라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니, 이는 말과 행실의 동함이 몸으로부터 나와서 남에게 미침에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함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추기樞機함은 영화와 치욕의 주체이다. 말과 행실은 군자君子천지天地를 감동시키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인同人이 먼저는 울부짖다가 뒤에 웃는다.”라고 하니, 공자孔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혹 나가고 혹 은둔하며 혹 침묵하고 혹 말하나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르고,
동인同人이 뒤에 웃음을 끝내 얻는 것은 동심同心의 응함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한다고 비유한 것이 어찌 한 방소에만 매여 있겠는가.
군자君子가 나가고 은둔하며 침묵하고 말하는 것이 을 어기지 않으면 자취가 비록 다르나 가 같으면 응하는 것이다.
정의왈正義曰:[언행言行 君子之所以動天地] 말과 행실이 비록 처음엔 자기 몸에 있으나, 이 쌓여 그치지 않으면 천지天地를 감동시키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同人先號咷而後笑] 비의하고 의논하여 하면 동류同類가 서로 함을 증명하였다. 동인同人이 처음에는 화동和同하지 못하기 때문에 먼저 울부짖고, 뒤에는 동류를 얻기 때문에 뒤에 웃는 것이다.
[子曰君子之道] 각각 ≪주역周易≫을 인용한 뒤에 문세文勢가 이미 다하였으므로 “자왈子曰”이라고 한 것이다.
[或出或處 或默或語] 동류同類가 서로 응함이 본래 마음에 있고 반드시 같은 일을 함께하지는 않음을 말한 것이다.
혹 이 일에 대해서는 나오고 혹 저 일에 대해서는 은둔하며 이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저 일에 대해서는 말해서,
나오고 은둔함과 침묵하고 말함이 그 때가 비록 다르나 그 감응하는 일은 그 뜻이 같아서 혹 은둔하면서도 나오는 〈동류에게〉 응하고 혹 침묵하면서도 말하는 〈동류에게〉 응하는 것이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두 사람이 만약 그 마음을 함께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를 수 있는 것이다.
쇠는 단단하고 강한 물건이니, 이것을 잘라 끊을 수 있다면 이는 예리함의 심함을 크게(강하게) 말한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의 마음과 행실이 같음을 말한 것이다.
마음을 함께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정의왈正義曰:두 사람이 그 마음을 함께하고서 그 언어를 토해내면 인온氤氳한(서로 조화롭게 화합한) 냄새의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두 사람의 말이 같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議)[義] : 저본에는 ‘議’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義’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 又明人擬議之事……以證成之 : 여기에서 나열한 7개 卦의 7가지의 일은 아래 6장과 7장에 걸쳐 나오는바, ‘愼言語’과 ‘同心行’은 6장에, ‘動擧措’․‘守謙退’․‘勿驕盈’․‘保靜密’․‘勿貪非位’는 7장에 보인다. 7개 卦의 7가지의 일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愼言語同心行動擧措守謙退勿驕盈保靜密勿貪非位
中孚卦 九二同人卦 九五大過卦 初六謙卦 九三乾卦 上九節卦 初九解卦 六三
역주3 賾謂幽深難見 : 朱子는 ‘賾’을 ‘雜亂함(천하의 복잡하고 紛亂한 사물)’이라고 풀이하였다.
역주4 故前章云卦者 言乎象者也 : 위 3장에 “彖은 象을 말한 것이다.[彖者 言乎象者也]”라고 보인다.
역주5 觀看其物之會合變通 : 孔穎達은 경문의 ‘會通’을 ‘회합과 변통’으로 訓하였는데, 朱子는 ≪莊子≫ 〈養生主〉의 ‘庖丁解牛’ 고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會는 이치가 모여 있어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을 이르고, 通은 이치가 행할 수 있어 막힘이 없는 부분을 이르니, 庖丁이 소를 해체할 때에 會는 〈힘줄과 뼈가〉 모인 곳이요, 通은 그 빈 곳인 것과 같다.[會謂理之所聚而不可遺處 通謂理之可行而无所礙處 如庖丁解牛 會則其族 而通則其虛也]”
역주6 (議)[謂] : 저본에는 ‘議’로 되어 있으나, 錢本․宋本과 위의 疏에서 “以是之故 謂之象也”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謂’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7 覆說上聖人見天下之至動 : 위의 절에서는 “聖人有以見天下之動”이라 하여 ‘動’자 앞에 ‘至’자가 없다.
역주8 若以文勢上下言之 宜云至動而不可亂也 : 이 말의 의미는 未詳이다. 兪樾은 ≪群經平議≫에서, ≪經典釋文≫의 말에 의거하여 “鄭玄과 虞翻이 취한 本에는 〈經文의〉 이 句(言天下之至動)도 위의 句와 마찬가지로 〈‘至動’이〉 ‘至賾’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으며, 孔穎達의 이 말에 의거하여 “공영달의 本에도 ‘至賾’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즉 유월의 분석에 따르면, 공영달의 저본에 이 句는 ‘言天下之至賾’으로 되어 있었는데 공영달이 이를 ‘言天下之至動’으로 교감하였고 이 교감 사실을 밝히기 위해 이 말을 疏에 기재한 것이 된다. 참고를 위해 소개하는 바이다.
역주9 同乎道者……失亦違之 : 老子 ≪道德經≫에 “그러므로 道에 종사하는 이는 道를 행함에 道와 같아지고, 得[德]을 행함에 得과 같아지고, 失을 행함에 失과 같아지는 것이다. 道와 같아진 자는 道 또한 기꺼이 그를 얻을 것이고(응할 것이고), 得과 같아진 자는 得 또한 기꺼이 그를 얻을 것이고, 失과 같아진 자는 失 또한 기꺼이 그를 얻을 것이다.[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라고 보인다. 번역은 王弼의 注를 참고하였다.
역주10 (緩)[綏] : 저본에는 ‘緩’으로 되어 있으나, 阮元의 〈校勘記〉에 “‘緩’은 ‘綏’가 되어야 하니, 형태가 비슷해서 잘못된 것이다. 毛本에는 바로 ‘綏’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綏’로 바로잡았다. ≪論語≫ 〈子張〉에 “세우면 이에 서고, 인도하면 이에 따르고, 편안하게 해주면 이에 따라오고, 動하면 이에 和한다.[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라고 하였다.
역주11 夫憂悔吝者 存乎纖介 : 위 3장에 “悔와 吝을 근심함은 介(작은 하자)에 있다.[憂悔吝者 存乎介]”라고 하였는바, 작은 하자가 있을 때에 그로 인해 생길 悔吝을 미리 근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주12 弩牙 : 쇠(청동제)로 된 발사장치가 있어 그 힘으로 활을 쏘는 무기를 ‘쇠뇌[弩]’라고 하는데, 쇠뇌의 시위를 걸어매는 곳을 弩牙라고 한다.
역주13 (纖)[鑯] : 저본에는 ‘纖’으로 되어 있으나, 阮元의 〈校勘記〉에 “盧文弨가 말하기를 ‘纖은 鑯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鑯’으로 바로잡았다.

주역정의(4)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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